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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비젼의 사람 야베스 (대상 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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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오늘은 청소년주일입니다. 청소년들이야말로 한국교회의 내일이자 이 나라와 민족의 장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 예배에 참여한 모든 성도가 은혜를 받으시되 특히 청년들이 은혜를 받음으로 장차 위대한 비젼을 이루고 교회와 나라와 민족을 부강하게 하는 복음의 용사들과 복음의 재벌들이 나오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지난 해 한국교계의 초청으로 우리의 심금을 울린  레나 마리아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녀는 스웨덴 출생입니다. . 불행한 운명을 타고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녀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녀가 세상의 출생한 순간 간호사의 손에 들려진 그녀는 어깨에는 두 팔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녀의 왼쪽 다리의 길이는 오른쪽 다리의 무릎 정도 밖에는 되지 않았습니다. 두 팔은 없고 한 쪽 다리는 다른 다리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 불구의 몸으로 출생한 것입니다. 너무나 난감해진 병원 측은 부모들에게 그녀를 키울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만약 부모들이 그녀를 키우기를 거절한다면 그녀는 장애아 수용시설로 보내져 고아로 자라게 됩니다.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축복의 시작이라면 신실한 기독인 부모를 만난 것이었습니다. 아기가 비록 중증 장애를 가진 생명이지만 부모님은 작고 앙증맞은 그녀를 출산 후 3일 만에야 처음 보고 그녀를 직접 키우기로 결심했습니다. 부모들은 그녀를 독실한 신앙으로 양육하였습니다. 그녀의 성장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장애가 그녀의 인생을 불행하게 할 수 없다는 놀랄운 사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꺾이지 않는 왕성한 의욕으로 그녀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영역들을 차례차례 가능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녀에게 온전한 것이라곤 오른쪽 다리 하나 뿐이지만 수영, 십자수, 요리와 피아노, 운전, 성가대 지휘, 가스펠 가수에 이르기까지 어느 정상인보다 왕성한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녀는 3살 때부터 수영을 시작하여 세계 장애인 수영 선수권 대회에서 스웨덴 대표로 4개의 금메달을 획득하였습니다.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여 지금은 전 세계를 돌며 하나님의 능력을 간증하며 노래하는 가스펠 가수가 되었습니다.

  세계의 언론은 그녀의 목소리를 '천상의 노래' '또는 천사의 소리' 라고 격찬하였습니다. 불행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기구한 미래에 묶여 있기를 거부하는 그녀의 믿음의 태도는 비욘 클링벨이란 건장한 청년을 매료시켰고 1995년 둘은 결혼하여 스웨덴의 낫카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이 여호와 하나님 때문에 가능했다. 나에게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내 인생은 언제나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라고 그의 저서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타고난 불행한 삶을 행복한 인생으로 만들어낸 비젼의 사람이었습니다.  .

1. 비젼의 사람, 야베스-

사람들 가운데는 운명론에 젖어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들은 "내가 사랑 받지 못 하는 것은 예쁘게 태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야. 내가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재능없이 태어났기 때문이야. 내가 많은 공부를 하지 못한 것은 부유한 부모를 만나지 못 했기 때문이야." 라고 말하며 실패와 좌절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레나 마리아와 같이 믿음으로 축복된 삶을 개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운명론에 삶을 맡기며 무기력한 삶을 한탄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사고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미래는 그 미래의 노예가 되기로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만을 지배할 수 있다".고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오늘 말씀의 주인공 야베스 또한 바로 미래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고 오히려 축복된 미래를 개척하여 놀라운 성공을 거둔 사람입니다.

2.태어 날 때부터 불행을 예고했던 사람-

성경을 보면 고대인들에게 이름의 영향력은 그이 미래의 삶에 절대적이었습니다. . 야곱이란 이름은 '움켜지는 자'란 뜻인데 그의 일생은 실제로 교활하기 그지 없는 삶이 되었습니다.(창25:26)

