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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마 28: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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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당신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마 28:16)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마 28: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마 28: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3년 동안에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교회부터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책을 저술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독립운동을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오로지 집중하신 한가지 일이 있습니다. 제자를 선택해서 훈련하신 일입니다. 그것도 별 볼일을 없는 어부 출신들을 모아서 3년 동안 함께 먹고 마시면서 제자훈련에 몰두하셨습니다.

  그리고 3년 간의 공생애를 마무리하며,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3일 후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40일간 세상에 계시다가 하늘나라로 원대복귀 하실 때 제자들에게 마지막 분부를 하셨습니다. 그 분부의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마 28:19)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한마디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것이 마지막 분부였고 최후 의 지상명령이었습니다. 이 명령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 계신 주님의 간절한 소원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1.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주님의 제자(弟子)로 부르셨다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목적의식이 약해요. 우리는 이미 세례를 받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믿음이 많이 성장해서 삶의 변화도 체험했습니다. 은혜 받고 축복도 받고 교회에서 직분도 맡아서 봉사도 합니다.

  그러면 다 된 겁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따져보면 나를 위한 신앙생활일 뿐입니다. 나 중심적 신앙입니다. 이 세상에서 축복 받고 잘 사는 것이 목적이 되면 안됩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값싼 은혜입니다.

  독일의 순교자 본 훼퍼는 ‘값싼 은혜’(cheap grace)란 말을 썼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값싼 은혜는 오늘 우리 교회를 죽이는 적이다.’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그가 주장했던 값싼 은혜는 ‘회개가 없는 용서요, 훈련이 없는 세례요, 죄의 고백이 없는 성찬이요, 제자도가 없는 은혜요, 십자가가 없는 은혜요,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 예수가 없는 은혜라.’고 했습니다.   

  지난번에 조용기 목사는 교계 지도자들이 잘못한 죄를 자백할 때 ‘값싼 은혜’를 지나치게 강조한 것을 회개하였습니다. 삼박자 축복을 중심으로 예수 믿으면 복 받는 다는 말을 너무 강조한 겁니다. 그래서 기복주의적 교인을 양산한 겁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진정한 예수 제자를 키우지 못한 겁니다.

  분명한 사실은 예수 제자(弟子)가 되려는 사람은 값을 지불합니다.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합니다. 제자의 길은 아무에게나 주는 값싼 은혜가 아닌 겁니다. 예수님은 제자가 되고자 자들에게 당당하게 값비싼 대가를 요구하셨습니다.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 1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우리를 영광스런 주님의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제자(弟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제자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이제부터 다른 사람을 구원하고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를 먼저 구원하시고 직장도 주신 것도 나만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라고 주신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교회가 몇 백 명 모이는 큰 교회가 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주님께 헌신한 참 제자가 몇 명인가? 하는 점입니다. 교인이 많다고 다 제자가 아닙니다.   

  후안 카를로스 목사는 그의 책 ‘제자입니까?’에서 그의 초기 목회 경험담을 털어놓았습니다. 그가 브라질의 브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목회를 시작할 때 처음 184명의 교인으로 시작했는데, 2년 동안 열심히 사역한 결과 600여명으로 증가했습니다. 즉 3배나 증가한 겁니다. 그는 철저한 목회행정으로 교인들을 관리했습니다. 많은 교역자들이 와서 참고할 정도로 탁월한 서식을 만들었고 교인들도 그것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후안 목사님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셨습니다. “후안 목사, 너는 지금 주님의 교회(敎會)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사업(事業)을 하는 거야. 너의 교인은 지금 자라고 있질 않아. 네 생각에는 교인 수가 200에서 600으로 늘었다고 교회가 자랐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것은 자란 것이 아니라 살이 찐 거야. 2년 전에는 200명의 영적 갓난아기들을 데리고 있었고 지금은 600명의 갓난아이들을 양육하고 있을 뿐이야. 후안, 너는 지금 교회가 아니라 고아원을 운영하는 원장일 뿐이야.”

  이 감동을 받은 후안 목사는 심각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면서 자기 교인 하나 하나를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저 사람은 우리 교회회원인가? 아니면 예수의 제자인가?’ 이 관찰이 그의 새로운 목회로 전환하는 동기가 되었답니다. 우리 화평교회 모든 성도들은 다 주님의 제자로써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누가 제자입니까? 

2. 제자는 스승이신 예수님을 배우고 따르는 자입니다. 

  제자(弟子)는 원어인 헬라어로 ‘마데테스’(μαθετησ)입니다. 이 말의 뜻은 ‘그리스도를 배우고 따르는 자’라는 뜻입니다. 제자는 스승의 인격을 배우고 스승의 철학을 배우고 스승의 가르침을 배우는 자입니다.

  붓글씨를 쓰는 사람이 스승의 체본(體本)을 받아서 그대로 쓰는 것처럼, 스승을 본으로 삼고 그대로 배우는 사람이 바로 제자입니다.  우리는 부지런히 예수를 배워야합니다. 확실한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철저히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어떻게 배웁니까? 참 제자는 듣고 배우지 않고 보고 배웁니다.

