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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도자의 무장과 자세 (마 10:16-23, 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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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적인 어머니 상으로 잘 알려진 탈렌트 김혜자 권사님은 10여년전 월드비젼의 홍보대사로 위촉받게 되었습니다. 인기도 상승하던 때였고, 생각해 보니 좋은 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고, 바람도 쐬고 싶은 마음에 이디오피아행을 쾌히 승낙했습니다.
  그러나 그 곳에 도착해서는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디오피아가 얼마나 어렵게 사는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안타까움은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을 볼 때 극에 달했습니다.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약이 없어서 치료하질 못하고, 엄마의 젖꼭지를 붙들고 늘어지지만 젖이 말라붙어서 먹지를 못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 얼굴에 파리가 날라 드는 광경은 참으로 참혹하기만 했습니다.
  얼마나 후회가 되는지 다시는 안 오겠다고 작정을 했답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서는 잠만 자고, 눈만 감으면 그 아이들 얼굴이 떠오르더랍니다. 아이들의 참혹한 모습에 “내가 가서 도와주지 않으면 누가 그들을 도와줄까!”하는 마음에 그 이후로도 그녀는 월드비젼의 홍보대사로 10년동안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녀가 방문한 나라만 해도 르완다, 에디오피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북한등을 다녀왔고, 인도는 여섯 번이나 다녀왔습니다. 그 곳에 다녀와서도 방송에서도 체험을 얘기하고, 헌금을 모아 도와주었습니다.

  그녀가 다녀와서 느낀게 있답니다. 내가 그동안 너무 사치스럽게 살았다는 깨달음 이었답니다. 그 아이들은 이만원만 가지면 한달 동안 숙식을 해결하고, 학교를 다니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데, 그 이만원이 없어서 병원에 못가고, 굶어죽고, 학교를 못가는 아이들 생각에 마음에 가책이 되었답니다. 
  그 때부터 돈을 쓸 때도 절약하면서 이만원이면 그 아이들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는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 분이 그런 간증을 적은 책이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책입니다.
  그분의 포부가 나이 들어 은퇴하면 아프리카에 가서 살겠다고 합니다. 그 아이들을 위해서 봉사하면서 살고 싶다고 합니다.

  여러분, 만약 그 분이 보지 않았더라면 그러한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요? 가서 보았습니다. 참혹한 광경을 보았기 때문에 삶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었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도 그렇습니다.
전도하라, 전도하라 해도 가슴에 와닿지를 않습니다. 전도는 특별한 사람들이나 간증하러 다니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지 우리 같은 보통 교인들은 전도할 주제가 못되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또한 천국과 지옥이 내 가슴에 와 닿지 않고 막연합니다. 교회나 왔다 갔다 하면 되지하는 생각을 하거나, 교회 안다니면 혹시 지옥이 있으면 지옥 갈 것 같으니까 밑져야 본전이니 하고 가기도 합니다. 천국이 있으면 가고, 또 없으면 할 수 없지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분명 예수를 믿긴 믿는데, 하나님을 믿긴 믿는데 천국과 지옥을 실감하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전도의 뜨거운 사명도 열정도 갖기가 어렵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한국에서는 반공교육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 마음 속에서는 반공 교육이 와 닿지를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공산주의가 나쁘다 해도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생각의 차이일 뿐이지 그 사람들이라고 그렇게 나쁜가하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과거에 6.25를 겪은 분들은 어떻습니까? 공산당 얘기만 하면 혈압이 오릅니다. 금쪽같은 자식을 잃고, 남편을 잃고, 가정이 풍비박산 된 분들에게는 당연한 현상입니다. 왜입니까? 체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보았기 때문입니다.

  본다는 것, 체험한다는 것은 이토록 중요합니다.

  요즘 기독교 서적으로 시중에 많이 읽히는 책 가운에 토마스 쥬나미의 ‘천국은 확실히 있다’란 책이 있습니다. 그녀는 워싱턴 주 타코마란 곳에 사는데  어릴 때 한국에서 생활하다가 나이 들어서 미국에 가서 살았습니다 처음에 한국에서는 예수 안 믿었는데 미국에 가서 1992년에 예수를 처음 믿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성령께서 그 분을 천국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책에 보면 그녀가 천국에 열일곱 번, 지옥에 두 번 다녀온 이야기가 나옵니다.

