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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 눈을 밝히사 (엡 1: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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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행복지수’ 라는 말을 들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물가지수’ ‘주가지수’ ‘지능지수’이런 지수들은 많이 들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행복지수라는 말은 많이 들어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행복지수’라는 것은 실제로 그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 요건을 갖추었냐 하는 것을 따지는 것이 아니고, 실제 그 사람이 어느 정도 행복을 느끼면서 사는 가!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에는 저 사람은 행복하겠다. 우리도 언제 저 사람들과 같이 살아 보겠나? 그렇게 생각되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사람도 실제로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는 저렇게 살면 무엇해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그렇게 불행하게 보이는데도 본인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마냥 행복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행복지수가 높은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있든지, 아무리 지위가 높든지 다른 사람이 아무리 부러워하든지 말든지 관계없이 그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요 불행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돈을 많이 벌어서 행복하게 되려면 여러분! 죽을 때까지 행복해 질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더 부자가 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간 당장에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는 비밀이 있습니다. 이 비밀을 진리라고 합니다.

하나의 이미 기정사실화된 원리인데 아는 사람이 별로 없고 특별한 사람만 아는 것을 진리하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이 진리를 터득해서 오늘 이 시간부터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행복하게 되려는 데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물질이 아니고, 명예가 아니고, 권력이 아니고 보는 눈과 아는 지식이 필요합니다. 우리 집 마당에 커다란 금덩어리 하나가 있습니다. 아무리 큰 금덩어리가 있다 하더라도 금덩어리를 보는 눈이 없으면 그것은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또 눈이 있어 금덩어리를 보았다 하더라도 금덩어리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엄청난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눈이 있어 보기는 보지만 이것이 얼마나 귀하다는 지식이 없으므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만물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여러분들이 만약에 시각장애자가 되어 두 눈 다 못 본다고 생각을 해 보세요. 얼마나 끔찍하겠습니까?

얼마 전에 장애인의 날이었는데 어떤 장애인이 정상인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지금 밖에 바람이 부는데 오늘 부는 바람은 무슨 색깔입니까? 한 번도 세상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바람에도 색깔이 있는 줄 알았나 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무지개를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무지개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것입니다. 어느 새벽에 하늘을 쳐다봅니다. 반짝 이는 별이 보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달님은 어느 새 보름달이 되더니 그믐달이 되고, 초생 달이 되고 우리 집에서 창문을 내다보면 앞에 산이 보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기에는 벚꽃이 한창이었고 진달래꽃이 활짝 핀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집 베란다에는 아름다운 화초가 피어나는데 너무너무 아름다워서 비디오카메라에 담아 놓았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런데 눈이 없으면 아름다운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눈으로 보아도 하나님의 창조솜씨가 오묘하구나! 하는 지식이 없으면 모든 만물이 아름답지가 않습니다.

첫째는 눈이 필요하고

둘째는 지식이 필요합니다.

얼마 전에 강희련권사님의 간증문을 읽어 보았습니다. 오른쪽 눈이 자꾸 시력이 잃어져 가는 것 같아 병원에 갔습니다. 병원에서는 그대로 두면 시력을 잃고 수술을 해도 실패할 확률이 많다. 그래도 수술하겠느냐? 그만 두겠느냐? 그래서 시력을 잃을까봐 겁이 나서 수술을 하지 못하고 시기를 놓쳤서 오른쪽 눈이 실명이 되었습니다. 왼쪽 눈 하나 가지고 보는데 시력이 좋지를 않습니다.

