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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을 위하여 (신 10: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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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랄린 먼로가 이런 이야기를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나는 한 여성이 지닐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가졌습니다. 나는 젊습니다. 나는 아름답습니다. 나는 돈이 많습니다. 나는 사랑에 굶주리지 않습니다. 하루에도 수백 통의 팬레터를 받고 있습니다. 나는 건강하고 부족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미래에도 이렇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웬일일까요? 나는 이렇게도 공허하고 이렇게도 불행합니다. 이유 없는 반항이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이유 없이 불행합니다.”이렇게 공허함 속에 살아가던 그는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으므로 생을 마쳤습니다.

세기의 미인 마랄린 먼로의 경우처럼, 젊음, 아름다움, 사랑, 부요함, 명성을 두루 갖추었어도 그토록 공허하고 불행했다면 행복은 어디에 어떤 사람에게 이는 것일까요? 성경은 이에 대해 이렇게 해답을 하고 있습니다.“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이사야 45:7)라고 하셨습니다. 이 진리를 깨달은 로버트 로빈슨은“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하소서 한량없이 자비하심 측량할 길 없도다”(28장)라고 찬송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십니다. 행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행복의 비결이 본문입니다.“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신명기 10:13)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밝히신 행복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一. 하나님을 경외하라 하셨습니다.

본문 12절에“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창조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무엘상 2:6-8말씀에“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면 어디에서, 무엇으로 행복을 누리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더없이 사랑하시며 축복하십니다. 시편 34:7-10말씀에“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주의 사자 즉 천사를 동원시켜 그를 지키신다는 약속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도록 채우시리라 하셨습니다. 시편 34편은 다윗의 신앙간증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나라의 가장 위대한 대왕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가난한 유목민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양치기 목동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는 위대한 삶을 위한 교육도 교양도 전수 받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초라한 양치기소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남다른 특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다윗을 축복하셔서 그를 크게 높이셨습니다. 블레셋 나라 골리앗 장군을 물맷돌 하나로 무리치고 나라를 위기에서 건졌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다윗은 일약 나라의 영웅으로 등장하게 되었고, 훗날 이스라엘의 대왕이 되었습니다. 평범한 왕이 아니라 역대 왕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대왕이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6천년 긴 역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이 다윗입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다윗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역사적 의미와 예언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모든 말씀은 있었던 당시의 사간이지만 단순한 그때의 사건만이 아니라 먼 훗날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동일한 능력을 지닌 예언적 말씀이 성경입니다.

2002년 영국 BBC 방송이 영국인 100만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설문 내용은“영국 역사상 가잔 위대한 지도자는 누구인가?”하는 조사였습니다. 이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사람은 윈스턴 처칠이었습니다. 그의 학창시절 생활기록부는 엉망 이었다고 합니다.“품행이 나쁘고 믿을 수 없는 아이. 희망이 전혀 없으며 다른 아이들과 싸움질만 일삼는 문제아....”성적도 초라했습니다. 지리 점수는 겨우 낙제를 면할 정도였고, 그는 3수 끝에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셰익스피어를 제치고 영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처칠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철저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는 기도의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처칠은 전쟁터에서나 국회에서 늘 머리를 숙이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지도자였습니다. 이런 용기 있는 믿음이 그를 가장 존경 받는 인물이 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기도하는 그에게 큰 능력을 주셨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은“희망이 없던 소년”을“희망을 주는 지도자”로 변화시켰습니다.

보람되고 행복한 여생을 소망하십니까? 금지옥엽 같은 자녀들로 인해 보람과 행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까? 하나님을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에게 넘치는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게 됩니다. 본문에“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순종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함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켜 도(道)라고 하셨습니다. 길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살아간다고 하여 다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정하신 삶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삶이 있습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삶입니다.

자동차의 경우를 비유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자동차가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 얼마나 큽니까? 없으면 안되는 생활필수품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이 생활필수품이 가정의 행복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흉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떠한 경우일까요? 도로 교통법을 위반하거나 차선을 벗어난 경우입니다.

