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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죽음 그 이후 (눅 16: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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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귀한 시간에 하나님 앞에 나온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이 자리에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분들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얼마전에 인기리에 끝난 티이부이 드라마 중에 해신이라는 극이 있습니다. 저는 종종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물론 그 드라마의 주인공인 장보고가 실제로 그런 인물이었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드라마 내용은 굉장히 재미가 있었습니다. 시청율도 시청율이지만 극의 전개나 내용이 너무 좋았습니다.

많은 내용 중에서 가장 감명깊게 본 내용이 드라마의 결말부분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보셔서 잘 알겠지만 주인공격인 장보고 염장 자미부인이 죽고 정화라는 여인만 살아남는 것으로 극이 결론났습니다.물론 장보고 외에 이런 인물에 대한 실존 여부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극 중에서 모든 것이 죽음으로 결론이 나게 됩니다.
먼저 자비부인이 죽음을 맞이하는 내용입니다. 그때 정화라는 여인이 자미부인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부인의 손에 움켜 쥔 부와 권세가 모래알 같은 것임을,그래서 언젠가는 허망하게 빠져나가는 것임을,진작 말씀 드리지 못한 것입니다.이제와 돌이키기엔 위험한 길을 너무 멀리 와버렸습니다.”라고 합니다. 부와 권세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마치 손에 잡았다가 빠져나가는 모래알같은 것임을 지적합니다.결국 자비부인은 자살하게 됩니다.

또 장보고는 염문에게 피살당하고 염문도 결국은 죽임을 맞이하게 됩니다.그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이 그냥 끝납니다. 사랑도 끝이 납니다. 모든 무역활동도 끝니 납니다. 모든 권력과 명예를 중심으로 한 싸움도 끝이 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인터넷에 들어가서 많은 분들의 소감을 적어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 시작이 중요합니다. 인생의 과정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인생을 어떻게 끝내는가 이것이 더욱 중요합니다.죽음 앞에서는 영웅도 사랑도 그냥 끝이 나고 맙니다. 악인도 죽고 선인도 죽고 모두가 죽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부자와 거지의 비유를 하십니다.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돈이 많은 이 부자는 날마다 호화롭게 살았습니다. 날마다 제일 좋은 옷인 자색옷과 고운 베옷을 입었습니다. 그 부자 집 앞에는 나사로라는 이름이 거지가 있었습니다. 헌데를 앓으면서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했습니다.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았습니다. 이땅에서 같은 인생을 살아가지만 완전히 180도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는 여전히 부자와 거지처럼 전혀 다른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이 땅의 삶은 돈을 중심으로하여 완전히 다른 삶이 우리에게 찾아올 수 있습니다.독일 격언에 보면 “가난이 방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이 창문으로나가 버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난하면 사랑도 깨지기 쉽고 가난하면 사람이 추해지거나 구김살이 갈 수 있습니다.가난하면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면서 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즘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면 이땅에서 물질이 없어서 자살하고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부자로 살든지 가난하게 살든지 우리가 먼저 염두할 것은 우리 삶이 이 땅에서 종국이 있습니다.부자와 거지에게 모두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찾아옵니다.
부자도 죽게되었고 가난한 사람도 죽게 되었습니다.
죽음은 부자나 거지에도 공평한 것입니다.부자와 거지 모두 인생의 마지막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라고 합니다.이 세상에 죽음을 피해가거나 이길 사람은 없습니다.이 세상에 죽음을 이길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누구보다도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죽음에서 나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 사실을 먼저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의 권세, 우리의 쾌락,우리의 자유,우리의 삶의 보람 이 모든 것이 차디찬 한줌의 흙 앞에서 가지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건강,우리의 지식,우리의 명예,우리의 모든 권력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저의 삶에서 정말 충격적인 죽음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때인 1979년 10월 그날 아침 저는 충격적인 죽음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때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습니다. 저는 그때에 학생이었지만 그 죽음의 뉴스 앞에서 무엇에 한대 얻어맞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여러분이 기억하겠지만 부하가 쏜 총에 죽은 것입니다.그때 당시에 대통령의 힘은 엄청났습니다. 말 한마디면 안되는 것이 없을 정도로 신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분에 대한 평가가 여러 가지 나지만 저는 그분이 우리나라를 이렇게 경제적으로 한단계 끌어올리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에 학생이었던 저는 대통령이 그렇게 쉽게 죽을 줄 몰랐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대통령도 예외가 없습니다. 권력이 있었도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 것인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재작년 2003년으로 기억이 됩니다. 현대그룹의 정몽헌 회장이 자기의 그룹 옥상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그룹의 회장이 아직 50대의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선택하였습니다.