4m 밖에 있는 것은 잘 구별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왼쪽 눈이 오른쪽 눈과 같이 이상해 졌습니다. 그래서 또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 보았습니다. 이대로 놔두면 왼쪽 눈마저 시력을 잃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그대로 실명을 하게 되고 수술을 해도 잘되면 모르지만 잘못되면 양쪽 눈 다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형편에 놓여 있었습니다. 간증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아! 이제 내가 장님이 되는구나! 이 아름다운 세상을 다시는 보지 못하는구나!" 정말 그 때 이 세상을 본 것은 참으로 아름답게 보였을 것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세상을 다시는 보지 못하고 영원한 암흑 속으로 들어가다니..... 하나님께 기도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고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적으로 수술하지 않고 그 시력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한쪽 눈만 가지고도 이 세상을 보는 것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런데 우리들은 멀쩡한 두 눈을 가지고도 이 세상을 보면서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왜요? 하나님의 창조솜씨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오늘 여러분 옆에 계신 분들을 한번 보세요. 하나님께서 창조를 하셨습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헬렌켈러 라고 하는 장애인은 "하나님! 단 한번만이라도 아름다운 세상을 보았으면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우리들은 아름다운 세상을 좋은 두 눈을 가지고 보면서도 감탄사가 나오지를 아니합니다. 사람은 육신의 눈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도 있습니다. 육신의 눈보다도 마음의 눈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 교회 홈페이지에 나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 눈 하나 없는 엄마 *

어는 시골에서 소년이 자랐습니다. 그 소년의 어머니는 눈 하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놀렸습니다. "애꾸눈 자식, 눈 하나 없는 병신자식" 그래서 그는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그는 불행 했습니다. 왜? 우리 어머니는 눈 하나 없는 병신일까? 그래서 어머니를 수치스럽게 생각을 했습니다. 학부형들의 모임이 있을 때라든지 운동회 때라든지 엄마가 오면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창피하다고! 이 소년은 열심히 공부 했습니다. 왜냐하면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 가서 우리 엄마 없는데서 잘살아 보려고! 열심히 공부하여 서울에 있는 명문대학에 진학 했습니다. 졸업을 하고 좋은 곳에 취직이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아가씨와 결혼을 했습니다. 좋은 집에서 아들, 딸 낳고 잘살아 가고 있었습니다.

아가씨에게는 어머니는 돌아 가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엄마는 아들이 너무 보고 싶고 며느리가 너무 보고 싶고 손자 손녀들이 너무 보고 싶어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서 서울에 있는 아들의 집을 찾았습니다. 아들의 집에 도착하여 문을 두드렸습니다. 며느리가 나가 보았습니다. 어떤 시골 할머니가 이 집이 내 아들 집이다. 하고 들어오는데 아무리 나가라고 해도 막무가내 입니다. 애들은 엄마 왜 거지 할머니가 왔어 라고 묻습니다.

퇴근시간이 되어 아들이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얼마나 반가운 엄마인데 아들이 엄마 보고 소리를 칩니다. "당신 누구요?" "이 집은 내 아들 집인데" "당신 같은 사람 저는 모릅니다." 그렇게 해서 엄마를 쫒아 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이 어머니는 병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시골 학교에서 동창회가 있다고 초청장이 왔습니다. 이번 동창회는 꼭 자네가 와야 돼! 그래서 동창회 갔다가 엄마 집에 들렀더니 엄마 손에 쪽지 하나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아들아! 내가 서울에 가서 너희가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고 참 마음이 기뻤단다. 이제 내가 병이 들어서 언제 죽을지 모르겠는데 누가 네가 죽거든 이 쪽지를 내 아들에게 전해 주시오. 그런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아들아! 내가 눈이 하나 없다고 그 동안 참 창피하고 원망스러웠지 그런데 아들아 네가 어릴 때 사고로 한쪽 눈을 잃게 되었단다. 네 아들이 한쪽 눈으로 일평생을 살아간다고 생각을 하니 너무나도 가슴이 아파서 내 눈을 하나 빼어서 너의 눈에다가 이식 수술을 했단다.

그래서 내가 한쪽 눈이 없단다. 그 편지를 읽는 순간 아들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제까지 창피하다고 원망하던 어머니가 너무 너무 위대한 어머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통곡을 했습니다. 이런 불효자식이 어디 있나... 그 때에는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이야기 입니다. 

