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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름다운 성도에 대한 기대 (살전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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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살로니가는 사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중에 잠시 들러서 복음을 전했던 도시였습니다.  사도 바울 일행은 약 3주간 그 도시에 머무르면서 세 번의 안식일에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 일행을 핍박하고 학대했기 때문에 그들은 더 이상  머무르지 못하고, 정신없이 복음을 전하고 서둘러 떠났습니다. 베뢰아로 갔다가 고린도에 가서 오랫동안 머물면서 개척교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바울에게 한 가지 소식 들려왔습니다.
  “당신들 일행이 와서 3주 동안 복음을 전했는데, 지금 데살로니가에 교회가 세워지고, 참 아름다운 신앙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바울은 그 얘기를 들으니 참 반갑고 감격스러웠습니다. 정신없이 복음을 전하고는 떠나 왔는데 하나님께서 놀랍게 역사하셔서 데살로니가에 귀한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소식을 듣고 그 감격을 주체할 수 없어 붓을 들어 편지를 쓰고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발송합니다. 그 첫 번째 편지가 데살로니가전서,두 번째 편지가 데살로니가후서입니다.

  오늘 1절에 보니,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 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바울은 이 서신을 보내면서 서두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가 왜 감사할까요?

  2절, 3절 말씀 읽겠습니다.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아멘!

  데살로니가 교회만 생각하면 바울이 참 감격하고 감사합니다. 왜 감사합니까?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그들의 성숙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잠시 복음을 전했지만 그 복음의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3절에 보니, “너희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 때문에”라고 고백합니다. 
  그들은 믿음의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소망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성숙한 믿음입니다. 짧은 시간에 그들의 믿음이 아름답게 성장한 것을 생각하니 참 감사했습니다.

  바울이 두 번째 감사한 이유는 하나님의 선택하심 때문입니다.
  4절, 5절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아멘!

  바울은 이 데살로니가 도시 사람들을 하나님이 선택하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가서 말로 복음을 전했는데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하나님이 바꾸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이 그들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것을 능력과 확신으로 바꾸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고 성령의 도우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미 만세 전에 그들을 선택해 놓고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때가 되니까 사도바울 일행을 보내서 데살로니가에 복음을 전하고 그 복음이 꽃을 피우게 된 것입니다.

  어찌보면 지금 태신자를 작정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도 우연히 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만세 전에 택하시고 예정해 놓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말로 전하는 것 같지만, 성령께서 그것을 능력과 확신으로 바꾸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능력은 성령의 외적인 현상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확신이라는 것은 성령의 내적인 현상입니다. 성령이 함께하시면 이 내적인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바울의 일행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능력과 확신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때 데살로니가 지역의 많은 영혼들이 구원받는 기쁨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 번째로 바울이 감사한 것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환란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6절에 보니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라고 고백합니다.

  그들은 평탄하고 안락할 때, 평안할 때 복음을 들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환란과 핍박 속에 거했을 때, 바울 일행이 전해주는 복음을 성령의 기쁨으로 받아서 그들은 믿음을 키워갔다는 것입니다. 환란가운데서 이렇게  아름다운 믿음으로 성장한 것을 바울이 생각하니 참 감사했습니다.

  네 번째 바울이 감사한 이유는, 그들이 모든 믿는 자들의 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6절 중에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과 실라, 디모데의 아름다운 믿음의 본을 배웠습니다. 이들은 좋은 것을 배웠습니다. 신앙생활이란 것이 처음에는 흉내 내는 것입니다. 믿음이 좋은 분들을 흉내 내고 따라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나도 믿음으로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오늘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바울과 예수님을 본받은 자들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믿음이 성장했고 그들의 믿음이 7절에 보니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라고 했습니다. ‘본’이라는 것은 무엇 입니까? 선생님이 본을 뜨면 아이들이 본을 보고 만들기를 하고 작업을 하는 것처럼 본이라는 것은 모델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생긴지 얼마 안 되었지만 이 모든 마게도냐 지역, 아가야 지역에 모델이 되는 교회였습니다. 모든 교회의 본이 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얘기입니까! 이 얘기를 들은 바울의 가슴은 뭉클하고 감격스럽기 그지없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도한 영혼이 아름다운 믿음으로 성장해 가서,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고 존경하는 믿음의 사람이 된다면 이 얼마나 가슴 뿌듯한 일이겠습니까?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로 그런 교회가 되었습니다.

