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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 파일스 (Christ Files) (요 2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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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일 밤마다 수백만의 미국 사람들이 즐겨보는 드라마 중에 Fox TV에서 방영하는 'The X-Files'라는 연속극이 있습니다.  두 사람의 FBI 요원들이 이른바 'X-Files,' 즉 인간의 상식이나 과학의 힘으로 밝혀낼 수 없는 미궁의 사건들을 하나 하나 풀어 나간다는 내용입니다.  X-Files 속에 들어가 있는 대부분의 사건들은 외계인들이나 어떤 돌연변이로 생겨난 괴물들에 의해서 일어나는 기괴한 살인 사건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FBI 요원인 Fox Mudler와 그의 여자 파트너인 의사 Dana Scully는 X-Files 속에 들어가 있는 이상한 사건들이 인간의 직관이나 과학적 추론으로 반드시 밝혀질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비밀의 실타래를 하나 하나 풀어 나갑니다.  도저히 인간의 이성이나 경험으로 규명될 수 없을 것 같은 신비한 사건들이 두 사람의 FBI 요원들에 의하여 결국 해결되고 마는 것을 시청자들은 손에 땀을 쥐며 지켜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모두 X-Files 속에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신비하고 기묘한 일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사실 영어 알파벳의 'X'는 희랍어로 'Χ'(Chi)로 발음이 되는데 바로 그리스도의 첫 글자이기 때문에 X-Files는 말 그대로 '그리스도 파일'이라고 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특히 오늘 봉독한 요한 복음 21장에 보면 너무나 흥미롭고 신비한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생각할 정도로 재미있고 흥분되는 사건들입니다.  이제 오늘 아침에 여러분 모두를 'Χ-Files,' 즉 그리스도 파일의 비밀로 초청합니다.  그리고 이 파일에 저장된 암호들을 하나 하나 밝혀내려고 합니다.

첫 번째 우리가 해결해야 할 '그리스도 파일'은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서도 알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먼저 이 첫 번째 파일의 비밀을 풀기 위하여 이 사건이 일어난 시점과 장소를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본문 1절에 보면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예루살렘에서부터 북쪽으로 약 65마일 정도 떨어진 디베랴 바닷가, 즉 갈릴리 바닷가에서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출현하신 것입니다(14절).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이미 만난 후 고향으로 다시금 돌아가 본래의 생업인 물고기를 잡게 되었을 때 주님께서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들이 고기잡이를 하게 된 것은 다시 평생토록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소문으로 정세가 매우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것을 피하여 일시적으로 한 일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 향후 부활하신 주님의 또 다른 명령을 기다리는 중에 자연스럽게 고기잡는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특히 베드로처럼 다혈질적으로 흥분 잘하는 사람의 경우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무엇을 어떻게 할지 몰라 안절부절하다 보니까 결국 긴장을 푸는 하나의 방법으로 배를 타고 다시 그물을 던지게 된지도 모릅니다. 

2절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모두 7명--즉, 시몬 베드로와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바돌로매?)과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두 명의 제자들--의 제자들이 고기잡는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서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7명의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가 단연 돋보이는 주인공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3절에 보면 베드로가 자기는 물고기 잡으러 가겠다고 하니까 다른 6명의 제자들도 함께 고기잡이하러 밤에 바다에 나갔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그 이튿날 아침에 신선한 생선을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하여 밤에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으려고 했지만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드디어 새벽이 찾아왔을 때 제자들은 바닷가에 예수님께서 서 계셨지만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8절 말씀에 보면 예수님이 서 계신 바닷가와 제자들이 배를 타고 있던 지점 사이는 한 '오십간,' 즉 약 100야드 혹은 91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였습니다.  물론 거리가 다소 멀리 떨어져 있어서 부활하신 주님을 못알아 봤다고 할 수도 있지만 아마도 이들은 너무나 피곤하고 힘이 들어서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실 베드로를 비롯한 7명의 제자들은 십자가와 부활 등 그 동안 예루살렘에 있었던 여러 가지 사건들로 머리가 복잡하고 심신이 크게 지쳐 있었을 것입니다.  분명히 주님이 부활하시긴 했는데 도대체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그리고 장차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든 것이 오리무중에 파묻혀 있는데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물고기조차도 안잡히니 몹시 짜증이 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5절에 보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하고 물으셨지만 제자들은 "없다"고 시큰둥하게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고 할 때, 혹은 1주일 내내 보험 회사의 외판원으로 일을 해도 아무 실적을 올리지 못했다고 가정할 때, 누군가가 "실적이 어떻냐?"