자살이든 타살이든 우리의 삶에서 죽음은 바로 내 앞에 있습니다. 이 죽음 앞에서 여러분들은 어떤 마음입니까?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솔로몬은 이 죽음 앞에서 인생의 현실을 가슴아파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죽음 앞에서 서자 인생에 대한 간절한 목마름이 생겼습니다.
원래 생명에 대한 애착은 그 앞에 가있는 사람이 더 느끼는 법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햇습니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라고 탄식합니다.
그러면서 죽음 앞에 선 인생을 향해서 이런 조언을 합니다. “내가 돌이켜 해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면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니라”(전9:11)고 합니다. 세상에서 부를 위하여 명예를 위하여 권세를 위하여 빠른 경주마처럼 달렸지만 결국은 인간의 모든 삶이 헛되다라고 고백합니다. 바로 그렇게 열심히 달렸더니 앞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이땅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죽음 그 이후를 알 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죽음을 맞이할 때 소망 속에 맞이합니다. 두려워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죽음 이후에 세계가 있음을 알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성경학자 에드워드 영이란 분은 ‘죽음은 인생의 면류관이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의 사도바울은 고전15:55절 이하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에게 감사하노니”라고 합니다. 죄가 있는 곳에 사망이 있고 율법이 있는 곳에 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죄와 사망과 율법을 완성하시고 이기신 분이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죽음 그 이후에 새로운 소망을 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끝으로 생각합니다.

1. 죽음 이후에 다른 세계가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죽음은 끝이다? 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죽고 나면 내가 어떤 삶을 살지 의식하지 못하는데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그렇게 또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성경은 우리에게 죽음 이후에 분명히 의식을 갖고 영원히 사는 세계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죽음 이후에는 천국과 지옥의 삶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여러분은 천국과 지옥의 실상을 믿습니까?
임마누엘 칸트라는 유명한 철학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있다 없다 하는 시비를 떠나서 이것은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이 세상의 부조리를 볼때마다 불공평을 바라볼 때 마다 있어야 한다. 즉 잘되어야 하는 사람이 잘못되고 잘못되어야 하는 사람이 잘 되는 부조리 때문에 천국과 지옥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땅에서 부자로 살았던 사람이 지옥을 가게 되었습니다.
과연 지옥은 어떤 곳입니까? 성경에서는 지옥이 음부라고도 합니다.
지옥은 고민과 고통의 장소입니다. 성경에서는 지옥이 묘사될때마다 3가지 개념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불꽃”이며 하나는 “어둠”이며 또 하나는 “귀신”들입니다. 지옥은 바로 불이 타는 곳입니다. 요한계시록14;10에 보면“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라고 합니다.
본문에 부자는 나사로의 끝에 물을 찍어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고 호소합니다. 그리고 거기서는 쉬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면서 영원히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지옥은 어둠과 악한 귀신이 권세를 잡고 역사하는 곳입니다. 영원토록 의식을 느끼면서 고통스럽게 보내는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다음에는 죽음 이후에 우리가 가는 장소로 천국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소개한 거지가 간 곳입니다. 천국은 낙원이라고도 성경에 소개됩니다.
그곳은 위로와 기쁨의 장소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 보면 “ 거기는 눈물이 없으며 고통이 없으며 질병이나 죽음이 없고 다시는 상처가 없는 곳”이라고 합니다. 천국은 기쁨을 보면서 안식하고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삶을 사는 곳입니다.

이땅에서의 삶은 100년을 넘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나 천국과 지옥에서 죽음 그 이후의 삶은 영원한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영원한 시간의 운명은 언제 결정됩니까? 지금 결정이 됩니다.

2. 죽음 이후에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그런데 누구는 천국을 가고 누구는 지옥을 가게 됩니까?
부자는 지옥에 갔고 거지는 천국으로 갔습니다. 아마 누구라도 지옥보다는 천국을 가기를 원하십니다. 어떻게 해야 천국이란 곳을 우리는 갈 수 있습니까?