미국 교포사회에서 있어진 일입니다. 열심히 살아가며 하나님을 섬기던 몇몇 가정이 주일에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보다 여행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교회에 가는 것보다 교외에 가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처음에는 신앙양심에 가책을 받았지만 그와 같은 일이 반복되자 양심의 가책도 점점 무디어지고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어느 주일이었습니다. 그날도 몇몇 집사님 가족들이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서 바닷가로 나갔습니다.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잔디밭에서 즐겁게 하루를 보냈습니다. 성경에 금하신 술도 맛있게 마셨습니다. 참으로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해가 저물어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얼굴이 붉게 취한 한 집사님이 차를 몰고 운전을 하려하자 다른 사람들이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운전에 퍽 익숙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 만만하게 차를 몰았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그만 다른 차와 충돌하고 말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두 부부는 즉사하고 뒷자리에 탄 어린아이 둘만 살아남았습니다. 그토록 사랑스러운 두 아이는 낯선 이국땅에서 고아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경외하는 삶을 떠나, 하나님이 정하신 길을 벗어나 더 나은 행복을 꿈꾸던 그들의 꿈은 산산 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말씀하시기를“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라(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범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때로는 자유를 억압하는 것처럼 보일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무한대의 자유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난 삶은 자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방종을 자유로 착각한 것입니다. 양에게 있어서의 자유는 목자를 따를 때에 한해서의 자유입니다. 목자를 인도에서 벗어난 양은 불행을 찾아가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선한 목자로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말씀하시기를“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한복음 10:11)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생명까지 버리신 선한 목자이십니다. 이 선한 목자를 따라가는 삶이 곧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하되“모든 도를 행하라”하셨습니다. 내 마음에 맞는 부분만 순종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 형편에 맞춰 순종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내 생각을 맞추고, 하나님의 말씀에 내 생활을 맞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행복의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불행의 시작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살았던 에덴동산의 행복이 깨어진 원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었습니다. 뱀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보다 더 행복할 것이라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행복을 방해하는 사탄의 미혹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미혹했던 사탄의 전략은 지금도 변함이 없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二.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본문 12절 하반 절에“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하셨습니다.

레플리라는 사람이 쓴“믿거나 말거나”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팔면 5불 정도가 나가는 쇳덩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쇳덩이로 말굽을 만들면 50불이 된다고 합니다. 그 쇳덩이를 녹여서 바늘을 만들면 5,000불이 된다고 합니다. 그 쇳덩이로 시계를 만들면 500,000불이 된다고 합니다.

같은 재료이지만 무엇으로 사용되는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렇습니다.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가치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복과 불행이 나눠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을 받아 금세에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되며, 내세에 큰 상급을 받게 됩니다. 반면 육체의 욕망을 쫓아 세상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의 진노로 불행의 늪에서 허덕이게 되며, 훗날 영원한 멸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행복을 원하시는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며 정성을 다해 섬기며 따랐던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항상 예수님 곁에서 생활하는 그를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은 부러워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의 사랑의 대상이 바뀌었습니다. 예수님 대신 세상을 사랑했고, 돈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끝내 예수님을 팔아넘겼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님을 팔고자 등을 돌리고 나가는 그의 뒷모습에 대해 사도요한 기록하기를“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요한복음 13:30)고 했습니다. 이 밤은 해가진 자연의 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등지고 불행의 늪을 향해 달려가는 가룟 유다의 안타까운 모습을 뜻합니다. 돈에 눈이 어두워 예수 그리스도의 몸값까지 이익의 기회로 삼았던 가룟 유다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배신과저주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은 이러한 삶을 두고 경고하고 있습니다.“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디모데전서 6:7-9)