  충격적인 장면은, 지옥에 갔는데 연기가 가득하고 뜨거운 곳으로 예수님이 그녀를 데리고 가시더랍니다. 한 곳에 갔더니 뜨겁다고 막 비명을 지르는데 한국말이 들리더랍니다. 가서 자세히 보니까 어릴 때 봤던 어머니 모습이 보였습니다. 40세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 평생을 바람 피우고, 못되게 구는 아버지 아래서 외딸 하나 낳아서 키우고 고생만하다 간 착하고 아름다운 어머니가 지옥에 와 있더랍니다. 아무리 팔을 뻗어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가 없더랍니다. 안타까움에 “예수님 우리 어머니좀 구해주면 안돼요?”하고 소리쳐도 예외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업적을 남겨도, 아무리 선행을 해도 예수 믿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누구도 돌이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녀의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날 사랑했던 어머니가 지옥에 와 있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또 다른 곳에 가니 자기 아버지가 있고, 의붓어머니가 있고, 열아홉때 죽은 자기 동생이 있더랍니다.
이 분이 그 때부터 삶이 달라졌습니다. 이웃, 가족들을 어떻게든 전도해서 지옥에 보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왜입니까? 지옥의 고통스러움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잘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전에 펜시콜라가 와서 엉터리 이미지를 준 때문이기도 한 듯 합니다.
  그런데 이 책 “천국은 확실히 있다”란 책은 조용기 목사님이 세 번을 읽고도 그 내용이 너무 좋고, 간증이 성경적이어서 직접 번역까지 하셨습니다. 세계적인 목사님께 감동을 준 책이라면 우리도 신뢰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책의 저자가 보고 온 지옥의 참상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고 또한, 천국은 얼마나 좋은 곳인지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전도자는 천국과 지옥의 실상을 정확히 아는 사람입니다. 천국의 실재, 지옥의 실재를 믿는 사람이 좋은 전도자, 확신 있는 전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내 사랑하는 이웃이나 가족이 고통 받는 유황불 속 지옥에 떨어지지 않도록 우리는 단단히 마음에 각오를 하고 결심해야 합니다. 이 확신을 가지고 전도해야 할 것입니다.
  천국이나 지옥을 보고 온 사람은, 실제를 아는 사람들은, 시시하게 전도하지 않습니다. 생명을 바쳐 전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삼층천에 다녀왔다고 했습니다. 그 간증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천국과 지옥을 알기에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복음 전하기 위해서 결혼도 안 했습니다. 가족이 거추장스러울까봐였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서울 대학교 최고학부를 나온 사람이지만 매 맞으면서, 조롱받으면서, 복음 전하는데에 자기 일생을 바쳤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에 보니까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라고 고백합니다.

  한영혼만 구할 수 있다면 내 생명이 아깝지 않다는 고백입니다. 지옥에 가는 영혼을 막을 수만 있다면 내 생명이 아깝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3절에서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라고 말씀합니다.
  그가 복음을 전하러 가면 결박당합니다. 환란이 있습니다. 핍박이 있습니다. 채찍질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는 가야 합니다. 왜 지옥에 떨어지는 영혼을 보고만 있을 수 없기에 말입니다.

  우리가 오늘 게으름을 피우고 불순종하는 사이에 수백 수천의 영혼들이 지옥에 떨어져서 고통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바울이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이 복음만 증거될 수 있다면 그는 간도, 쓸개도 없는 사람처럼 살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전도 못합니까? 자존심 때문입니다.
  우리가 간, 쓸개 다 내어 놓고 전도하면 다 전도할 수 있습니다. “내가 먹을게 없나, 집이 없나, 차가 없나, 자식이 없나, 내가 뭐가 아쉬워 남한테 가서 아쉬운 소리 하고, 머리를 조아려? 왜 집 주인이 셋방 사는 사람에게 가서 아쉬운 소리해?”라는 자존심이우리 속에 있지 않습니까?
  자존심이 있기 때문에 전도 안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안 그랬습니다. 그는 간도 쓸개도 다 내 놓은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19절에 보니까 “

  영혼만 구원할 수 있다면 그는 종이 되고 노예가 되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같이 행동해서 복음을 전합니다. 왜입니까? 유대인을 얻고자하기에 그렇습니다.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처럼 행동합니다. 왜입니까? 이방인을 구원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처럼, 강한 자에게는 강한 자처럼 행동해서 그들을 구원할 수만 있다면 그 외에 다른 소원은 없었습니다.
  왜입니까? 천국과 지옥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좋은 천국을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알기에 전도 안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본다면, 그 사실을 실감나게 체험한다면 아무도 전도 안 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든 가족을 끌어낼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이 분명히 존재하기에 말입니다.

