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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만남의 단계 (요 4: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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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중년을 넘어서면 만남의 삶보다 이별의 삶이 많기 때문에 사람은 철학적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사람이 어릴 때는 앞으로의 삶에 계속이 만남이 있습니다. 자라면서 친구를 만나게 되고 학교에 가면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게 됩니다. 청년이 되어서 군에 가면 그곳에서도 새로운 만남이 있고 직장에 가면 그곳에도 새로운 만남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 때문에 사람은 자기 인생을 가꾸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중년을 넘어서면 새로운 만남보다는 계속해서 헤어짐의 경험들을 하게 됩니다. 자녀가 결혼을 하면 부모를 떠나가게 됩니다. 친했던 친구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있고 직장에서도 직장의 동료가 직장을 그만 둠으로써 헤어지게 되고 어떤 사람은 일찍 배우자를 잃어서 가장 아픈 헤어짐의 경험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중년 이후 시절은 헤어짐의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자녀에게 집착을 하고 배우자에게 집착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농촌교회의 현실이 마음 아픈 것은 새로운 만남보다는 헤어짐의 정서가 강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새로 등록하는 사람은 없고 젊은이는 농촌을 떠나고 연세가 드신 분들은 세상을 떠나서 헤어짐의 정서가 많은 곳이기 때문에 외로운 것입니다. 젊은이들은 헤어짐의 두려움을 잘 모릅니다. 왜냐하면 만남의 기회들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노년이 되면 헤어짐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남의 기회가 자신에게 별로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 한 여인이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만남의 기대보다는 헤어짐의 아픔을 안고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남자를 만났지만 그 남자들은 그 여인에게 상처만 주었습니다. 만날 때마다 기대를 했지만 항상 헤어짐의 아픔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여자는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했습니다. 그를 상대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막 같은 사마리아 지역에서 가장 큰 문제는 물을 구하는 것입니다. 아침과 저녁에는 동네 여인들이 물을 길러 왔지만 수가성의 여인은 아무도 오지 않는 한 낮에 물을 길러 왔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싫었고 자신도 우물에 물 길러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졌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물 길러 나오지 않게 하소서 했습니다.

바로 이 여인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만남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을 보면 만남의 단계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의 만남은 유대 사람과 사마리아 인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리고 둘째 만남은 예수님을 선생으로 알고 만나는 만남이요 셋째는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고 만나는 만남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알고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먼저 수가성 우물가에는 한 유대인과 사마리아 여인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원래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상종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을 혼혈족이라고 해서 혈통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는 유대인들에게는 짐승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할 때에 방해했던 사람이 사마리아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건널 수 없는 단절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유대인과 만남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여인은 유대인과는 만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만나기 싫어했던 만남이었고 만남을 의도적으로 피했던 만남이었습니다. 세상에는 이런 만남이 있습니다. 어색한 만남입니다. 만남이 괴로운 만남이요 만남 자체가 자신에게 피해의식을 주는 만남이 있습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을 하나의 유대인으로 생각하고 만나는 순간에는 빨리 피해가고 싶었던 것입니다.

당신이 유대인이면서 사마리아 사람인 내게 물을 달라고 하느냐 고 반문했습니다. 사람에게는 상대에게 대해서 피해의식을 느끼는 만남이 있습니다.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만남이 그렇습니다. 이기적인 만남이 그렇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을 삐뚤어진 마음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좋은 만남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누구와 만나도 좋은 만남을 가질 수 없습니다.

둘째는 예수님을 선생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 예수님의 말씀에 무언가 가르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향해서 주여 물을 길을 그릇이 없습니다 고 했습니다. 여기에 주여 라는 말은 선생님이라는 의미의 말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상대를 선생님으로 만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생으로 만나는 순간 여인의 마음은 열려지게 되고 상대방과 대화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인생이 살면서 상대를 선생으로 만나게 될 때에 마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 그 때부터 듣게 되고 그 만남으로 인하여 인생은 만남의 고마움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예수님을 선지자로 만나는 것입니다. 여인은 예수님을 향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고 했습니다. 신앙 안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행복한 만남입니다. 사람이 교회를 통해서 이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도는 믿음 안에서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이 만남이 우리에게 큰 의미를 가져야 합니다. 수가성여인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만나는 순간 처음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바른 예배가 무엇인지 바른 깨달음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들의 대화는 남편의 이야기에서 예배의 이야기로 바꾸어진 것입니다. 사람은 상대에 따라 대화의 내용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만이 믿음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넷째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만난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인에게 내가 바로 메시야다 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만남은 여인으로 하여금 놀라운 기쁨에 싸이게 했습니다. 그 기쁨은 정말 견딜 수 없어서 마을로 달려가서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증거하게 된 것입니다. 인생에게 하나님을 만난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이 기쁨이야말로 우리의 모든 만남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 여인이 메시야를 만나고 나니까 마을 사람과의 만남도 새로워 졌고 남편과의 만남도 새로워 졌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면 자녀와의 만남도 세로워지고 남편과 아내와의 만남도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이웃과의 만남도 새로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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