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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 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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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이 시작되는 12절의 앞부분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간단한 말입니다.
그런데 내가 어떤 존재인가, 내가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가, 내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를  알려주면서 정신이 번쩍 들게 해주는  말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이 택하신 존재들입니다. 선택 받은 존재들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거룩한 존재들입니다. 구별된 존재들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내가 별안간 소중해 보이지 않습니까?
저는 이 말씀에 담긴 뜻이 마음에 강하게 와 닿는 순간, 숨이 막히는 것 같은 충격과 환희를 맛보았습니다.

내가 이런 존재라는 것을 알았으면 우리는 이런 존재답게 살기에 힘써야 합니다.
택함 받지 못한 존재들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구별 받지 못한 존재들, 거룩하지 못한 존재들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사랑은 곧 관심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관심권 밖에 있는 사람들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새사람으로 살아야합니다. 새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꼭 알아야 하고,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말 가운데 성화라는 말이 있습니다..
구원 받은 사람으로서 거룩해지기 위해서, 완전해지기 위해서 힘쓰는 삶, 이것을 성화라고 부릅니다.
성도의 삶을 자전거에 비교하면 구원은 자전거의 앞바퀴, 성화는 뒷바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화의 삶이 밀어주어야 자전거는 쓰러지지 않고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성화의 삶을 위해서는 페달을 밟는 수고가 있어야합니다.

오늘 본문은 새사람의 새 생활, 성화의 삶의 중요한 내용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가르쳐준다기보다 명령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12절을 보세요.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으라고 합니다.
13절을 보세요.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라고 합니다.
14절을 보세요. 사랑의 띠를 매라고 합니다.
15절을 보세요.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고 합니다.
“주장하게 하라”는 지배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분노, 증오, 시기, 이런 것들이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지 말고, 주님이 주시는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도록 힘쓰십시오.
16절을 보세요.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풍성하게 거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라고 하십니다.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지요.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라고 합니다.
17절 보세요. 무엇을 하든지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라고 합니다.
요즘 브랜드 산업이 점점 확대되고 있습니다.
브랜드 제품이 아니면 시장에 발을 붙이기 어렵다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 브랜드 산업체에 속해 있습니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일할 때 우리가 어떻게 불성실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거룩하고, 사랑 받는 사람에 합당한 삶, 새 생활, 성화의 삶을 살기에 힘쓰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이 제일 강조하고 있는 것은 감사입니다.

15절 끝부분을 보세요. 우리를 보고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16절 끝부분을 보세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하십니다.
담임목사는 매 주일, 예배를 시작하기 10분 전에 찬양대 연습실에 가서 찬양대원들을 위해 기도를 합니다. 찬양과 관계있는 성경 말씀을 하나 읽고 기도하는데 오늘은 이 16절을 읽었습니다. 예배에서 찬양대의 역할, 참 중요하지요.
그 때 종종 찬양이 입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신앙고백적인 찬양이 되게 해 달라는 뜻입니다.
본문은 무엇보다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양하라고 명령합니다.
찬양대원들,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찬양대원들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찬양할 때 그렇게 해야 합니다.

17절 끝부분을 보세요. 예수님을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오늘은 이 중요한 말씀이 강조하는 감사에 대해서 생각하는 가운데 은혜와 교훈을 얻기 원합니다.

먼저 묻습니다. 여러분, “감사”라는 말을 들을 때 어떤 생각을 갖게 됩니까?

어느 목사님의 설교집에서,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들이 많지만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말이 살아있는 말이 되도록 하는 것이라는 말을 읽었습니다.
사랑은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오늘 본문도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14절은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성도들은 사랑이라는 말을 들어도 감동을 느끼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 사랑이 실제로는 점점 약하거나 사라져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면 사랑이라는 말이 점점 힘을 잃습니다. 결국은 죽은 말이 됩니다.
아주 심한 경우에는 사전에서 이 말이 빠지게 됩니다.
아니면 사전에서 이 말의 풀이에 ‘고(古)’자가 붙게 됩니다.
‘이 말은 고어입니다. 예전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이런 뜻입니다.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들이 많지만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말이 살아있는 말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교적 오래 전에 나온 설교집에서 읽은 말입니다.
1980년대 초반, 한국교회 100년을 앞두고 한국교회가 제2세기를 맞아서 해야 할 일들을 주제로 한 설교집이었습니다.
그것이 지금도 기억되고 있는 것은 사랑이라는 말이 계속해서 더 힘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감사란 말도 지금 그렇게 되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다른 말들,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이런 말들은 한 번 나오는데 감사란 말은 왜 이렇게 여러 번 나오지? 균형이 맞지 않네!’ 이런 느낌을 갖지는 않았습니까?

