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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을 만나는 4단계 (요4: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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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만나는 4단계 (요4:7-26)

이 시간에 “주님을 만나는 4단계”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을 만나고 싶으십니까? 진정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꿈에라도 주님을 만나보고 싶으실 것입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꿈에라도 예수님을 만나게 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려고 했을 때는 즉시 만나지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은 사마리아 수가성의 한 여인이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발견하는 데는 약 4단계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먼저, 여인은 한 유대인으로서 예수로 만났습니다.

9절에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했습니다.


이 말씀이 유대인으로서의 예수에 대한 만남입니다. 당시 사마리아 지역에 유대인이 나타난다는 것은 희귀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스라엘인이긴 하지만 이민족의 침략으로 혼혈족이 되어 유대인들에게는 동족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할 때에 방해했던 사람이 사마리아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과는 건널 수 없는 단절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예수님께서 물 좀 달라는 말씀에서 유대인으로서의 예수를 만납니다. 아마 예수님에게는 말의 억양이라든가 금방 알아볼 수 있는 몇 가지의 유대인의 특징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여인에게 있어서 이 만남은 별로 달갑지 않는 만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남자들에게서 배신당한 상처도 있고 혹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무시 받던 지역감정이 그의 마음에는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랬듯이 유대인 예수님과의 만남은 가장 싫은 만남이요, 의도적으로 피하고 싶은 만남이요, 상종하고 싶지 않았던 만남이요, 남녀 간의 만남이니 어색한 만남이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처음 예수님을 소개 받으면 자꾸 피하려고 합니다. 만나기 싫고 어색하고 나와 상관도 없고 왜 만나야 하는지 왜 예수님을 나에게 소개하는지 조금도 의미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 이야기를 하면 사마리아 여인이 그랬듯 너무나도 낯설고 자꾸 피하고만 싶어집니다. 그리고 물 좀 달라는 말이 그렇듯이 교회 나오라는 말이 무언가 요구하는 뜻한 느낌도 받고 그렇게도 부담스럽고 어색하게만 느껴집니다. 과거 우리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입니다. 아직도 이런 가운데 계시다면 더 깊이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여인은 더 나아가 예수님을 선생으로 만나게 됩니다.

이렇게 배타적인 여인에게 예수님께서는 10-11절에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하시자 여자가 “주여 물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대답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 예수님의 말씀에 보통 이야기가 아닌 무언가 신령한 것을 주는 가르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이해할 수는 없고 그래서 예수님을 향해서 주여 물을 길을 그릇이 없다고 했습니다. 여기 여자가 “주여”라고 했는데 이 주는 여자에게 있어서 자기 주인도 아니요 왕도 아니요 선생님이라는 의미의 말입니다. 그러나 존경하는 의미의 랍비가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말만 하니 좀 비아냥조의 말입니다. 그러나 선생으로 생각함에는 확실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여기던 사람이 말씀의 가르침을 받고 감화를 받으면서 예수님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최소한 예수님을 세계 4대 성인의 한 분이신 선생님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무언가 우리에게 손해 될 것이 없는 인생에 크게 도움이 되는 신령한 가르침을 주신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인생의 문제들을 묻고 싶고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되지 않는 상태입니다. 이것이 선생이신 예수로 만나는 만남입니다. 이 정도만 되어도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듣게 되는 마음의 문이 상당히 열린 상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그 정도 만남 가지고는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더 예수님을 깊이 만나야 합니다.

그러한 여인에게 예수님은 또 다른 분으로 나타나십니다.

그것은 바로 선지자로서의 예수님 모습입니다. 16-19절에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 되도다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그럴 수밖에요. 자기 인생의 과거를 모두 다 알고 계시니 선지자로 밖에는 더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저도 처음 예수 믿고 많은 신령한 분들이 저를 처음 만났지만 나를 다 알고 말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시구나! 이처럼 여인은 예수님이 보통 분이 아니시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여인은 예수님을 향해서 이렇게 고백하고 질문합니다.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상당히 영적인 일을 관심 갖고 질문을 합니다. 평소 궁금하던 것을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기사와 이적 신앙만 가지고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여인처럼 영적인 주제로 이야기한다고 신령해진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권능을 행하고 예리한 시각으로 진리를 논하고 이야기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런 높은 영적 수준에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마7:21-23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하셨습니다. 혹시 남이 갖지 못한 능력이 있고 남이 모르는 해박한 지식이 있다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오늘 말씀을 더 들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여인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예수님을 메시야로 만났다는 사실입니다.

25-30절에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선생으로 인정해 주는 여인에게 내가 바로 메시야다고 가르쳐 주셨고 그 순간 여인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기쁨을 견딜 수 없어서 성으로 달려가서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증거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나의 하나님 나의 구주로 믿으십니까? 대단히 귀한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요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 나의 구주요 나의 왕이신 것을 믿을지라도 여인처럼 감격이 넘치는 데까지 나간 사람과는 영적인 수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만났지만 더 깊이 만나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정말 감격이 아니고는 말할 수 없고 자랑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그런 예수님으로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정말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알고 체험하고 나면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좋다는 것도 배설물처럼 여기고 예수를 아는 것을 가장 고상한 것으로 여깁니다. 이렇게 기쁨에 넘친 여자의 말을 들은 모든 성내 사람들은 나와서 예수를 만나보고 다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되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처럼 더 깊이 만나시기 바랍니다. 유대인으로서의 예수님만이 아니라, 선생으로서의 예수님만이 아니라, 선지자로서의 예수님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나를 구원하신 생명의 구주이신 예수님, 더 나아가 예수님을 감사와 감격이 아니고는 생각할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사랑하시는 분으로 섬기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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