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의 질그릇은 강하다 (고후 4:7-10)

  • 잡초 잡초
  • 555
  • 0

첨부 1


오늘 본문에서 나타나고 있는 질그릇은 가장 깨지기 쉬운 연약한 그릇을 상징합니다. 이 가장 연약한 깨지기 쉬운 그 질그릇은 바로 믿음의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바울 선생님은 하나님의 영에 붙들려 성경을 기록하면서 7절에 말씀하기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쉽게 이야기하면 그릇보다 중요한 것이 내용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릇이 가치 있는 것은 그 그릇의 재료도 중요하지만 그 그릇이 무엇을 담고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금그릇이라고 해도 그 그릇에 개밥이 담겨 있으면 우리는 그 그릇을 “개밥 그릇”이라고 부릅니다. 아무리 볼품없고 연약한 질그릇이라도 그 안에 보석이 담겨 있으면 우리는 그것을 “보석 그릇”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중에 어떤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높여 “나는 금그릇이다. 나는 은그릇이다 나는 수정 그릇이다”라고 스스로 자신에 대해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 소용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흙으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사람들이 볼 때 그 사람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이 볼 때 우리는 모두는 연약하고 나약하며 깨지기 쉬운 질그릇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감사한 것은 이 질그릇 속에 하나님께서 보배를 넣어 두셨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보화를 두셨다고 말합니까? 분명히 성경은 말씀하기를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교만함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생의 가치는 내게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디모데 후서 2:21절 말씀에는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주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그릇이 되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의 그릇을 비우고 정결하게 닦아 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세력이 있고, 권세가 있었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귀신이 물러갔고, 마귀의 역사가 멈췄습니다. 그분이 말씀을 파도를 향해 잠잠하라고 하자 당장에 파도가 멈췄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놀라운 사건 중의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능력과 권세와 세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전혀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향해 말씀하시기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23:25~28). 그들의 문제는 주님의 말씀을 채울 수 있는 정결하고 깨끗한 빈 공간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그 공간에 이미 탐욕이 가득했습니다. 방탕이 가득했습니다. 물질로 채우고자하는 재리의 욕망이 가득했습니다. 온갖 분노와 시기와 욕정이 가득했습니다.

  그릇이 이미 탐욕과 방탕과 재리와 인간의 본성적 욕망으로 가득차 있는데 어떻게 성령께서 그 안에서 역사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이 그 곳에서 싹이 나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자신의 마음의 밭을 쟁기로 갈고, 그곳에서 잡초를 제거해야 합니다. 돌을 제거해야 합니다. 세상의 염려와 물질의 근심과 세상과 벗하려는 육체의 가시나무들을 뿌리째 뽑아 버려야 합니다. 물질도 하나님이 주십니다. 세상의 성공도 하나님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주님께 맡겨야 믿음의 씨를 뿌리면 제대로 싹이 나고 뿌리를 바르게 내려 풍성한 인생의 열매와 믿음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성도라면 먼저 자신 속에 있는 죄를 회개하고, 자신의 마음을 성령의 능력과 예수의 피로 정결하게 태우고 씻어내어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정결한 빈 그릇이 되어야 은혜와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주님께서 쓰시는 그릇이 되려면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채우려는 그릇의 크기가 깊고 커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언제나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81:10). "네 장막 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사 54:2).

  요셉이 하나님께서 쓰시는 큰 그릇이 된 것은 다른 것보다 그의 마음에 그릇이 컸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배다른 10명의 형제들은 그를 미워했고, 그를 아라비아의 상인에게 노예로 팔아 넘겼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얼마든지 복수할 힘과 권력을 가졌지만 오히려 형제들을 사랑했고, 용서했으며 심지어 자신의 원수라고 할 수 있는 그 조카들까지 책임졌습니다. 그의 입은 하나님을 향해 크고도 넓게 벌려져 있었고, 하나님은 그것을 채워주셨습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기 위해 군사 3천명을 이끌고 그를 추격하였습니다. 다윗은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자 작은 바위굴에 숨었습니다. 그곳을 지나가던 사울이 갑자기 아랫배가 당기면서 뒤가 마려웠습니다. 그는 뒤를 보기 위해 마침 다윗이 숨어 있는 굴로 들어갔습니다. 다윗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뜻하지 않게 사울이 그 굴로 들어 왔으니 말입니다. 사울이 앉아 뒷일을 보고 있는 동안 밖에는 군인들이 그 동굴을 지키고 있고, 다윗은 사울이 뒤를 보고 있는 동안 바로 뒤에 숨을 죽이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함께 숨었던 다윗의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니 즉시로 죽이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가만히 가서 사울 왕의 왕복 끝을 칼로 베었습니다. 그 후에 다윗이 뭐라고 말합니까? “내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아 세운 왕에게 큰 잘못을 범했다”고 그는 마음이 크게 찔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합니다(삼상24:5-6). 그는 비록 원수를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잡았지만 정당하지 않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기름부어 세운 하나님의 사람을 인정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그릇은 작은 그릇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큰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죽하면 바울 선생도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었으니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후6:11~13)고 말하겠습니까? 마음을 깨끗이 비워 자신의 그릇을 넓히고 자신의 입을 크게 벌려 주님의 은혜와 그분의 능력으로 채움을 받는 사람, 이 사람이 주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그릇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런 그릇에는 다음과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첫째로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결코 우겨쌈을 당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헬라어로 안드로포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뜻은  “위를 쳐다본다”라는 말입니다. 오직 위를 쳐다보고 위를 사모하고 위를 바라보며 위의 것을 따라 산다는 말이 바로 안드로포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을 한국어로 옮기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손으로 흙은 빚어 만든 사람은 오직 위를 보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1-3절에는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나는 여러분 속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구원의 보화와 성령님이 함께 하신 줄로 믿습니다. 따라서, 이 보화가 우리 속에 있다면 땅을 보면 안 됩니다. 위엣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답게 위에 것을 보면서 위엣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 속에 있는 이 하나님의 능력의 심히 큰 것을 세상에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는 우겨쌈을 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을 보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할렐루야!