  나오미의 두 아들의 이름 '말론'과 '기룐'은 각각 '허약하다.'와 '수척해지다.'란 뜻이었는데 그 이름대로 그들은 일찍 죽었습니다.(룻1:5) 솔로몬의 이름은 '평화'란 뜻인데 그는 이스라엘 역사상 처음으로 전쟁을 겪지 않고 다스린 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이름을 바꾸어서라도 미래를 바꾸어보려고 몸부림쳤습니다. 아브람은 아브라함으로 사래는 사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창세기 35장을 보면, 야곱의 아내 라헬이 아들을 낳다가 죽게 되는데. 라헬은 출산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아기의 이름을 '내가 고통으로 낳은 아들'이란 뜻을 지닌 '베노니'라고 부르고는 죽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자신의 아들에게 불행한 일이 닥칠까봐 그의 이름을 '행복의 아들'이란 뜻의 '베냐민'이라고 고쳐 부릅니다. 신약에서 보면 시몬은 베드로로 사울은 바울로 이름을 고칩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야베스의 이름의 뜻은 '고통'입니다. 그 이유는 어머니가 그를 출산할 때 난산을 함으로 지은 이름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이 '고통'이라는 것은 그의 인생의 미래가 고통의 연속이 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베스는 그 이름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을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존귀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본문 9절은 말씀하기를, '야베스는 그의 형제들보다 더 존경을 받았다.'고 합니다. 존경을 받는다는 것은 그가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이요. 모든 것이 넉넉하고 이웃에게 덕을 베풀고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는 베풀며 겸손하게 향내나는 삶을 산 것입니다.

야베스가 어떻게 하여 고통이 예고된 삶을 역전시키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습니까? 여기 복음의 비밀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통해 야베스의 삶의 비밀을 발견하여야 합니다.

  그는 축복을 위해 기도의 사람입니다. 우리도 그런 삶을 통하여 고통과 역경 속에서 마귀의 거짓말에 속아 실패와 좌절을 거듭하지 아니하고 야베스처럼 존귀한 인생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2 야베스는 '나에게 복위에 복을 더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야베스!  네 인생은 고통으로 가득 찰 거야!"라고 말할 때 그는 하나님을 향해 두 손을 들고 부르짖었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 저에게 복을 주시고 그 위에 또 복을 부어 주십시오. 성공적인 삶을 주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가 하나님에게 복을 구하는 것은 지극히 성경적인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풍성한 삶을 누리기를 원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요10:10을 보면 "도둑(마귀)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파괴하려고 오는 것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서 풍성함을 얻게 하려고 왔다. (요 10:11) 나는 선한 목자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

하나님은 우리가 복을 주시라고 기도할 때 하늘의 보물 창고를 여시고 우리 삶에 차고 넘치는 복을 부어주시기를 기뻐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느 책을 보니까 인간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두뇌의 5%를 쓰고, 소위 수재라고 불리는 사람은 10%를 / 20%를 쓰면 천재가 된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라도 두뇌의 20% 이상 써보지도 못 하고 죽는답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두뇌의 30, 40, 50, 100,%의 기능을 쓴다면 초월적 지식이 나타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아무리 기도하여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해 준비된, 하늘의 보물 창고의 복을 다 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죽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힘써 복을 위해 기도해야 힙니다. "하나님 내게 복에 복을 부어 주십시오. 행복한 삶을 살게 해 주십시오." "아름답고 훌륭한 배우자를 만나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직업을 갖게 해 주십시오.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주십시오". "건강과 활력과 넘치는 의욕을 주십시오. 저를 더 성숙하고 더 강하고 더 아름답게 만들어 주십시오. 행복한 가정이 되게 해 주세요 남편 아내 자식 부모 형제를 복주세요.저의 사명 충성되게 감당하게 해 주세요, 뜨겁게 복을 구하세요 세밀하게 복을 구하세요.

복을 구하는 기도는 결코 이기적인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정확히 이해하는 행위이며, 동시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임을 믿으시기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지 않으면 못 주십니다. "너희가 얻지 못 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약4:2) 그래도 구해야 할지라(겔36:37) 하나님께 복을 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두 번째 기도는 더 큰 비전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야베스는 "나의 지경을 넓혀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영토를 더 넓혀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는 이미 복을 누리고 있지만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지 않고 더 큰 비전을 바라보고 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더 큰 비전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므로 그의 기도에 기쁘게 응답하셨습니다. 누가 더 큰 비전을 받습니까? 더 큰 비전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작은' 비전을 구하는 사람은 작은 비전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창고는 비는 법이 없고 하나님의 보고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보물이 쌓여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결코 지나친 것이 없습니다. 우주 안의 그 어떤 것이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보다 더 클 수 있습니까? 우리가 볼 때 아무리 큰 것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사소하고 작은 것에 불과합니다.