(다같이) '참 제자는 듣고 배우지 않고 보고 배운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교육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이나 교과과정을 찾지 아니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유일한 교과서입니다. 예수님의 말과 인격과 삶 자체가 교과서였습니다. 예수님은 말로만 가르치는 교사가 아닙니다. 모범을 보이시고 실천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훈련의 지표는 (다같이) ‘나를 따르라.’‘나를 본 받으라’는 겁니다. 예수님은 몸소 본을 보이지 않고 가르치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훈련의 방법은 제자들과 함께 사는 것이었습니다. 

(막 3: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실제적으로 제자들을 보내서 병자고치는 것, 귀신 쫓는 일들을 하도록 실습까지 시키셨습니다. 사자(獅子)가 새끼에게 사냥하는 것을 직접 보여 주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기도(祈禱)의 본을 보여 가르치셨습니다. 전도(傳道)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랑과 겸손,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교육방법은 없습니다. 지식교육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도 보여주는 교육을 해야합니다. 사도바울이 그런 교육을 했습니다. 

(고전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우리 교회 교사(敎師)들과 목자(牧者)들이 이렇게 교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예수님을 배우는 주님의 참 제자가 되십시오. 그리고 보여주면서 참 제자를 양육하는 모범교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예수님께 배웁니까? 지금도 예수님과 같이 살면서 배우는 겁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 안에는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영으로 우리 안에 와 계십니다. 예수님 말씀입니다.

(요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弟子)가 되리라

  이제 별거하지 말고 동거하기만 하면 됩니다. 틀림없이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면 제자가 되는 겁니다. 주님이 되게 해주십니다. 그런데 자꾸 별거를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옆 사람에게) ‘당신은 지금 예수님과 동거 중입니까? 별거 중입니까?’ 오늘 오후부터 별거하는 사람 또 있을 겁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항상 붙어있듯이 항상 예수 안에 동거하므로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배우는 것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3. 제자는 훈련(訓練)이 필요합니다.

  한때 불교의 지도자였던 법정 스님의 ‘무소유(無所有)’란 책이 많은 젊은이들 마음에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 책을 읽지 않으면 교양인이 못되는 양 할 정도로 ‘베스트 셀러’였습니다. 그러나 그 책을 읽은 대부분의 사람이 무소유의 삶을 살아가는 자가 없습니다. 그 까닭은 무엇입니까? 무소유에 대한 훈련을 못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제자가 되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식의 가르침이나 감동만 받아서는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삶으로부터 감동을 받지 않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삶을 따르는 제자는 많지 않습니다. 훈련의 과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자는 훈련(訓練)이 필요합니다. 

  사도바울이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경건에 이르는 훈련을 하라’고 권면 하였습니다.

(딤전 4: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딤전 4:8)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경건생활을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경건 생활을 위한 훈련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으로 되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령, 창(唱)을 한다든가, 음악(音樂)을 하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연습과 훈련에 임해야 명창들의 제자가 되는지 아시지요. 작고하신 박동진 선생과 같은 훌륭한 스승의 사사일수록 그 훈련의 강도가 세다는 사실을 아실 겁니다. 아무나 그런 분들의 제자가 되지 못합니다.

  스포츠 스타들의 이면에 어떠한 지옥훈련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운동선수가 피나는 훈련이 없이는 금메달을 딸 수가 없습니다. 축구 천재 박주영 선수, 그가 골을 넣을 때마다 기도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그가 하루아침에 그런 선수가 되었겠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강한 훈련이 그를 만들었습니다. 

  강한 군인(軍人)이 되기 위해서도 강한 훈련을 받지 않으면 안됩니다.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 하사관 훈련, 장교 훈련, 육사훈련이 다 다릅니다. 북파 공작원을 육성하는 실미도에서의 특수 훈련 같은 훈련은 더 무섭습니다. 훈련 없이 뭐가 되겠습니까? 

  하물며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훈련을 받지 않고 가능하겠습니까? 안타까운 사실은 오늘날 신자들은 훈련을 기피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 어떤 제자훈련, 성경공부, 은사훈련, 예배훈련에 임하지 않습니다. 기도 훈련, 경건의 훈련을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에 참 제자(弟子)가 적은 것은 훈련을 안 받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모두 육신의 안일에 빠져 있습니다. ‘나는 여기가 좋사오니 나에게 더 이상 요구하지 마세요.’ 이러고 초막 속에 앉아 있습니다. 그러니 무슨 제자가 됩니까? 어떻게 그리스도의 강한 군사가 됩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딤후 2: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여러분,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훈련에 임하십시오. 예수님도 3년 반이나 제자들을 강 훈련시켰습니다. 그리고 강한 성령으로 무장시켰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당신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훈련시키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당신이 이를 거부하고 있는 겁니다. 훈련을 받지 않으면 졸개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다고 말도 못하고 전도지 한 장 제대로 못 주는 유약한 교인이 있는 겁니다. 맨발의 노방전도자, 최춘선 할아버지 같은 전도자는 훈련으로 되는 겁니다. 

