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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가...알리라 (요 13: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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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요한복음 13장 34~35절) 

<목회기도>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정성으로 찬양한 찬양대의 찬양을 통해 영광 받으신 줄 믿고 감사 드립니다.
세상에 살던 우리들…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모였습니다.
부끄러운 것/드러낼 수 없는 것 많지만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당당하게 앉았습니다.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옵소서.
세상에서 지친 몸과 마음 신령한 말씀으로 치료받게 하시고
새 힘 얻어… 십자가 군병 되어…  주 위해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견고한 믿음을 가져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게 세워 주시옵소서.
삶의 현장에서 지고 온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안식과 평안을 얻는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전 세계 곳곳에 나가 있는 기둥교회 성도들, 우리가 돕고 있는 선교사들
우리가 돕는 우간다, 르완다, 볼리비아, 페루… 등의 어린이들에게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는 복을 주시옵소서.
객지에… 군대에 나간 성도들… 병상의 환자들에게도 은혜 베푸셔서
저들에게 평안과 기쁨의 소식이 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 시간 부족한 종을 붙드시옵소서.
능력있게 말씀 전하게 하시고 성령으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잘 다녀왔습니다. '어디를… ?' 하시는 분은 지난주일 결석하신 분입니다.
Canada Toronto에 있는 갈보리장로교회 부흥회를 인도하고 왔습니다.
기도를 많이 해 주셔서 은혜로운 부흥회를 했습니다.
 
그 교회 담임목사님은 고승록목사님인데 기둥교회 중,고등부에 출석하셨다고 합니다.
시간시간 눈이 충혈 되어 있는 눈물이 많은… 열정을 갖고 있는 좋은 목사님이셨습니다.
이런 저런 상처를 가진 이민생활과 신앙생활 중에도 교회를 사랑하고
목회자를 귀중히 여기는 장로님들과 성도들을 만나 아주 큰 사랑을 받고 왔습니다.
내년에 또 오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지요? 왜 대답이 없어요?
기도할 때는 '우리 목사님 널리 쓰임 받게 해달라'고 하고
어디 간다고 하면 '왜 그렇게 돌아다니나?' 라고 하면 안됩니다.
 
지금까지 5월을 어떻게 지내셨는지 잘 모르겠지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주관하시고 지키실 줄 믿습니다.
여전히, 힘들고 어려워도 살았음에 희망이 있고 살았음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 460장 1절 "지금까지 지내온 것" 함께 찬양합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 주시고/모든 일을 주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사람이, 입으로 하는 말이 중요합니다.
입으로 표현하는 것,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10:10)
옆의 분과 "좋은 일이 많기를 바랍니다. 잘 될 겁니다." 서로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외면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막고 산다면
세상의 어떤 수고도 헛되고 헛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오늘 예배의 자리에 나왔고… ,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구원받은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며 사는 사명감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는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데
하나는 <들어가야 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이루어야 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심령이, 마음이, 가정이, 일터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곳, 하나님이 지배하시는 곳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적을 두고 신앙 생활하는 기둥교회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인 줄 믿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오늘 본문(요13:31~35)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들과 나눈 마지막 말씀이시기에 예수님의 세상 삶과
그동안 가르치신 교훈의 마지막 정리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중요한 말씀을 하시는 자리에…
그 복된 자리에… 그 귀한 자리에… 가룟 유다는 없었습니다.
30절~31절에 보면 그 자리에 있다가 나가버렸습니다.
 
왜 나갔는지 아십니까?
27절에 보면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마13:27)
(~, satan entered into him.) 했습니다.
예수님과 앉아 있는데도 사탄이 가룟 유다의 마음에 들어가니까
예수님을 등지고 나가 버렸습니다.
여러분, 범사의 삶에, 여러분의 마음에, 가정에
마귀가 틈타지 않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정신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제가 설교하면서 자주 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화나는 일이 많습니다. 분을 내고 다툴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고 있지 말아야 합니다.
부부싸움을 해도 해 지기 전에는 화해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6~27절에 보면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엡4:26) 했습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 답이 27절에 나와 있는데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엡4:27)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시험받으실 때 "사단아 물러가라"(마4:10)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여러분의 귀에 마귀가 속삭일 때가 있습니다.
믿음을 흔들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지 못하도록 속삭일 때가 있습니다.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우리의 믿음을 흔드는 징조가 보이거든
"사단아 물러가라"(마4:10)고 소리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며
말씀을 전하는 자리에서 가룟 유다가 나간 후에 예수님께서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함께 읽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13:35)
 
예수님께서 새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사랑"이라는 용어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며 살라는 말씀은 이미 레위기 19장 18절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레19:18)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새 계명이란 말은
시간적인 개념으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동기가 새롭기 때문에,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새 계명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 사랑을 받은 자가 해야 할 사랑을 말합니다.
더 쉽게 설명하면 새 계명에 해당하는 사랑은
가르쳐서, 배워서 또는 본능적으로 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강대상에서 외쳐지는, 선포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조건 없이 주시는 사랑,
누구든지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
이해하기 어려운… 희생적인 아가페의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어떤 사람을 보면서 '어떻게 저 사람이 용서 받을 수 있어'라고 말합니다.
 