고 물을 경우, 대개의 경우 달갑지 않게 시큰둥하게 대답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심신이 지쳐 있고 좌절감과 슬픔, 근심 걱정이 우리를 둘러 덮을 때 비록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 곁에 가까이 계셔도 우리는 주님을 발견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마치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다가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가 퀭한 눈으로 해변을 바라보던 제자들이 자기들에게 다정스럽게 물으시는 주님을 몰라봤던 것처럼, 우리 역시 뜻했던 일들이 잘되지 않고 마음과 몸이 천근만근 무겁고 복잡할 때는 비록 주님께서 옆에 가까이 계시지만 주님을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그리스도 파일의 비밀은 큰 물고기를 153마리나 잡았다는 사실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풀어봐야 할 것입니다.  6절 말씀에 보면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배 오른 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명령하시자 그대로 했습니다.  그러자 얼마나 크고 많은 물고기들이 잡혔던지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였는데 11절 말씀에 보면 시몬 베드로가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려 세어 보니 정확히 153마리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제 잠시 후에 도대체 153마리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비밀을 풀기로 하고 먼저 7절 말씀을 자세히 보아야 하겠습니다.  바로 이렇게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을 때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 즉 사도 요한이 이런 기적을 일으키신 주인공이 주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베드로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아마도 요한은 그 옛날 주님께서 베드로의 배에 타시고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물고기를 잡은 사실을(누가 5: 1-11) 기억했기 때문에 이런 엄청난 기적 역시 주 예수님이 아니라면 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며 베드로에게 저 바닷가에 서 계신 분은 부활하신 주님이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러자 언제나 깊이 생각을 한 후 행동하기보다는 성급하게 일부터 먼저 저질러 놓고 보는 베드로가 "옷을 벗고 있다가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고서는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렸다"(7절)고 했습니다.  여러 주석책들을 읽어보니까 지금 우리 한글 성경에 베드로가 옷을 벗고 있었다는 표현은 희랍어 원어를 결코 정확하게 번역한 것이 아니고 아마 러닝 셔츠라든지 베잠뱅이같은 속옷을 입고 있다가 허리춤에 매달아 놓은 겉옷을 다시 단정하게 걸쳐 입고 바다 속에 뛰어 들었다고 번역하는 것이 더 옳은 해석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왜 갑자기 겉옷을 걸쳐 입고 바다 속에 뛰어 들어 주님이 계신 곳까지 약 90미터를 헤엄쳐 갔을까요?  성경 주석가들의 일치된 견해는 너무나 깜짝 놀란 베드로가 앞 뒤 가리지 않고 예수님에 대한 지극한 존경심과 공손의 표시로 겉옷을 입었고, 또 즉시 주님을 만나야 되겠다는 생각 하나로 배에서 뛰어 내려 헤엄쳐 해변에 계신 주님께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베드로의 옷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을 발견한 베드로가 기쁨반 죄송스러움 반으로 주님을 만나려고 나가는 성미 급한 모습인 것입니다. 

이제 다른 6명의 제자들이 육지에 도착해 보니까 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미 숯불을 피워 놓으시고 그 위에 생선과 떡을 놓고 기다리시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조금 전에 잡은 생선을 당신에게 가져오라고 하자 베드로가 그물 속에 들어가 있는 물고기 숫자를 헤아려 보니 모두 '153마리의 큰 물고기'가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자, 그러면 큰 물고기 153마리는 도저히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어거스틴(Augustine)은 153이라는 숫자가 1에서부터 17까지를 하나 하나 더한 숫자라는 것을 발견하고 이것은 정말 풀기 어려운 '거대한 신비'라고 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시릴(Cyril of Alexandria)이라는 사람은 또한 153을 각각 '이방인의 총숫자'를 상징하는 100,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를 상징하는 50, 그리고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수 3으로 각각 나누어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제롬(Jerome)이라고 하는 사람은 153이라는 숫자가 그 당시 알려져 있었던 모든 물고기 종류의 숫자인데 바로 제자들이 장차 전도해야 할 전세계 사람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제가 볼 때 제롬의 해석이 가장 그럴듯합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사람 낚는 어부와 관련되어 있으므로 온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찢어지지 않는 그물,' 즉 복음의 능력으로 사로잡아 전도해야 할 사명을 일러주신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예수님께서는 아침을 준비하셔서 떡과 생선을 제자들에게 주셨다고 했는데 언제나 주님과 함께 하는 식사 자리에 주님은 우리에게 알려지신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증명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로 주님께서 베드로와 세 차례 대화를 나누셨는데 이 대화의 내용 속에 들어가 있는 비밀을 파헤쳐야 합니다.  제자들과 아침식사를 마치신 주님께서 이제 숯불 앞에서 여러 제자들을 다 물리치시고 오직 베드로를 부르셔서 세 번씩이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때마다 베드로는 "주여, 그렇습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잘 아십니다."하고 세 번씩이나 대답했습니다.  이 세 번째 파일의 비밀은 희랍어 원어 성경으로 풀어야지만 확실하게 그 의미가 전달될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처음 두 번을 물으실 때 희랍어 원어에는 'agapas me'로 되어있고, 베드로는 모두 "네,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하고 대답할 때 희랍어로는 'philo se'로 되어 있습니다.  