  다섯 번째로 바울이 감사한 것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의 소문이 각 처에 퍼졌기 때문입니다.

  8절 읽겠습니다.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 고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아멘.

  마게도냐의 수도는 데살로니가입니다. 아가야의 수도는 고린도입니다. 이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 믿음의 소문이 퍼져 갔습니다. 이 얘기를 들으니 내가 할 말이 없이 참 좋다, 그 이상 표현할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좋은 소문을 내는 교회가 있고, 또한 여러 가지 갈등과 분열 때문에 나쁜 소문, 스캔들을 내는 교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데살로니가 교회는 생긴지 얼마 안된 교회였지만 좋은 믿음의 소문을 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영신교회는 어떤 소문을 내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물론 요즘은 우리 교회가 건축의 소문을 내고 있습니다. 바램이 있다면 앞으로 영신교회가 건축을 완공하고 사랑이 많은 교회, 열심히 전도하는 교회, 비젼이 있는 교회로 소문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의 믿음의 삶 또한 어떤 소문을 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이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도 아름다운 향기로 소문나는 삶이길 축원합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할 때 또한 감사한 것은 그들의 변화 때문입니다.

  9절, 10절에 보니까 이들은 우상을 섬겼던 사람들인데 우상을 다 던져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살아계시고 참되고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 땅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보면서 신랑을 기다리는 정결한 신부처럼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며, 주님의 일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이 정도쯤 되니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자랑할 만 하지 않습니까! 바울이 복음을 전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렇게 성숙한 믿음으로 성장하고 소문난 교회로 발전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전도하는 목적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전도하는 이유는 이러한 기대가 있고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전도할 대상은 참 별 볼일 없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함으로 그를 예수 그리스도앞으로 인도할 때, "하나님이 그를 어떻게 사용하실까?" 하는 것이 우리의 기대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아름다운 기대를 가지고 전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영혼을 전도했을 때 하나님이 그를 위대하게 사용하셔서 많은 복음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그 분의 대에 복음이 영접 되었지만, 그 분의 후손을 통해 놀라운 일을 행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어릴 때 시골에 살면서, 여름성경학교 때 친구들 손에 잡혀서 교회 갔지만, 나로 인해서 우리 가정이 복음화 되고,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복음을 만나고 온 집안에 믿는 사람이 더 많게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소망과 기대가 우리 전도자에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한 2,3년 전에 우리 교회에 김 행씨란 분이 등록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연세대학교를 나오고, 민정당 연구위원, 조선일보 기자를 거쳐 정치에 뛰어 들어 정몽준 대통령 후보진영에서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대변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측이랑 단일화에 실패했습니다. 정치 생명의 큰 위기를 맞았고, 소위 망한 것입니다. 기대하던 것들이 다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그 분을 교회로 인도한 분이 바로 3부 성가대 지휘자로 계시는 양진석 집사님이십니다. 학교 동문이기도 하고, 평상시 잘 알아서 우리 영신교회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이후 잘 나오셨는데, 계속 출석하지는 못하셨습니다. 인도하신 양집사님이 회사 일로  한달씩 외국으로 출장가시면 모셔 오질 못했고, 본인도 길눈이 어두워서 몇 번을 왔어도 혼자 교회를 찾아오기는 어려웠다고 합니다. 또 모셔오더라도 양집사님이 지휘자시니까 예배도 따로  드려야 하고, 예배가 끝나도 이어지는 성가 연습 때문에 또 혼자이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연히 다른 분이 돌봐 드렸어야 했는데, 아쉽게도 당시에는 우리 교회가 양육 체계가 잘 되어 있지 않았기에 흡족하게 잘 돌봐드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한, 두 주 있다가 의류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그 때 온누리 교회에 다니는 한 분, 홍 권사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분이 선뜻 교회에 가자고 하시더랍니다.  처음 교회에 나와서는 어색하고 어려웠는데, 두 번째 제의를 받았고, 자기 집에 차를 보낸다고 하고, 또한 홍권사님의 얼굴이 자기 어머니 얼굴과 참 비슷해서 어머니를 만난 것 같아 자기도 모르게 약속을 하고는, 개봉에서 서빙고 온누리 교회 까지 다니기 시작했답니다. 이후 귀한 말씀을 듣고, 교회에 정착하고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고 합니다. 그분은 교회 나간 지 1년 만에 간증하게 되고, 로마에서 열리는 해외 유학생들을 위한 코스타(KOSTA) 집회에 가서 간증 강사로 서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청주대학교의 교수로 있고, 의류 사업도 하고, 또한 선교를 위한 여러 봉사에도 참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분의 간증이 기독교방송 ‘새롭게 하소서’에서 방송된 일이 있습니다.

