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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께서 역사하실 때 (눅 3: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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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중 끝 부분인 21-22절은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실 때에 있었던 일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조금은 의아해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손으로 세례를 받으셔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물음 때문입니다.  앞선 3:3에서는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하심을 받아야 할 죄나 회개하셔야 일이 없으셨을 터인데 왜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있으셨느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 오늘 본문의 16절에서 우리는 세례 요한 자신이 모든 사람에게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라 말했음을 전해 듣습니다.  노예가 하는 일 중의 하나가 주인의 신발끈을 푸는 일이었습니다.  히브리사람들은 종조차도 남의 신발끈을 푸는 일은 하지 않을 만큼 그 일은 천한 것으로 여겨졌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예수님께 그런 일을 하는 것조차도 너무나 황송해서 감히 할 수 없을 만큼 예수님은 존귀하신 분이라 했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이 어떻게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실 수 있느냐는 질문이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같은 사건을 전하는 마3:13-14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자 요한은 예수님을 말리며 말하기를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했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굳이 요한으로 하여금 당신에게 세례를 베풀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일이 다른 사람들이 세례를 받은 일과는 그 의미가 다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일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본문 21-22절이 전하는 대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만 있었던 놀라운 일 자체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 그 어떤 사람이 세례를 받을 때에도 없었던 일입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을 때에만 있었던 일입니다.  그러면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예수님 위에 강림하시며 하늘로부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는 소리가 난 그 놀라운 현상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이제 주님께서 역사하실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열렸다는 것, 하늘로부터 소리가 났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시는 놀라운 역사가 이제 시작됨을 하나님께서 친히 알리시는 사건으로 이해되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세례를 받으시고 뭍으로 올라오시는 예수님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끔찍이 사랑하시는 친아들이시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메시야이심을 확인하시며 공포하신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말씀하신 이가 예수님을 가리키시며 "내 아들"이라 하셨고 성령이 강림하셨다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것이며, 예수님은 바로 그 삼위하나님 가운데 아들이신 이가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이이심을 확인하는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30년간 자신의 존재와 받으신 바 사명을 드러내지 않고 계셨던 예수님께서 이제 드디어 이 세상에 오셔서 그가 하실 본연의 사역을 시작하시겠다는 선언을 하시는 계기로 요단강에서의 요한의 세례를 활용하셨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비로소 세상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신 때가 어떤 때였는지를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앞서서 우리가 전해들은 사실이 무엇입니까?  2:1-3에서는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갔다"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외세의 지배와 통치 아래 있었으며 세금을 더 많이 보다 효율적으로 걷어가기 위해 로마 황제가 내린 명령 한 마디에 온 이스라엘이 호적을 하기 위해 민족대이동을 해야 했던 서글픈 상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3:7-9에서는 무엇을 봅니까?  요한이 자기에게서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말하기를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자만심만 갖고 있었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다운 열매는 맺지 못하고 있어서 언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당할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적 타락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미 살펴 본 바 있는 대로 3:10-11에서 사람들이 세례 요한에게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물었을 때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한 요한의 대답 속에서 우리는 백성 간에 빈부의 격차를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헐벗고 굶주린 이들에 대한 무관심과 개인주의, 즉 사회적 일치감의 부재 또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자주국가의 권리와 정치적 자유의 박탈과 함께 경제정의가 실종된 현실을 목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요한에게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며 세리들이 물었을 때에는(3:12)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3:13) 대답하고, 그 질문을 군인들이 했을 때에는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3:14) 말한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폭력과 불의가 난무하던 사회였음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첫 머리에서 읽는 대로 백성들이 메시야의 오심을 바라고 기다렸던 것은 충분히 이해되고 남는 일입니다.  백성들은 절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 17절에서 세례 요한이 그의 뒤에 오실 주님을 가리키며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말한 것도 당시 그 이스라엘이 얼마나 거짓과 불의로 가득 차 있었으며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하기 힘든 혼란된 사회였는지를 엿보게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본문 18-20절은 그 사회의 악한 면을 단적으로 잘 드러내줍니다: "또 그밖에 여러 가지로 권하여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였으나 분봉 왕 헤롯은 그의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과 또 자기가 행한 모든 악한 일로 말미암아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 그 위에 한 가지 악을 더하여 요한을 옥에 가두니라."