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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현대인의 여리고 (수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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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동물과는 달리 이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 이상을 현실화하려고 하는 실제적인 노력이 있는데 여기에는 세 가지 차원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아예 이상이 없는 사람입니다. 실패를 거듭하면서 이상이 물거품이 되고나면 더 이상을 또 다른 이상을 가질 엄두를 못 내고 두려워서 그냥 되는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는 이상과 현실을 별개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어차피 이루지 못할 소원이니 생각이나 하고 살자하여 철저하게 이상은 어디까지나 이상이요, 현실은 현실대로 따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이런 말을 합니다.“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마라.”고 했다고...그러나 가끔은 우리의 생각을 달리할 필요가 있습니다.“못 올라갈 나무라면 쳐다보기라도 해라”그래야 희망이 있습니다. 쳐다도 안 본다면 오를 마음조차 먹어보지 못하고 맙니다. 쳐다보아야 언젠가는 오를 때가 있는 법입니다. 흔히 너무도 현실에만 집착한 나머지 아예 이상을 포기해 버리거나 아니면 이상을 무지개 보듯 멀리 두고 마는 잘못을 저지릅니다. 세 번째는 이상을 반드시 현실로 옮기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두 가지의 스타일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 현실화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있는 지혜와 노력과 힘, 인맥과 심지어는 폭력까지도 서슴없이 사용합니다. 그러다가 이상은 고사하고 현실보다도 더 못한 상황에 빠져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상을 현실로 바꾸려는 두 번째 스타일은 이상을 바라고 나가는 사람입니다. 바라고 나아가되 은총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기다릴 줄 압니다. 무던히 기다립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 그 시간, 그 방법, 그 역사를 끝까지 기다려서 마침내 약속을 받고 그래서 그 성취를 보는 사람입니다. 바람직한 자세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하면 앞에 놓인 일들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특히 기다리는 인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끝까지 견디지 못해서 입니다. 때로는 환경이 우리를 인내하지 못하게 합니다. 때로는 인간관계가 우리의 삶을 실패로 몰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인생의 승리자가 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실패를 위해 사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숱한 실패를 경험하고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그 실패 속에 주저앉아 영원히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마는 그러나 대부분은 일어섭니다. 비록 또 다른 실패가 온다 할지라도 일어섭니다. 그리고는 최선을 다해 살아가려고 애씁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승리하는 최고의 비결은 최선입니다. 최선이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려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하지 못합니다. 최선을 다하는 속에서도 실패도 또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것, 이것이 최선이요 승리의 비결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문제가 있습니다. 승리를 향해 달려가는 우리들의 발걸음을 가로막고 소망을 희석시키는 장애물들이 언제나 우리 앞에 있다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문제입니다. 사업의 문제에도 그렇습니다. 가정의 문제에도 그렇습니다. 무엇인가 될 듯 하면서도 잘 안 되고, 금방이라도 이루어질 듯 하면서도 주춤하게 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심지어는 신앙생활에까지 이것이 찾아옵니다. 1년 내내 주일 한 번 범하지 않고 지켜야 하는 줄은 알고 있는데 꼭 한 두 번은 빠지게 만드는 일이 생기곤 합니다. 기쁨과 즐거움이 샘솟고 봉사하는 즐거움이 넘칠듯한데 이상하게 슬럼프가 찾아오곤 합니다. 이 모든 일들이 우리 인생의 장애물들이요, 넘어야할 벽들입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로막았던 여리고와 같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정복해야할 것들입니다. 그 너머에 예비 된 것들을 차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점령해야 할 여리고 성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입성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가나안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과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거대하게 가로막고 있는 여리고 라는 성을 반드시 넘어야 했습니다. 여리고를 무너뜨리지 못하고서는 그들이 결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들의 꿈도 펼칠 수가 없습니다. 자손만대 평화를 누리면서 사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리고의 문제는 그들의 여정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삶의 터전을 만들고 평안을 누리면서 살기위해서는 반드시 여리고를 정복해야만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그들에게는 여리고 군대와 맞서 싸울만한 군사도 없고, 전쟁을 치를만한 무기는커녕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여리고 성에는 힘 센 장수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수많은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장군들이 즐비한 곳이 여리고였습니다. 그들에게 여리고는 글자그대로<난공불락>의 성이었습니다. 반드시 정복해야 하지만 정복할 방법이 없는 너무나 큰 장벽이었습니다.

