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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형제 연합의 아름다움 (시 1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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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과거는 대가족 제도여서 형제들이 많았습니다. 큰형 작은 형 큰 언니 작은 언니 . . . 그런데 앞으로는 그런 말 자체가 사라질 것 같습니다. 아이를 낳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 안타까운 세상입니다. 형제가 없는 세상, 출산문제, 국가적인 문제입니다. . . . 핵가족화, 개인주의화 . . .
부모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자녀들 간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 사회를 보실 때에 가장 선하고 아름답게 보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함께 연합하여 사는 모습입니다.

형제란 말이 무엇일까요? 한 피를 받은 가족입니다. 한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사람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형제들입니다.
성경에 형제라는 말이 약1천번(976)이나 나옵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하면서 범하기 쉬운 것 중에 하나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형제를 미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벧후1:5-11에 보면 우리는 신의 성품에 참여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믿음에 덕, 덕에 지식, 지식에 절제, 절제에 인내, 인내에 경건, 경건에 형제 우애, 형제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고 . . 8단계를 기록합니다. 일곱 번째에 ‘형제우애’를 말씀합니다.

우리는 늘 믿음, 믿음 이야기는 잘하지만 덕과 지식과 절제와 인내와 경건과 형에우애와 사랑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믿음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형제를 사랑해야. .

1. 형제의 아름다움은 사랑에 있습니다.

<탈무드> 어느 때인가 이스라엘에 두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형은 나이가 들어 결혼하였으므로 아내와 자식까지 두었고, 동생은 아직 미혼자였습니다. 두형제는 하나같이 아주 부지런한 농군이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물려받은 재산을 똑같이 분배하였습니다.
형제는 수확한 사과와 옥수수를 똑같이 나누어 각각 자기 몫을 각자의 곳간에 저장하였습니다. 그러나 밤이 이슥해지자 동생은 ‘형님은 딸린 식구가 많아 식량이 부족할 터이니, 내 몫을 좀 덜어 드려야지’하고 형님 곳간으로 많은 양을 옮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형은 형대로 ‘나는 아내와 자식들이 있으니 늙어서도 별 걱정이 없겠지만 동생은 혼자 몸이니 미리 저축해 놓아야 할 거야’ 이렇게 생각하고는 자기 몫을 떼어 동생 곳간에다 옮겨 놓았습니다.
날이 밝아 형제는 각기 자기 곳간을 가보니 웬일인지 자기 몫들이 조금도 줄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런 일은 다음날 밤에도 또 그 다음날 밤에도 반복되어 사흘 밤이나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밤, 두 형제는 전날 밤과 같이 자기 몫을 떼어 상대방의 곳간으로 나르다가 그만 중간에서 서로 부딪쳤습니다. 그래 두 형제는 얼마나 서로를 아끼고 있는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두 형제는 뜨거운 형제애에 그만 서로를 부둥켜 안고 울었는데, 이 울었던 곳을 예루살렘에 기념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들을 낳았다고 동네방네 소문내고, 자랑하고, 잔치를 하고 . . . 그러나 가 자식들이 부모유산 상속받을려고 눈이 벌개가지고 싸우기나 한다면 얼마나 꼴불견입니까? 이런 일들이 우리 주변에는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데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볼 때 교회안을 들여다 볼 때 그런 현상들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꼴 불견이겠습니까?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를 결정짓는데 있어서 유일한 표증은 사랑이다. 사랑만이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를 구별한다”고 했습니다. 페스탈로치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이 가까이 오신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맘 속에 형제 자매에 대한 사랑이 있는 지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있습니까? . . . . .
요한일서 4:20절에서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했습니다.

성도는 서로 서로 사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요일3:10).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이기도 합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13:34-35) 하셨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형제, 자매를 사랑하지 않으면 주님의 제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멸망의 자리에서 구원 얻은 그리스도인이라면 형제를 사랑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 . .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산 한 형제, 자매이며 한 식구입니다. 경쟁의 대상, 이용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랑의 대상입니다.

우리는 사랑에 빚진 자들입니다. 국민이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고 납세의 의무를 지지 않으면 범죄자가 되듯 신앙인은 형제에 대하여 사랑의 의무가 있는 사람입니다. 사랑의 의무를 회피하면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되는 것입니다.
흔히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사랑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닙니다.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입으로만 사랑한다고 말한다고 다 사랑하는 것입니까? 사랑은 상대방의 약점을 덮어 주는 것, 눈감아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불의를 모른 척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 주면을 보면 상대방의 약점이나 습관을 봐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상대의 약점을 찾으면 물 만난 물고기같이 . .
사랑도 작은 것에서, 미움도 작은 것에서 시작됩니다.

