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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뜨겁게 사랑합시다. (벧전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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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어머니가 장가간 아들을 보러 아들집에 갔습니다. 그런데 보니까 밥해 먹은 흔적이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며느리에게 묻습니다. "너 식사 해 주지 않니?" 그러니까 며느리가 대답합니다. "사실 밥 거의 해 먹지 않아요. 아침에는 간단하게 빵과 우유를 먹고 점심은 직장에서 각자 해결해 먹고, 저녁은 회식할 때가 많아서 집에 와서 밥을 해 먹을 때가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시어머니가 너무 화가 나서 며느리에게 말합니다. "얘야, 내가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그러니? 그래, 네가 여자냐? 남편한테 따뜻한 밥 해 주지도 못하고..." 그러면서 계속 잔소리를 해 대니까 나중에는 며느리가 한 마디 합니다. "어머니는 컴퓨터 칠 줄 아세요? 영어 할 줄 아세요? 피아노 칠 줄 아세요? 운전할 줄 아세요?" 시어머니가 대답합니다. "못한다. 난 아무 것도 몰라." 그러니까 며느리가 대답합니다. "어머님은 요새 이렇게 중요한 것은 하나도 못하시면서 밥 하나 잘 하신다고 뭘 그렇게 재세요." 시어머니가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가장 필요한 것을 하나도 할 줄 모르니까 도대체 권위가 서질 않습니다. 결국 "너희들 맘대로 해라" 하고 그냥 아들집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우리의 문제는 여러가지 경우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은 사상함에 있습니다.

어느 날, 한 부인이 가정생활을 비관하며 간절히 빌었습니다. "하나님! 빨리 천국에 가고 싶어요. 정말 힘들어요." 그때 갑자기 하나님이 나타나 말했습니다. "살기 힘들지? 네 마음을 이해한다. 이제 소원을 들어줄 텐데 그 전에 몇 가지 내 말대로 해보겠니?" 그 부인이 "예!" 하자 하나님이 말했습니다. "얘야! 집안이 지저분한 것 같은데 네가 죽은 후 마지막 정리를 잘 하고 갔다는 말을 듣도록 집안청소 좀 할래?" 그 후 며칠 동안 그녀는 열심히 집안 청소를 했습니다. 3일 후, 하나님이 다시 와서 말했습니다. "얘야! 애들이 맘에 걸리지? 네가 죽은 후 애들이 엄마가 우리를 정말 사랑했다고 느끼게 3일 동안 최대한 사랑을 주어볼래?" 그 후 3일 동안 그녀는 애들을 사랑으로 품어주고, 정성스럽게 요리를 만들어주었습니다. 다시 3일 후, 하나님이 말했습니다. "이제 갈 때가 됐다. 마지막 부탁 하나 하자! 너 남편 때문에 상처 많이 받고 미웠지? 그래도 장례식 때 '참 좋은 아내였는데…' 라는 말이 나오게 3일 동안 남편에게 최대한 친절하게 대해줘 봐라."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천국에 빨리 가고 싶어 그녀는 3일 동안 최대한 남편에게 친절을 베풀어주었습니다. 다시 3일 후, 하나님이 말했습니다. "이제 천국으로 가자! 그런데 그 전에 네 집을 한번 돌아보려무나!" 그래서 집을 돌아보니까 깨끗한 집에서 오랜만에 애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고, 남편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까 천국으로 떠나고 싶지 않았고, 결혼 후 처음으로 "내 집이 천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인이 말했습니다. "하나님! 갑자기 이 행복이 어디서 왔죠?" 하나님이 말했습니다. "지난 9일 동안 네가 만든 거야!" 그때 부인이 말했습니다. "정말이요? 그러면 이제부터 여기서 천국을 만들어가며 살아볼래요!"  (둘로스 자료- 어느 부인의 9일간 천국 만들기)

문제는 밖에도 있지만 보다 더 자신에게 있습니다. 사랑을 베푸는 곳에 천국의 기쁨과 복락이 함께 합니다.

어떤 사회학자가 식구가 많은 집안에서자라는 어려움에 관해 책을 쓰고 있던 중 열세명의 자녀들을 둔 어머니를 인터뷰했습니다. 여러 가지 질문을 한 다음 그는 "당신은 자녀 모두가 어머니의 완전하고 편견 없는 사랑과 배려를 마땅히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물론이지요." 어머니는 대답했습니다. 그는 그녀에게서 모순점을 찾아내려고 "그럼, 자녀들 중 누구를 제일 사랑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어머니의 대답은 "병이 난 애가 건강을 회복할 때까지, 그리고 멀리 간 애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가장 사랑하지요."였습니다.

