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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는 한 가족 (마 12:4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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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다섯 살 난 [명미]가 이웃집에 자주 놀러갔습니다.
이웃집에서 제일 신기한 것 중 하나는 그 집에는 언제나 기도시간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명미]는 그 시간에 그 집에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 시간이 되면 그 집의 아빠는 검은 가죽으로 된 큰 성경책을 읽고 있었고, 마치 하나님이 아주 가까이 계신 사랑스러운 분인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때로 그 가족은 찬양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그날도 어린 [명미]는 그 기도 시간에 참석했습니다.
그 때 그 집의 엄마가 “[명미]야, 너희 집에서는 기도하지 않니?”라고 물었습니다.
[명미]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예, 하나님은 여기에는 계시면서 우리 집에는 안 계셔요.”라고 대답을 했답니다.

[명미]처럼, 어린 소녀가 자신의 하늘 아버지인 하나님을 만나고 싶을 때면, 이웃집으로 가야 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녀의 가족은, 하나님을 자기 가족의 일원으로 모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작은 나라이면서도, 수많은 전쟁을 겪으면서 지내왔고, 그로 인해서,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특별히, 육이오 사변은 이라는, 우리 같은 민족끼리의 전쟁으로 인해서, 많은 가족이 흩어져 살게 되었고, 지금도 그 쓰라린 고통을 실감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전에 중국의 단동에 갔다가, 파주에 사신다는 노인 장로님 한분을 만난 일이 있습니다.
단동은, 압록강 다리를 건너면, 바로 신의주입니다.
그 장로님은, 신의주 근처가 고향이라서, 그곳을 자주 다니면서, 고향을 바라본다고 합니다.
북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면서, 고향땅을, 눈물을 흘리면서 바라보고, 돌아오곤 한답니다.
여기에서, 신의주가 얼마나 됩니까마는, 중국을 거쳐서 단동까지 기차를 타고, 여러 시간을 달려서, 그곳까지 간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텔레비전의 아침마당에서, 이산가족들이 만나서 기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부둥켜안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족이 얼마나 우리에게 중요한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가족이란, 혈육입니다.
이 혈육의 가정은, 그 어떤 것으로 나눌 수 없는, 끈끈한 것입니다.
혈육의 정 때문에, 명절이면, 길이 밀려 고생이 됨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고향을 찾아갑니다.
혈육의 정이 있기에, 형제들 안에 경사가 있으면, 서로 찾아 위로하기도 하고 축하하기도 합니다.
가족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런대,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가족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인 가족’입니다.
이것은 혈통으로 되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되어진 관계입니다.
요 1:12-13절에서 말씀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한1:12-13) 
하나님 안에서 자녀가 되어 형제, 자매가 되었고, 그리고 영적인 부모 자녀 관계가 된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전도한 교회의 성도들에게, ‘내가 낳았다’라는 표현을 종종 씁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들을 위한 마음을, ‘아비의 마음’ ‘유모의 마음’(어미)으로 표현을 합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형성되면서, 영적인 가족이 된 개념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육신의 가족, 피로 맺어진 가족관계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 영적인 관계도,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그것을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위하여 집을 떠나 말씀을 증거 하시고, 이적과 기사를 행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고향사람들과 예수님의 가족들은,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선지자가 고행에서 환영받지 못한다고 하시면서, 그곳을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갈릴리 여러 지역을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하시는데, 가족들이 예수님의 일을 듣고, 그 일을 못하시도록 만류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가족들은, 예수님께서 집을 떠나, 가족을 버리고, 직업을 버리고, 떠돌이 생활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미쳤다’고 합니다.
그러니, 형제들은, 이것에 대해 못마땅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러한 일로, 예수님의 가족들이, 예수님을 붙잡아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그 때 주님은, 무리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자신의 모친과 형제들이 찾아왔다 함을 듣고서, 말씀하십니다.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그리고, 제자들을 가리키시면서,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하십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하십니다.
곧 영적인 가족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은, 그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의 가족

자! 여러분, 다시 보세요.
혈육의 가족이 있지만, 지금 예수님은, 영적인 가족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는, 혈육의 가족과 달리, 그 관계를 넘어, 영적인 가족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가족’이란 말을 많이 쓰지만, 그 개념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막연히, ‘가족’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족이 무엇인지, 어떠한 삶인지를 보십시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누구를 가족이라고 하십니까?
‘제자들’입니다.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49절)고 하십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이 말씀을 무리들 앞에서 하십니다.
“둘러앉은 자들을 둘러보시며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막3:34)
그리고는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50절)고, 하십니다.

1)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
먼저, 영적인 가족, 예수님의 가족은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제자와 같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서,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항상, 그 마음을 주님께로 향하여, 말씀을, 듣고 보고 묵상하며, 그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가족입니다.
그리고, 주님과 관계 속에서 일하고,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주님의 가족입니다.