  저는 그분을 전도한 양집사님의 전도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분이 처음으로 교회에 첫 발을 내딛은 것은 양집사님의 전도를 통해서이며, 이후 다른 교회에 가서 잘 정착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전도란 이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영혼을 억지로라도 끌고 와서 이 분위기 속에 적응시킬 때, 그분의 삶에 놀라운 변화와 영향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이 그런 기대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를 전도하더라도 그 한사람이 예수 믿는 것에만 소망을 갖지 말고, 한사람으로 인해서 훗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 돌아올 수 있는가를 생각하신다면, 그분들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과, 기도와 봉사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많은 양육 교사를 준비하고 훈련시켜서 우리교회에 초청되어오는 분들을 잘 정착시켜야겠다는 계획도 세우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초청 잔치를 일주일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 주간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한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께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믿음의 역사입니다.

  우리에게는 믿음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나의 구원자로 고백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내 모든 죄를 해결하신 것을 내가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으로 믿는 것이고, 믿음은 그 행위가 드러나야 합니다.
  역사라는 것은 공동번역으로 보면, 믿음의 활동 혹은 사역(Work)이라고 합니다. 믿는 사람은 믿는 표징이 드러나야 하며, 믿는 이의 행동, 믿는 이의 Action, 즉 활동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서 행함이 없으면 그것은 죽은 믿음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위해서 우리의 믿음을 표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복음 증거의 삶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역사입니다. 이 한 주간동안 복음을 위해서 여러분의 삶을 드리고, 여러분의 신앙을 고백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란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의 행위가 있는 자, 그 사람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활동, 믿음의 행위, 믿음의 열매를 주님은 요구하고 계십니다. 한 영혼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가지고, 여러분의 믿음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사랑의 수고입니다.