아가페 사랑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처럼 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이고 필로스 사랑은 친구간의 사랑, 즉 우정과 신의를 말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아가페 사랑이 필로스 사랑보다 훨씬 더 깊고 넓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두 번씩이나 "네가 나를 절대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완벽하게 사랑할 수 있느냐?"고 물으실 때 베드로는 아직까지 눈치를 제대로 못채고 "제가 주님을 친구처럼 우정을 지킬 것이라는 사실을 주님이 아십니다"하고 완곡하게 대답합니다.  이제 이런 베드로의 마음을 대충 짐작하신 예수님께서 17절에 보면 마지막 세 번째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시는데 베드로에게 처음 두 번 물었을 때와는 달리 베드로가 썼던 용어 'phileis me' 하고 물으십니다.  바로 이 세 번째 질문을 받았을 때 17절 말씀에 보면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하고 자신의 옛날 비굴했던 모습이 적나라하게 떠올라 근심하게 됩니다.  특히 생선을 굽는 숯불은 예전에 베드로가 비겁하게 주님을 버리던 날 대제사장 집에서 쬐었던 불을 생각나게 했을 것입니다(요한 18: 25).  다시 말해 "다른 모든 제자들이 당신을 버리고 도망친다고 할지라도 저만큼은 절대로 당신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마태 26: 33)하고 호언장담했던 베드로의 실수를 주님께서 다시 생각나게 하시고 이제 그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는 점에서 세 번씩이나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는데 이제 세 번째 물으실 때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면서 과거의 연약했던 자신의 모습이 생각났던 것입니다.  어떤 점에서 예수님께서 세 번씩이나 "베드로야,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던 것은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던 것과 묘한 비교가 되고 있습니다.  물론 베드로는 세 번째 질문을 받았을 때에도 "네, 주님 제가 비록 무조건적으로 절대적으로 주님을 사랑하지는 못할지라도 최소한 친구의 우정이나 신의는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하는 뜻으로 'philo se' 하고 대답합니다.  문제는 처음 두 번의 대답과는 달리 이 세 번째 대답은 죽을 때까지 주님 뒤를 따라 가겠다고 호언장담했다가 바로 그 다음날 모른다고 매정하게 부인했던 자신이 생각났고,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지만 정작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사람인가를 주님께서 다 아신다고 보다 겸손하게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순수한 우정과 참사랑을 비로소 확인하시고 "내 어린양을 먹이라"(Feed my lambs, 15절), "내 양을 치라"(Tend my sheep, 16절), "내 양을 먹이라"(Feed my sheep, 17절)고 말씀하시면서 베드로에게 목자의 귀중한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명령을 따라 베드로는 장차 주님의 많은 어린양들을 치고 먹여야 할 귀중한 사명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 대화에서 풀어야 할 또 다른 하나의 파일은 베드로의 운명과 관련된 18-19절에 나오는 주님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젊어서는 스스로 허리띠를 띠고 자기 원하는 곳으로 자유롭게 다녔지만 늙어서는 두 팔을 벌리고 자신이 원치 않는 곳으로 데려가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이 말씀이--특히 두 팔을 벌린다는 표현에서--장차 베드로가 제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할 것을 암시하는 말씀으로 해석합니다.  과연 베드로는 주님께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겸손히 고백했던 것처럼 주 예수님을 위하여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순교 당하기까지 주님 위한 사랑과 우정을 지켜 냈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베드로와 세 번씩이나 대화를 나누신 장면의 주제는 "용서"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과거에 당신을 부인하고 배신한 것을 용서하여 주시고 다시 한번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과연 베드로는 옛날의 배은망덕했던 배신자가 아니라 주님의 어린양들을 먹이고 치는 목자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결국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히는 영광스러운 최후를 맞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에 나타나 있는 '그리스도 파일'의 비밀 코드를 모두 풀어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은 부활하신 주님을 마음 속 깊이 모시고 하나님께서 주신 전세계의 모든 '사람 물고기'들을 찢어지지 않는 그물로 잡아 올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방글라데시의 한 가난한 농촌 여자가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어떤 기독교인 가정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 여자는 그 집에 도착한 이튿날 아침 부엌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며 "저기 큰집에는 누가 삽니까?"하고 집 여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집말입니까?"  "저기 있는 저 집 말입니다."  "아, 저것은 집이 아니라 자동차를 넣어두는 가라지랍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여자는 순간 당황하면서 "아니, 저렇게 크고 좋은 집에 자동차를 넣어 두다니요."  방글라데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고통받는 많은 불쌍한 영혼들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잡은 153마리의 물고기가 전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상징적으로 말한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고귀한 사명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우리 주변은 물론이고 온 세상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온 세상에 너무나 많습니다.  부활절 후 오순절 성령강림을 기다리는 우리들은 부활의 주님을 깊이 체험하고 이제는 눈을 돌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많은 불쌍한 영혼들에게 힘써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아멘. (김 흥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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