  전도자는 먼저 천국과 지옥의 실체를 알고, 믿어야 합니다. 복음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은 부끄러워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영혼을 구원할 수만 있다면 오직 복음 외에는 구원할 방법이 없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아멘! 예수의 이름 외에는 구원받을 만한 이름을 천하 인간에 주신일이 없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데살로니가전서 2장에서 우리가 복음을 전할 부탁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도 하셨습니다. 이 복음을 전할 사명을 주셨는데 우리가 두려워서 꽁무니를 빼고,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한다면 주님은 어떻게 여기시겠습니까?

  여러분, 좋은 전도자는 천국과 지옥의 실상을 확신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천국과 지옥의 실상을 믿는 확신있는 전도자는 어떤 태도를 가지고 복음을 증거할까요?

첫째,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17절, 18절을 읽어볼까요?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 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18절에 보십시오.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 들 앞에 끌려가리니”라고 말씀합니다. 누구 때문입니까? 예수님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훈련시켜서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주신 말씀입니다. 너희들 전도하러 가면 공회 앞에 끌려 갈 것이고, 임금 앞에서 심문 받으실 것이고, 채찍질도 당할 것이요, 핍박도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 즉 예수님 때문에 말입니다. 그러나 천국과 지옥을 아는 사람은 핍박을 피하지 않습니다.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 때문에 핍박 받을 수 있다면 축복입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전도하다가 체포당하고 순교당하고 사자 밥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각오하고 갔습니다. 예수 믿는다면 죽을 각오를 하고 믿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들은 복음을 전한다고 얼굴을 맞거나, 채찍질 당하고, 재산을 몰수당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우리는 복음을 전한다는 것으로 인해 냉대를 당할 수 있습니다. 조소를 당할 수 있습니다. 비웃음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피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복음 전도자는 늘 환영만 받을 수는 없습니다. 조소와 냉대를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쁘게 여기십시오. 예수 이름 때문에 우리가 조소와 냉대를 받을 수 있으면 얼마나 축복입니까? 그 사람은 상급이 크다고 했습니다. 30년 예수 믿고도 복음 전하다가 손가락질 안 당해 봤으면 참 부끄러운 교인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핍박받고 조롱 당하면 오히려 기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다가 열 번 중 아홉 번은 거절 당할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열 명 복음 전해서 그 중에 한명만 예수의 복음을 받아들이더라도 성공한 것입니다.

  베이비 루스라는 미국의 홈런 왕은 일생동안 754개의 홈런을 쳤습니다. 사람들은 그 사람의 홈런 숫자만 기억하지 그가 삼진 아웃 당한 횟수는 기억하지 않습니다. 홈런 왕 베이비루스도 타석에 물끄러미 서서 공 한번 쳐 보지 못하고 부끄럽게 물러난 일이 무려 1330번이나 되었답니다. 그도 부끄러움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용기를 잃지 않았기에 전설적인 야구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거절당하는 것과 비웃음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천국과 지옥의 실상을 믿는 전도자는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확신있는  전도자는 복음전도에 지혜롭습니다.

  오늘 16절에 보니까 너희들은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뱀이 징그럽지 않습니까? 이 가운데는 뱀을 좋아하는 분들도 많이 계실 줄 압니다. 창세기 3장의 뱀이 하와를 유혹한 얘기는 아담과 하와가 한국 사람이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우스갯 소리가 있습니다. 한국 사람이었다면 그 유혹하는 뱀을 잡아 먹었을테니 말입니다.^^
  여러분, 뱀은 참 징그럽습니다. 그런데 뱀은 지혜롭습니다. 날개도 없습니다. 다리도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를 잘 숨깁니다. 적절한 곳에 은신합니다. 계절에 따라 자기의 몸 색깔을 잘 바꿉니다. 우리도 그런 뱀에게서 지혜는 배워야 합니다.

