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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금은 성령의 위로가 필요한 때 (요 14: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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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아무도 없는 지하 사무실에서 혼자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참 기도를 하는데 눈앞에 시커먼 물체가 아른거리더랍니다. 눈을 떠보니 귀신입니다. '귀신은 찬송을 싫어한다 그러더라. 찬송 부르며 쫓아야지.' 그런데 앞이 캄캄해지면서 무슨 찬송을 불러야 할지 그 한 곡이 생각나지 않는 겁니다. 그런데 문득 교회에서 늘 부르던 찬송 한 곡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두 손을 쫙 뻗고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그 사랑 지금도 받고 있지요."

이 노래는 이민섭이란 젊은 사역자가 사랑하는 사람의 아버지가 교회를 다니지 않고 있다가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그 아버지를 위해서 만든 곡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는 사랑 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이 땅에 미움을 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외아들을 주시기까지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나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온 몸으로 느끼는 감동과 감화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품에 안고 믿음의 열정을 회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청교도 신학자 토저(A.W. Tozer)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떤 신을 섬기느냐에 따라 종교의 수준이 결정되고, 같은 기독교 안에서도 어떤 하나님을 믿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신앙 수준이 결정된다" 지극히 옳은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여러분이 가진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혹여 하나님을 아무 것도 하실 수 없는 허수아비로 취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능력을 박물관에 전시해 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나약한 믿음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걱정과 조롱거리가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위대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십시오. 강한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강한 믿음이 강한 역사를 일으킵니다.

다윗이 그의 말년에 그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다윗은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능력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영광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천지 만물을 다스리시는 크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이 믿었던 하나님은 바로 오늘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제한이 없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십시오.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여호와께 있음을 믿으십시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해서 일어나시기를 축복합니다.

솔직히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습니다. 이 땅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믿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보여주지 못하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머리 속에 머물러 있는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은 살아서 역사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믿는다면 그 하나님의 역사가 지금 내 안에서 일어나야만 합니다. 묻습니다. 여러분은 성령의 능력을 믿으십니까? 저는 성령의 능력을 확실히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제한 없는 능력을 믿으십시오. 다시 말하지만 성령의 능력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지금은 믿는 자의 시대입니다. 여러분이 작게 믿으면 작은 역사 밖에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크게 믿으면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제발 큰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우리의 기독교는 지난 주일에 들었던 말씀을 머리 속에 기억하고 있다가 오늘 또 다른 말씀을 들으려고 나오는 그런 종교가 아닙니다. 우리의 기독교는 지적인 만족을 채워주는 철학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우리의 기독교는 말씀을 들었으면 그 말씀을 세상에 나가서 구체적으로 적용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행하셨던 것과 똑같은 것을 말하고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병자를 고치셨다면 동일하게 우리도 병자를 위하여 기도한즉 낫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귀신을 내어쫓으셨다면 동일하게 우리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능력을 행하는 것은 우리의 어떤 의지나 능력 때문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 주님께서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할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믿으신다면 우리는 주님께서 행하셨던 일들보다 더 큰 일들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더 큰 일을 이루기 위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감동시키십시오. 열왕기상 3장 10절에 보면,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맞은지라'라는 말은 유쾌하게 하다, 즐겁게 하다, 기쁘게 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솔로몬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했더니 하나님께서는 그가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덤으로 더 넘치게 주셨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감동시켰더니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부귀와 장수를 주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자로 세워주셨습니다. 결국 우리 인생의 문제를 푸는 열쇠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삶을 사십시오.