첫째로 회개하여야 합니다.
모든 죄에 대하여 잘못을 시인하고 방향을 돌이키는 것이 회개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죄가 없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기는 술도 안먹고 담배도 안피우고 친구들에게 못된 짓도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사실 저도 이런 학생같았습니다. 술도 안먹고 담배도 안피우고 욕도 한번 해보지 못한 모범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이 아주 의롭다고 믿었습니다.그러나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롬3:10“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의인이 “한 사람”도 없다고 했을까?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계속해서 성경을 읽다가 보니까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했습니다. 의인이 없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이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경에서 가장 문제 삼는 죄가 무엇입니까?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소도 주인을 알고 나귀도 주인을 알고 개도 주인을 압니다. 그러나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자기를 창조하신 이를 모르는 것은 죄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고 거역하는 삶을 살았던 모든 것이 죄인 것입니다.
이제 이 모든 죄를 시인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시인하고 용서를 빌면 용서하여 주십니다.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마음 속에서 죄를 시인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할 자마다 마귀가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결박된 죄로부터 해방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하나님 앞에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내모습 이대로 주님 받아주옵소서 기도하면서 회개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에서 회개를 가로막는 가장 큰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교만하게 태어납니다. 강퍅하고 굳은 마음 속에 우리는 자신을 스스로 높이고 자기의 생각을 스스로 옳다고 믿는 죄성을 우리는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겸손하게 죄를 인정하고 잘못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꾸 남에게 책임을 떠넘깁니다. 책임을 회피하려고 합니다. 전부 너탓이요 부모탓이요 남의 탓이라고 합니다. 자기에게는 책임이 없고 잘못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부자가 지옥에 간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가 지옥에 간 가장 큰 이유는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0절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라고 합니다. 여기 부자는 자기의 형제들에게 죽은 자들이 가면 회개하여 자기가 있는 지옥에 오지 않을 것을 말하였습니다. 바로 자기가 회개하지 않아서 지옥에 간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당신의 삶에 하나님은 회개를 원하십니다.지금 여기에서 하나님 앞에 잘못을 시인하고 마음으로 고백하고 입술로 시인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인생의 방향을 전환하기를 원하십니다.
마틴 루터는 ‘내가 천국에 도달하는 그날, 나는 천국 문에서 하나의 현판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현판에는 ’오직 회개한 자‘라고 쓰여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의 모든 죄를 회개하고 인생을 하나님께로 돌리시고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지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길로 갑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진리의 길로 갑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생명의 길로 갑니다.
예수님이 길이요 예수님이 생명입니다.예수님은 하늘 가는 밝은 길이요 환한 길이십니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제 길로 갔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이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미국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자가 필요합니다. 아무나 비자를 내어주지 않고 자격이 되는 사람만 비자를 줍니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오직 천국 비자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천국비자를 열 수 잇도록 허가하여 주신 분은 오직 에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면 천국에 들어올 수 있는 길을 만들어놓았습니다.
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합니다.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믿음으로 천국 가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마음”에 믿음으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면 됩니다.
어떻게 영접할 수 있습니까?
믿음으로 영접하면 됩니다.
요한복음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합니다. 누가 믿을 수 있습니까? 이것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은 믿습니다.마음으로 믿고 입술로 시인하며 고백하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죄로부터 용서받는 구원의 선물을 주십니다.롬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의 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지금 내 인생에 마지막 날이 온다 할지라도 나의 인생에 천국을 들어갈 수 있는 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감사한 것은 지금 이곳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도움을 힘입으며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초청을 받아나오신 태신자들이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결단이 있기를 원합니다.뒤로 미루시지 말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은 기회가 있습니다. 지금이 구원받을 만한 때요 지금이 은혜받을 만한 때입니다. 이시간 이 자리에서 마음에 예수님을 영접하는 결단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다함께 눈을 감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시간 마음에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이시간 예수님을 영접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저를 따라서 믿음으로 기도하면 예수님을 나의 마음에 구주로 영접하실 수 있습니다.
“주 예수님 저는 죄인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 또 주님으로 내마음에 모셔들이기를 원합니다. 주 예수님 이 시간 저의 마음에 들어와 주십시오. 저의 모든 죄를 십자가 위에서 다 해결하여 주신 하나님 나를 용서하시고 내게도 영생을 주시옵소서,이제 예수님을 저의 구원자로 또 주님으로 고백합니다.이제부터 예수님은 저의 구주가 되시고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가 되셨으며 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저를 구원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영원토록  나와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설교 : 박춘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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