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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드보라의 노래 (삿 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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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링컨이 노예해방을 위하여 남북전쟁을 일으킨 후에 전쟁이 너무 길어지자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선한 뜻을 위한 거룩한 전쟁이었지만, 동족끼리의 싸움이 길어지자 그만 낙심이 되어 버렸다고 합니다. 하루는 참모들과 우울한 분위기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참모가운데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각하 이럴때, 하나님이 우리 편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말을 듣자 링컨은 고개를 설래설래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닐세, 문제는 '우리가 지금 하나님 편에 서 있는가' 하는 것이라네. 우리가 하나님편이라면 우리는 반드시 이길테니까. 나는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 편에 서 있는지 그것을 걱정하고 있네.

내가 하나님 편에 서는 것, 이것이 바로 모든 문제 해결의 핵심입니다. 모든 문제가 풀수없이 얽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를 잘 정리해보면 하나님과 사탄의 싸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편에 서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편에 서 있는지를 돌아 보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입니다. 어떤 문제가 생길때. 이러한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면, 우리는 죄의 노예가 됩니다. 사람을 미워하고, 흥분하고, 싸우고, 언성을 높이고, 이길려고 노력하다가 결국은 이긴 자나 진자나 다 상처를 받아서, 지쳐 버립니다. 이긴 자나 진자나 다 하나님의 편에 서지 못하고 사람을 멀리 하든지, 삶의 의욕을 상실하거나 할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겪는 어려움들안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으며,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설 수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속에서 우리는 영적인 싸움을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이 본문가운데 몇 가지 질문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야빈과 시스라같은 악한 사람들을 왜 보내 주셨을까? 가부장적인 세계 속에서 어떻게 바락은 혼자 전쟁에 나가지 않고 드보라의 말을 들었을까? 야엘같은 연약한 여인이 어떻게 당대의 영웅인 시스라를 죽일 수 있었을까? 이런 질문들 가운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우리가 위기를 당할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5:12 "깰지어다, 깰지어다 드보라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너는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 군대의 압제하 20년을 지내고나서 이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 노래를 부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진리를 깨달았습니까?

첫째로, 드보라의 노래를 부르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나온다는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물론 이 고난이 우리들의 잘못에 대한 징벌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우리를 훈련시키기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사기 4장 1절에 보니 "에훗의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야빈과 시스라를 통해 이스라엘이 고통받게 한 원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죄의 사슬을 끊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없이 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징벌인 동시에 그들을 믿음으로 인도하려는 훈련입니다. 가나안 군대에 비해 이스라엘은 무기도 보잘것없었고, 군인들도 부족했습니다. 그들은 이십년동안 그들의 종살이를 했습니다. 추수한 곡식을 빼앗고, 아녀자를 잡아다가 농락하며 참을 수 없는 단계에까지 다달았습니다. 이 고통을 참다못해 마침내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에야, 그것이 어쩔수 없는 부르짖음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던 것입니다.

마 10:29에 보면 참새 한마리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안에서 이루어지고 잇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들가운데 하나님의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시 139에 보면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전지하심에 대하여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주께서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나이다." 하나님은 세계 우주의 모든 움직임뿐 아니라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알고 세십니다. 그일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통받고, 내안에 어떠한 원망이 있는지도 아십니다. 나의 깊은 좌절도 아십니다. 다만 나보다 더 깊은 생각을 하시고 선한 길을 예비해 놓으셨는데 우리가 알지 못할 뿐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없을때 우리는 당황합니다. 하필이면 나에게 이러한 일이 닥칠까,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불행할까 하고 탓합니다. 억세게 재수 없다고 불평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의 눈을 떠야 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어떠한 일도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때로는 우리를 훈련하기 위한 것이고, 때로는 마성적인 죄악에 갇혀있는 우리들을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고통소리를 들으시고 사사를 보내셔서 승리하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들의 고통소리를 들으시고 예기치 못한 선한 길을 예비해 놓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려움이 왔다면 그것은 다시 한번 우리들의 믿음에 위기가 왔다는 신호입니다. 다시 한번 기도해야 할 시기인 것입니다. 성급하게 극단적으로 일을 해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돌발적으로 일을 해결하지 않으십니다. 분위기를 만드시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러한 하나님의 인도를 기대하면서 기도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은 길을 보여 주시고 인도하십니다.