사랑은 편벽되지 아니하고 환경에 메이지 아니하고 아픔을 함께 나누는 곳에 꽃 피고 열매 맺게 됩니다.

어느 가난한 집에 아버지가 막노동을 하는데 아이들 공부시키느라고 한 번도 구두를 못 신고 운동화도 다 떨어질 때까지 신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아이들이 보니까 아버지가 며칠 만에 한 번씩 오시는데 다 떨어진 운동화를 신고 오셨습니다. 그래 새로 신발을 샀는데도 새로 산 신발도 제일 싸구려를 또 사 신는 겁니다. 그래서 두 남매 중 큰 아이는 중학교 다니는 3학년 여자아이고 동생은 중학교 1학년인데 아이들이 결심을 하였습니다. '우리 아빠에게 구두를 하나 선물해야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돈이 전혀 여유가 없으니까 학교를 다니는데 광화문 앞을 지나가는데 십리나 되는 거리를 계속 걸어 다니는 겁니다. 걸어 다니면서 그걸 모아 가지고 아버지 구두를 사 드리려고 한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저렇게 고생하시는 아버지를 사랑하니 이 아이들이 그 길을 걸으면서도 매일 기쁘게 걸어다닙니다. 그런데 하루는 누나가 저 쪽에서 걸어오다가 보니까 저 앞에 낙엽을 밟으면서 남자아이가 걸어오는 겁니다. 보니까 자기 남동생이 걸어오고 있습니다. '너 왜 차 안타고 걸어오니?' 그러니까 '나도 우리 아빠 신발 사 드리려고 걷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생은 이천 원을 모았고 누나는 칠천 원을 모았습니다. 그래가지고 아빠를 위해서 싼 구두이지만 사 가지고 아빠가 오기를 기다리게 됐습니다.

사랑은 십리를 걸어도 피곤치 않게 합니다. 사랑하기에 모든 것을 희생합니다.

캐시라고 하는 여성이 대학을 졸업하고 아주 발랄하고 연애를 했는데 연애에서 실패하고 배신당하게 됩니다. 너무 마음이 아파서 집을 나가버립니다. 어머니가 말렸지만은 그는 집을 나갑니다. 넓은 세상에 가서 마음대로 살아버립니다, 그 젊은 육체를 가지고. 창녀가 되고,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 마지막엔 마약 중독자까지 되었습니다. 10년이 지나고 나니까 몸은 시들고 병들고, 이제는 더 이상 살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그는 이제는 죽을 때가 되었다. 강가에 나가서 투신자살을 하려고 내려다  보는데 강물에 사랑하는 어머니의 얼굴이 비칩니다. 그때 비로소 생각했습니다. '10년 동안 어머니가 얼마나 늙었을까? 어떤 모습일까? 내가 어머니의 얼굴을 한번 뵙고, 그리고 돌아와서 죽을 것이다. 죽는 일은 바쁘지 않다.' 그래서 낮에 올 수가 없어서 먼빛으로 보려고 밤에, 캄캄한 밤에 집에 돌아와 봤는데, 집안과 밖에 외등까지 불을 환하게 켜 놓았습니다.. '오늘 무슨 파티가 있었나? 왜 이렇게 불을 켜 놓았나?' 그런데 조용해요. '이상하다. 파티가 끝났는가?' 대문을 잠깐 밀어보았더니 잠그지 않았어요. '대문도 잠그지 않고 주무시누만.' 조금 더 미는데 '삑'하고 소리가 나자마자 안에서 어머니가 "캐시야" 그냥 맨발로 뛰어 나옵니다. 꼼짝 못하고 붙들렸습니다. "어머니, 어째서 이렇게 불을 많이 켜 놓은 것입니까?" 그때 어머니는 말했습니다. "네가 집을 나간 후 10년 동안 한번도 불을 끈 일도 없고, 문을 잠근 일이 없다." 케시가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내가 집을 나가 방황하고 있는 동안에도 어머니는 계속 나를 사랑하고 있었더라'는 것입니다. 돌아왔기 때문에 사랑한 것이 아니고, 그 아픈 마음으로 그 딸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방황한 것입니다.

사랑은 성공 실패를 초월하여 끝까지 기다리며 모든 것을 받아 드립니다.