우리들에게는 마음의 눈 말고 더 중요한 눈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의 눈입니다. 우리들이 영의 눈이 어두우면 마음의 눈이 어두워서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을 보지 못한 거와 같이 하나님의 위대한사랑, 예수님의 위대하고 놀라운 희생 이것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보지 못하니 감동이 없습니다. 감사가 없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을 보겠습니다. 15-23절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대한 기도입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에게는 영의 눈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영의 눈이 어둡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영의 눈이 어두운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사"라고 기도했습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으면 우리 마음의 눈이 밝아집니다. 여기에서 마음의 눈이라는 것은 영안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의 눈이 어두워서 그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혜와 계시의 영(성령)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을 보는 눈을 주셨습니다.

성령은 이미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계십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성령이 와서 아무리 거하고 계셔도 성령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주사

첫째는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둘째는 마음눈(영의 눈)을 밝히시고

셋째는 하나님의 능력(힘)입니다. 그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이것이 바울 사도의 기도입니다.

먼저 우리가 마음의 눈(영안)이 어둡기 때문에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사 우리의 영안을 밝혀놓으면 하나님을 보게 되고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우리 위해서 희생하신 분이십니다. 제 2위 되시는 성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나를 살리시기 위해서 눈 하나를 뽑아 주신 것이 아닙니다. 팔 하나를 짤 라 주신 것도 아닙니다. 온 몸을 십자가위에 못 박아서 그 처절한 고통을 감당하시고 온 몸과, 피와, 생명을 우리들에게 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이 눈 하나 없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눈시울이 붉어져 눈물을 닦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위해서 눈 하나가 아닙니다. 온 몸을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에게 주셨는데 왜 감동이 없습니까? 아직도 우리의 영의 눈이 밝지를 못해서 그렇습니다. 아직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우리의 영이 밝아지고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지극히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세 번역 성경에는 극진히 사랑했다고 했습니다. 어느 정도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

이 사실을 우리들이 제대로 알면 가슴이 뭉클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눈에서는 감동의 눈물, 감사의 눈물이 흐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아서 하나님을 제대로 알면 우리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아들은 어머니가 눈 하나 없는 것 때문에 평생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희대한 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다는 감동적인 아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라는 것을 제대로 아시기를 기도합시다. 바울 사도가 에베소교인들을 위해서 기도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서 자식을 위해서 네 이웃을 위해서 하나님을 바로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둘째로는 이렇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었인지,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부르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한 너무나도 큰 소망이 있습니다.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지를 알아야합니다. 이 하늘나라 기업을 우리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하늘나라 기업은 굉장히 풍성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늘나라에 가서만 기업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도 그 기업을 누리면서 살아 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하나님의 능력(힘)입니다. 그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하나님의 힘(능력)은 대단한 것입니다.

여러해 전에 김학수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이 분이 유행성 출혈열에 걸렸습니다. 성남병원에 입원해 계셨는데 통증이 몹시 심했나 봅니다. 주일날인데 심방을 해 달라고 해서 가 보았습니다.

제가 갔을 때는 얼마나 아팠던지 침대에 꿇어앉아서 주먹을 쥐고 있었습니다. 간호사들이 진통제를 놓아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너무 가슴이 아파서 머리에 손을 얹고 고통스럽고 아픈 것을 없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더니 그 자리에서 낳아 버렸습니다. 성남병원에서는 치료를 하지 못하니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서울에 있는 한일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해 보았더니 병이 다 나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귀신이 들려서 온 식구들이 붙들어도 감당하지 못하는 자를 "꿇어 앉아!" 라고 했더니 순한 양 같이 꿇어앉았습니다. "네가 무어냐?" 고 물었더니 " 마귀"라고 했습니다. 찬송을 부르고 예배를 드리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단아 물러가라!" 고 했더니 그 즉시 귀신이 나가 버렸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입니다.