  우리도 복음을 전하면 그 사람에 맞게 전도해야 합니다. 맞춤전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복음을 선포해야 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강권해서 끌고 와야 하며, 어떤 사람은 시간을 갖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가 적당한 때에 스스로 제발로 올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지혜입니다. 그래서 지혜가 부족한 사람은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전도자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처럼 순결해야 합니다. 전도하려면 순결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순결하지만, 사람 앞에서도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전도 하려면 욕하고 싶은 것도, 따지고 싶은 것도 참으셔야 합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무렇게나 산다면 누가 따라 오겠습니까? “교회에 갔다가 너처럼 될까봐 못가겠다.”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전도하기 위해서 절제 하셔야 하고, 순결한 삶을 살도록 노력하셔야 합니다. 이것이 전도자의 자세입니다.

셋째, 확신있는 전도자는 권세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성경 28절 말씀을 읽어봅시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아멘.

  권세자들은 우리 몸은 결박할 수 있고, 생명은 빼앗을 수 있지만, 영혼은 맘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두려워할 분은 몸과 영혼을 지옥에 던져 버릴 수 있는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세상 권력자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영혼을 주관하시기 때문에 우리 육신을 죽이는 권력자는 두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세상의 권력자들을 너무 너무 두려워합니다. 비겁하게 되고 비굴하게 됩니다. 강한 사람 앞에서는 너무 약한 모습을 보이고, 약한 사람 앞에서는 군림 하려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 영신교회 교우들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기고만장하고, 교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하되 떨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러갈 때, “저 영혼이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질 텐데”하는 긍휼의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가야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누구 한사람 전도할 때, 앞에 서서 “너무 불쌍해, 쯧쯧... 불쌍해 죽겠어.”하다가는 뺨 맞습니다. 속으로만 생각하십시오.
  아무리 좋은 밍크코트 입어도 아무리 돈이 많아도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속으로 생각하십시오. 정중하고, 예절바른 모습으로 전도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니까 당당하게 전도 하실 수 있습니다.

넷째, 확신있는 전도자는 담대하게 예수님을 시인합니다.

  오늘 32절 33절에 보면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란 말씀이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많은 크리스천들은 늘 이런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복음 전하다가 붙잡혀 서 너 예수 믿느냐 안 믿느냐 물어서 안 믿는다고 하면 살려주고, 믿는다고 하면 죽어야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죽을 각오로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 ‘시인’(是認)입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늘 이런 위험에 부딪히곤 했습니다.

  6.25 전쟁 때 많은 성도들이 쓴 간증을 보면 그런 것이 많습니다. 공산당들이 교회를 포위하고, 예수님 사진을 앞에 놓고 사진에 침 뱉고 욕하고 짓밟고 지나가면 살려 주겠다고했습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들은 침 뱉고 예수 안 믿는다고 저주하고 지나갔지만, 믿음이 있는 분들은 죽으면 죽었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시인과 부인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시인 하십니까? 부인 하십니까?
  오늘날로 말하면 시인은 복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밝히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 믿으니 정말 좋더라. 내 생활이 온전한 것은 아니지만 당신은 예수 믿으면 훌륭한 크리스천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믿는 예수 당신도 믿으면 좋겠다는 것이 전도하는 것 아닙니까?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시인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부인하는 사람입니까?