오늘 이 시대의 사람들은 신바벨탑을 쌓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없이도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무엇을 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덧없는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솔직히 우리가 열심히 수고하고 땀흘려서 많은 재물을 모았다고 하십시다. 그러나 어느 한 순간의 사고로 그 동안에 모았던 재물들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왜 모르십니까? 제발 성경의 어리석은 부자처럼 인생을 살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내 것이라고는 없습니다.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내 입에 들어간 것만 내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기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너무나도 초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누군가라는 사람도 나보다 조금 나을 뿐이지 능력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능력의 한계가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동을 하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생각을 하십시오. 하나님을 감동시켜드리십시오.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잘 보이십시오. 사도 바울의 말처럼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인정받으십시오. 그리하면 우리의 하는 모든 일들이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이 성공할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우리에게 국제화 시대에 걸 맞는 감각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지금은 국제 감각의 필요 이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미래에 닥칠 환경의 재앙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염려해야 하는 것은 영적 기근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가 끊긴 영적 재앙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가만히 보십시오. 지금 우리의 시대가 바로 그 시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과 과학의 힘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육체적인 쾌락을 쫓아가고 있습니다.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에 빠져 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대기 위해 시날 평지에 바벨탑을 쌓았던 것처럼 오늘 이 시대에도 자신의 이름을 위해서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려고 합니다. 인간의 교만함이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영적 기근의 시대입니다.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그렇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여호와의 말씀의 권위가 사라진 시대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도 메아리가 되어서 공허하게 돌아오는 시대입니다. 지금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영적 기근에 빠져서 불나방처럼 이 거리, 저 거리를 방황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형제들아 우리가 어이할꼬?"라면서 가슴을 치며 울부짖는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살아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권능으로 채움을 받으십시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있는 사람들이 거룩한 성령의 채움을 받았던 사건들이 지금 우리에게도 일어나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혼탁한 지도자 때문에 이 사회가 혼탁해집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 때문에 이 사회가 오염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시대는 성령의 권능으로 채움을 받은 믿음의 사람들이 많이 일어나야 합니다. 혼탁한 이 시대를 깨우며, 오염된 이 사회를 정화시킬 수 있는 능력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더 많이 일어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종교적인 지식을 채우려고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머리 속에 종교적인 교리들로 가득 채우려고 하지 마십시오. 신앙은 종교 놀이가 아닙니다. 신앙은 언어 유희도 아닙니다. 신앙은 지식의 놀이도 아닙니다. 신앙은 나를 살리고, 가정을 살리는 생명 운동입니다. 신앙은 능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믿음의 역사를 일으키는 능력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모름지기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영적 파워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악한 영들이 천리 길로 도망가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어둠의 권세가 사라지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간곡히 부탁합니다. 제발 성령의 능력을 소멸하지 마십시오. 성령의 능력이 소멸된 사람은 원망과 시비와 분냄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성령의 능력이 소멸된 사람은 논쟁과 혈기로 살아가게 됩니다. 성령의 능력이 소멸된 사람은 일의 열정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게 됩니다. 성령의 능력이 소멸된 사람은 내적으로 마음이 굳어지게 됩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에 보면 내적으로 마음이 굳어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내리시는 죄의 형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마음의 굳어짐은 마음의 고집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능력이 소멸되어서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는 사람은 그 마음의 고집이 대단합니다. 도무지 다른 사람의 말이 들려지지 않습니다. 찬송을 불러도 감동의 파도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심령의 굳어짐 때문에 그 말씀이 자기 마음 밭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지금 내 마음이 굳어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형벌을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마음에 감동이 없고 굳어진 상태라면 이미 그 자체가 하나님의 형벌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마음의 굳어짐을 면하십시오. 성령의 불로 내 마음의 고집을 태워버리십시오. 다윗은 이 마음의 굳어짐을 두려워했습니다. 사울왕이 마음의 굳어짐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했던 것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는 엄청난 죄악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나단 선지자가 책망할 때에 그 자리에서 회개를 했던 사람입니다. 그 내용이 시편 51편에 나타나 있습니다. 다윗은 11절에서 이렇게 간구합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성령을 거두지 마옵소서. 주의 성령을 거두지 마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내게서 주의 성령이 떠나가지 않도록 기도하십시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였더니 그들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역사의 주역이 될 수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했더니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성령의 능력을 상실하면 그는 곤고한 포로의 신세가 되고 말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소멸된 사람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희롱과 모욕 속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능력이 상실 된 사람은 하나님께로도 버림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신령한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십시오. 그래서 시간마다 때마다 성령의 감동과 감화를 경험하십시오. 그래서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죄의 유혹들을 물리치십시오. 사단의 견고한 진을 깨뜨리십시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하십시오.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영적 무기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가다가 미문에서 태어날 때부터 앉은뱅이를 만났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뭐라고 말합니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으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강하게 선포하십시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악한 영들은 떠나갈지어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모든 질병의 근원은 뿌리부터 마를지어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선포하고 외치십시오. 그대로 될 것입니다.