둘째로, 드보라의 노래를 부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싸움의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총칼을 가지고는 이 전쟁에 승리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드보라를 통해서 영적인 인도를 하시고, 바락을 통해서 앞에 나가 싸우게 하십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싸움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5:13,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용사를 치시려고 강림하셨도다. 5:20, 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그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도다." 결정적인 것은 기손강의 홍수를 통하여 대부분의 시스라의 군대를 멸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스스로 능력이 있어서 이겼다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싸움을 계획하시고 결정적인 승리를 이루시고 단지 우리들에게는 국지전만 참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출 14장에 보면 여호와께서 출애굽때 좇아오는 애굽 군대앞에 두려워 떠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어다." 싸움의 승패는 이미 결정이 났습니다. 단지 우리는 그 싸움에 전력으로 참여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이 싸움의 승리가 믿음의 눈이 아니고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결정적인 승리를 우리보다 앞서 이루셨는데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이 지배적인 곳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에 익숙해 있는 우리들로서는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에 이미 죄와 죽음을 포함한 사탄의 세력은 결정적으로 패배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가 치루어야 할 싸움이 남아 있습니다. 때로는 넘어지고 힘겹다 할지라도 승리는 보장되어 있습니다. 삶은 불안정하다할지라도 승리는 보장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승리의 마지막 날까지 성도들을 지키시고, 도우시고, 이기게 하시고 기쁨을 주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안에서 승리를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노래를 부르는 병정들이 느낀 것은 드보라를 통해 전쟁에 참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보여주신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어떻게 구체적으로 전쟁에 임했습니까. 하나님이 승리를 약속하셨다고 해서 우리가 할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우리가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편에 서서 끝까지 최선을 다한 자들과 함께 하나님은 승리의 기쁨을 나누기 원하십니다. 전쟁에 동참하지 못한자들에 대하여 하나님은 꾸짖고 계십니다.

본문에는 이 싸움에 참여하는 두가지 부류의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하나는 약하지만 끝까지 하나님편에 서서 싸웠던 사람들이고, 하나는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 하거나, 결국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아서 저주받은 경우입니다. 르우벤지파는 시냇가에서 이 싸움에 참여할 것인가 말것인가 망설였습니다. 단은 배에 머물어 있으면서 싸움에 참여하기를 망설였습니다. 이들은 질책을 받앗습니다. 마지막까지 참여하지 않은 메로스는 저주받았습니다. 5:23에 메로스의 거민을 저주하라. 이는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아니함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명령 앞에 전력을 다해 싸우지 않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앞에서 피흘리기까지 싸우지 않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재산을 다 바치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명령앞에서 순종하지 못한 부자 청년이며, 이들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려고 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두 마음을 품은 자들로서 정함이 없는 자들입니다.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결사각오로 하나님을 좇으려고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또 다른 부류는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자들입니다. 5:18에 보니 "스불론은 죽음을 무릅쓰고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싸운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져 갑니다. 이들 가운데 오늘 우리가 주목할 것은 전쟁의 하이라이트를 이루는 드보라와 야엘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남보기에 시대적으로 부족하고 연약한 자들이었지만 최선을 다해 하나님 편에 섰던 자들입니다. 우리들은 우리가 최선을 다하기 전에 우리가 가진 것들을 탓합니다. 달란트가 부족합니다. 나는 성경을 알지 못합니다. 나는 신앙경험이 부족합니다. 나는 사교술이 부족합니다. 나는 소극적입니다. 그런 것 때문에 우리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사람들은 정말 보잘것없는 자들이었습니다. 능력있으면서도 교만한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약하고 부족하더라고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사람들을 통하여 일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야빈과 시스라의 침략이라고 하는 위기가운데 하나님은 여성들을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이 시대는 가부장적인 시대입니다. 최근까지도 한국에서는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에 따라 여성이 무시되어왔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지금으로 부터 약 3000년 이상 전의 전형적인 남성 위주의 시대입니다. 여자는 아이을 낳고 남편을 섬기는 역할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자는 사람의 수에 들지도 못했습니다. 외출을 할 때에는 얼굴을 가려야 했습니다. 아버지나 남편은 딸이나 아내를 물건처럼 팔고 사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편견이 지배하는 시대에 여성들을 통하여 이 강력한 가나안 군대를 무찔렀다고 하는 것은 믿음의 눈이 아니고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드보라를 이스라엘의 사사로 뽑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재판을 할 때에 드보라를 찾아왔습니다. 마땅한 남자들이 이 일을 감당할 수 없을때 여인을 택하셨습니다. 이 드보라를 통해서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뛰어난 군대장군인 바락은 드보라의 지시를 받아야 했습니다. 드보라는 바락을 향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하고, 또 그와 함께 전쟁터에 나아가서 사기를 돋구었습니다. 드보라는 바락을 영적으로 인도했던 사람이었읍니다. 어떻게 이일이 가능했습니까?

드보라는 아무런 능력이 없었지만 이 시대의 소명앞에 일어섰습니다. 대부분 남자들도 감히 일어서지 못하던 시절에 5:7에 그녀는 부르짖습니다.
"사람들이 큰길을 버리고, 오솔길로 다녔네. 나 드보라가 일어서기까지, 나 이스라엘의 어미가 일어서기까지 이스라엘의 촌읍들은 죽어 있었네. 다른 이방신들을 저희의 신으로 삼았다가 전쟁이 성문에 들이 닥쳤는데 도시 다섯에 방패하나 없었고, 사만명 이스라엘 군인가운데 창 하나 없었네." 이 얼마나 비극적인 상황입니까? 이무런 능력이 없는 드보라였지만 이 비참한 현실에 하나님만 의지하고 일어섰던 것입니다. 이 곤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이들이 믿음을 회복하는 것이었기에 하나님은 날쌘 장수가 아니라 연약한 드보라를 지도자로 삼고 전쟁을 지휘하게 하였습니다.