행복을 위해 세상을 사랑하고 돈에 집착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불행의 함정으로 달려가는 어리석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빗나간 사랑이 행복을 파괴하듯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이와 같습니다.
물욕은 행복을 가꾸는 행복농장의 가시떨기입니다. 마태복음 13:22-23의 말씀에“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삶에 행복의 열매가 풍성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런데 재리의 유혹 즉 물질에 대한 집착이 그 행복 밭의 결실을 방해하는 가시떨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시인 최승호씨가 쓴〈황금털 사자〉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평생토록 자기만을 위하여 살아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람과의 이해득실로 얽힌 세상에서 손해보다는 이익을, 실보다는 득만을 취하면서 살다보니 노년이 되었을 때 주위에 남은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었습니다. 쓸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이라곤 사과 궤짝에 쌓아 놓은 돈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에게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사람에게 헌신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마지막 기회마저 자기를 위해 쓰고 말았습니다. 가지고 있던 돈을 몽땅 털어 순금으로 만든 관을 구입하여 그 속에서 죽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금관 속에서 죽은 뒤 금관에 누운 채로 매장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날 밤, 그의 시체는 금관을 탐낸 무리들에 의해 무덤 밖에 내팽개쳐지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굶주린 들쥐에게는 기회였습니다. 굶주린 들쥐들은 배가 터지도록 시체의 배를 터뜨리며 내장까지 남김없이 뜯어먹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행복을 갈망하는 우리에게 그 비결을 본문에 말씀하시기를“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신명기 10:12-13)라고 하셨습니다.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자연적인 현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웃 사랑을 사랑하는 것입니다.“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요한일서 3:14)고 하셨습니다.

미국에 이민해서 살고 있는 한인 2세가 명문 콜롬비아대학 의과대학에 지원을 했습니다. 공부도 잘해서 SAT 시험에 만점을 받았습니다. 집안 형편도 부유해서 무난히 합격되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불합격 통지서가 날아왔습니다. 불합격 사유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귀하의 성적은 아주 우수합니다. 가정형편이나 여러 조건들도 만족스럽습니다. 그런데 귀하의 서류 어디를 보아도 헌혈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남을 위해서 헌혈한 경험도 없는 귀하가 어떻게 환자를 돌볼 수 있겠습니까. 귀하는 의사될 자격이 없습니다.”
생명을 사랑하는 것이 미국 의사의 조건이듯,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 자녀의 조건입니다. 이것은 바로 내가 그렇게도 소망하는 행복의 비결이기도 합니다. 요한일서 4:20-21에“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하셨습니다.

1935년 미국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젊은이가 시대의 흐름과 여론을 수집, 분석하는 연구소를 창설했습니다. 바로 조지 갤럽의“미국 여론 연구소”가 그것입니다. 이후 이 연구소는 세계적으로 기반을 넓혀나갔습니다. 갤럽이 원숙한 나이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의 최대관심사가 “행복”이란 것을 알고 그는 여론조사를 실시한 후 그 결과를 놓고 한 텔레비전에서 대담을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갤럽은 말하기를“가장 행복한 사람은 생생한 종교적 체험을 가진 사람이었고, 불행한 사람은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갤럽이 말하는“생생한 종교적 체험”이란 것은 어떤 신비로운 체험도 포함이 되지만, 그것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웃에게 실천하는 것도 여기에 포함이 됩니다.

어느 목사가 천국에 관한 설교를 한 다음 날, 한 성도로부터“천국의 메시지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천국이 어디 있는지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형제님을 만나게 되어 다행입니다. 제가 지금 막 저 오두막 언덕에서 왔습니다. 그 너머에 가난한 교우가 열병으로 앓아누워 있습니다. 형제님이 좋은 음식을 갖고 가 시편 23편을 읽어준 후 기도해 준다면 천국이 어디 있는지 아실 겁니다.”다음 날 아침 이 사람이 목사를 찾아와 말했다.“목사님, 천국이 어디 있는지 알았습니다. 목사님 말씀대로 했더니 15분간을 천국에서 지냈습니다.” 주를 믿는 사람에게는 사후의 천국이 예비 되어 있지만 이 땅에서도 사랑을 베풀 때 천국을 체험할 수 있는 삶의 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만이 아니라 하나님은 더욱 우리들이 행복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보내셨습니다. 멸망과 불행의 늪에 빠진 우리들을 행복의 자리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행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유일한 교량입니다. 그러므로“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하셨습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과 뜻과 성품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제시하신 행복의 비결입니다. 모두 행복한 가정, 행복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설교 / 이익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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