아가페를 정확히 알기 위해 옛날 헬라 사람들이 구별하여 사용했던
[사랑]이란 단어 네 가지를 살펴보면 ;
먼저
▶ 스톨게(Storge)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아끼는 것 같은 자연적인 사랑, 
  본능적인 애정(natural affection)을 말합니다.
  이 스톨게의 사랑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마지못해, 죽지 못해 감당하는  사랑이 되기도 하고…
  무작정 '내 자식이니까', '내 형제니까'하는 이기심을 벗어나지 못하기도 합니다.
둘째,
▶ 필리아(Philia)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선생님이 제자를 사랑하고, 제자가 선생님을 사랑하는 사랑,
  친구가 친구를 사랑하는 것 같은 사랑…
  이 말은 우리말의 사랑이란 의미보다는 우애(友愛), 존경…등의 의미가 강합니다.
  그래서 필리아는 '사회적인 사랑'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이 필리아의 사랑은 동기가 잘못된 사람들끼리의 우정으로 연결될 경우에는
  악을 행하는 집단으로 발전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갱단이나 조폭을 봐도 서로 목숨까지 내놓기도 합니다.
  필리아의 사랑이 좋은 것이긴 하지만
  한마음 되어 서로 좋아하는(like) 사람들끼리만 모여
  패거리를 만들고 파벌을 형성할 수도 있음을 주의해야 합니다.
셋째,
▶ 에로스(Eros)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에로스는 성적인 사랑, 이성적인 사랑, 감각적이고 일시적인 사랑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만족을 위한 사랑을 말합니다.
  그러나 에로스의 사랑에는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남녀가 결혼하는 것은 분별력이 없어서 결혼한다는 것입니다.
  절제하고 단절하는 결단력도 필요하며
  이해하고 덮어주고 용서하는 너그러움도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아가페(Agape) 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헬라어로 기록된 성경에는 아가페라는 단어가 116번이나 나옵니다.
  이 아가페는 당시 보통 사람들이 잘 쓰지 않던 단어입니다.
  희생적인 사랑,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돌아가게 하셔서
  온 인류의 죄의 삯(값)을(롬6:23) 치르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
  조건없이 사랑하되 끝까지 하는 사랑(요13:1),
  배반자도 긍휼히 여기시는 사랑을 말합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13:1)
 
죄인을 사랑하신 사랑, 배반자를 긍휼히 여기시는 사랑,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사랑… 예수님은 이런 사랑을 명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그런 사랑을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는 것입니다.
 
 
제자인 줄 알리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35절 함께 읽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13:35)
 
사실, 이 말씀은 무서운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사람들이 나를… 직장동료가, 친구들이, 이웃이… 나를
"저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야, 예수님의 제자야"라고 말합니까?
 
사람들이 여러분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마16:24)로 알고 있나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대로 사랑하며 사는 사람으로 알고 있나요?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 줄 알리라" 했는데…
사람들이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 줄 모른다면
우리는 사랑하며 살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자신에 대해 학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의 외모와 능력 등을 탓하면서 자신을 비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할 수 없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성경에도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자기 몸과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 보면
  "사랑은 말 잘하는 것보다 낫고, 천사의 말보다 낫다"고 하였으며,
  "사랑은 산을 옮길만한 믿음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4~7절에 보면
  "사랑은 오래 참고…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라 했습니다.(고전13:4~5)
더 짧게 정리하면 "참고 견디는 것"이 사랑입니다.
부부간에도 사랑을 지키기 위해 참고 견뎌야 할 것이 많습니다.
가족 간에도 참고 견뎌야 할 일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키기 위해…
참고 견딜 것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를 사랑한다면… 하나님 마음에 합한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해,
만난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기 위해 참고 견뎌야 할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오~래 참아야 하고…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어야 합니다.
 
 
징계하시는 하나님
 
그러나 착각하지 말 것은 사랑이 모든 것을 허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방임(放任: 놓을 방, 맡길 임)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다 참아주고 용서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오래 참고…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라 하여
모든 일에 시간적으로 오래 참기만 하고
모든 상황에서 만나는 모든 것을 견디는 것만은 아닙니다.
사랑은 때로 "징계"로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5~8절, 함께 읽겠습니다.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히12:5)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히12:6)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히12:7)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히12:8)
 
여러분,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채찍을 맞고 어려움을 당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사랑 받는다는 증거입니다.
학생을 사랑하는 선생님이나 교수들은 학생을 사랑하기에 징계하게 되어 있습니다.
공부 못하면 F학점도 주고, 공부 안하면 책망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선생님들은 아무런 책망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 분들은 자기 밥벌이나 하는 것이지 바람직한 선생님은 아닙니다.
 