유명한 심리학자요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라는 사람이 콜롬비아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현대 인간의 모습을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찢어진 존재' 그러니까 이 세상에는 찢어지고 상처받고 외로운 심령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입니다. 치유와 회복을 간절히 기다리는 심령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입니다. 토마스 울프(Thomas Wolfe)라고 하는 소설가는 이런 말을 합니다. "모든 인간 경험의 중심에는 외로움이라고 하는 피할 수 없는 경험이 있다"

1808년 어느 날, 몹시 수척하고 슬픈 얼굴을 가진 사람 하나가 영국 맨체스터에서 개업을 하고 있는 제임스 하밀톤이라는 의사를 찾아왔습니다. 이 사람은 대단히 슬프고 낙심된 얼굴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신 어디가 아픕니까?" "예, 정말 죽을 병에 걸린 것 같습니다." "무슨 병인가요?" "선생님, 나는 이 세상이 너무나 두렵습니다. 우울해서 죽겠습니다. 어디서도 행복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하나도 재미있는 것도 없고, 살아야 할 목적을 아무 데서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만일 선생님이 도와줄 수 없다면 나는 자살하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 의사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당신의 병은 죽을 병이 아닙니다. 거기서 벗어나기만 하면 되지요. 당신은 웃어야합니다. 인생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찾아온 이 사람이 의사에게 묻습니다. "그럼,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오늘 밤에 서커스에 가서 그리말디의 공연을 보세요. 그리말디는 세상에서 제일 우수꽝스러운 광대입니다. 그 사람을 보면 너무 웃어서 당신의 병이 낳을 겁니다." 그 때 이 사람이 정색을 하면서 말합니다. "선생님, 저하고 농담하지 마십시오. 내가 바로 그 그리말디입니다" 그는 바로 19세기 초 영국에서 광대의 왕이라고 불리웠던 그리말디라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을 웃겼어도 정작 자신은 웃지를 못했습니다.

남은 웃겨도 자기는 웃을 수 없는 존재, 이것이 찢어진 존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에서 찢어진 존재를 경험하실 때가 있습니까?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까? 그래서 때로는 가슴이 답답하십니까? 낙심하지 마십시오. 이 시간 성령의 위로를 받으십시오. 그리고 성령의 능력을 받으십시오. 그리하면 우리는 넉넉히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두려움과 고통의 골짜기를 지나고 있을지라도 하늘을 바라보며 성령님의 위로를 체험한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낭패와 실망을 당했지만 성령의 위로함으로 담대함을 얻어서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내 안에 찢어진 존재를 성령의 위로함으로 치유를 받으십시오. 성령의 임재하심과 위로하심으로 내 안에 있는 파괴되고 찢겨진 상처들이 다 치유되는 역사를 경험하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침울함이 성령의 위로로 밝은 빛을 얻을 것입니다. 성령의 위로함으로 우리의 실존이 새로운 생명을 공급받을 것입니다. 성령의 위로하심이 임한다면 우리의 절망이 소망으로 바뀔 것입니다. 내면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 사람은 끊임없이 상대방을 공격하려고 합니다. 내면의 깊은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공격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지금이야말로 성령의 위로하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에게 위로 받으려고 하지 말고 성령의 위로함을 받으십시오. 우리가 사람에게 위로를 받는다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도 슬픔을 겪고 있을 때에는 나를 위로해 주지 못합니다. 그가 내 안에 있는 깊은 내적 상처를 깨끗하게 치유해 줄 수도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 앞에 나오십시오.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을 바라십시오. 내 안에 있는 나도 알지 못하는 찢어진 상처를 성령의 능력으로 치유함을 받으십시오. 우리의 내면의 깊은 곳을 다 알고 계시는 성령님께서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내면 깊은 곳을 어루만져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성령님 사랑합니다. 성령님 경배합니다.
성령님 채워주소서. 당신의 사랑으로"
이 시간 성령의 위로하심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심령에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임재하여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강한 것을 확인하고 싶어 하지만 때로는 약한 것을 확인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위로 받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보살핌이 있음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살핌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임하시고, 우리를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그렇습니다. 성령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알고 계십니다. 어쩌면 내가 연약하다고 느끼는 것보다 더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나의 연약함을 팔짱을 낀 채로 그대로 구경만 하고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구체적으로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를 때에 성령께서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도우심으로 여러분의 한 숨이 노래로 바뀌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성령의 위로하심으로 여러분의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어지기를 축복합니다.

