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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권세 (눅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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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행동하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게 아닌데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일 경우는 더욱 혼란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내가 배우고 내가 알아왔던 것과는 다른 것을 말하고 가르친다 싶을 때는 더욱 혼란스럽습니다. 그럴 때 우리들은 어떻게 행동을 합니까?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어쫓으신 사건과 더불어 예수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시는 모습을 보게 된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백성들의 우두머리들이 예수를 없애려고 벼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있었기 때문에 어찌해야 할지 그 방도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로 다가가서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어떻게 대답을 하셨고 이를 통해서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시기하며 시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어느 날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기쁜 소식을 전하고 계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장로들과 함께 예수께 와서,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합니까? 누가 이런 권한을 당신에게 주었습니까? 어디 우리에게 말해 보십시오.”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서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물었던 것은 예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어쫓으신 일과 더불어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는 것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성전을 정결케 하는 일은 선지자들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또한 성전에서 가르치는 일 역시 선지자나 제사장들만이 가지는 권세였습니다. 일반 랍비들 즉 일반 선생들조차도 성전 안에서는 가르칠 수 없고 단지 성전 밖에서 각 마을의 회당에서만 가르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모든 일을 성전 안에서 행하셨습니다. 그래서 유대의 지도자들은 예수님께서 이렇게 행하시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갖고 예수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그리고 그런 권한이 있다면 그 권한을 누가 주었는지 묻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유대 지도자들이 이렇게 예수께 와서 묻는 것은 단순히 그 권한이 누구로부터 주어졌는지를 알고자 하는 마음 때문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를 계기로 해서 백성들 앞에서 예수를 잡아 죽일만한 증거를 잡으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주의 제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들으면서도 이런 마음이 우리 가운데 생길 수 있습니다. 말씀이 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단순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냥 넘어가겠는데 그 말씀이 나를 두고 하는 말처럼 들려지게 될 때 아니 마치 나를 비난하는 것처럼 들려지게 될 때 참으로 속상합니다. 더욱 말씀을 전하는 사람과 무언가 서먹서먹하고 거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아 목사님이 지금 나 들으라고 저런 말씀을 하시는 구나”
“그렇다면 지금 저 말씀을 주시는 이유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바로 세워주시고자 해서 주시는 말씀이로구나” 하고 아멘하고 받아들이면 듣는 사람에게도 큰 은혜가 되고 그를 계기로 해서 더욱 은혜로 나아갈 수 있는데 실상은 어떻습니까? 그런 말씀을 전하는 목사가 그렇게 밉게 느껴질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나를 사랑해서라기보다 나를 미워해서 나를 비난하기 위해서 저런 말씀을 주시는 거야 하는 마음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번 그런 마음이 들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어떤 말씀이 전해져도 전혀 들려지지를 않습니다. 마음에 와 닿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섭섭한 마음으로만 가득한 나머지 점점 은혜 밖으로만 겉돌게 되더란 말입니다.
교회의 나아가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을 은혜로 받고 감사함으로 따르면 좋겠지만 때로는 이게 아니지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마음으로부터 따른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힘들기만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오순절 이후 베드로와 사도들이 예루살렘 성에서 담대히 복음을 전할 때 대제사장들과 유대 지도자들이 시기심으로 가득하여 제자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둡니다.
그런데 밤에 주의 천사가 감옥 문을 열고 그들을 데리고 나와서,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남김없이 백성에게 전하여라”하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듣고, 그들은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칩니다. 그 때에 대제사장이 그의 지지자들과 더불어 와서, 의회와 이스라엘 사람의 원로들을 다 소집하고, 감옥으로 사람을 보내어 사도들을 데려오게 하였지만 경비원들이 감옥에 가서 보니, 사도들이 감옥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돌아와서, “감옥 문은 아주 단단히 잠겨 있고, 문마다 간수가 서 있는데, 문을 열어 보았더니,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고 보고합니다. 성전 경비 대장과 대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서 대체 이 일이 앞으로 어떻게 될까 하고, 사도들의 일로 당황하고 있는데 그 때에 어떤 사람이 와서, 그들에게 이릅니다. “보십시오. 여러분이 옥에 가둔 그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비대장이 경비원들과 같이 가서, 사도들을 데리고 왔지만 그들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봐 두려워서 폭력은 쓰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사도들을 데려다가 의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심문합니다.