아놀도 파커 목사는 훌다와 함께 근무하는 다른 간호사에게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2주 전에 열네 살짜리 소녀가 병원으로 실려 왔는데 아주 난폭하고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소녀의 부모는 둘 다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소녀가 열두 살 때, 술에 취한 부모가 심하게 싸웠는데 서로 총을 잡으려고 하다가 총이 발사되어, 소녀는 아버지가 바닥에 쓰러져 숨을 거두는 모습을 모두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과실치사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돌봐야 할 아이가 있었기 때문에 가석방되었습니다. 그 후 2년 동안 어머니에게 욕설을 듣고 두들겨 맞는 생활을 계속하다가 결국 소녀는 정신이상자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담당 의사는 소녀를 치료하려면 그녀가 자신의 분노와 억압된 증오심을 누군가에게 쏟아 낼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원해서 그 상대가 될 사람을 찾았는데 훌다가 손을 들었습니다. 2주 동안 훌다는 매일 한 시간씩 소녀와 같이 지내면서 그녀가 자신을 분출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소녀는 힘이 다 빠질 때까지 훌다를 할퀴고 때리고 발로 찼습니다. 훌다는 그 방에서 나올 때마다 상처 난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널 사랑해! 널 사랑해!’” 사랑은 육체적 고통까지 참고 견딥니다.

  손바닥만한 베란다에 빨래를 넌 뒤 창 밖을 내다보던 주부가 잔디밭에서 이상한 컵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못생기고 금이 갔지만, 안은 멀쩡한 그 컵엔 흑갈색 물이 가득 고여 있었습니다.  곧장 잔디밭으로 내려갔습니다. "대체 누가 여기다 이런 걸 버리는 거야?" 그리곤 필시 누가 일부러 버린 걸로만 알고 컵 안에 고인 흑갈색 물을 잔디밭에 버린 후 투덜대며 컵을 치웠습니다.

"귀찮게‥‥ 으이씨." 하지만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잔디밭엔 찌그러진 컵이 놓여 있었고 그 이상한 컵엔 흑갈색 물이 고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컵을 자꾸 버리고 누군가 컵을 자꾸 내놓고 그 알 수 없는 실랑이는 며칠간 계속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범인이 밝혀졌습니다. 꼬마 아이가 그 컵을 또 잔디밭에 놓고 있었습니다.  치미는 화를 누그러뜨리고 아이에게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얘! 컵은 왜 자꾸 갖다 놓는거니?" "이건 코코인데요‥‥‥ 강아지가 굶어 죽을까봐 그러는 거예요." 아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후줄근한 몰골의 주인 잃은 강아지 한 마리가 조르르 달려와 컵 속에 코를 박고 코코아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럼 집에 데려가서 키우면 되잖니." "주인이 찾을지 모른다고 엄마가 안된대요."

그 이상한 컵은 회색 밀림과 같은 서울의 아파트촌을 따뜻하게 데우는 사랑의 코코아잔이었다고 고백합니다.(이상한 컵)

사랑은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게 합니다.

사상가였던 존 러스킨은 미술에도 재주가 많았습니다. 어느 날 파티에 갔었는데 한 귀부인이 값진 손수건을 꺼내 보이면서 이 손수건은 다시 구할 수 없는 귀중품인데 그만 잉크가 쏟아져서 형편없이 되었다고 불평을 털어 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러스킨은 그 손수건을 며칠만 빌려달라고 한 후 집에 가서 얼룩진 부분을 살려가지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그 부인에게 다시 돌려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부인은 아름다운 그림으로 더 고상하게 보인 손수건을 받아들고 몹시 놀란 나머지 아주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더러워지고 흉하게 된 우리 인간도 사랑의 손이 닿으면 아름다운 새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심장병을앓고 있던 데럴(Darrel)이라는 친구가 어느 날 오후, 갑자기 병원에 입원해 심장 박동 검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검사를 받은 그날 밤늦게 데럴은 심장 질환 담당 의사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내일 아침이라도 당장 1차 수술을 해야겠습니다. 사실 다른 수술 일정이 이미 잡혀 있었지만 당신이 가장 급하기 때문에 일정을 재조정했습니다.” 그리고 의사는 친구의 손에 수술 동의서를 내밀었습니다. 그러나 데럴은 뜻밖의 소식에 당황하여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너무 뜻밖의 소식이군요. 동의서를 쓸 시간을 좀 주십시오. 생각해 보려면 며칠 걸릴 것 같습니다. 기도도 해봐야 하고, 가족들과 의논해서 결정하겠습니다.” 그때 마침 그 방에 들어온 그의 오랜 친구이자 가족들의 주치의가 데럴의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미 데럴의 심장을 검사한 담당 의사로부터 검사 결과에 대해 충분히 전해 들었습니다. 데럴이 수술동의서에 대해 말하고 있을 때, 그가 중간에 말을 막으며 끼어들었습니다. “이보게, 데럴. 자넨 지금 시간이 없네. 내일 당장 1차 수술을 받아야 해. 안 그러면 너무 늦어.” 결국 데럴은 다음날 아침, 수술실로 실려 갔고 기적적으로 치유되었습니다. 데럴은 그 친구가 있었기에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친구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사랑을 주는 친구는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유대나라 세 사람의 젊은 친구가 어느 날 랍비를 찾아 왔습니다.
A친구는 흑암을 일소하는 도리를 배우러 왔다고 했습니다.
B친구는 흑암을 제거하는 도리를 배우러 왔다고 했습니다.
C친구는 암을 타도하는 도리를 배우러 왔다고 했습니다.