때때로 고통은 우리의 믿음을 더 순수하게 만드는 연단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고통의 순간에 성령의 도우심과 위로하심을 사모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무쇠처럼 단단한 강심장이 아니라 약점이 있고 쉽게 상처받을 수 있는 나약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때문에 우리 앞에 닥친 어려움을 견디지 못해 몸부림칠 때도 있지만 성령의 은혜로 참아낼 수 있는 힘도 있습니다. 고난이 닥칠 때에 나 혼자 뿐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사실은 결코 나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십니다. 주의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모름지기 위로자는 언제나 위로 받을 사람에게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고난받는 우리들의 삶의 한복판에 서 계십니다. 그 분은 언제나 아파하는 사람들,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상처받은 이웃들의 한복판에 서 계십니다. 위로하는 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함께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위로해주시기 위해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위로하시고 힘 주시는 성령님의 세미한 역사에 민감해 지십시오.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을 떠나실 때가 가까웠습니다. 이별은 슬픔과 아픔을 가져다줍니다. 두려움도 가져다줍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곧 세상을 떠나신다는 말씀을 했을 때에 제자들의 가슴에는 근심과 슬픔과 두려움으로 가득했습니다. 근심과 슬픔과 두려움에 쌓여 있던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시면서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또 다른 보혜사'는 성령님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는 '성령의 내주'라고 합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성도들 안에 계신다는 말입니다.

보혜사 성령님이 하시는 일들이 있습니다. '보혜사'라는 헬라어의 뜻은 '옆에서 나를 부르는 사람', '내 옆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께서는 내 옆에 계시면서 나에게 속삭이십니다. 내 옆에서 속삭이면서 나를 위로하고 나를 도와주십니다. 때로는 나 대신 나를 변호도 하십니다. 내가 속상해 하고 있을 때에는 내 옆에서 속삭이면서 위로도 해 주십니다. 그래서 보혜사를 영어로 Comforter, 위로자라고 했습니다. 내가 힘들어 할 때는 내 손을 붙잡고 나를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보혜사를 영어로 Helper, 돕는 자라고 했습니다. 내가 어려움과 공격을 당할 때 내 옆에서 나를 변호도 해 주십니다. 그래서 보혜사를 영어로 Advocate, 변호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언제나 내 곁에서 내 이름을 부르시면서 나를 위로하시고, 도와주시고, 변호해 주시는 성령님을 여러분의 심령에 모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이는 오직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성령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때에 우리는 참된 위로를 받습니다. 성령의 위로를 거절하면 어디를 가도 위로를 받을 곳은 없습니다. 참된 안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참된 안식을 얻기를 원하신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을 사모하십시오. 여러분이 참된 평안을 누리기를 원하신다면 성령을 의지하십시오. 지금은 우리 모두가 내면의 깊은 상처를 치유해야 할 때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지금은 우리 모두에게 성령의 위로하심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 땅에 성령의 뜨거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이 1907년 평양의 장대현 교회였습니다. 민경배 교수는 그때 평양에서 일어났던 대부흥운동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907년 1월 14일 월요일의 일이다. … 교인들의 감동은 놀라웠다. 다음 주일밤 교회는 '신비스러운 경험'을 하였다. 교회는 묘하게 틈틈에 힘있는 영적 압력이 배어 구속하는 듯했다. 다음날 월요일 밤에도 장중한 신비의 세력이 임재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교회에 들어설 때에 확실히 체감으로 거기서 신의 임재를 압도당하듯 느끼고 있었다. 그날 전형적인 평양 대부흥의 분위기가 감격 넘치게 펼쳐졌다."
당시 런던 타임즈의 기사에서는 이렇게 타진하고 있었습니다. "'주여' 라는 말을 하자마자 밖에서부터 흠뻑 밀어닥치는 강대한 힘의 임재에 압도당했다고 한다. 통회의 울음은 설움의 폭발이라기보다는 성령의 임재에 압도되는 넘치는 찬양의 물결이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가 일어나십시다. 일어나서 힘차게 찬양할 때에 우리 모두가 강력한 성령의 임재에 압도당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가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느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찬양 후에 '주여'라는 말을 외칠 때에 성령의 강력한 위로하심과 기름 부으심이 여러분의 심령에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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