  사랑의 수고를 표현한다면, 어머니가 자녀를 잉태하고, 그 아이가 자라기까지 수고하는 것이며, 출산할 때 해산의 고통을 감당하는 것이 바로 사랑의 수고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그 출산의 고통을 견뎌낼 수 있겠습니까? 내 자녀이기 때문에 그 고통을 능히 감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출산하면 끝납니까? 그 아이를 키워야합니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젖을 먹이고, 돌봐주고, 병원에 데려가고....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것이 다 우리가 감내해야할 사랑의 수고 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데살로니가전서 2장에도 유모가 자기 자녀를 돌보듯이 영혼들을 돌봐야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수고입니다.
  특별히 사랑에는 수고와 희생과 봉사가 따라옵니다. 희생이 따르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자녀들을 위해서 희생하지 않는 부모의 사랑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부부간에도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위해서 희생하기를 거절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하나의 질 낮은 에로스적 성적 욕망의 만남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희생과 수고와 봉사를 요구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수고라는 것은 복음전도를 위한 희생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라고 했고, 15장 58절에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수고”라는 말은 “복음을 위한 수고”입니다. 주님은 이 사랑을 위한 수고를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한 주 전, 휴먼원정대가 에베레스트산 8750m지점까지 올라가 시신 한구를 수거한 이야기가 기사로 실렸습니다.  그 기사의 내용은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작년 5월에 계명 대학교의 산악팀이 에베레스트산을 등반했는데, 그만 조난을 당해서 다섯명 중 세명은 실종되고 두명만 돌아왔습니다.
  그 때 죽은 사람 중 한사람이 박무택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와 매우 친한 엄홍길이란 산악인은 친구, 박무택씨를 꼭 데려오기로 약속했었다고 합니다.
  그는 구조팀을 만들어서 77일간의 여행 끝에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이르게 되었고, 고인이 된 박무택씨의 시신을 얼음 속에서 발견했습니다. 박무택씨의 몸무게는 77kg인데, 얼음이 붙어 시신의 무게는 무려 100kg이상이 나갔다고 합니다. 시신을 100m 옮기는데, 2시간이 걸려서 도저히 8000m 아래로 시신을 인양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결국 아래 내려와서 화장하려는 계획을 취소하고, 적당한 곳에 돌을 쌓아서 무덤을 만들어 주고 하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었어도 가족들의 고마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들의 생명을 걸고 한 시신을 수습하고자 먼 길을 갔습니다. 결국 사실상 여기 있던 시신을 조금 옮겨놓은 것에 불과 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노고에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허나 죽은 시신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긴다고 세상이 달라질 것이 무엇입니까? 하지만, 그것도 참 귀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전도한다는 것은 죽은 사람을 이 곳에서 저 곳으로 옮기는 것 만큼, 그 이상의 큰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그야말로 생명을 구조하는 것입니다. 지옥으로 떨어질 한 생명을 주님께 인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고귀하고 가치 있는 일이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77일 동안 생명을 걸고 악천우 속에서 얼음 암벽을 등반해서 8000m까지 올라가서 죽은 시신을 내려오는 그런 각오를 가지고 우리가 한 영혼을 향해서 나갈 수 있다면, 전도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그것에 성령님의 역사를 의지한다면, 전도는 분명 가능한 일이고, 성공적이 될 수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이 일을 감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한 주간 동안 물질을 투자하고, 시간을 내고, 식사도 함께 하고, 전화도 하십시오. 이렇게 마음껏 사랑의 수고를 하셔서 귀한 생명의 열매를 거둘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한 주간 소망의 인내를 가져야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소망은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소망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 소망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가 한 영혼을 전도했을 때 우리는 언젠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주님은 우리를 행해서 뭐라 말씀하실까요? 여러분! 주님의 칭찬이 기대되지 않습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설 때, 주님에게 어떤 칭찬과 격려를 받을 수 있을지 기대되지 않습니까? 내가 전도해서 구원한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 품에 안기는 축복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기에 소망의 인내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재림할 그 날을 바라보며 우리는 오늘도 전도의 어려움을 능히 감당하고 나가야 할 것입니다. 낙심하고, 중단하고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 영혼들이 주님 앞에서 우리의 자랑거리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그 영혼을 향한 사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데살로니가전서 2장 19절, 20절 말씀에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란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우리가 주님 앞에 서게 되는데 내가 어려움 중에 전도해서 열매 맺은 데살로니가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 앞에서 나의 소망이요, 기쁨이요, 나의 자랑의 면류관이라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오늘 여러분들이 전도할 그 영혼들이 예수님 앞에 설 때에 우리의 자랑의 면류관이요, 소망이요, 기쁨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께 자랑할 것이 있습니까? 주님이 여러분에게 영광의 면류관을 주신다면 어떤 이유 때문이겠습니까? 우리가 전도하고, 우리가 사랑으로 양육하고 섬긴 영혼들로 인해서 주님께 칭찬받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데살로니가 전서 2장 4절에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란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음 전할 명령을 주셨습니다. 바울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전하는 일은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남은 한 주간 동안 다른 일은 조금 뒤로 하시고, 이번 한 주간은 영혼 구원을 위해서, 전도를 위해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리기 위해서 결단하시고, 믿음으로 복음 증거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저 영혼을 내게 맡기셨다는 확신을 가지고 나가서 담대하게 복음 전하시고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마십시오. 그 영혼을 위해서 사랑의 희생과 봉사를 하시고, 소망으로 기도하고 인내하십시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정말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영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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