어떤 부부는 치약을 짜는 문제 때문에 이혼을 했답니다. 아내는 치약 가운데 부분을 쿡 눌러 짜는 버릇이 있습니다. 남자들은 그런 것을 싫어 하거든요. ‘여보, 다음부터 치약을 쓸 때 뒤에서부터 눌러서 써야지. . . ’ ‘알았어’ 그런데 다음날 보니까 여전히 가운데가 푹 들어가 있는 겁니다. 결국 이 부부는 치약을 짜는 방법 때문에 갈라서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형제의 약점은 보지 말고 아름다운 점만 보면 사랑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예쁘게 보이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우리의 약점을 눈감아 주시면서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할 근거는 바로 그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그 사랑 . . . .
맑은 물소리 org 955 ** ((찬양)) 주님께서 주시는 그 사랑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그 축복으로 당신을 축복합니다. 형제에 맘속에 주 영광 나타날때에 주님의 나라가 임하리 자매의 맘 속에 주사랑 나타날때에 주님의 구원이 임하리.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한 그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사랑은 자기로 시작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자기 욕망에서 시작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이런 사랑은 철저히 이기적인 사랑이요, 에로스 적인 사랑입니다. 이용가치가 있으면 사랑하고 이용 가치가 없으면 버립니다. 자기의 요구가 거절당하면 그 사랑도 증오로 변하여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 뒤에는 언제나 미움이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말처럼 말입니다. 자기에게 이로우면 따라붙고 불리하면 배척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사랑은 상대적인 사랑도 아닙니다.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것. 이것은 너무나 조건적입니다. 조건이 달라지면 금방 배신하고 증오하게 됩니다.
우리의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사랑이어야 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주님이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 사랑으로 사랑해야. .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사랑할 가치가 있어서 사랑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무조건입니다. 우리도 무조건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주의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내 마음에는 맞지 않지만 주님이 우리를 사랑한 방법으로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 때 우리 삶은 사랑의 기적이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옆에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인사합시다. “형제님(자매님)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시편133편에 보면, 형제 사랑에 대한 찬양과 복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 . ”고 했습니다(시133:1-3).
형제연합의 아름다움을 대제사장의 수염에 흐르는 향유 같다고 비유했습니다.

2. 형제의 아름다움은 연합에 있습니다.

성경은 연합함이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작은 땅덩어리이지만 민족이, 정치계가, 공동체가 이리저리 나뉘고, 할퀴고, 갈라서는 이합집산이의 아픔이 있는 땅입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 4:12) 삼겹줄의 원리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삼겹줄은 꼬면 꼴수록 강해지는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힘의 원리란 나눌수록 약해지고 합할수록 강해집니다. 모닥불도 모으면 작열하는 불꽃이 피어오르지만 헤치면 꺼져버립니다. 벽돌도 한 곳에 모아 쌓아올리면 빌딩이 되지만 흐뜨러놓으면 한 장의 벽돌에 불과합니다. 사람의 힘도 모으면 폭발력이 일어나지만 뿔뿔이 흩어지면 미력에 불과하게 됩니다.

엡4:3-6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연합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내가 죽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교회가 연합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소제물에서 우리는 교훈을 받습니다. 소제물은 한 덩이의 떡을 만들어 굽어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제도(매일 드림)인데 소제의 떡을 만드는 방법을 보면

1. 먼저 밀을 가루로 만듭니다.(자아의 파괴, 고집, 자만심, 교만심,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아는 마음 . . . 등)
2. 기름으로 반죽을 합니다.(알갱이 하나 하나가 뭉쳐 집니다. 성도는 공동의 목적을 가져야,
나의 목적, 너의 목적이 다르면 안됨. 목사의 생각이 다르고 성도의 생각이 다르면 안됨. 생각을 모아야, 힘을 모아야,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하나 되어야.)
3. 소금을 치고 간을 맞춥니다.(소금을 치면 소금의 본질은 없어지지 않고 소금 덩어리는 녹아 없어집니다. 그리할 때에 화목이 옵니다. 화목하려면 많은 손해옵니다. 나란 존재가 없어져야, 내 명예도 . . )
4. 불에 굽습니다.(성령의 불로 뜨겁게 구워야 합니다. 잘 익어야 합니다. 설익으면 안됩니다. 성도는 잘 익은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가 되어야. . .입만 살아 있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형제의 연합과 동거와 사랑의 아름다움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습니다.

3. 형제 연합에는 보배로운 기름의 복이 임합니다.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1)라고 말씀합니다. 제사장 아론의 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형제 우애하고 함께 동거하는 자들에게는 아론이 제사장으로 임직 받는 것과 같은 신령한 복을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출29장에는 제사장들의 임직 절차가 나오는데 제사장을 세울 때는 먼저 제사장을 회막 앞으로 불러 온 몸을 물로 씻기고 제사장 의복을 입힙니다. 마지막으로 “관유”라고 부르는 귀한 기름을 머리에 붓습니다. 본문에 “보배로운 기름”이라고 말한 것이 바로 그 “관유”를 말합니다. 그 관유는 매우 까다롭게 법대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한 용도 외에는 절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제사장을 세울 때 기름 붓는 일, 성물을 성별하는 일이외에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런 용도 외에 관유를 만들거나 사용하면 벌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출30:33).

