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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의 장벽을 깨라 (엡 4: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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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장벽을 깨라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장 17절-24절)

이번 독일 월드컵을 위한 아시아 예선전에서 엊그제 우즈베키스탄과의 시합에서 경기 종료를 앞두고 다 지는 줄 알았는데, 한 골을 넣어 전 국민들의 마음을 흥분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그날 그 골을 넣은 선수가 우리 예수 잘 믿는 박 주영 이었습니다.
골을 넣고도 운동장에서 기도하는 모습은 참으로 눈물겨웠습니다.
한 골을 뺏긴 후에 얼마나 답답하였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만 구사일생으로 마지막 순간에 통쾌한 골이 터지니 마음의 막혔던 무엇이 한꺼번에 펑 뚫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참으로 통쾌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우리 은혜 받는 생활과 견주어 보았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늘 그렇게 통쾌한 기분으로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믿는다고 하면서도 가슴이 늘 답답한 채 교회에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초초하고 불안하고 무엇인가 기쁨이 없이, 마치 우리들이 골이 터지지 않는 축구를 보면서 느끼는 그런 기분으로 교회에 나오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오늘 가슴이 답답한 분들, 아무런 흥미도 없이 그날이 그날처럼 살아가는 분들에게 말씀의 골이 한방 터지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은혜를 사모하면서도 은혜를 받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것은 분명 내 마음의 문제라고 봅니다.
같은 <말씀>을 들으면서도 어떤 사람은 은혜를 받는데, 어떤 사람은 은혜를 받지 못했다면, 그것은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상태에 있습니다.

은혜를 받고 나가는 사람들은 그 얼굴에 표정이 달라집니다.
표정들이 밝아 보입니다.
그리고 눈을 마주치면서 인사를 하고 나갑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들도 있습니다.
아예 눈길조차 마주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앞만 보고 나갑니다.
인사를 해도 이쪽으로 얼굴을 돌리지 않고 나갑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으려면 먼저 마음에 있는 장벽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이것을 본문에는‘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버리고’라고 하였습니다.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의 마음’이 어떤 마음이라고 하였습니까?
그 밑에 보면‘술 취하고 방탕한 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술 취한 마음이 어떤 마음입니까?
술 취한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는 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술 없이 어떻게 살겠느냐?’
‘인생의 즐거움이 술에 있는데 그것을 버리고 살라고 한다면 무슨 재미에 살겠는가?’
그래서 지금도 술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분이 좋으면 좋아서 한잔하고, 기분이 나쁘면 나빠서 한잔하고, 그렇게 술에 취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그 마음속에 예수가 들어갈 여유가 없습니다.

마치 처음 예수님이 세상에 왔을 때 들어갈 방이 없어 마구간에서 탄생했던 것처럼, 오늘도 예수님을 영접할 마음의 방을 비어놓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니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과거의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버리지 못하고 있는 크리스천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믿는 사람들을 사도 바울은 <육체에 속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였습니다.
머리로는 예수를 영접했으나, 마음으로는 육신의 욕심을 따라 행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사람들인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아직도 한잔씩 하는 경우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남몰래 어둠의 속한 일들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마음에는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한 골 넣었을 때의 그 통쾌한 감격스러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통쾌한 기쁨으로 임하게 합니다.
죽을 사형수에게 살게 되었다는 기쁨과 같은 그런 기쁨입니다.

그래서 가장 무서운 적(敵)은 마음에 있는 장벽입니다.
마음속에 패한 사람은 현실에서도 여지없이 패합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꿈은 이룰 수 없습니다.
마음의 장벽을 깨뜨리지 못하면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격입니다.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로 뚫어져야 합니다.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의 마음을 깨뜨려 버려야 합니다.
그런 마음속에는 아무리 말씀이 뿌려져도 자랄 수 없습니다.
그 마음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너의 묶은 땅을 기경하라’고 하였습니다.(호10:12)
구습으로 굳어진 마음의 밭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깨뜨려 버려야 할 마음의 장벽은 무엇입니까?

1. 허망한 생각으로 차 있는 마음입니다. (17절)
‘이방인이 그 마음에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행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허망한 생각이란 노력은 하지 않고 일확천금을 바라는 마음,
남의 것을 속여서 빼앗으려는 마음,
부정직한 방법으로 이익을 보려는 마음,
친구까지도 이용하여 사기 치려는 마음,
이런 생각으로 차 있는 마음의 장벽을 깨야합니다.
성도가 왜 은혜 가운데서 성장하지 못하느냐?
모두 이런 허망한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속이기 쉬운 사람이 순진한 믿음 생활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어질고 마음착한 사람에게 허망한 사람들은 달라붙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을 합니다.
장사도 안 되는 가게를 잘 된다고 속여서 넘겨 팔아 버립니다.
쓰지 못할 것을 새것이라고 속여서 취하도록 합니다.
힘든 일은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은혜만 바라봅니다.
그런 허망한 마음의 장벽을 깨뜨려야 합니다.

2. 무지함과 불신으로 굳어진 마음입니다.(18절)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도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영적 무지함으로 굳어진 마음을 깨라는 말입니다.
은혜를 받지 못하는 이유를 보면 자신의 무지
함으로 굳어진 마음을 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불신으로 굳어진 마음 때문에 교회에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믿는 사람과 무슨 일을 함께 하다가 상처받으면, 그 사람의 마음은 굳어집니다. 
그 상처가 굳어 버리면 돌덩이보다 더 굳어집니다.
이 마음을 깨지 못하면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또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도들 간에 굳어진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 마음에는 은혜의 씨앗이 자라지 못합니다.
특히 교역자에게 불신의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물론 교역자들도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의 아닌 오해나, 편견이나, 추측으로 서로 골이 깊어진다면, 그것은 불행스러운 일입니다.
더욱이 교회의 일들을 자녀들 앞에서 부정적으로 말하거나, 교역자들에게 대하여 무책임한 말들을 가정에 주고받는 것처럼 불행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그런 가정이 은혜를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 교회를 누가 나가겠습니까?

3. 방탕으로 방임된 마음입니다.(19절)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 같이 배우지 아니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방탕으로 방임된 마음이란 자포자기한 마음입니다.
죄의 습관에 자기를 그대로 내 버려두고 있는 마음입니다.
그날그날을 방임 상태에서 지내는 삶을 의미합니다.
죄의 습관은 우리를 마약처럼 마비시킵니다.
도무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제일 불쌍한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회개할 수 없도록 굳어진 마음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마음은 스스로는 장벽을 깰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초 강수를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굳어진 마음이 스스로 돌이킬 수 없을 때, 세 가지 채찍으로 다스립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까지 인도해 가면서 쓴 채찍입니다.
첫째는, 전쟁이란 채찍이고, (총,칼,페허)
둘째는, 재난이란 채찍이고, (지진,홍수,흉년)
셋째는, 질병이란 채찍입니다. (병,사고,수술)
물론 이러한 채찍은 우리의 굳어진 마음을 무너뜨리는 초 강수의 하나님의 섭리의 채찍이지만, 그런 채찍을 받을 때 회개하면 그것이 도리어 은혜의 수단이 될 수 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준비해 놓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의 노예의 근성으로 굳어진 마음에서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럴 때 마다 하나님은 위의 세 가지 채찍으로 저들을 몰아갔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구습의 젖은 마음의 벽을 깨야 합니다.

우리 모두 6월을 맞이하면서, 우리 민족이 걸어온 과거사를 재조명하면서 굳어진 마음을 깨뜨려 버리는 이 한달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김이봉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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