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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왕국의 씨를 진멸하였으나 (대하 22: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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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문제나 일으키고 재정이나 축 내는 사람들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속한 공동체에서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습니다.  사람들은 이들에게 별로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세상에 조용히 침투하기 때문입니다.  조용하게 세상에 침투한 이들은 이 사회 구석구석에  파고듭니다.  물론 그 세력이 아주 미비하기 때문에 누구도 위협을 느끼거나 그들을 경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리를 잡고 그들의 세력을 거창하게 키워 나갑니다.  이들은 각 분야에 뿌리를 박고 이 사회를 차지하기 시작합니다. 아무도 이들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모든 영역들, 즉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군사 등 모든 영역들이 다 그들 손으로 넘어가고 말 것입니다.  지금은 이들이 아주 초라하고 보잘 것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아주 무서운 세력으로 자라납니다. 

제가 말씀드린 이들이 누구일까요?
1)핵으로 한반도를 위협하며 미국과 벼랑 끝 협상을 벌이고 있는 북한 사람들일까요?
2)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생억지를 부리는 일본 사람들일까요?
3)아직도 6.25는 북침이라고 믿고 있는 운동권 학생들일까요? 
4) 눈부시게 경제성장을 하며 차세대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 사람들일까요?

제가 말씀드린 이들이 바로 다음 세대를 맡은 우리 청년들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이미 짐작하셨을 것입니다. 

사단은 여러분의 가문과 우리 교회와 우리 민족사를 망치기 위하여 아주 적은 경비로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지혜를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 세대를 맡게 되는 청년들을 건강하게 자랄 수 없도록 막는 것입니다.  우리 청년들이 영적으로 육적으로 건강하게 자라지 못하면 우리 가문과 우리 교회와 우리 민족의 역사는 더 이상 어떤 기대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들이 우리의 가문과 우리 교회와 우리 민족을 위하여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청년들이 영적으로 육적으로 건강한 하나님의 자녀로 자라도록 돕고 그들을 말씀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스라엘 역사에 아주 슬픈 한 부분을 보게 됩니다.  이 역사를 보면서 우리가 다음 세대를 맡게 되는 우리 청년들에게 얼마나 좋은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북 이스라엘엔 가장 악한 왕과 왕비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합과 이세벨입니다.  이 아합과 이세벨 사이에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딸 이름이 아달랴입니다.  아달랴는 참으로 하지 말았어야 할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유다 왕국으로 시집을 오게 된 것입니다. 

아달랴가 유다 왕국으로 시집을 오게 될 때에 두 가지를 가지고 옵니다.
  첫째는 우상 숭배에 대한 광적인 열심입니다.  우상 숭배에 대한 이 광적인 열심은 아달랴가 어렸을 때부터 숙달된 우상 숭배의 조교인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입니다.
  둘째는 피를 보는 것을 즐거워하는 잔인성입니다. 
아달랴는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유다 왕국으로 시집을 오게 됩니다.

아달랴가 남 왕국에 시집을 와서 보니 자기 남편 여호람 왕은 장자였기 때문에 왕이 된 것이지 왕이 될 자격이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눈에 빛이 나는 시동생들이 여섯 명이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나 국민들이 보나 이 여섯 명의 시동생들이 훨씬 더 훌륭한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아달랴는 하나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온 나라 방방곡곡에 자기가 섬기던 우상으로 붉게 물들이는 것입니다.  이 아달랴의 계획에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이 눈에 빛이 나는 시동생들이었습니다.

아달랴는 자기 남편 여호람 왕에게 밤낮으로 바가지를 긁어 시 동생들을 다 죽이도록 충동질합니다.  결국 여호람 왕은 자기 동생들을 다 죽입니다.  오히려 왕이 된 형보다 훨씬 더 훌륭한 영성을 가진 동생들이 형에 의해서, 형수의 계략에 의해서 다 죽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악한 왕과 왕비를 그냥 두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블레셋과 아라비아 사람들을 시켜서 여호람 왕궁을 짓밟습니다.  왕궁에 쳐들어 와서는 모든 재산들을 약탈해가고, 왕의 아들들을 다 죽이고, 왕의 아내들을 잡아갔습니다.  그리고 오직 막내아들 아하시야 하나만 남겨 둡니다.  이렇게 왕궁이 짓밟히고, 그 많은 아들들이 다 죽어버리고 막내아들 하나만 남게 되는 상황이라면 보통 여인 같으면 실신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실신하기는커녕 더 정신이 총기나 나서 무언가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얼마 후에 하나님께서 얼마 후에 그 남편 여호람을 쳐서 죽게 만듭니다.  여호람은 왕궁이 짓밟히고 아들들이 다 죽어버리고, 재산이 약탈 될 때에 분통이 터졌습니다.  분노하고 애통하는 것이 북받쳐서 그만 창자가 썩었습니다.  그의 창자가 배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죽었습니다.  여호람 왕이 이렇게 비참하게 죽었을 때에 백성들은 그 누구도 가슴 아파하거나 왕의 죽음을 애도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모든 국민들은 국립묘지에 묻히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자 이렇게 이웃 나라의 군대들에게 왕궁이 짓밟히고, 아들들이 다 죽고, 재산이 약탈당하고, 남편까지 죽게 된 상황이면 하늘이 새까맣게 보여야 정상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 아달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피부색깔이 훨씬 더 좋아진 이 여인은 마마보이 아하시야를 왕으로 세워놓고 마음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였습니다. 아달랴는 성전을 부수었습니다.  성전에 있던 그릇들을 갖다가 바알 성전에 옮겨서 바알을 섬기는 데 쓰게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나라의 세금으로 전국에 우상을 만들어 세우게 했습니다, 
왕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던 아하시야는 일년 만에 피살 당하고 맙니다.