“우리가 그대들에게 그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엄중히 명령하였거늘, 그대들은 그대들의 가르침을 온 예루살렘에 퍼뜨렸으니, 그대들은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하고 있소.”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합니다.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 조상의 하나님은 그대들이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살리셨습니다. 이분을 하나님께서 자기 오른쪽에 높이 올리시고, 영도자와 구주로 삼으셔서, 이스라엘이 회개를 하고, 죄 사함을 받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그들은 이 말을 듣고 격분하여, 사도들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런데 율법 교사로서 온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가말리엘이라는 바리새파 사람이 의회 가운데서 일어나서, 사도들을 잠깐 밖으로 내보내게 한 뒤에, 의회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람들을 어떻게 다룰지 조심하시오.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서, 자기를 위대한 인물이라고 선전하니, 약 사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를 따랐소. 그러나 그가 죽임을 당하니,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모두 다 흩어져 없어지고 말았소. 그 뒤에 인구조사를 할 때에, 갈릴리 사람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서, 자기를 뒤따라 반란을 일으키게 한 일이 있소. 그가 죽으니, 그를 따르던 사람들도 다 흩어지고 말았소. 그래서 지금 내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바는 이것이오. 이 사람들에게서 손을 떼고,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두시오. 이 사람들의 이 계획과 활동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면 망할 것이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면 여러분은 그것을 없애 버릴 수 없소. 도리어 여러분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봐 두렵소.”

그들은 그의 말을 옳게 여겨서 사도들을 불러다가 때린 뒤에,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명령하고서 놓아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들려지는 말씀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면 우리는 기쁨으로 그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바로 세워 가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어느 집에 들어갈 때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그래서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알맞으면, 너희가 비는 평화가 그 집에 있게 하고, 알맞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되돌아오게 하여라.” 말씀합니다.
그렇기에 어떤 역사든 아니면 어떤 말씀이든 믿음으로 내게 주시는 은혜의 말씀이요 역사로 받아들이면 모든 것이 내게 복이 되더란 말입니다. 하지만 이를 마음에 좋지 않게 여겨 따르지 않게 되면 자칫 하나님의 말씀과 계획과 역사를 내가 거절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에 참으로 조심해야 합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말씀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요 세우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쁨으로 말씀을 따르고 하나님의 역사의 현장에 함께 동참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십니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 물어 보겠으니, 나에게 대답해 보아라.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난 것이냐? 사람에게서 난 것이냐?”
예수님은 유대 지도자들의 질문에 대해 직접적인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대답에 앞서서 저들에게 질문을 한 가지 던집니다.
예수님께서 던지신 질문을 이런 뜻입니다. 만일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 난 것이라면 요한이 앞서서 증거 하였던 예수님의 모든 권한 역시 하늘로서 온 것임이 너무도 당연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유대지도자들은 뻔히 이 사실을 알고 있기에 하늘에서 났다고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들은 요한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늘로서 났다고 한다면 당장 비난이 쏟아질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에게서 났다고 하였다간 온 백성이 요한을 예언자로 믿고 있는데 그들이 돌로 자기들을 칠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났는지를 모른다고 대답합니다.

그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자 여기서 우리가 함께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지혜입니다. 유대 지도자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곧바로 “내 권한은 하늘로서 난 것”이라고 했다면 곧바로 “언제 하나님께서 너에게 그런 권한을 주셨느냐?”고 하면서 하나님을 모독하였다고 해서 잡아 가둘 것입니다. “사람에게서 난 것”이라고 대답한다면 이 역시 “아무 권한 없이 성전에서 장사꾼을 내어쫓고 또 가르쳤다”고 해서 성전 모독죄로 잡아 가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어느 대답도 직접 주시지를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들에게 동일한 질문을 먼저 던짐으로서 자신들의 질문에 스스로 대답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제 거꾸로 난처해진 것은 먼저 질문을 던졌던 그들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그들은 모른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들에게 어떤 도전이 올 때 누군가가 우리를 곤경에 빠뜨리려고 할 때 먼저 생각할 것은 결코 흥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먼저 흥분하면 지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흥분이 될수록 더욱 냉정해야 합니다. 목소리도 낮추어야 합니다. 대답도 서두를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한번 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인지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인지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다면 오히려 우리는 기쁨으로 그 일을 당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힘들고 피곤하고 지치겠지만 오히려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기를 위해 기도하면서 감당해야 할 것이요 사람으로 말미암았다면 전혀 두려워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상대방을 불쌍하게 여기고 그 심령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할 수 있기를 위해서 기도하면 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랑의 마음으로 가장 부드럽게 상대방을 대하는 것입니다. 말도 가장 온순하고 부드럽게 그리고 최대한 정중하게 하고, 표정도 부드럽게 말입니다. 물론 쉽지 않죠.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다스려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상대방을 불쌍히 여긴다면 오히려 우리에게 닥쳐오는 그 어떤 시련도 감사할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비둘기 같이 순결하고 뱀같이 지혜로워야 한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지혜로는 세상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로만 세상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세상의 간교함을 우리는 이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지켜주시고 하나님이 지혜를 주실 때만 우리가 세상을 이길 수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을 보세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을 두고 뭐라고 하셨습니까?