세상의 혈연관계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이것을 잃어버리면,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목숨을 버리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마16:26. 막8:36)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의로움입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 먼저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온전히 따르는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 그들이 주님의 가족입니다.

2)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
그리고, 여기서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는 것은, 먼저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그 뜻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내 중심, 내 욕심, 내 계획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고,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고, 그대로 따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시작을 위하여, 세례를 받으러 요단강에 나오십니다.
그때 요한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 로 오시나이까?”(마3:14)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15절)
하나님의 뜻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세례요한은 순종합니다.
자신이 하기에 무거운 일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기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행하고, 사는 것입니다.

미가 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어떤 제물을 가지고 고민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수 천의 양과, 그 기름을 기뻐하겠느냐. 아니면, 너희들의 몸의 열매를, 기뻐하겠느냐?.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6:8)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것,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을 한마디로, ‘말씀대로 행하는 삶이다’라고, 하고 싶습니다.
말씀을 보고, 말씀을 듣고, 깨달은 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삶이 됩니다.
왜요?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마태 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는 자의 심판에 대해서, 엄중히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땅에서 주의 이름으로 말하고, 주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이 아니라면, 무의미하다고 하십니다.
곧 이것은, 영원한 나라에서, 한 가족의 삶을 살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이어서 나오는 말씀이,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니”(24절)라고 하십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그 말씀대로 행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될 때에, 우리는 예수님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가족이십니까?
저는 오늘 여러분이, 예수님의 가족으로 설 수 있고, 서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여기에 대한 확신, 믿음을 가지고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2. 영적인 가족의 중요성.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1)주님께 속한 식구들로서, 하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로서 하나 됨에 대해서 표현합니다.
그것은 은사와 그 역할에 대한 것을 말씀할 때입니다.
오늘 말씀은 가족에 관한 개념입니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이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육신의 가족들은, 마지막에는, 자기의 목적과 자기의 뜻을 행하여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목표와 최종점은 다 다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족들은, 그 뜻과 목적이 같습니다.
오직 하늘나라를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갑니다.
여기서, 하나 됨과 일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2)그리고, 영원한 나라에까지 이르는 관계입니다.
육신의 형제들은, 이 땅에 묻히면 다 잊어버립니다.
후손들도, 시간이 흐르면 잊어버립니다.
우리가 묻히는 자리는, 쓸쓸히 흙과 풀로 덮일 뿐이요,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나가면, 그 자리, 그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족들은,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도 예수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는 금과 같이 깨끗하고, 순결한 마음과 관계 속에서, 한 가족이요 형제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우리가 불완전하여, 비록 예수 안에서 산다고 하지만, 자기 이기심, 고집, 성격으로 살기에, 상하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은, 우리 안에 있는 죄 성과, 잘못된 성품들, 이 모든 것들이 다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기에, 마치 정련된 금과 같이, 깨끗하고 값진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육신의 가족, 혈육의 정보다, 더 소중할 수 있습니다.

3. 영적인 가족을 사랑하라.

영적인 가족은, 존귀하고 더 사랑하고, 아껴야 할 가족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의 가족들로서, 비록 피는 다르지만, 십자가의 보혈로 하나 되었고, 한 하나님, 한 그리스도, 한 성령, 한 믿음 안에서 맺어진 가족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서로 돌아봅시다.

히10:24-2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4-25)
이것이 예수의 가족들의 모습입니다.
어떤 조건으로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요, 자매이기에, 그분 안에서 하는 것입니다.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나와 다를 수도 있고, 인간적으로 보면, 마음이 맞지 않고, 싫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믿음, 한 구원, 한 하나님, 한 성령, 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살아가기에, 우리는 한 가족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묶어 주셨습니다.
이것에 대해 감사합시다.
그리고, 그 말씀과 같이, 서로 사랑하며,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고 축복하는 가족이 될 수 있도록 힘쓰십시다.

그러면서, 우리의 육신의 가족들도, 더 사랑하고, 위하여 기도하고 축복하십시다.
오늘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육신의 가족들이 덜 소중하다고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 가운데서도, 주님은 가족을 생각하십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시는 모습에서 알 수 있습니다.
“보라 네 어머니라.”(요19:27)
육신의 어머니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는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의 가족들을 사랑하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랑할 때, 우리는, 우리의 가족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고, 축복할 수 있습니다.

설교 앞에서 말씀드린 [명미].
하나님께서는, 옆집 친구네만 계시고, 우리 집에는 안 계신 분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을, 항상 모시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모두 한 가족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의 가족입니까?
우리가 믿음 안에서 주를 따르고, 그 뜻대로 살려고 애를 쓴다면, 우리는 주님의 가족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이 영적인 가족의 관계를 맺어 주심에 대하여, 감사하십시다.
그 가족을 사랑하고, 축복하십시다.

그러면서,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가족을 주심에 대하여 감사하면서, 이 가족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서로 돌아보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나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더욱 아름다운 공동체가 될 줄 믿습니다. -아멘-
(박영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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