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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님의 나라 (마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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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하나님 백성이 가져야 할 신앙과 사상의 결정체인 주기도문의 핵심을 다루는 내용입니다. 핵심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나라이 임하옵시며” 곧 ‘하나님 나라의 도래’입니다. 기도의 최상의 목적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오히려 조롱받고 모독을 당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한 기도는 이러한 상황과 관련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 나라’라는 표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을 두려워했던 유대인들을 일차적인 독자로 하고 있는 마태복음에서는 하나님 나라를 ‘하늘나라’로 표현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즉 이 기도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임하도록, 하나님께서 진정한 왕으로 여김을 받으시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은 언제나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아래 있습니다. 피조물은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주만물은 지금도 붙잡아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아니라면 한 순간에 무너질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통치는 ‘권능의 왕국’이라 부릅니다. 이 나라 속에는 사단의 반란도 있었고 인간의 타락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벗어난 독립적인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아래 이루어진 일입니다. 이러한 권능의 왕국은 언제든지 임하여 있습니다. 주님께서 기도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권능의 왕국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만 구성되어 참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은혜의 왕국’입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눈에 보이는 ‘지상왕국’으로 오해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되어 많은 민족들 위에 군림하면서 경제적인 풍요를 누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정치적인 해방이나 경제적인 풍요를 가져다주는 보이는 나라로 오해하는 일은 오늘날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이처럼 볼 수 있게 임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고 하셨습니다. 로마서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눈으로 보기에 잘 먹고 잘 마시는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안에 영적으로 임하는 나라입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라고 기도하는 것은 인간의 심령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분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하나님을 반역했던 인간의 심령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간구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복음이 전파되고 회심하는 일이 일어나도록, 사람들의 심령에 하나님께서 왕으로 임하셔서 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이 세상이 잘 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철저한 오해입니다. 성경은 날이 갈수록 세상은 점점 악해져서 결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리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기도해도 지상왕국의 유토피아는 건설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먼저 사람의 심령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심령의 세계에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속성인 의와 평강과 희락이 실현되게 합니다. 그 다음에는 심령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통치가 그 사람의 외적인 삶으로까지 우러나와서 다른 사람과 삶의 다른 영역들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확장되어집니다.

그러면 왜 주님께서는 우리의 간절한 필요나 소원을 아뢰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하라고 하셨을까요? 인간의 모든 불행은 인간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떠남으로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사단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삶을 거부했습니다. 창조주를 의존해서 살아야하는 피조물인 자신의 존재 위치를 망각했습니다. 교만해져서 하나님처럼 독립적인 존재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나면 무한히 자유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이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철저한 사단의 속임수였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했을 때, 아담은 즉시로 사단의 통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단이 심어주는 생각에 빠져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게 되었습니다. 죄에 빠지자 죄를 숨기고 자신조차 하나님 앞에 숨기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이라 생각했던 아내를 원망하며 범죄한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깨어졌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도 깨어졌습니다. 이처럼 사탄의 통치로 말미암아 가정에 불화가 생기고, 인간관계에 단절이 생기고, 온갖 슬픔과 아픔의 역사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단의 통치를 받자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하게 되었습니다. 전적으로 부패했다는 말은 부패의 정도가 심하다는 말이기 보다 인간의 전범위에 부패가 퍼졌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지성과 감성과 의지는 더 이상 하나님의 뜻에 바르게 반응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사단의 통치하에 있는 인간은 아무리 합리적으로 생각해도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순수한 감정으로 느껴도 하나님을 바르게 느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또한 아무리 도덕적인 의지로 노력해도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떠남으로 말미암은 비극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떠난 인간은 사단이 통치하는 대로 지성과 감성과 의지의 모든 기능을 동원해서 죄를 먹고 마시다가 결국에는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통치를 받는 사람들을 심판하시는 중에도 예정하신 사람들을 선택하셔서 당신님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들에게 약속을 주셔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갈망하게 하셨습니다.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을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때가되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오게 하셨습니다. 그 분을 통해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의 심령에 역사하는 마귀의 일이 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시작되었습니다. 사탄과 그 졸개인 귀신의 세력들은 쫓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사단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죽음의 권세가 무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아직 아니’ 완성되었습니다. 여전히 죽음의 잔재가 깨끗이 청산되지 않고 이 땅 가운데 남아 있습니다. 그 나라는 예수님의 재림 후에야 온전하게 완성 될 것입니다. 그렇게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를 ‘영광의 나라’라고 부릅니다. 영광의 나라가 완성되기까지 우리는 아직까지 미완성된 하나님의 나라, 확장중인 하나님 나라에 살고 있는 셈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있지만, 아직 완전한 통치를 받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이미 순종하는 측면이 있지만 아직 아니 순종하는 측면이 동시에 있습니다. 원수도 사랑하려는 의식적인 측면이 있지만, 원망하고 의심하고 미워하는 측면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을 소망하며 살지만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여전히 사랑합니다.

때때로 하나님을 잘 신뢰하던 사람도 한순간에 불신과 염려에 빠집니다. 불신과 염려는 그 뒤에 사단의 세력이 있어서, 그 세력에 한 번 사로잡히면 끊임없는 불신과 염려에 시달리게 됩니다. 하나님을 잘 섬긴 것에 대해서도 피해의식과 손해의식이 생깁니다. 이제는 말씀이 뭐라고 가르치던지 이기적인 욕망을 좇아 살고 싶어집니다. 현실걱정과 장래염려 등등 온갖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떠나면 그 마음에 의나 평강이나 희락은 없습니다. 심령에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못하면 인간관계에도 많은 삐걱거리는 문제들이 생겨납니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통치에서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에 대해 충분히 인식한다면 하나님의 통치를 불타는 마음으로 갈망할 것입니다. 매일 매순간 그분이 우리의 심령을 통치해주시도록 참으로 목매이게 간구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 자신을 점검해봅시다. 참으로 나의 심령과 삶에 하나님이 왕으로 좌정해 계십니까? 우리 기도의 핵심에는 우리 공동체와 가족과 이웃과 민족에 하나님의 통치를 갈망하는 갈망이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와 관계가 없는 기도들이라면 아무리 아름답게 포장할지라도 이기적인 욕망의 추구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불타는 마음으로 갈망하는 사람은 그 분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도 이루어지기를 간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 기도는 ‘하나님 뜻대로 하이소, 저는 관심 없습니다’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내게 두신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고 그 뜻이 나를 통해 실현되어지도록 은혜와 힘을 주십시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갈망하는 사람은 내게 두신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애쓰며, 그 분의 뜻에 순종하고자 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나라를 갈망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소원도 부족하고, 시간과 정열을 투자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 애쓰지 않을 것입니다. 그 뜻에 순종하려는 열정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무관심하면서 이 세상 나라에 관심을 두고 이 세상 사람들에 비해 뒤처지지 않는 정도의 먹고 마시는 삶을 이루고자 갈망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그를 높이는 사람은 이 땅에서 항상 고난과 아픔과 슬픔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니라”(잠 4:8)고 했습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하나님은 능력을 베푸십니다(대하 16:9).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높이시고 필요한 능력을 베푸십니다. 우리의 심령에 매순간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게 하시고, 이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들과 세상의 다른 영역들에도 하나님의 뜻이 확장되게 하시기를 간구합니다.  ♥ (최동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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