조용히 저들을 바라보시다가 잠시 허리를 굽혀 땅에다가 무언가를 쓰십니다. 그렇게 흥분된 마음들을 가라앉히고 난 다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서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리고는 무언가를 다시 땅에 쓰십니다.
예수님은 돌을 던지지 말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모세의 말처럼 돌을 던지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조건이 있는데 제일 먼저 돌로 치는 자는 죄가 없는 사람이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죄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어느 누구라서 나는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 모두를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기 위해서 저들을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땅에다가 무언가를 쓰셨던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지혜로운 말씀과 태도 앞에 그 누구도 돌을 던질 수가 없었습니다.
“여자여, 사람들은 어디에 있느냐? 너를 정죄한 사람이 하나도 없느냐?”
“주님,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서,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이렇게 예수님은 돌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었던 여인을 구하셨을 뿐 아니라 예수님 자신의 사랑도 보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지혜입니다.

나를 넘어뜨리려고 하며 다가오는 사람에게 이런 지혜와 사랑으로 대한다면 누가 더 이상 대적할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잡아죽이기 위해서 살기 등등하게 다가와 질문을 던지던 유대지도자들이 이제는 예수도 꼼짝없이 걸려들었다고 자신하던 순간에 예수님의 대답에 앞서서 던진 질문에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났는지를 모른다”고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예수님의 지혜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서 비겁한 놈들 같으니라고 왜 대답을 똑바로 하지 않느냐고 다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비웃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하셨고 유대지도자들은 꿀 먹을 벙어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대 지도자들이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아마 속으로는 몹시 분했을 것입니다. 이제야말로 예수를 잡았다 싶었는데 거꾸로 자기들이 할 말을 잃어버렸으니 말입니다. 물론 마음으로야 요한의 세례가 사람으로서 났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도무지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났다고 말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났다고 한다면 왜 그를 믿지 않았느냐는 비난과 더불어 요한이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에도 부족하다고 증거 했던 예수를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다고 해서 사람에게서 났다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왜요? 그들은 백성들의 눈이 무서웠습니다. 백성들의 귀가 무서웠습니다. 아니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는 백성들의 돌팔매질이 무서웠던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무서워합니까? 사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입니까? 진정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섬긴다고 하면 결코 사람을 두려워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무어라고 나를 모함하려고 해도 무어라고 내게 욕설을 퍼붓는다고 해도 속상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의 시선은 오직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안에서 당당하십시다. 그리고 예수님의 지혜를 배우십시다. 내 마음에 속상한 대로 상대방에게 퍼부어 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이 스스로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지혜 그것은 바로 사랑으로부터 나옵니다. 사랑의 주님으로부터 나옵니다. 이는 곧 상대방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이런 지혜와 사랑의 사람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압니다. 예수님이 무슨 권한으로 성전에서 장사꾼을 내어쫓았고 또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고 있는지 말입니다. 하지만 유대 지도자들은 그런 예수님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참 진리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증거합니다. 세상에 예수님 외에 구원 얻을만한 다른 이름이 없다고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진리이십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는 우리이기에 참 진리되신 주님 구원의 반석이 되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지혜로 세상을 물리치고 이길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결코 진리가 아닌 것 때문에 마음 상하지 마십시오. 그것 때문에 목숨을 걸지 마십시오. 오직 주님만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사는 우리요 세상 일 때문에 진리를 잃어버리는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님이 자기를 시험하는 유대지도자들을 조용하고 차분한 말씀으로 물리치셨던 것처럼 우리 역시 차분한 마음으로 주님의 진리와 사랑을 배워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그 어떤 시험도 다 물리치고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홍인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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