제가 지금 ‘말이 힘을 잃으면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고 했는데 감사란 말이 실제로 그런 일을 겪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풍요한 생활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 가운데에 감사가 없었습니다.
감사를 그리스 말로 ‘유카레시티아’라고 하는데 이 말을 점점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말은 사라진 말이 되었습니다.
초대교회가 탄생했습니다.
성도들은 많은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심한 박해 가운데에서도 감사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이 마음상태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말이 없을까?’ 찾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쓰지 않던 ‘유카레시티아’라는 말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말을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말이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감사란 말이 산 말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감사란 말이 힘을 가진 말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16절 앞부분을 다시 보세요.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여기 “거하여”라는 말은 살아있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표준새번역성경」은 이 부분을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살아있게 하십시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의 삶 가운데 있는데, 무기력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창고 속에 들어가서 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순간순간 움직여야 합니다.
특별히 감사라는 말이 그렇게 되어야합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이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이 말씀이 우리의 삶 가운데 이뤄져야하는데 특히 감사란 말이 우리 가운데 살아 있고 활력이 있는 말이 되기 바랍니다.

설교를 준비할 때 먼저 본문을 택합니다.
그리고 그 본문을 여러 번 읽으면서 묵상합니다.
늘 체험하는 것인데 그렇게 하면 처음 본문을 택할 때와 토요일 쯤, 설교 원고를 쓸 때 본문을 통해서 받는 은혜가 다릅니다.
물론 토요일의 본문이 주는 은혜가 훨씬 큽니다.
토요일 밤은 설교 본문으로 정한 말씀을 통해 은혜 받는 밤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설교 원고를 쓰기가 아주 힘이 들어집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그 본문이, 또는 본문의 한 부분이 갑자기 커 보이는 것을 체험하는 일이 있습니다.
강한 음성으로 귀에 들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설교를 시작하면서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이 말씀에서 환희와 충격을 느꼈다고 했지요.
그렇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감사란 말이 여러분과 저에게 크게 보이고,  귀에 강하게 들리게 되기 바랍니다.

요즘 교육부에서 금요일마다 교사양성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와서 자기가 전공한 분야의  강의를 합니다.
참 좋은 프로그램입니다. 여러분, 이 기회를 많이 활용하세요.
그 분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저나 다른 교역자들도 아는 내용, 저나 다른 교역자들도 말할 수 있는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릅니다.
자기가 전공한 분야이기 때문에 자기가 말하는 내용에 대해 애정이 있습니다.
소신이 있습니다. 자신감이 있습니다.
‘이것은 꼭 알려주어야 하겠다.’는 사명감이 들어있습니다.
그 분야 전문가가 하는 이야기는 그냥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푹 익어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듣는 사람들에게 주는 효과가 다릅니다.
그 효과를 바라고 힘써 강사를 섭외하고 재정 지출을 감당하면서 외부 전문가들을 모셔오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에는 웨슬리를 전공한 학자가 와서 웨슬리에 대해서 강의를 했습니다.
제일 먼저 웨슬리의 선재적 은총(先在的恩寵)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선재적 은총은 이름 그대로 먼저 찾아오는 은총입니다.
선행적 은총(先行的恩寵)이라고도 합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선재적 은총은 이런 것입니다. 여기에 근거가 되는 성경 말씀은 어디어디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누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시작하겠지요.
그 분은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나도 어느 교회에서 중등부 교사를 하고 있는데 학생들, 가르쳐도 받아들이는 것 같지 않고, 말도 안 듣고, 툭하면 안 나오고 -그 교회에서는 최근에 중등부 학생들이 집단으로 출석거부를 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저 녀석들이 과연 구원의 복음을 받아들일 것인가, 가르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때때로 회의가 들다가도 웨슬리 목사님의 선재적 은총을 생각하고 주님이 그들에게 먼저 은총을 베푼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힘을 얻습니다. 

처음부터 적용입니다.
저는 거기까지만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금요일 밤에는 남자속회 인도자와 속장 교육과
금요심야합심기도회 준비가 있어서 일어서야했는데 일어서면서 보니까 그 강의를 듣는 교사들, ‘선재적 은총이 무엇이기에 저 분이 웨슬리 목사님의 선재적 은총의 이론에 힘을 내서 교사 일을 하고 있나?’ 솔깃해서, 열심히 듣고 있었습니다.
세미나실에서 나오면서 ‘전문가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이 안다는 점도 다릅니다.
더 다른 것은 그것이 몸에 푹 배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전문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에 푹 젖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에 감사가 푹 배어있기 바랍니다.
감사란 말에 대해 애정을 갖게 되기 바랍니다.
감사라는 말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나가서 감사에 대해 자신을 갖게 되기 바랍니다.
남에게 감동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되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이 들어있는 골로새서는 옥중서신 가운데 하나입니다.
바울 사도가 감옥에서 쓴 편지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감사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감사라는 말을 많이 쓴다는 것은 그 자신이 감사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의 시작 부분에도 감사라는 말이 나옵니다.
골로새서 1장 3절을 보세요.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저는 이 부분을 읽고 바울 서신들 가운데 시작부분에 감사라는 말이 들어 있는 성경이 몇 권인가 조사해 보았습니다.
바울 서신이 모두 열세 권인데 그 가운데 여섯 권이 시작 부분에 감사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여섯 권 가운데 세 권이 옥중서신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빌립보서 1장 3절,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빌레몬서 1장 4절,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그리고 조금 전에 읽어드린 골로새서 1장 3절의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말씀, 다 감옥에서 쓴 편지의 서두에 나오는 말들입니다.
바울은 감옥에서도 먼저 감사를 드릴만큼 감사에 젖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남자 속회 이번 주 공과의 제목이 ‘기도의 습관 만들기’입니다.  누가복음 22장 39절,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갔더니