또 하나님이 적군의 군대장관인 시스라를 죽이기 위하여 사용한 사람은 용맹스러운 대장인 바락이 아니라 연약한 여인인 야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락이 시스라를 죽임으로 영광을 얻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능력을 자랑할 때가 아니요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할 때이기 때문입니다. 드보라는 이 일을 미리 예측했습니다. "네가 가는 길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입이니라." 라고 말했습니다. 즉, 바락이 시스라를 죽이는 영광을 차지하지 못하고 무명의 여인 야엘이 오히려 영광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만약 한 장군에 의하여 이 전쟁이 평정되면 그들은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고, 오히려 더 굳센 성벽을 쌓고, 힘센 장수를 양성하고, 군사훈련을 통하여 자신의 성을 방어하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오직 여호와를 믿는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음을 가르치려고 하신 것입니다.

시스라의 군대는 기손강의 홍수로 인하여 거의 전멸하고 시스라만 도망을 하다가 헤벨의 아내 야엘의 집에 이르렀습니다. 야엘은 그에게 의심의 행동을 보이지 않고 받아 들였습니다. 물을 달라는 시스라에게 엉긴 우유를 주었습니다. 엉긴 젖은 피로를 회복하는데 좋지만 피곤한 자를 잠들게 하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스라가 안심하고 잠들었을 때에 야엘은 시스라를 죽이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한을 풀었습니다. 이십년동안 압제당하고, 여인들이 노예와 창기로 팔려가는 그 암울한 시대에 하나님은 피해자인 여인의 손으로 시스라를 죽이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야엘이 시스라를 죽인 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의 법칙을 가르쳐 주십니다. 나의 능력으로 이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믿음을 통해서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에서 다윗은 돌 던지는 재주가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죽였습니다. 다윗의 이야기는 돌 던지는 실력을 찬양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가르치려는 것입니다.
고전. 1:27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는 교만한 강한 자보다는 미련한 순수한 자들을 통하여 역사를 이루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만 의존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우리가 믿고 의지할 것은 나의 능력이나, 재산이나, 지혜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열어놓은 드보라를 부릅니다. 드보라는 우리안에 있는 믿음의 그릇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께 연결하는 끈입니다. "깰지어다, 깰지어다 드보라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너는 노래할지어다." 이것이 우리가 위기 앞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우리들의 노래요, 신앙고백입니다. 고통과 절망에 빠진 이스라엘 사람들이 잊혀지고, 잠자는 드보라를 깨우고 믿음으로 이 전쟁에 승리한 것처럼 오늘 우리가 위기를 당할때마다 부르는 우리의 노래가 되어야 합니다.

내안에 있는 드보라여 깰지어다. 노래할지어다. 하나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사오니 나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내가 노력할때마다 넘어지고 실패하나이다. 이길려고 노력하지만 상처뿐입니다. 내안에 드보라를 깨우시고 믿음의 눈을 뜨게 하옵소서. 나는 질그릇이지만 내안에 주님의 복음의 보배를 담아 짦은 생애를 위대하게 살게 하옵소서. 합리적인 나의 판단을 의지하고, 물질을 의지하고 나의 지혜를 의지하는 나의 교만을 버리게 하옵소서. 내 안에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마음을 주시고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내 안에서 역사하실 수 있도록 나를 비워드리는 나의 결단이 드보라를 깨울 수 있습니다. 두려움과 걱정에 떨며 아무것도 못하는 무력한 나로부터 탈출하기 위하여 우리 안에 숨쉬는 우리의 드보라를 깨워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원치 않는 일들이 얽혀 있어서 더 이상 방향이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시기와 미움과 다툼에 지치고, 상한 감정의 노예가 되어 있을때에도 더이상 나아갈 길이 없다고 포기할 때가 아닙니다. 단지 누구를 미워하고, 도피하고 자기의 성을 굳게 싼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지금은 사람들의 관계 너머에 있는 악의 본질을 꿰뚫어 볼 때입니다. 내가 하나님편에 설때만이 문제가 풀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드보라는 내 안에서 하나님을 향해 드리는 나의 믿음의 끈입니다. 내안의 드보라를 깨워 하나님이 역사하시도록 나를 내어 놓고 하나님 편에서 전력을 다 하십시요. 지금은 전신갑주를 입고 하나님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할 때입니다. 내 안에 있는 드보라를 깨워 믿음으로 하나님 편에 설 때입니다.

"깰지어다 깰지어다 드보라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너는 노래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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