자, 이제는 모든 아들들이 다 죽었습니다.  남편도 죽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통 여인들 같으면 어떠해야 하는지 제가 더 말하지 않아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주 기쁨이 충만하여 왕궁으로 달려가서는 왕관을 직접 뒤집어쓰고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역사를 거쳐서 전무후무한 여왕이 되었습니다.  왕이 되어서는 왕의 집안사람들을 다 죽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려졌는지 모릅니다.  보통 할머니 같으면 눈에 집어넣어도 안 아플 어린 손주들까지 다 죽였습니다.  유다 왕국의 씨가 진멸하였다고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아달랴는 유다 왕국의 전무후무한 여왕이 되어 6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이 기간동안 자기 마음대로였습니다.  전 국토를 우상으로 붉게 물들였습니다.

  우상 숭배가 만연하는 사회의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 특징은 음란한 것입니다.  그 당시에 우상숭배에 전문적으로 종사하는 제사장들은 전부 직업적인 간음자였고 창녀들이었습니다. 
두 번째 특징은 잔인성입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 못 받는 것이 우상 숭배자들의 일반적인 사회 현상입니다.  그 당시에 집을 지어 놓고 그 집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일념으로 가장 소중한 선물을 신에게 드려야 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가장 소중한, 내 마음속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이 무엇입니까?  돈이 아닙니다.  명예와 권력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식입니다.  자식...  그 중에서도 첫 번째 아들입니다.  그 아들을 죽여서 피를 뿌리며 자기 집 낙성식을 거행하면 사람들이 우상 숭배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사회에 무슨 긍휼이 있겠습니까?  그런 사회에 무슨 정의가 있겠습니까? 
그런 국가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국가에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정치, 경제, 사회, 교육, 군사.. 모든 영역이 다 멸망으로 치달아 가고 있습니다. 
브레이크 고장 난 차가 언덕에 서서 어디로 갈지 모르는 방향을 향하여 계속 달려 가듯이 나라의 운명이 지금 그렇게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큰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위기가 단지 유다 민족의 한 위기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 교회의 위기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 가문의 위기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 민족의 위기입니다.
 
누가 , 어떻게 이 위기에서 우리 민족과 가문과 교회를 구했을까요? 
매우 유감스럽지만은 정치가들의 그 큰 입도 그 일을 해내지 못했습니다. 
경제인들의 큰 손도 그 일을 해내지 못했습니다. 
학자들의 그 엄청난 논리도 역사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역사를 구한 사람은 아주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대제사장인 여호야다와 그의 아내 여호사브앗 그들의 손이었습니다. 

왜 대 제사장의 손이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냐구요?
  지금처럼 이렇게 자유롭고 평화로울 때에는 대제사장의 사회적 신분은 아주 중요하게 여김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상당한 핍박이 일어나고, 배교가 일어 날 때에 대제사장의 신분은 가장 경멸히 여김을 받고, 멸시를 받게 됩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자기가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 증명하기 위해서 광적으로 우상숭배를 합니다.  우상숭배를 열심히 한 등급에 따라서 그 나라 관리로 등용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참으로 꼴 볼견처럼 보여 지던 두 인생 여호야다와 그의 부인 여호사브앗 그들이 역사를 구했습니다.

어떻게 구했습니까?
  1)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용기 없어 말은 못하고 마음속에 담아두고 이를 갈면서도 이 사람도 나쁜 사람, 저 사람도 나쁜 사람이라고 하면서 정죄와 비난으로 일관 했을까요?
그런 방법으로는 역사를 구할 수 없습니다. 
  2)어떤 사람들은 뭐 호박같이 둥근 세상 그저 시세에 맞게 둥글둥글 살다 죽으면 되지 뭐.  그러면서 적당하게 삽니다.  그런 사람도 역사를 구할 수 없습니다.

  역사를 구한 방법은 한 사람, 한 생명을 구한 것입니다. 
아달랴 할머니가 피를 흘리며 손주들을 찔러 죽일 때에 그 많은 손주 중에 하나 없어지는 것을 몰랐습니다.  여호사브앗은 겨우 피 덩어리나 면한 한 살짜리 요아스 왕자를 숨겨서 성전에 갔다 키웠습니다.  당시에는 성전이 제일 안전한 장소였습니다.  그 이유를 아시죠?  사람들은 더 이상 성전에 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야다와 그의 부인 여호사브앗은 성전에서 6년 동안 요아스를 하나님만 섬기며 살아가도록 철저하게 말씀으로 무장시킵니다. 