이 말씀에서 시작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감람 산에서 기도하신 내용을 본문으로 삼아 예수님은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고 계셨다는 점을 말하고, 우리도 기도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는 속회 인도를 위한 보조교재를 만들어서 남자속회 인도자들과 속장님들에게 나누어 드리고 있는데 이번 주에는 거기에 다니엘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니엘 때 다리오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진다는 명령이 선포되었습니다.
다니엘서 6장 10절을 보면 다니엘은 이 명령이 왕의 이름으로 발표된 것을 알고서도 자기 집에 돌아가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에 하던 대로” 이 말은 다니엘이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습관을 가져야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감사하는 습관을 가져야합니다.
지금 다니엘의 이야기를 했는데 다니엘은 기도하는 습관과 함께 감사하는 습관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 말씀드린 다니엘서 6장 10절을 읽어드립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이 이 때  감사할 수 있는 처지였습니까?
죽게 되었는데, 사자 굴에 들어가게 된 판인데 하나님께 감사하였다는 것. 어이가 없어 보입니다.
다니엘은 무엇을 감사하였을까요?
이런 가운데에서도 기도할 수 있는 것을 감사하였을 것입니다.
또 자기가 그 명령을 두려워해서 신앙을 굽히지 않고 변함없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것을 감사하였을 것입니다.
죽더라도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을 믿으며 감사하였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자기를 보호하여 주실 것을 믿으며 미리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인데 맥추감사주일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한 해의 절반에 이르도록 잘 지켜주신 것을 감사하며, 아울러 그 해의 하반기를 위해 미리 감사드리는 주일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다니엘의 감사는 미리 감사였습니다.

오늘 맥추감사헌금 봉투의 감사내용 란에 ‘무엇이라고 쓸까?’ 생각하다가 ‘채워짐의 역사를 미리 감사합니다.’라고 썼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대성전을 채워주실 줄로 분명히 믿고 미리 감사드립니다.’ 이런 뜻입니다.

여러분 다니엘처럼 감사하는 습관을 갖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난 금요일 밤에 있었던 우즈베키스탄과의 축구경기에서 경기 종료 직전에 박주영 선수가 동점골을 터뜨렸습니다.
박주영 선수는 득점하고 나서 바로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고 감사 기도를 했습니다.
그 선수는 평소에도 늘 그렇게 하지요.
그러나 그 경기에서 득점은 너무 극적인 것 아니었습니까?
깜빡할 수도 있었는데 잊지 않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감사하는 강한 습관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텔레비전이 그 장면을 수십 번씩 방영했을 것입니다.
그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극적인 골인을 예수 잘 믿는 선수에게 허락하셨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자가 되면, 항상 감사하는 생활을 하면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고린도후서 4장 15절이 이 문제의 답을 줍니다.

이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은혜가 더하여집니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있는데,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데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맥추감사주일에 대해서는 지난 주일부터 주보를 통해서, 새벽기도회를 통해서, 수요예배를 통해서 직접, 간접으로 여러 번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난 금요심야합심기도회에서 합심기도 시간에 기도를 돕기 위해 송출된 연주 찬양들은 모두 감사찬양들이었습니다.
오늘 새벽기도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무엇보다도 맥추감사주일은 성경에 명시된, 성서적인 근거를 갖고 있는 절기라는 것을 강하게 말씀드렸습니다.

맥추감사주일, 중요한 절기입니다.
오늘은 연휴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났습니다.
지난 금요심야합심기도회에는 이 때문에 서울에서 오시는 분들이 길이 막혀 많이 고생했습니다.
해외로 떠난 분들도 많다고 합니다.
인터넷 뉴스를 보니까 기사 제목을 ‘황금연휴, 해외로 야외로’라고 잡았더군요.
‘나도 떠나고 싶었지만, 주변에서 같이 가자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오늘이 주일이기 때문에, 특히 맥추감사주일이기 때문에 교회에 왔습니다.’ 하는 성도들이 많을 것입니다.
오늘 아침 남선교회 월례조찬기도회, 평소보다 많이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분들을 기억하시고 복 주실 것입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에 대한 부분적인 교훈들보다 감사에 대한 근본적인 교훈들을 생각하였습니다.
은혜와 교훈이 크기를 바랍니다.

본문 15절 이하를 다시 봅니다.

성도 여러분, 감사하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는 자가 되라는 것은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계속적인 의무입니다. 계속해서 감사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더 큰 은혜를 받으시고.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리시고,
하나님이 베푸시는 보호와 인도와 복을 를 받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관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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