  독수리는 새끼를 벼랑 위에서 훈련을 시킵니다. 그래서 백조의 왕(王)의 자리를 고수합니다. 제자는 훈련(訓練)이 필요합니다.   

  재벌회장이 자기 아들을 평사원으로 입사를 시켜 훈련을 시킵니다. 엄청 힘들지요. 그러나 아버지는 이를 지켜봅니다. 한 단계 훈련시키고 또 진급시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과장에서 더 이상 시험과 훈련에 임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답답한 겁니다. 앞으로 이 회사를 이을 회장이 되어야할 사람인데 큰 일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훈련시켜 주님의 제자로 쓰시고자하십니다. 그리고 하늘 나라를 상속시키시려고 하십니다.

(롬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성도 여러분, 제자가 되기 위한 훈련에 기꺼이 참여하십시오. 

4. 제자는 스승의 일을 계승(繼承)하는 자입니다.   

  제자는 스승의 하는 일을 위탁받은 자입니다. 제자는 스승의 분신(分身)이 되어서 스승의 일을 계승하는 자입니다. 스승이 언젠가 세상을 떠나게 될 때에 그 스승이 위탁한 일들을 유지 시켜 나가는 사람이 바로 제자입니다. 

  예수님이 제자에게 위탁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제자 삼는 일입니다.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 제자 삼는 일을 계승(繼承)하는 겁니다. 먼저는 내가 제자(弟子)가 되고 그리고는 다른 사람을 예수 제자로 만들어내는 겁니다. 이것을 재생산이라고 합니다. 전도(傳道)하고 양육(養育)하고 훈련(訓練)해서 재생산(再生産)을 할 수 있는 제자를 만드는 겁니다. 여러분이 예수 제자라면 이 일에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그동안은 예수님의 일이 잘 계승되었습니다. 1세기의 제자들은 2세기의 제자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21세기까지 잘 계승되어 왔습니다.  사도바울이 제자 삼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딤후 2: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바울이 먼저 디모데를 제자로 훈련시켰습니다. 그리고 디모데보고 충성된 사람을 제자 삼으라고 합니다. 충성된 사람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쳐 제자를 삼으라고 했습니다. 4대로 제자가 계승된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요즘에 근심하시고 계십니다. 대(代)가 끊어질 까봐 근심하고 계십니다. 신자들이 제자 삼는 일을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자녀도 안 낳으려고 하는 것처럼 영적인 자녀도 안 낳으려고 합니다. 제자를 삼으라는 주님의 일을 계승(繼承)하는 자가 없습니다.

  하늘과 땅에 권세를 가지신 분의 명령을 우습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상명령을 거부합니다. 이것은 화를 불러드리는 일입니다. 

(고전 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이야기를 하나 하면서 말씀을 맺겠습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목적이 이끄는 삶’의 저자인 릭 워렌 목사님의 아버지가 아주 훌륭한 목사님입니다. 릭 워렌 목사가 그 아버지에 대해 소개한 글을 보았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50년 이상 목사로 사역하셨고 대부분 시골 중소 도시의 교회를 섬기셨습니다. 아버지가 가장 애착을 보이신 것은 자원 봉사자들과 함께 어려운 나라에 작은 예배당을 지어주는 일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평생 동안 전 세계에 150개 이상의 예배당을 지으셨습니다.

  몇 년 전 아버지는 암(癌) 선고를 받으셨습니다. 이 땅에서의 마지막 1주일 동안은 거의 24시간을 의식이 반밖에 없는 상태로 깨어 계셨습니다. 아버지는 꿈을 꾸시면서 그 꿈에 대해 크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저는 침대 곁에서 그 꿈에 대해 듣는 것만으로도 아버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예배당 건축사업을 하나 하나 회상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숨을 거두실 무렵, 나와 아내와 조카는 아버지 곁에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갑자기 생기가 돌아오셨고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하셨습니다. 물론 아버지는 너무 약하셨기 때문에 아내는 아버지를 다시 눕혀드렸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계속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애쓰셨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이렇게 여쭤보았습니다. “아버지, 뭘 하고 싶으세요?” 그때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한 명을 더 구해야 해! 예수님을 위해 한 명을 더 구해야 해! 예수님을 위해 한 명을 더 구해야 해!” 아버지는 계속 반복하셨습니다.

  그 후 아버지는 한 시간동안 그 말을 100번 정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한 명을 더 구해야 해!” 릭 목사는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의 믿음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아버지는 마치 명령을 하시듯 약한 손을 뻗어 아들 릭 목사의 머리에 얹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한 명을 더 구해라! 예수님을 위해 한 명을 더 구해라!”

  이것이 우리 교회에 대한, 그리고 여러분과 저에 대한 주님의 간절한 소원이십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피를 헛되지 않게 하는 길입니다. 우리 함께 주님의 제자가 됩시다. 그리고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나갑시다. 주님은 지금 ‘가서(Go)󰡑제자를 삼으라고 하십니다. 가지 않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설교 : 신만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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