우리도 삶 속에서 얼마나 많은 여리고를 만나며 삽니까? 반드시 해결해야하지만 내 힘으로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인 것들을 만날 때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만나는 여리고 입니다. 막막한 장래 문제라는 여리고 앞에 서서 어쩔 몰라 하는 분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 여리고가 남편의 문제일수도 있고 자식의 문제일수도 있습니다. 사업의 여리고 앞에 눈물만 흘리는 분들도 계십니다. 또 하나 무서운 장벽은 자신에 대한 실망입니다. 나는 뭐가를 하고 싶은데 세상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버렸다는 자괴감이 살 희망을 막아버리는 여리고가 되고 맙니다. 아무리 기도를 해 보아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나에겐 너무나 큰 여리고 입니다. 이렇듯 여러 모양으로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정을 헤아릴만한 문제의 여리고가 우리에게도 있단 말입니다. 어떻게 넘어야할 것입니까? 이 여리고를 우리의 힘으로 넘어보려 애쓰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는 더욱 깊은 절망과 탈진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고 맙니다. 내가 이겨보려고 하고 넘어보려고 애써보지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결국에는 자포자기 앞에 무너지고 맙니다. 하지만 여러분, 놀라운 것은 아무리 큰 장벽과 같고 난공불락과 같은 여리고라도 하나님께서 하실 때는 단숨에 무너뜨립니다. 오늘 본문이 그랬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좌절하고 절망하고 낙심하고 포기하고자 했지만 하나님은 하셨습니다. 자, 그런데요 하나님이 하시는 데 정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실 수 있도록 우리들이 할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냥“알아서 해 주시겠지”하고 앉아만 있어서 될 일이 아니라 우리의 할 일이 있단 말씀입니다. 무슨 일을 해야 할까요?

먼저는, 하나님의 때를 따라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때로 우리는 너무나 급해서 하나님의 때보다 앞설 때가 있고, 그런가하면 하나님의 때를 믿지 못해서 화를 자초하기도 합니다. 시편130편 6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의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 하도다”. 아침을 기다리는 시간은 곧 밤입니다. 밤은 행동할 수 없는 때입니다. 아니, 밤은 행동이 없어야 하는 때입니다. 그래서 밤이란 답답합니다. 파수꾼에겐 두렵고 지루하기 그지없는 시간입니다.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에 아침이 절실히 기다려지는 시간이 밤입니다. 그 아침을 기다리는 밤의 파수꾼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반드시 밤이 지나야 아침이 오기 때문에 아무리 지루하고 길어도 기다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저는 될 수 있으면 밤에는 운전을 안 하려고 합니다. 시력이 좋지 않아서 밤이 되면 운전하기가 배로 힘이 듭니다. 그런데 정말 급해서 밤에 운전을 해야 할 때면 신경이 곤두서고 집중하기 위해서 얼마나 힘을 쏟는지 모릅니다. 역시 밤은 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그 때를 사람들이 못 기다려서 일을 벌이는데 주로 밤에 이루어지는 일은 역사를 그르치는 것이 많습니다. 밤에 일어나는 일치고 건설적인 일은 별로 없습니다. 모든 범죄가 그렇습니다. 주로 밤에 이루어집니다. 밤은 수용의 때입니다. 밤의 현실을 수용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아침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는 우리에게 기다림이라는 인내를 요구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주일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 마음속에는“아니 왜 일주일씩이나 기다려. 공격하려면 지금 하면 되지”하는 의구심 내지는 불만이 터질 만도 했을 것입니다. 왜 기다려야 하는지 이유도 모르는 채 일주일동안 기다린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유를 알고 기다리는 것은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얼마든지 기다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이유를 모르고 무작정 기다리는 것은 한 시간도 쉽지 않습니다. 단 몇 분도 기다리기가 힘든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지금이라도 부술 수 있는데 왜 며칠을 기다리라고 하는지 이스라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보세요. 중요한 것은 이들 중에 아무도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습니다. 숨을 죽이며 자기 개인적인 모든 일들도 접어두고 긴장한 가운데 하나님이 정하신 7일이 경과하기를 기다렸습니다. 왜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없었겠습니까? 