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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의 보혈을 바라보며 (막 7: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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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에 커다란 기대를 가지고 온 사람이라면 한번쯤 좌절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신학교란 천국 다음으로 아름다운 곳, 사람들은 사랑이 많고, 헌신적이며, 서로 배려하는 곳이요, 나를 무척이나 아껴 줄 것으로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러나 정작 신학교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이러한 실망을 어떻게 이겨야 할지 고민입니다. 우선 지나치게 세속적입니다. 이 학교의 젊은이들, 특히나 학부 어린 학생들은 세속에 대한 호기심이 많습니다. 신학생들간의 관계가 세상사람들보다 나은 것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기숙사에서 만나고 수업을 하면서 몇 년을 같이 보내다 보면 많은 사건이 발생하고 기대를 충족하기보다는 실망이 더 많습니다. 많은 일들속에 우리가 이웃들을 살펴보면 욕심과 이기심, 음란과 방탕, 시샘과 탐욕이 담겨 있기에 우리들의 의욕을 상실하게 합니다. 더구나 신학을 하기로 다짐한 사람들이 더욱 더 삶의 상처를 가질수도 있기에 충분한 치료가 되기 전까지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러한 신학생들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와중에도 실제로는 본인도 만만치 않은데도 나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상처와 갈등 속에서 오히려 훌륭한 신앙인으로, 전도사로 뛰어난 능력을 보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역할과 자신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구분하지 못하고 태연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비단 오늘날 신학교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러한 궤리를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바리새인들을 대면하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마가복음 7장에서는 누가 참 신앙인인가하는 질문이 숨겨져 있습니다. 유대인들과 예수님의 견해가 서로 다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서려면 정결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한 정결인지에 대하여는 서로가 견해가 다릅니다. 구약 시대부터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하시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제사입니다. 제사를 통하여 우리 안에 있는 악이 사라집니다. 개인적인 악과 공동체의 악이 사라집니다. 제사장은 우리 가운데 악이 남아 있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사명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성전에 가서 제사를 드려야만 더러움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토라가 나타나고 성전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점차로 토라에 대한 순종을 통하여 정결의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성전에 가지 않고 정결을 실천합니다. 그리하여 내면적인 율법의 실천이 성전을 대신합니다. 그러한 율법을 실천하면서 유대인들은 많은 관습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 발견한 몇 가지만 살펴보아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습니다.

유대인들은 목숨을 걸고 정결을 행합니다. 완벽한 정결을 위해 세세한 율법을 만듭니다. 그들은 음식을 먹을 때는 반드시 손을 씻으라고 합니다. 손의 더러운 것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바깥에서 돌아오면 물을 뿌림으로 더러운 것들을 제거합니다. 그밖에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이 이 정결을 행하지 않는다고 비난합니다. 그들의 문제는 형식을 강조하다가 실제로는 정신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어디에서 출발하였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아십니다. 손을 깨끗이 씻는 것 자체는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을 강조하면서 실제로 더러운 것을 무시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정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무시하고, 덜 중요한 것에 목숨을 거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합니까?

본문에서는 단순하게 말하면 들어가는 것이 더럽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오는 것이 더럽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관심은 무엇이 들어가는 가입니다. 깨끗한 것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손을 씻고, 그릇을 씻습니다. 그러나 정작 안에서 바깥으로 나오는 것은 깨끗케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생각은 악한 것은 사실 안에서 바깥으로 나온다고 봅니다. 안에서 나오는 것들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교만과 광패(어리석음)라고 말합니다. 사실 우리 안에서 나오는 것이 이러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선한 것들도 나옵니다. 그러한 악한 것들이 흘러 나온다는 것은 악한 것을 거르지 않고 내보내는 우리의 인격이 문제입니다. 인격이 그대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악한 일을 하고 나면 놀라지 마십시오. 내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뿐입니다. 문제는 악의 근원이 되는 나의 바탕인 인격을 고치지 않고 겉모양만 바꾸고 청소 한번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악은 흘러나오는데 그것이 문제라고 느끼지 않고 단지 종교적인 정결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들의 문제입니다.