  언젠가 말씀을 드린 기억이 납니다만, 여수 순천 반란 사건 때, 한 목사님이 심방 갔다 오다 공산당 청년에게 붙잡혀 어느 방앗간 지하실 깜깜한 곳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갇혀 있게 되었습니다.
  한 공산당 청년이 총을 가지고 들어와서 “이중에 예수쟁이 있으면 나와.”하고 소리쳤는데, 목사님 자신도 나갈 수 없었습니다. 목사님은 ‘우리 아들 장가라도 보내고 죽어야지.’하며 참았습니다. 그중에도 교인이 있을 것 같았는데, 죽을까봐 아무도 못나갔습니다. 그러자 공산당 청년이 지나갔습니다.
  얼마 후에 아까 그 공산당 청년이 두 번째 들어와서 “예수쟁이 있으면 나와!”했습니다. 목사님은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내가 이렇게 살아야 되나?’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80되신 노모님을 내가 죽으면 누가 돌보나? 내가 어떻게든 살아야지.’하고 생각 했습니다. 이번에도 그곳에 있는 아무도 못 나갔습니다.
  세 번째로 그 청년이 들어와서는 이번에는 총으로 가슴을 찌르며 “너 예수 믿지? 예수쟁이지?”하며 한 사람 한 사람 확인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목사님이 너무 괴로워서 이제는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더 이상 예수 모른다고 할 수 없어.’라고 생각하며, 자기에게 와서 총부리로 찌를 때, “제가 예수 믿습니다. 제가 목사입니다.”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아니 반동분자가 여기 있잖아! 나와”하며 끌고 나갔습니다. 끌려 나갈 때 너무 좋았답니다. ‘내가 부끄럽게 사느니 자랑스럽게 순교하는 것이 좋지’ 그렇게 생각하고, 죽을 각오를 했습니다. 그런데, 밖에 나가서 청년이 목사님에게 절을 꾸벅하더니 “목사님! 제 친구가 목사님 꼭 구해 달라고 해서 이렇게 구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아무도 안 나와서 제가 너무 걱정이 많았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자기를 살려주려고 왔는데도 예수 믿는다고 당당히 나가지 못한 자신의 모습이 너무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 예수쟁이라는 것을 시인하며 사십니까? 아니면 아닌척 하며 사십니까? 복음 전하며 사십니까? 벙어리로 사십니까?
  천국에 가면 예수를 시인한 자와 시인하지 못했던 자들로 구분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토마스 주남에게 “지상에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있지만, 그들이 다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야. 그들 중에 20%만 나를 기쁘게 해. 지상 교회 교인들의 20%, 목사 20%만 나를 기쁘게 해.”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주님이 기뻐하지 않는 이유가 뭐죠? 왜 80%는 주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 거죠?”하고 묻자 주님은 “그것은 그들이 내 말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야.”라 대답하셨답니다. 이 말씀은 80%의 교인들은 불순종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귀를 막고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성경과, 찬송을 들고 교회를 오가는 것에 만족하며 순종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을 슬프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대가 진정 복음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요? 우리 시대의 수많은 문제들 그것을 무엇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물론 교회가 이 세상에서 존경받고, 인정받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교회가 영적인 병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적인 환자가 환자들이 모여 있으니까 냄새가 나고, 고름이 터지고,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선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고, 성령의 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의 소망이 교회에 있는 것을 믿습니다. 아무리 교회가 존경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이 세상의 소망은 오직 교회 밖에 없습니다. 교회만이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고, 교회만이 세상을 희망으로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러시아의 문호이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솔제니친은 대학 다닐 때, 러시아 공산당 혁명사를 전공하고, 수십년 동안 수 백권의 책을 낼 정도로 박학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나중에 미국에 건너와서 1984년 템플턴 대학에서 이런 강연을 했습니다. “러시아 공산당 혁명이 일어나서 반세기동안 6천명이 넘는 인명이 죽어갔습니다. 가난에 시달리며, 비참하고 고통스런 삶을 살았습니다. 이 악마와 같은 공산주의 혁명, 이 비극이 왜 일어났을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오늘 공산당의 비극이 이 땅에 왔다는 것입니다. 오늘 사회의 문제는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억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닙니까?

  이제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되돌려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복음전도입니다. 이사야 11장은 메시아의 시대를 노래하는 책입니다. 그곳에 보면 메시아 시대가 오면,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이루어지면,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거한다고 했습니다.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거하는 평화로운 세상, 표범이 어린 염소와 누워있고, 송아지가 어린 사자와 함께 뒹구는 그런 평화의 세상이 올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세상이 이루어지려면 조건이 있습니다. 이사야 11장 9절에 보면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땅 끝까지 온 인류에게 복음이 증거 될 때만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완전한 주님의 나라로 우리를 이끄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메시아의 시대가 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세상에 충만할 때 평화의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축도 전에 부르는 고형원이란 사람이 작곡한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란 찬양이 있는데, 참 내용이 좋습니다.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기까지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아멘! -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민족이 다 구원을 얻기까지 오늘도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십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고자 재림의 때를 늦추고 계십니다.
  “주의 심장 가지고, 우리 이제 일어나 주 따르게 하소서” - 영혼을 사랑하는 주님의 심정, 주님이 심장을 가지고, 이제 일어나서 복음 전하게 해달라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세상 모든 육체가 주 영광 보도록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 - 모든 인간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런 시대가 오도록 우리를 부르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주의 손과 발이 되어 세상을 치유하며 주 섬기게 하소서”- 여러분과 제가 복음 전하는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이 바다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 가득하리라 물이 바다 덮음같이 물이 바다 덮음같이 물이 바다 덮음같이 보리라 그날에 주의 영광 가득한 세상 우리는 듣게 되리 온 세상 가득한 승리의 함성” - 온 인류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을 믿게 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릴 때 그 승리의 함성을 들으면서 우리는 오늘도 복음을 증거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물이 바다 덮음같이 온 세상에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한 그날을 소망하면서 오늘도 전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전도할까요? 두려워하지 마시고 성령을 의지하시고 전도해야 합니다. 내가 전도하는 것 같지만 내 안에 계신 성령이 전도하는 것입니다.