  둘째로 하나님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다고 햇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답답한 일이 한 두 가지겠습니까? 억울한 일이 한 두 가지겠습니까? 억울하게 17살에 노예로 끌려간 요셉이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자신은 정직하게 살았는데 이집트 여인이 자신을 범하려고 했다고 소리칠 때 요셉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삼촌 라반의 집에 머물면서 자신과 맺은 계약을 10번이나 뒤집으면서 애지중지 기른 양떼와 소 떼를 하루아침에 빼앗아가는 삼촌을 보면서 야곱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자신의 아들과 딸들이 죽고, 이방민족에게 재산을 한 번에 빼앗겨버린 욥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예수를 믿으면서 정직하게 살고,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핍박을 받으면서 당한 설음이 한 두 가지겠습니까? 오죽하면 요한계시록 6:10절에 보면 순교자들이 예수님을 향해 말하기를 “대주제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고 말하겠습니까? 오죽하면 시편 73편을 기록한 아삽이라는 분은 “악인이 어찌 항상 평안하고 재물을 더합니까? 내가 내 마음을 깨끗이 하고 내 손을 죄에서 씻고 나는 죄가 없다고 해도 그것이 헛일이 되고 있습니다”(시73:12-13)고 말하겠습니까? 오죽하면 선지자 하박국은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합1:2)고 말하겠습니까?

  그렇다면, 답답함을 당한 사람들이 망하였습니까?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인생이 완전히 멸절되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답답함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가진 사람은 핍박을 받는다고 버림바 된다고 했습니까? 거꾸러뜨림을 당한다고 해서 망한다고 했습니까? 결코 하나님의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쓰러지지 않습니다. 무너지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이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까? 다니엘이 바벨론에서 그가 출세한 것을 시기하는 여러 정적들부터 얼마나 크게 사방으로 우겨 쌈을 얼마나 당했습니까? 얼마나 요셉이 노예로 심장이 터질 것과 같은 인생의 답답한 일을 당했겠습니까? 기독교의 역사는 핍박과 우겨쌈과 답답함을 당하는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교회 역사는 결코 무너진 적이 없습니다. 성도들은 낙심하지 않고 일어났습니다. 시대마다 핍박을 받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버린바 된 적이 없었고, 세상에서 잠시 거꾸러뜨림을 당했지만 결코 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들의 핍박 받음과 고난 받음과 거꾸러뜨림을 받음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은 더욱 크게 나타났고, 하나님의 나라는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낙심하지 마십시오. 뒤로 물러가지도 마십시오. 여러분은 결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무엇이 상록수고 무엇이 낙엽이 지는 풀인지 나타나는 법입니다. 오래 참아 인내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영광을 주실 것입니다.

  교부 크리소스톰이라는 분에 관한 한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크리소스톰이 로마 황제로부터 믿음을 포기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어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로마황제는 그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린 후 신하에게 이렇게 지시했습니다. "크리소스톰을 어떤 누구와도 대화할 수 없는 고독한 독방에 집어넣어라" 그러자 신하가 대답했습니다. "황제님, 크리소스톰은 크리스천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만일 그 사람을 거기다 가두어 두면 그는 오히려 하루 종일 싱글벙글 웃으면서 즐거워 할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과 늘 함께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혼자두면 그가 하나님과 더 깊은 대화를 나누게 하는 좋은 일만 하는 셈입니다." 이 말을 들은 황제는 다시 명령했습니다. "그러면 그를 살인자들과 강도들이 있는 감옥에 집어넣어라!" 신하가 고개를 흔들어 댔습니다. "황제님, 그건 더욱 안 됩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에게 그들을 전도할 기회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더욱 좋아 할 것입니다. 아마 얼마 되지 않아 그가 갇힌 그 감옥의 흉악범들은 모조리 크리스천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죄인도 변화 될 수 있다는 그들의 말을 이루는 것이 되고, 하나님의 상을 받도록 해주는 일입니다." 이 말은 들은 황제는 더욱 노발대발하며 "그러면 그놈을 내어다 목을 쳐라! 당장!"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신하는 사색이 된 얼굴로 말했습니다. "아이구 황제님,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상은 순교입니다.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 중에는 처형당할 때 두려워하거나 우는 사람을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얼굴에 광채가 나고 기뻐한답니다. 순교야 말로 그에게 가장 좋은 상을 안겨주는 셈입니다." 이 말은 들은 황제는 크게 낙심하면서 "그러면 도대체 이놈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냐? 아이고...."라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기근입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핍박입니까? 세상의 어떤 위협입니까? 죽음입니까? 사망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어떤 세상의 피조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 안에서 끊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가진 질그릇은 겉으로는 약해 보시고, 연약해 보여도 세상의 어떤 힘도 이길 수 없는 큰 성령의 능력과 구원의 보배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을 통해 진실로 하나님의 크신 이름이 찬송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 / 한용근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