그때 랍비는 세 사람에게 빗자루 주며 지하실의 어둠을 쓸어 내라고 했습니다. 다음에는 바구니를 주며 어두움을 퍼내라고 했습니다. 세 번째 몽둥이를 주면서 흑암을 타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가능했을까요?

나중에는 촛불을 하나씩 주면서 들고 들어가게 하니 흑암은 물러가고 훤히 밝아졌습니다. 흑암은 곧 세상의 불의와 부조리와 죄와 모든 악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것을 무엇으로 없이 할 수 있습니까요? 빛이 되어 선과 의와 진리와 사랑의 빛을 비추는 방법뿐입니다.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빛을 받아 비추며 모든 흑암을 물리치며 함께 하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정근모 장로님은 과학기술처 장관을 하시고 호서대학교 총장으로 계시는데 이분은 1951년에 초등학교 6학년 때에 처음으로 실시된 국가고시에서 전국에서 1등을 했습니다. 경기 중학교에 1등으로 들어가서 1등으로 졸업하고 1등으로 경기 고등학교를 들어갔는데 4달을 다니고 서울대학에 들어갑니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시간 주립 대에서 석사도 거치지 않고 박사를 2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0년 만에 박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63년에 플로리다 대학에 조교가 되고 64년에 25살에 프린스톤 대학에 핵 융합 연구소에 연구원이 됩니다. 66년에서 MIT 공대에 핵공학 연구원이 되고 이어 미국 정부에서 핵 융합 연구소를 창설하고 책임 연구원이 되는데 지금 이것이 스타워즈라고 하는 우주 전략 방어를 하는 연구소가 되게 된 것입니다. 미국에서도 천재라고 미국 신문에도 끊임없이 대서특필하던 분이 정근모 장관이였습니다. 그러나 69년 닉슨이 대통령이 되면서 한국을 물질적으로 돕는 것 보다 교육적으로 한국을 도와서 교육에 인재를 길러야 되겠다하여 그때 유명한 정근모 장관을 불렀습니다. 그래서 과학적으로 뒤떨어진 우리나라를 처음으로 1971년에 카이스트(KAIST) 한국 과학 기술원을 만든 분이 바로 정근모 장관입니다. 친구들하고 미국에 있던 교수들을 데려와서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 기술원을 만듭니다. 3년이 지난 후에 그는 간염에 걸리게 됩니다. 미국으로 돌아가서 또 아들이 병에 걸렸어요. 만성 신장염에 걸려서 매일 피를 거르게 됩니다. 병이 악화되고 수술하지 않으며 며칠밖에 살수가 없다고 하여, 아들에게 신장을 떼어주게 됩니다. 수술은 잘 되었는데 황달이 오고 흑달이 오면서 더 이상 살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약을 투여하면 간에 무리가 가고, 투여를 않으면 신장에 어렵고…. 의학적으로 방법이 없고, 과학적으로도 방법이 없는, 최선을 다했지만 인간의 방법으로 더 이상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교회에 권사님들이 정근모 장관 내외분을 데리고 교회에 가서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아이는 병원에 두고 가서 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놀라운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제일 변화되기 어려운 분들이 과학자입니다. 더구나 23살에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에서도 그런 자리에 앉아 있으니까 성경에 나오는 그 하나님을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던 사람이 그 밤에 하나님께 은혜를 받아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께 은총을 받고 와보니 아들이 깨끗하게 나은 것입니다. 이분이 변화를 받고 오늘날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주님의 귀한 일꾼이 된줄 믿습니다.

사랑은 서로의 아픔을 나누는 것이며 그러한 곳에 영육 간에 치료의 권능이 함께 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에 서로 반목 상태였을지라도 회개하여 온전히 깨끗하여진 그리스도인은 과거와는 달리 하나님의 속성을 닮아 새로운 품성으로 서로 사랑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인이면 행했어야 할 덕목이 사랑임을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피차가 열정적으로 사랑하며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여야  합니다(요일 3:14-18).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벧전 1:22) 합니다.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는 성도로서 뜨겁게 사랑하는 모두가 됩시다, (설교 / 강성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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