얼마 전에 조성식집사님의 간증문을 읽어 보았습니다. 조카가 육군병원에서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있는데 아무리 보아도 살아날 가망이 없습니다. 우리가 심방을 갔을 때 간호사가 빨리 가라고 했습니다. 소용없는 짓 하지마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손을 얹고 "하나님!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는 기적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 살려 주십시요."라고 기도 했습니다.

그 후로 기적적으로 삼일 만에 살아났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여기에만 있습니까? 제가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머리가 아주 나빴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공부 잘하게 해 주십시요. 머리는 좋게 해주시지 않고 지혜를 주셨습니다. 지금도 머리는 나쁩니다. 나쁜 머리  가지고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제가 학교 다닐 때 일등을 한 적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달라고  기도는 잘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자 되게 해 달라고....
많은 사람들이 병이 낫게 해 달라고....

"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꾸짖지 아니하시고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

지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데, 지식을 위해서는 수많은 돈을 들이고 많은 노력을 하면서 지식보다도 더 귀한 지혜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기도 해 보세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역사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능력은 그 정도의 능력이 아닙니다. 여러분! 성령충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성령충만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충만,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 너무나도 많아서 차고 넘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나오는 충만은 예수그리스도안에 있는 능력이 내게도 임하여 그 능력이 충만해 진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무엇이냐? 예수님께서 죽으셨는데 하나님의 능력이 죽으신 예수님께 임하여 그를 살렸습니다. 그가 부활했습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 있는 모든 이름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앞에 복종케 하시고 그 만물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는 자의 충만이니라. 하나님의 능력은 죽었던 예수를 살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고 이 세상과 내세의 모든 것들이 그의 앞에 복종하게 하는 이 놀라운 능력을 예수님에게 주셨는데 예수님께서 그 능력을 교회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건강에 대하여 관심이 많이 있지요?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능력을 우리에게도 주신다고 했습니다. 비록 우리의 몸이 병으로 인하여 죽는다 하더라도 우리 주님 심판주로 오실 때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신 그 능력이 교회를 통하여 내게 들어와 있다가 주님 재림하실 때 무덤이 열리고 무덤 안에 있던 내 몸이 부활해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이것보다도 더 큰 능력이 어디 있습니까? 이 능력이 내 안에 와 계십니다. 우리의 영안이 밝아서 보게 해 주시고 또 이 능력에 대한 지식이 있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어 우리가 참으로  이 세상에서 불행하게 사는 것이 아니고 내가 이룬 놀라운 사랑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고 이 놀라운 능력이 내 안에 있구나 하는 것을 영안으로 보고 지식으로 알고 누리면서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행복할 때 잘 모릅니다. 행복이 지나가고 난 다음에야 그때가 참 행복했구나? 알 수 있습니다.

두 눈 다 있을 때에는 두 눈 때문에 행복하다는 것을 잘 모릅니다. 실명위기에 당해보아야 두 눈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다는 것을 압니다.

건강할 때는 행복이라는 것을 잘 모릅니다. 건강을 잃어보아야 건강이 얼마나 큰 행복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 밥맛이 있는 것 그것을 행복이라고 잘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그럽니다. 나는 밥맛이 너무 있어서 다이어트가 안돼 속상해서 죽겠어! 밥맛 한번 없어 보세요. 밥맛 주신 하나님이 얼마나 감사하고 그때가 얼마나 행복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미련하게 행복할 때 행복인줄 모르고 행복을 다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그 때가 행복했는데....... 바로 지금이 우리가 행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말로 할수 없는 사랑을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 말할 수 없는 힘과 능력을 우리에게 주시고 그 능력 안에서, 충만 가운데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중에 지옥 가서 그 때가 좋았는데 그러지 마시고 지금 이 축복, 지금 이 행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하늘나라에만 가서 기업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하늘의 놀라운 기업의 풍성을 누리면서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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