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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소금 그릇에서 나오라! (마 5: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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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소금장수들은 여우에 홀려 가면서도 산골 깊숙한 곳에 있는 등불을 찾아갔습니다. 그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그들의 발밑에 새로운 길이 생겨났습니다. 그 후 소금장수들이 딛고 간 발자국을 따라 산 속에 오솔길이 생겨났습니다. 아무리 험하고 깊은 골짜기라도 소금장수들이 소금을 팔러 다닌 곳에는 길이 없는 곳이 없었습니다. 인적이 드문 험한 산골짜기에서 여우에게 홀려 고생하고 캄캄한 길에서 등불을 찾아가던 소금장수들이야말로 오늘 날 상업의 개척자들입니다.

어떤 길이든지 처음 그 길을 가는 사람이 겪는 고통은 엄청나게 큽니다. 그런데 복음의 길에서는 누구나 개척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정해주신 길, 오로지 그 길만을 걸어 새 길을 만들어 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읽어드린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과 맺는 관계에 대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그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5:13)고 하였습니다. 소금의 용도는 매우 다양합니다.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내기도 하고 얼음을 녹이기도 하고 갈증을 유발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1세기에 소금의 가장 중요한 용도는 보존에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냉장고가 없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먼저 동물을 도살하면 잡고 나서 그 고기를 소금에 절여 보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을 때 예수님은 타락한 세상에서의 부패를 생각하셨습니다. 그러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더 이상 쓸모가 없어 길 가의 모래처럼 밟히게 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전문적인 표현을 보면 염화나트륨은 그 자체의 성질을 잃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해에서 출토된 소금은 다른 광물들이 심하게 섞이는 바람에 그 보존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문화와 철학, 죄에 의해 오염된다면 스스로 그 능력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베키 메인리 피퍼트는 <소금 그릇에서부터 나오라>라는 베스트셀러의 작가입니다. 그녀의 주장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안에서만 안주하면서 믿는 사람들끼리만 사귀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런 가치도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소금이 고기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고기 속으로 스며들어가야 합니다. 소금은 조용히 그리고 종종 눈에 띄지 않게 일합니다. 그러나 소금은 그릇에서 나와야만 그 본분을 다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가장 열심히 일해야 할 곳은 건물 안이 아니라 바로 세상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독일교회는 매 2년마다 독일교회의 날 행사를 한다고 합니다. 지난 번 독일교회의 날 주제가 바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였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강조하는 것으로서 소금으로 비유된 교회가 세상을 행해 나가 그 세상을 변화시키며 그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하는 말입니다.

첫 째, 맛을 잃은 소금이 있습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라”는 비판과 경고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그 당시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선민으로 율법을 받았고 세계 선교의 사명을 받았음에도 그 사명을 포기한 채 율법주의에 빠져버린 현상을 비판하신 것입니다. 즉, 유대교가 이미 맛을 잃어버려 그들을 통하여서는 하나님의 뜻을 실현할 수 없음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7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을 만나셨을 때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로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즉, 거짓이 없다고 칭찬하셨습니다. 그것은 대단한 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대중적 연설가이자 십대 문제 전문가인 조쉬 맥도웰은 최근에 한 불안한 통계수치를 보고한 바 있습니다. 그 통계는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이 젊은이들의 태도와 행동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지직해 주고 있습니다. 74%의 그리스도인 아이들이 학교에서 시험 때 컨닝을 한다고 합니다. 83%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거짓말을 한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93%가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한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63%의 아이들이 화가 나면 남에게 폭력을 가합니다. 이러한 행동들을 전혀 그리스도인이 아닌 아이들의 행동과 비교했을 때 겨우 4% 정도만이 양호한 편이라고 합니다.

