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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향기로운 예배를 드립시다 (민2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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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예배를 드립시다 (민28:1-8)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는 기뻐하시는 예배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으신 예배가 있습니다. 사1:11-12을 보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하시면서 14절에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마음과 정성을 다해 일천번제를 드린 솔로몬에게 여호와께서는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고 너는 말하라고 하셧습니다. 하나님게서 기뻐 받으신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여 하나님께 고역이 되지 않고 받으시기에 기뻐하실 향기로운 예배를 드릴까요? 우리는 그 진리를 본문의 번제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번제란 짐승을 잡아 태워 드리는 제사인데 우리는 번제에 대한 교훈을 통해서 향기로운 예배를 드리는 법을 알 수 있습니다.

향기로운 예배를 어떻게 드리는 것일까요?

1.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2절에 "나의 예물, 나의 식물, 나의 향기로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번제란 나는 물론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시편 50:10-12을 보면 "삼림의 들짐승, 천산의 생축, 산의 새들, 들의 짐승,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다 내 것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왕이었던 다윗은 역대상 29:11-14에서 "권능도 영광도 이기는 것도 위엄도 천지에 있는 것도 다 주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4:8에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주의 것이라고 응답했습니다.

왜 모든 것이 주의 것입니까? 창세기 1:1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내가 주의 것입니까? 그것은 주님이 나를 아담 안에서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영원히 지옥갈 수밖에 없는데 피로 사셔서 죄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드리는 모든 것도 다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을 드린다는 기쁜 마음을 가져야 향기로운 제사가 됩니다. 그래서 역대상 29:14에서 다윗 왕은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 몸과 마음을 세상에 두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전심으로 드려야 합니다.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졸며 드려서도 안 됩니다. 마음으로만 드려서도 안 됩니다. 몸과 마음과 목청을 다해 드려야 한비다. 이것이 신령한 의미에서 일천 번제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기뻐하시고 솔로몬에게 나타나 말씀하시듯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다 허락해 주십니다.

2. 향기로운 예배는 정한 예배입니다.

2절에 "너희가 그 정한 시기에 삼가 내게 드릴찌니라"고 했고, 3절에서는 "매일 드리라"고 했고, 4절에서는 "아침에 드리고 해질 때 드리라"고 했습니다. 다니엘도 하루 세 번 정한 시간에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제사는 사람이 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셨습니다. 여기 매일 조석으로 드리는 상번제는 우리 일상 전체가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다른 예배도 향기로운 제사가 되려면 내 맘대로 드려서는 안 됩니다. 시간 나면 드리고 바쁘면 안 드려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를 제쳐놓고 다른 일을 하는 것도 안 됩니다. 틈나면 예배드리고 틈나지 않으면 예배를 빠져서도 안 됩니다. 내 맘대로 정하고 내 맘대로 폐지할 수 없습니다.

예배라는 단어의 뜻이 여러 가지입니다만 그 중에 노예나 종이 주인을 섬길 때 "절하다, 몸을 굽히다, 엎드리다, 입 맞추다"라는 뜻으로 사용했습니다. 종이 주인의 계획이나 일정을 짜는 법은 없습니다. 주인이 종의 일정을 정하고, 할 일을 정하고 감독합니다. 예배를 받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예배를 마음대로 바꾸고 조정할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향기로운 예배를 드리려면 정한 시간에 꼭 드려야 합니다.

3. 향기로운 예배는 희생하는 예배입니다.

본문 2, 6, 8, 13, 24, 27절과 29:2, 6, 8절을 보면 "향기로운"이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무려 아홉 번이나 향기로운 제사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본문의 경우는 제물을 태워서 드릴 때 나는 냄새를 향기롭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물을 태우는 냄새가 어떻게 향기로울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고기를 약간 구우면 향기롭지만 아주 태우면 역겨운 냄새가 납니다. 그런데 왜 제물 태우는 냄새를 향기롭다고 했을까요? 그것은 그 제물이 의미하는 그 희생을 향기롭다고 한 것입니다. 희생보다 더 진한 향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원래 향은 고통과 희생을 통해서 제조됩니다.