자식을 징계하면 잘못했다고 하고 때로는 도망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식은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자식은 영영 도망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남을 징계하면 잘못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도망갑니다.
나가는 것은 자식이 아닙니다. 나가는 것은 제자가 아닙니다.
예수님과 같이 있어도 마귀가 틈타니까
가룟 유다처럼 나가는 것은 참 제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것…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려우니까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고 하셨습니다.(갈6:9, 살후3:13)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살후3:13)
 
그러나 어렵지만…  보다 낫기 위해, 하나님 마음에 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이웃이, 세상이… 우리를 쳐다 봅니다.
신앙적으로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낙심치 말고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보다 낫기 위해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몸부림 쳐야 합니다.
 
여러분, 스스로 한번 점검해 보십시오.
- 시간상 전보다 나은지, 어렸을 때 보다 나은지…, 
  작년보다…, 처음 믿을 때보다 나은지, 세례 받았을 때보다,
  직분 받았을 때보다 지금이 나은지 점검해 보세요.
- 관계상 남보다 나은지 점검해 보세요.
  아벨은 가인보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예배를 드렸습니다.(히11:4)
  숫자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질적인, 마음(심적인) 나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 상태상 다른 것보다 나은가 점검해 보세요.
  여러분, 오늘 예배의 자라에 나오기 위해 닦고, 고치고, 바르고, 입으셨을 것입니다.
  왜입니까? 보다 낫기 위해서… 바르고, 보고, 빗고, 입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소망이, 우리의 사랑이… 보다 나은가? 생각하며
  자신을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이론이 아니기 때문에 지식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철학이 아니기 때문에 관념적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과학이 아니기 때문에 실험으로 증명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경에 가르쳐 주신 사랑으로
하나님의 사랑은 물론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지를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믿음을 지키기 위해 참고 견뎌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 마음에 합한 교회를 위해
섬기는 삶을 위해 참고 견디십시다.
가족이 행복하기 위해 참고 견디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 순종키 위해 참고 견디십시다.
왜냐하면 저나 여러분 모두는 천하보다 귀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천하 보다 귀한 존재입니다"
 
저나 여러분 모두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사랑을 베풀며 살아야 하는 사명자들입니다.
하나님 뜻 안에서
자신이 천하보다 귀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지 못하면 비극이 됩니다.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여 실망하거나
질투하거나, 삐죽거리거나, 미워하거나, 무례히 행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토론토에서 부흥회를 마치고
토론토에서 목회하고 있는 이면규전도사님 댁에 갔습니다.
이전도사님의 딸 혜민이가 초등학교 3학년인데 영어를 아주 잘하더군오.
아직 기저귀도 떼지 않은 종민이도 영어를 아주 잘했습니다.
역시 영어는 어릴 때 배워야 잘 하는 것 같습니다.
혜민이가 Canada에 간 지 얼마 안되어 더듬거리며 영어를 할 때쯤에
어느 날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데 연필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나는 연필이 없어요"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선생님께 "I am not a pencil." 이라고 했답니다.
연필이 없다는 말을 "나는 연필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남자 선생님이 가만히 듣다가
"Me too." '나도 연필이 아니야' 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혜민이가 지금은 영어를 아주 잘 합니다.
그리고 발음을 이상하게 하는 엄마에게
"엄마, 역시 영어는 어릴 때 배워야 돼…"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숙소에 돌아와 가만히 생각해 보니
혜민이가 실수로 한 말로 인해 제 가슴을 움직이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연필이 아닙니다. 우리는 물질이 아닙니다.
우리는 도구와 같이 버려질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여러분 모두 천하보다 귀한 존재입니다.
깎아서 쓰다가 버려야 하는 연필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향내를 풍기며 살아야 하는,
예수님의 사랑을 증거하며 살아야 하는 천하보다 귀한 존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살면서 힘들고 어렵지만 연필같이, 물건 같이
한번 이 세상에 왔다가 버려지는 존재로 살지 말고
천하보다 귀한 존재로, 예수 향내 풍기며,
예수님의 사랑을 증거하며 사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병원에 근무하는 사람에게서는 소독약 냄새가 납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서는 예수의 향내가 나야 합니다.
힘이 들고 어려워도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고
여러분의 범사의 삶에, 가정에서나 일터에서나 교회에서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이 땅에 사는 우리들 평범하고 버려지는 존재로 두지 않으시고
예수 믿어 구원 받은 천하보다 귀한 존재로 두셨음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어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사람들이 바라보며
'저가 예수님의 제자'라고 할 수 있는 믿음의 승리자들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에서 땀흘려 얻은 소득을 구별하여 이 시간 하나님께 드리려고 합니다.
성도들의 정성을 받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05년  5월  29일 주일낮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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