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던 의인이 정치권력에 의해 투옥되고 어처구니없이 처형되기까지 한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실질적 권력자였던 헤롯은 악한 군주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차지했습니다(마14:4).  헤롯과 헤로디아는 각각 자기들의 본래 결혼을 파괴했을 뿐 아니라 율법이 금하는 불륜의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잘못된 일을 지적하는 의인을 용납하지 못한 것입니다.  헤롯은 이렇게 윤리적으로만 잘못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그의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과 또 자기가 행한 모든 악한 일로 말미암아 요한에게 책망을 받았다" 한 것으로 보아 그는 전체적으로 악한 통치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렇게 악하고 불의한 통치자 아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구원의 사역을 시작하신 것은 바로 이러한 때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외교, 정치, 경제, 사회, 종교 전반에 걸쳐 불안정하고 부패했을 때에 주님께서 그의 사역을 시작하셨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의 형편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 우리의 상황을 위기상황이라고 말하는 것을 못마땅해 할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위기를 위기로 인식해야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위기상황으로 보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짜 위기상황이라는 말도 많이 듣습니다.  제 자신이 참여하여 순서도 맡았던 최근의 한 기도모임에서 한국교회를 대표한다 하는 원로목사 세 분과 현역 지도자들이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며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참회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원로 세 분 가운데 한 분은 최근 두 정권과 이념적 궤를 같이 하고 같은 정치적 노선을 걸어온 것으로 널리 알려진 분입니다.  그러한 분조차도 그 기도모임에서 발언하며 지금은 정말로 큰 위기의 때라고 말했습니다.  이 나라의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동북아의 외교적 균형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큰 소리 치고 있지만 그 말이 설득력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외국에는 물론 국내에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자칭 외교적 론은 계속해서 우방들로부터의 의혹을 키우고 외교적 고립을 심화시키며 국민들에게는 불안감을 증폭시킬 뿐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우리나라가 총체적인 위기상황에 처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황해하고 불안해하며 자포자기 하고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 때야말로 주님께서 역사하실 때라는 사실 속에서 우리는 위로와 희망을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고 기다리며 그 안에 우리의 모든 소망을 두고 그로부터 우리의 갈 길과 행할 도리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만나고 바로 영접하면 모든 것이 뒤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나치게 때를 놓치지만 않으면 위기는 언제나 기회로 돌아설 수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때를 놓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하게 붙잡을 때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역사하시게 할 때입니다.  주님께서 역사하시면 치유와 구원의 놀라운 일들이 벌어질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신앙적 위기도 극복될 것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도 건강해질 것입니다.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외교적 긴장과 불안도 사라질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시고 구원자이시라는 확고한 믿음과 함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드디어 인류구원의 사역을 시작하실 때 그에 앞서 그의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의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요한이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본문 18절에서 뭐라고 합니까?  "또 그밖에 여러 가지로 권하여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우선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귀에 듣기 좋은 달콤한 소리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기가 속한 사회의 온갖 부정과 부패와 부조리와 불의를 통렬히 꾸짖으며 동족에게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또 그는 힘없는 백성들의 잘못만 꾸짖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본문 19절에서 보듯이 최고권력자의 부도덕함과 "그가 행한 모든 악한 일"을 책망했습니다(19절).  그 때문에 투옥되고 참수를 당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마14:1-12).  주님께서 역사하시기 시작하신 것은 바로 이런 선지자가 앞서 활동한 후였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이 한 일은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행한 가장 중요한 일은 이스라엘백성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한 것입니다.  민족의 총체적 위기의 때에 백성들을 질타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민족이 바라보아야 할 이를 바르게 가리킨 것입니다.  진리와 정의를 바로 잡을 권세와 능력을 지니신 이를 백성에게 가르치며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외침으로써 거짓과 불의에 상처 받고 절망한 백성에게 위로와 희망을 준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세례 요한을 오늘날 우리 사회는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감당해야 할 사명은 다름 아닌 교회와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먼저 회개해야 할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이들로 하여금 회개하게 할 사명을 안고 있습니다.  이 위기의 때에 우리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위로와 희망을 찾을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이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위로와 희망을 찾게 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친히 역사하시기에 앞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시대 이 나라의 세례 요한이 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주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설교 / 이 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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