어느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은 교인들을 싫어한다고들 합니다. 그 이유는 교회 사람들은 무례하게 큰 소리로 웃고 떠들므로 식당 분위기를 소란스럽게 만들고 요구가 많으며 테이블을 너무 오랫동안 차지하고 앉는답니다. 그럼에도 수고하였다는 인사도, 팁도 인색하다고 합니다. 아마 세상은 그런 그리스도인들을 위선자로 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행동은 말보다 더 큰 파워가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미 맛을 잃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소금이 되기 원한다면 먼저 여러분이 말하는 것이 모순이 되지 않도록 겸손하고 예절 바르고 건실해야 할 것입니다.

2000년 어느 날 한 독일 남자가 성당에 와서 고해성사를 했다고 합니다. “신부님, 저는 죄를 지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한 유태인 청년을 저희 집 다락에 숨겨 줬습니다.” “형제여,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사람으로부터 숙박비를 계속 받았습니다.” “음… 그것은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죄는 아닙니다.” “오, 감사합니다 신부님, 제 마음이 훨씬 편안해 졌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여쭤볼 게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는 얘기를 해줘야 할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신앙에 대해 얼마나 많이 얘기하고,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자주 교회에 데려오며, 여러분의 옷에 기독교 로고가 붙어있고, 십자가 목걸이나 귀걸이를 달고 다니는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의 그런 행동을 본다면 여러분의 소금은 그 맛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둘 째, 소금은 세상 속으로 스며들어가야 합니다.

어느 교회에 다니는 한 초등학교 선생님은 학교 측으로부터 교실에서 예수님에 대해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묻곤 하면 학생들은 그녀에게 크리스마스에 관한 이야기 전체를 말하게 합니다. 그녀는 부활절에도 동일하게 행합니다. 이와 같이 그녀는 교육계에서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의사는 자신이 진료하는 난치병 환자에게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기도 드려도 될까요? 묻고는 기도하고 진료를 하기도 하며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책을 진열해놓고 여러 가지 건강에 관한 글과 함께 마지막으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부끄러움이 없는 간증을 실어놓기도 했답니다. 그 의사는 나름대로 의료계에서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뚜막에 있는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소금이 맛을 내려면 녹아져서 세상 속으로 스며들어가야 합니다. 즉, 희생해야 만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있으므로 맛이 나서 가정이, 직장이, 학교가 더욱 화목하고, 죽을 자도 살려놓는 생명의 역사를 일으켜야 합니다.

끝으로, 소금은 소리 없이 조용히 일합니다.

소금은 남을 녹이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녹아지므로 변화를 일으키는 존재입니다. 내가 녹아지므로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광활한 사막에서 오랜 세월 수행해 온 지혜로운 성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널리 퍼져서 성자의 집은 그를 만나러 온 사람들도 넘쳐났습니다. 한 여인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성자를 만나기 위해 멀리서 온 여인은 피로에 지쳤음에도 기쁜 마음으로 성자 앞에 다가갔습니다. 하지만 여인이 막 말을 꺼내려는 순간, 그만 방귀를 뀌고 말았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였습니다. 여인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그 때 성자가 여인에게 말했습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여인은 부끄러워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성자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귀가 어두워 잘 듣지 못하니 큰 소리로 말씀해 주십시오.” 순간 여인의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성자가 귀가 어두워 방귀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생각한 이 여인은 안심하여 짐짓 큰소리로 성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쏟아놓았습니다. 성자는 온화한 얼굴로 여인의 말을 듣고 마음의 평화와 지혜가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다음 사람이 찾아왔을 때에도 성자는 귀가 어두운 사람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은 성자가 하루아침에 귀머거리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이후 성자는 귀머거리가 되었고 귀머거리로 행세했습니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어느 날 성자는 그 여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러자 성자는 자신의 제자들을 모두 불러 모아 말했습니다. “내게 신의 은총이 내렸나보다. 오늘 아침 나는 기적처럼 귀머거리에서 벗어났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소금은 그릇에서 나와야 합니다. 세상 것과 섞이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속으로 스며들어가야 합니다. 소리 없이 녹아지므로 조용히 일해야 합니다. 바라옵기는 올 한 해도 성도 여러분이 있는 삶의 자리에서 소금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설교 / 김명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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