출애굽기 30:22-38을 보면 향을 만드는 방법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첫째 최고급 향품을 사용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30:23-24을 보면 상등 향품을 취하되 몰약 500세겔, 향기로운 육계 250세겔, 창포 250세겔, 계피 500세겔, 감람나무 기름 한 힌으로 향유를 만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향이나 기름 치고 고통 속에서 만들어지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모두 고열에서 굽거나 짜야 향내가 나거나 고소합니다.

이처럼 자신을 태우고 희생해야 향기로운 예배가 됩니다. 자기 할 일 다 하고, 자기 갈 곳 다가고, 자기 쓸 것 다 쓰고 남은 찌꺼기로 예배하는 것은 향기로운 예배가 되기 어렵습니다. 자기 시간과 물질과 노력과 재능을 드리는 예배가 향기로운 예배인 것입니다. 농번기에 주일성수 희생정신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희생을 보십니다.
주 5일 근무제가 실시되면서 도시교회에서는 예배의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습니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자유시간이 많아지니 좋지만 주 5일 근무제 때문에 교회를 멀리하고, 예배를 소홀히 하고, 신앙을 망가뜨리는 일이 일어나서 안 됩니다. 아무리 바빠도 피곤해도 무슨 일하기 좋은 시간대여도 다 희생하고 그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4. 향기로운 예배는 지정된 장소에서 드렸습니다.

7절을 보면 "거룩한 곳에서 드리라"고 했습니다. 신구약의 장소 개념은 서로 다릅니다. 구약에서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드렸지만 신약에서는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산에서도 말고 어디서든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면 됩니다. 그러나 구약의 장소가 교회 예배의 원리는 가르쳐 주고 있다고 봅니다. 정규 예배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곳에 나와서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탄절이 되면 동방박사 얘기를 하곤 합니다. 그들이 만일 이상한 별을 연구하다가 메시야가 동방 베들레헴 마을에 나셨다는 사실을 알고 멀고 험한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 경배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택배로 보냈다든지 속달로 보냈다든지 인편에 보냈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온전한 경배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마음의 표시일 뿐 온전한 경배는 될 수 없습니다.

예배를 히브리어로는 「아보다」라고 하고 헬라어로는 「라트레이아」라고 합니다. 그 뜻은 종이 주인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엎드려 일하는 자세를 가리킵니다. 영어로는 예배를 워십 서비스(Worship Service)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곧 예배입니다. 예배는 서비스입니다. 예배를 소홀히 하는 것은 섬김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조선시대 왕들의 평균 수명은 47세였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단명의 원인이 있겠지만 빼놓을 수 없는 원인은 운동부족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문명의 발달로 왕 같이 편리하게 살다 보니 집에서 TV를 바라보며 예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멀든 가깝든 자기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국민소득에 따라 운동 종목도 달라진다고 합니다. 지금 걷기 운동이 유행인데 걷기 운동은 1만 불 시대가 되어야 유행하는 운동입니다. 그만큼 여유 있다 보니 몸 움직이는 일이 적어 다이어트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2만 불 3만 불 아니 10만 불 100만 불 시대가 와도 예배는 예배당에 나와서 드려야 합니다. 성경에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 열심히 모이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잘 살수록 점점 예배 횟수가 줄어들고 예배 시간도 줄이며 예배를 피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영원히 떠나겠다는 심산과 다를 바가 없는 일입니다. 예배를 소홀히 하는 것은 이 모든 것을 소홀히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복의 시간입니다. 예배에 철저하십시다. 예배를 우선순위에 둡시다. 예배에 최선을 다합시다. 몸과 마음을 바쳐 정성으로 예배합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향기로운 예배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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