  달란트의 비유나 므나의 비유를 보면, 이 땅에서 주님이 맡기신 일에 최선을 다한 종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잘 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네게 큰 것을 맡기겠다."고 하지 않으십니까?

  이 땅에서 우리가 볼 때 아무리 큰 일도 하나님이 보실 때는 지극히 작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우리가 볼 때 지극히 커서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 때 베스트셀러였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를 보면 먹이를 구하러 나선 개미들의 행렬 앞에 갑자기 붉고 거대한 공이 나타났다가 사라집니다. 개미들은 그 거대하고 신비하기 짝이 없는 존재의 출현에 놀라고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대체 이것이 무엇이냐? 온통 소요가 일어납니다. 그 붉고 거대한 공의 정체는 소설의 마지막인 3권에 나타나는데 그것은 사실 개미들의 행렬을 발견하고는 장난을 치던 어느 꼬마의 손가락 끝이었습니다! 꼬마의 손가락 하나가 개미들에게는 거대하고 신비한 초월적 존재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가 더 큰 비젼을 갖고 더 큰 능력을 구하기를 바라십니다. 주님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더 큰 비전을 꿈꾸십시오.

  위대한 선교사 윌리암 캐리는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큰 일을 계획하라. 하나님을 위해 큰 일에 도전하라."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님, 제가 주님을 위해 복음의 용사가 되게 해주십시오 주님 내게 복음의 재벌이 되게 해주십시오."

4. 세 번째 기도는 성령의 능력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야베스는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구약에서 '주의 손이 돕는다'는 표현은 주님의 능력이 나에게 부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사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 신약에서는 성령의 능력이 부어진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행 11: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그러므로 이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의 임재를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부어달라는 기도입니다.

주님을 위해 더 큰 비전을 구하는 사람은 성령의 능력을 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없이는 큰 비전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능력은 평범한 사람을 위대한 사람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베드로는 작은 계집아이 앞에서조차 자신의 신앙을 드러낼 수 없는 비겁자였지만 성령의 능력이 임하였을 때 수천명의 군중 앞에서 복음을 외치는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살피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16:9)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는 길은 무엇입니까?  진심으로 여호와께 향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간절하고 끈질긴 기도입니다.

왜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경험할 수 없습니까? 전심을 다해 여호와를 앙망하며 끈질기게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두 번하고 그칩니다.

새벽기도도 철야기도도 바쁘고 피곤해서 못 합니다. 그렇다고 주일날 나와서 간절한 기도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생활이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성령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까? 성령의 능력이 임하도록 간절하고 지속적으로 기도하여야 합니다. 성령충만한 역사가 온교회에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5. 네 번 째로 야베스는 '나로 환란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고 비젼을 이루며 능력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일순간에 모래성처럼 허물어버리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죄입니다.

  죄는 복을 파괴하고
비전을 희미하게 만들고
능력이 사라지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죄의 유혹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장 큰 암적존재입니다.

  실패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돈을 잃는 것이 패배갸 아니라 죄에 빠지는 것이 실패요 패배요 죽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를 가르쳤습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며 모든 악에서 구하옵소서"
그러므로 우리는 죄의 도전과 유혹 앞에서 강력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죄의 유혹이 노도처럼 덥쳐올 때 우리는 그저 유혹이 나를 비켜가기를 바라서는 않됩니다. 죄는 절대 나를 비켜가지 않습니다. 나를 넘어뜨리려고 달려오는 마귀가 왜 나를 비켜갑니까? 기필코 우리를 넘어뜨리려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는 것, 예배를 가볍게 여기는 것, 탐욕 스러운 것 부정직하고 게으르게 만드는 것. 음란한 것. 교만한 것. 이 모든 것을 기도로 물리쳐야 합니다.

기도로 능력을 받아 담대히 명하세요.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악한 마귀야 모든 죄야 떠나가라."  사탄은 우리의 기도에 벌벌 떨면서 굴복하고 물러가게 됨을 믿으시기바랍니다. 죄를 이기는 성도 시험을 이기는 성도/ 강하고 극히 담대한 성도/ 생명을 바쳐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05. 5. 22 김상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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