그런데 본문을 보면 제사장의 머리에 부은 기름이 수염을 타고 옷깃을 적신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머리부터 가슴까지, 임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형제 우애하고 사는 인생에게, 교회에게, 가정과 사업 위에 그런 제사장의 복, 성령의 기름부음의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4. 형제연합에는 이슬의 은총이 따릅니다.

형제 연합의 아름다움을 “헐몬산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헐몬산은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가장 높은 산입니다. 해발 2700의 높은 산입니다. 현재의 이름은 “제벨 엣쉬”입니다. “백발의 산”이란 뜻입니다. 연중 대부분의 기간 동안 흰 눈에 덮여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 산에는 사시사철 눈이 덮여 있습니다. 비가 오지 않는 건기 때에는 헐몬산의 눈이 녹아 흘러내려서 이스라엘 평원을 적십니다.
헤르몬 산에 덮여 있는 차가운 눈이 녹아내리면서 이스라엘 땅에 많은 이슬을 맺게 합니다. 그 헐몬산에는 항상 풍족한 이슬이 내립니다. 이러한 이슬들은 많은 농작물을 싱싱하게 자라게 합니다. 그러므로 헤르몬의 이슬은 곧 생명의 에너지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노래할 때 헐몬산의 이슬 같다고 합니다.
“이슬”이란 말에는 영적인 암시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밀한 은총을 상징합니다.
이 이슬 때문에 온 대자연이 건기 때에도 생명의 신선함과 왕성함을 드러내고 있음을 보고, 하나님의 축복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지런한 사람도 이슬이 언제 내리는지 본 사람이 없습니다. 비는 가끔 한 번씩 내리지만 이슬은 매일 같이 내립니다. 이슬이 내리는 것은 밤중에 조용히 내리는 보이지 않는 복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슬은 매일 매일, 끝없는 하나님의 섭리를 상징합니다.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내용을 보면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창27:28)

다윗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시3:5) 은밀히 쉬지 않고 은총을, 기적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형제 우애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이슬의 복을 주십니다. 은밀하게 함께 하시는 복이 있겠다는 것입니다. 은근히 잘 되는 복입니다. 이런 복을 받고 싶지 않으십니까?
어떤 사람은 은근히 잘되는데 어떤 사람은 은근히 안됩니다. 은근히 잘되는 복을 받으십시오. 은근히 자녀들이 잘 됩니다. 은근히 좋은 배우자를 만납니다. 은근히 취직도 잘 됩니다. 은근히 능력있는 신앙생활을 합니다. 은근히 일이 잘 풀립니다. 이런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5. 세상에서도 천국의 복

“거기서부터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했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아름다운 사랑이 있는 곳에 천국의 복이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천국이 못되는데 어떻게 죽어서 천국이 되겠습니까? 교회생활이 천국이 되어야 합니다. 정말 교회생활이 천국이 되고 있습니까?
형제 이해를 위한 10계명
1. 상대방의 말을 항상 폭넓게 이해하십시오.
2.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방향이 아니더라도 교회 공동체의 방향을 따라 주십시오.
3. 말에 오해를 가진 상대방을 진지하게 사랑으로 이해시키도록 하십시오.
4. 형제의 행복을 나의 행복으로 알고, 형제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삼으십시오.
5. 후퇴해야 할 때 넉넉한 마음으로 후퇴하는 자세를 갖추십시오.
6. 하나님은 각 사람의 성격대로 각 사람을 쓰신다는 사실을 인정하십시오.
7. 과거의 섭섭한 일을 온전히 잊어버리시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십시오.
8. 남에게 돌을 던지기 전에 항상 내 죄를 먼저 살피십시오.
9. 우리의 혀에서 험담과 비판이 나오지 않도록 하시고 칭찬과 격려가 나오게 하십시오.
10.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람을 사랑하십시오.

세상은 천국을 준비하는 곳입니다. 가난해도 그 곳에 천국이 임합니다. 병들어도 그곳에 천국이 임합니다.
((복음성가 찬양나팔 95)) 주와 함께 라면 1. 주와 함께라면 가난 해도좋아 참된 부요함이 내맘에 가득하니까 때로는 날 유혹하려고 세상바람 휘몰아 쳐와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어 자비로운 주의 음성을// 2. 주와 함께하면 병들어도 좋아 참된 강건함이 내맘에 가득하니까 때로는 날 넘어뜨리려 거친파도 휘몰아쳐와도 나는 결코 놓을 수없어 따사로운 주의 손길을 . . .

우리교회에, 여러분들의 인생에 여러분들의 가정에 이런 보배로운 기름의 복, 이슬의 은총, 천국의 복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임경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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