유대인들은 정결의 문제를 외면적인 깨끗함을 지키는데 있었다고 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남들에게 보여지는 정결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 남들이 어렵다는 신학교에 왔습니다. 돈이 부족한 가운데 가족을 버리고, 돈버는 일을 하지 않고 신학교를 왔습니다. 성경을 많아 공부하였습니다. 새벽기도도 합니다. 기도생활을 합니다. 성경을 가르치고 설교를 합니다. 유능한 전도사라고, 예수님의 진정한 종이라고 사람들이 평가를 합니다. 그것이 과연 나의 본 모습입니까? 감추어진 곳, 나만이 아는 그곳을 정화시키지 않고 달콤한 인기와 듣기 좋은 말만 들으려는 것은 아닙니까? 과연 문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가르치는 일에 그렇게 익숙한 우리들안에 문제가 무엇입니까? 진리를 누구보다 잘 가르칠 수 있는데 막상 우리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 진리에 의하여 우리의 내면을 살펴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진리는 교회에서만 선포되어서는 안됩니다. 진리는 강의실에서 공부할 때만 드러나서는 안됩니다. 내가 살아가는 현장에서 비추어진 모습을 인정해야 합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과의 대화속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녀들과의 대화속에, 기숙사 방을 함께 쓰는 학우에게 비쳐진 모습, 익숙한 대로 하기만 하면 남에게 상처주는 나의 모습 그것이야 말로 내가 다루어야 할 나의 본 모습인 것입니다. 어쩌다가 실수하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 깊숙이 잠자고 있는 악의 뿌리에서 그러한 결과가 드러날 뿐입니다. 참된 정결을 위하여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1. 현실에서 드러나는 나의 모습을 숨기지 말고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내안에서 끊입없이 흘러 나오는 악을 발견하여야 합니다. 배우기는 많이 배우는데 변화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안에서 흘러 나오는 악을 내가 처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선은 정직하게 자신을 살펴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귀절 외우고, 시험준비하느라고 우리 안에서 나오는 악한 모습을 놓치면 안됩니다. 내안은 악으로 가득 차는데 나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바깥만 쌓아 올리면 안됩니다. 우리가 의인되었지만 그것은 신앙의 시작일 뿐입니다. 여전히 우리들은 악을 품어내는 존재입니다.

여전히 우리들은 죄를 쏟아내는 존재들임을 인정하고 그 악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께서는 인간이 어떤 악들을 품어내는지 적나라하게 표현하십니다. 바로 그것이 나의 모습입니다. 내 인격에 새겨진 악의 뿌리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죄악된 이 시대의 음란한 문화를 즐기는 것, 남의 것을 소유하는 도적질, 남을 미워하는 살인, 음란한 마음으로 이성을 바라보는 간음, 탐욕과 악독과 속임수, 음탕과 흘기는 눈, 남 잘되는 것 보지 못하고, 훼방하며,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교만, 광패하는 것 즉 어리석게 행하는 것 등을 의미합니다. 기숙사 안에서 교실 안에서 교회안에서 끊임없이 나를 깨닫게 만드는 것들을 하나님께 가져와야 합니다.

2. 공동체를 쉽게 평가하지 마십시오. 공동체는 단지 무책임하게 비판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속에 속한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공동체는 바로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임을 알아야 합니다. 공동체는 바로 나의 복의 근원입니다. 나를 위하여 공동체를 주셨습니다. 나의 공동체가 없다면 내 문제를 들여다 볼 거울이 없는 것입니다. 특히나 나의 변화를 위하여 준비하신 대전신학교를 사랑하여야 합니다. 죄인의 소굴일지라도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죄인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없다면 그것이 곧 지옥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천국입니다. 우리들은 죄인으로 모였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합니다. 옆 친구의 죄악의 모습을 보면 인간은 당연한 것이구나 하고 받아 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죄인인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다시금 회개하고 자신을 정결케 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성결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면서 날마다 성결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 친구의 악한 모습을 발견하면 그것이 바로 나의 모습이구나 하고 생각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형제를 보내 주신 것은 나의 연약함과 나의 죄악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나의 동료가 없다면 나는 나의 연약함을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친구들의 죄를 보고 참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형제의 죄악을 견디거나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직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내 죄의 참혹함을 바라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예수 안에서 나의 죄의 심각함을 경험한 사람만이 나의 형제의 죄를 견딜 수 있습니다. 형제 안에서 그러한 죄를 발견한다면 바로 우리 주님의 십자가 앞으로 가져가야 합니다. 그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주변의 학우가 그러한 죄악을 보인다면 바로 그것이 내가 기도해야 할 나의 분량입니다. 비판하기만 하고 나는 문제없는 것처럼 생각하지 마십시요. 이 공동체는 바로 여러분을 위하여 하나님이 보내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3. 우리가 함께 주님의 보혈아래 나아와서 우리의 죄악을 씻어야 합니다.
예수의 피는 우리를 구원할 때도 유효하지만 여전히 죄의 힘에 빠져 있는 우리의 악함을 정화시키는 효력이 있습니다. 그 정함과 성결이야말로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날마다 성결을 추구할 때만이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에 이르고 능력을 얻을 것입니다. 우리는 단번에 죄로부터 생명으로 옮겨졌지만, 여전히 죄가 남아 있습니다. 죄가 우리 곁에 있으면 하나님과 동행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신앙인이라는 것은 아무런 죄악이 없는 것이 아니라,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 죄를 보혈의 능력아래 씻는 것입니다. 나와 우리 안에 악이 남아 있다고 해서 놀라지 마십시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십자가 아래에 그것을 가져와 정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의인이 되기 위하여 죄를 씻는 것이 아닙니다. 의인이지만 아직도 변화되지 않은 나를 변화시켜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하여 성결을 향한 여정이 계속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외면적인 정결만이 아니라, 진정 우리 내면 깊숙한 곳에서 흘러 나오는 죄악을 주님께 가져오십시오. 나 자신이 성결케 되고 우리의 공동체가 성결케 되기 위하여 이 아침 우리가 다시금 주님의 보혈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배정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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