  19절, 20절을 읽어봅시다.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아멘
  공회에 끌려가고 임금들 앞에 끌려갔을 때, 무슨 말을 할까? 어떻게 변명할까?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 속에 계신 성령께서 미리 말씀하시고, 대신 말씀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자는 진정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을 의지하고 나가야 합니다.

  유명한 한상동 목사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분은 평양 산정현 교회를 섬기며 목회하던 유명한 목사님입니다. 일제 시대 때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여러 번 옥고를 치렀고, 해방 후엔 38선이 생겨 복음을 증거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증거하고, 신학교를 세우기 위해 월남하게 되었습니다. 사모님과 함께 38선을 넘어야 하는데, 38선길에 초소가 하나 서있는데, 그곳에 내무서원이 지키고 앉아있는 것이었습니다. 걸리면 큰일이라 사모님과 함께 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저 내무서원의 눈을 좀 가로막아 주옵소서. 내가 무사히 내려가서 복음전할 수 있도록 저 눈을 가려 주옵소서.”하고 기도하고, 사모님과 같이 초소 앞을 지나가는데, 초소의 문이 열려 있더랍니다. 안에서 두 사람이 두런두런 이야기 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지나가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부르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무사히 통과했다고 합니다. 무엇이 그렇게 했을까요? 성령이 그들의 눈을 막아주신 것입니다. 목사님은 그 내무서원들을 볼 수 있었지만, 그 내무서원들의 눈에는 한목사님 부부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은 선교사들에게 수도 없이 많이 듣는 간증입니다.

  제 3세계의 위험한 지역에서 선교하는 선교사가 버스를 타고 복음을 전하러 가는데, 검문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 선교사는 “내가 이곳에서 붙잡히면 추방당해서 복음전할 수 없어요. 오늘 영혼을 구원할 수없어요.”하고 성령께 기도 했습니다. 경찰이 들어와서 한 사람 한 사람 신분증을 검사하는데, 이 선교사님은 그냥 지나쳤습니다. 정망 놀라운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은 이렇게 역사하시고, 일하십니다. 우리 인간의 생각을 초월하시는 하나님! 여러분 인간의 생각으로 판단하지 마세요. 성령께서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그 일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국민일보에 실린 기사에 실렸던 이야기 입니다. 어떤 분이 시골에 가서 교회를 개척하고, 60평 성전을 아름답게 지어 하나님께 봉헌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꿈에 하나님께서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의 산(山)을 보여주더랍니다. 그래서 꿈에 본 곳을 찾아 가 보니, 바로 그 자리에 산삼이 있어, 20년 25년 된  산삼 17뿌리를 캤다고 합니다.

  성전건축! 이것을 누가 하시는 것입니까? 성령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하고자 하시면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그를 축복하십니다.

  여러분, 전도하는 사람은 성령을 의지하셔야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성령께 맡기십시오. 오늘도 성령께서 우리들의 삶을 잘되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축복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저주하시려고, 가난하게 만드시려고, 실패하게 만드시려고 우리를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축복하시고, 잘되게 하시려고, 복 주시려고 택하셨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성령의 역사 가운데, 아름다운 영혼 구원의 열매를 맺는 저와 여러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들과, 남편이 있지만, 아무리 똑똑하고 공부 잘하고, 훌륭하면 뭐합니까? 그가 영원히 지옥에 가서 고통당할 것을 생각한다면, 어떤 방법과 수단을 써서라도 그것을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 앞으로 인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주님의 뜻입니다.
오늘 주님을 시인하면서 복음전도자의 당당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영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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