답답하다고 말하고 싶고, 무작정 기다리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똑똑한 척 하고 싶은 사람이 왜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은 단 한사람도 그런 사람이 없이 침묵합니다. 이 침묵이 여리고 성을 점령할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여러분! 아직도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고, 앞길이 열리지 않았으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여호와의 손이 짧아서 구원하지 못함이 아니요 하나님의 능력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고, 하나님의 역사 하실 기회를 갖지 않고 계실 뿐입니다. 오히려 그럴 때일수록 숨을 죽이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와서 기도하고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때를 정해주시면서 여리고성을 점령하기 위해 실제적인 방법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언약궤를 앞세우고 성 주위를 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난공불락의 여리고를 점령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더 근본적인 얘기를 해 봅시다. 우리 인생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삶의 여리고 이전에 우리 생애에 주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떻게 살 것입니까? 우리는 예수 때문에 인간 된 사람들이요 예수 때문에 철든 인간들입니다. 예수 아니었다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삶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숱한 여리고 앞에 수 없이 무너지는 삶을 살았을 우리들입니다. 이것을 생각한다면 주님 없는 우리의 인생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내 주님 없인 난 못살아/ 내 주님 없인 안 돼/ 닻 없는 배처럼 흔들려/ 주님 없인 난 못살아/ 예수 오 예수/ 당신은 아는가/ 우리들의 주를/ 오 예수 오 예수-/ 내 주님 없인 난 못살아”이런 고백이 우리에게 있다면 오늘 우리 앞에 놓인 삶의 여리고가 아무리 높다 할지라도 주를 의지하는 그 고백으로 충분히 점령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여리고를 정복하는 마지막 방법을 성경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순종>이라고 하는 고귀한 말로 표현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본문을 보게 되면 하나님의 방법이 참으로 독특합니다. 6일 동안 소리 내지 않고 모든 백성이 여리고성 주위를 하루에 한 차례씩 돌게 했고 마지막 날은 7번을 돌게 했습니다. 그리고 다 돌고 난 후에 모두가 큰 소리로 외치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하나님의 이 구체적인 계획에 아무런 불평 없이 순종했고 그 결과 여리고 성은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돈 한 푼 들지 않고 단번에 아주 쉽게 여리고는 무너졌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설혹 지금 당장 하나님의 방법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순종하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방법은 언제나 정확하고 틀림없습니다.

요9장에 나오는 얘기 입니다마는 소경의 눈에 흙을 발라주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그 소경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그런 방법이었지만 그 말씀에 순종하여 그렇게 했더니 눈이 떠졌습니다.

엘리사가 문둥병을 고치려고 찾아온 나아만 장군에게 기도는 안 해주고 단지 요단강에 가서 7번 목욕하라고 명령했을 때 나아만 장군으로서는 자존심도 상하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순종하여 그렇게 했더니 문둥병이 깨끗해 졌습니다.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에서 주님으로부터 물통에 물을 가득 채우라는 명령을 받은 하인들. 그들 생각에 그 일이 너무 이상했지만 군소리하지 않고 순종했을 때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에게 정복해야하고 점령해야 할 삶의 여리고는 무엇입니까? 그 난공불락의 여리고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방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더디 응답되는 기도 속에서 오히려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앞서서 인도하시길 간구하며 침착함과 인내로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에 우리 삶의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철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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