이제 요아스 왕자가 7살이 되었을  때에 왕이 됩니다.  왕이 되어서는 전국에 세워졌던 우상 전각들을 다 부수고, 성전에서 빠져나간 그릇들을 다시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을 등진 백성들을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돌이키게 했습니다. 

  역사를 구한 사람은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이들은 눈이 있었습니다.  그 위기를 타개할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한 사람을 키우는 것임을 아는 눈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그런 눈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 딱딱한 사과 속에 어떻게 말랑 말랑한 벌레가 뚫고 들어갔는지 그 비밀을 몰랐습니다.  사과를 가르면 그 속에 벌레가 있는데 그것은 이렇게 성장하고 씨가 딱딱해진 다음에 뚫고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과가 꽃피었을 때에 어미 벌레가 그 꽃에다 알을 까놓으면 사과가 자라면서 동시에 그 속에서 벌레가 자라는 것입니다.  어미 벌레가 그런 지혜가 있었다면 세상을 몹쓸 사과처럼 만들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있는 사탄이 그런 지혜가 없겠습니까? 

아달랴가 어린 싹을 문질러 버린 것처럼 사탄이 우리의 내일을 문지르기 위해서  청년들이 교회에서 말씀으로 자라나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에게 위기를 볼 줄 아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앞을 내다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위기의식 없이 교회 안에 있는 청년들을 대하고, 재정적인 투자를 하지 않고, 영적으로 건강하게 키우지 않는다면 우리의 가문, 교회의 미래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게 됩니다. 

아달랴 시대만큼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아주 험합니다.
얼마나 음란한 시대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젊은이들이 컴퓨터를 통해서 온갖 음란한 것들은 다 접하고 살아갑니다. 
또 젊은이들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이렇게 배우며 살고 있습니다. 
“살다가 맘에 맞지 않으면 저렇게 이혼해도 되는 구나
  아, 40대,50대가 되면 저렇게 바람을 피우는 거로구나. 
  사랑하기만 하면 부부 외에도 서로 사랑해도 괜찮구나‘ 

  우리들은 물질문명 속에 살고 있지만 분명히 삶의 우선순위를 알고 있습니다. 
제 1은 하나님, 제 2는 인간, 제3은 물질과 문명.....
그런데 우리 젊은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교회에 왔을 때만 그렇게 배웁니다. 집에서 숙달된 조교인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이렇게 배우지 못했습니다.

  대부분 이렇게 배웁니다.
하나님은 있으면 참 좋지만, 없어도 그렇게 인생 살아가는데 별로 불편함은 없어요. 
그저 큰 어려움만 안 당한다면 하나님은 없어도 별로 큰 문제가 안 될 정도로 생각하고 배우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는 것은 행복에 별로 지장이 없을지 모르지만 텔레비전에서 선전하는 라면을 안 먹으면 일요일은 행복해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선전하는 SUV 자동차를 타지 않으면 그 인생은 삼류 인생인 것처럼 우리 청년들은 지금 깊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참된 매력은 텔레비전에서 선전하는 옷을 입어야 하고, 화장품을 발라야 되는 것으로 우리 청년들 속에 심기우고 있습니다. 
세상은 지금 우리의 가문과 교회와 민족의 내일을 썩은 사과처럼 만들기 위해서 온갖 방법들을 다 동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지금 이 상태에서 우리 교회와 가정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청년들을 말씀으로 반듯하게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많은 돈을 들여 자식들을 공부시키려고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자식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일 것입니다.  교회에 있는 우리 영적인 자식들도 마찬가지로 많은 예산을 들여서 키워야 합니다.  영적으로 건강하도록 키워내야 합니다.  저절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가문을 살리고, 우리의 교회를 살리고, 우리의 민족을 살리는 길은 우리 청년들을 말씀으로 가르치고 분명한 믿음으로 살도록 한 사람, 한 사람 세우는 것입니다.

제가 새문안 교회에서 청년 대학부를 담당하면서 놀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대학부 청년들이 비전 트립을 그 동안 한번도 다녀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배낭여행이 아닙니다.  비전 트립입니다.  비행기를 타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차이는 아주 큽니다.  해외에 직접 가서 보고 느끼고 배우게 해야 합니다.  세계를 품을 수 있도록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청년들을 우리 교회를 살리고, 우리 가문을 살리고, 우리 민족을 위기에서 살려내는 그런 인물들로 키워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이 나라 민족을 위기에서 살려내는 인물들이 키워지고, 인물들이 배출되는 교회가 되고 그것을 자랑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인물들 키워내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 청년 한 사람 한 사람을 말씀의 사람으로 가르치고 세워야 합니다.  5년, 10년을 내다보면서 재정을 투자하며 말씀의 사람으로 키워야 합니다.  그저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분명한 사명을 가지고 사는 믿음의 사람으로 키워야 합니다.  사람을 키우는 것이 가문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제일 확실한 방법이라고 확신합니다.
(/ 유영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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