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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스승주일] 너희도 나와 같이 행하라 (삼상 1:21-28, 요 1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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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스승의 날’입니다. 그리고 교회력으로는 ‘성령강림절’인 주일입니다. 이 두 날이 같은 날에 만나서 함께 지키게 된 것은 참으로 신앙적인 깊은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서 주님께서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께서 스승이 되어 주신다는 뜻입니다. 성도와 교회의 선생되시는 성령께서,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시며, 이 땅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행할 수 있도록 힘껏 도우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성령강림절인 오늘이 진정한 스승의 날이라 하겠습니다.

시편 1편에는 복 있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서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다 합니다. 이는 살아가면서 인생의 발걸음마다 그때 그때 있어야 할 것들이 있는 것이 온전한 복이라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자녀들이 자라나면서 좋은 영향을 주시는 스승을 만나는 것이 아름다운 복이라는 것입니다. 사춘기 때 소중한 인생의 가치와 꿈을 심어줄 스승을 만나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깨닫고, 이 땅을 살아가야 할 분명한 목적이 있음을 알게 해 주시는 선생님이 계셔야 합니다. 이렇듯 시절에 따라 삶의 가장 소중한 영향을 주는 스승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 수 없습니다.

스승을  선생(先生)이라고도 칭합니다. 이는 먼저 선, 날 생으로 먼저 된 자를 통칭하는 뜻에서 유래합니다. 이 사회와 백성들을 위해서 먼저 된 자로 부르신 사람들과 세우신 공동체가 있으니 바로 성도로 부름받은 우리 자신이며, 100여년 전에 이 곳에 세워진 창천교회 공동체가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된 우리 성도들이, 먼저 선 날 생, 곧 먼저 된 우리 창천교회는 하나님께서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서 구별하신 선생, 스승이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에서 주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그렇게 행하라고 하신 말씀은 이런 뜻에서 우리를 세상을 향해 세운 선생이라는 사명으로의 초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우리도, 창천교회도 주님께서 행하신 것처럼 참 비전을 제시하는 선생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섬김의 사랑이라는 인생 최대의 목적과 의의를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요즘 사람들은 삶의 목적이 없는 비전없는 사람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름대로는 이러 저러한 인생의 비전을 말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욕망에 지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종과같이 닦아 주신 오늘 본문의 사건은, 세배대의 두 아들 요한과 야고보가 어머니의 입을 통해 주님께 우편과 좌편의 높은 지위를 달라고 간청한 사건에(마 20장, 막 10장) 연이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서 제자들 사이에는 그 동안 마음 속 한켠에 감추어 두었던 욕망이라는 자기비전이 시기와 반목으로 꿈틀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삶의 진정한 목적, 인생이 가야할 바른 비전을 주님께서는 선생되어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430년간 애굽의 종살이만 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 지 전혀 알 수 없었던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광야교회, 곧 성막이 있었습니다. 광야교회는 백성들이 가야할 곳과 머물러야 할 곳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길을 제시하였고, 가야할 목적지를 방향을 잡아 주었습니다. 오늘날 철저한 개인주의와 지기집단 이기주의로 꽉 찬 이 사회를 향한 하나님의 광야교회인 창천교회는 이제 바른 방향, 옳은 길을 가르치는 선생된 역할이 있습니다. 삶을 사는 이유는 사랑과 섬김이라는 진정한 비전의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우리 주님께서 하신 것처럼 선생되어서 몸소 보여주고 가르치는 아름다운 사명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2. 우리도, 창천교회도 주님께서 행하신 것처럼 옳고 그름을 명확하게 하는 선생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16-17절에서 주님께서는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분명한 옳고 그름을 알고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이 주인으로 착각한다든지,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처럼 사는 그름은, 자기 위치로 돌아가는 옳음으로 개선되어야 함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오늘 이 땅에서는 수많은 이들이 그릇된 가치관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사회전반에 묵인된 그릇됨이 옳은 것으로 용인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해야 합니다. 이것이 선생된 우리 성도, 창천교회의 책임입니다. 창천교회는 1906년에 첫 예배를 드린 후부터 수많은 역사를 직접 목도한 교회입니다. 일제 강점기를 보았습니다. 기미년 삼월 일일에 울렸던 대한독립 만세의 외침을 들었습니다. 동포간의 피비린내 나는 한국전쟁의 포화를 겪었습니다. 지독한 굶주림의 보릿고개와 사슬 시퍼런 군사정권과 그를 향해 절규하던 젊은 이들의 함성을 이 곳 대학가 한 가운데서 똑똑히 듣고 보아온 교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교회는 무엇이 옳은 지, 왜 틀린 것인지 말해야 합니다. 이는 주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부탁하신 명령이기도 한 것입니다. 먼저 된 자로서, 먼저 된 교회 공동체로서 우리가 외쳐야 할 이유인 것입니다. 교회는 예언자적 자기 사명을 포기하는 순간 더 이상 교회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이 땅에 강같이 하수같이 흘러 보내는 이 사명은 바로 옳고 그름을 똑똑하게 말하고 선언하는 선생된 역할이라 하겠습니다. 아울러 교회 내에 흐르는 잘못된 세속화도 예언자의 눈으로 살피며 도려 내는 것이 우리들 선생된 창천교회, 성도들의 책무라 하겠습니다.

3. 우리도, 창천교회도 교회와 민족의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먼저 봉독한 본문 사무엘상 1장 21절로 28절에 보면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아들을 서원대로 주님께 의탁하는 기록이 증거되어 있습니다. 사무엘이 누구입니까? 이스라엘 민족을 주님의 자녀로서 축복을 회복하게 한 영적인 지도자요 민족의 지도자였습니다. 사무엘 한 사람으로 인해서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영광을 다시금 입게 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지도자가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잘 알려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이라는 지도자가 이스라엘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지도자 되게 후원하고 도왔던 어머니 한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본문 기록에 의하면, 한나는 아들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영적인 지도자로 자라나게 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의 후원으로 도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기도의 후원으로 끝났다고 마감하고 있지 않습니다.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는 큰 값어치가 있었던 수소 세 마리와 고운 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부대도 드렸다고 증언합니다. 즉 물질의 후원도 함께 병행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창천교회는 한국교회의 어머니입니다. 먼저 된 선생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한국교회와 이 민족을 위한 영적 지도자와 젊은 일꾼들을 양성하는데, 기도와 물질로 힘껏 돕고 후원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는 내가 행한 것처럼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먼저된, 선생된 우리가, 우리 창천교회가 해야 할 아름다운 이 사역을 기억하고 최선으로 다해야 합니다. 이 일이 우리를 살리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섬김과 헌신이 될 것입니다. 이제 기도와 물질, 애씀과 힘을 합하여 소중한 먼저된 자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우리 공동체가 되길 소원합니다. 아멘. (설교 / 진대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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