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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찾은자의 기쁨 (눅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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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마치 초등학교 시절에 소풍가는 날과 같은 심정입니다. 그동안 교대 근무하는 분들과 가게를 하거나, 주일날 부득이 출근을 하는 분들이 예배드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2부나 3부 예배를 드려야 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여건이 되지 않아 선뜻 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또한 막상 하려니 그리 쉽게 시작할 만큼 간단하지가 않아,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였는데 드디어 오늘 이렇게 3부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으니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초등학교 때 소풍갈 때 보면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항상 가는 곳이 일정하고, 도시락 이래봐야 김밥 굵게 말고, 달걀 몇 개 삶아가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그냥 설레고 좋았는데 오늘이 그런 기분입니다.


에베소서6:11-12에서 말씀하시기를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고 하였으니 우리의 신앙생할이 영적인 씨름 즉 전쟁인데, 이 전쟁이 영적으로 충만할 때에는 이기는데 그리 어렵지 않고 간단히 이길 수 있지만, 영적으로 충만하지 못할 때는 너무 어렵습니다. 한번 신앙이 떨어지면 좀체로 극복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이유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적인 어떤 힘으로는 안 되니까요! 그리고 마귀는 한번 승기를 잡으면 스스로 놓지를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살면서 현실이라는 벽이 얼마나 높고 두꺼운지, 불신가족들의 벽, 경제의 벽, 체면의 벽, 게으름의 벽·····, 이 벽들로 인하여 잃어버린 신앙을 회복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그 벽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 벽 앞에 어떤 이는 스스로 포기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아예 동화(同化)되어 즐기면서 살기도 하고, 어떤 이는 몸부림치다 안 되니까 속상해 하다가 완전히 신앙에서 떠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에 대한 우리 주님의 입장은 어떤 것일까요? 주님의 입장은 그 분의 말씀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며, 끝까지 찾을 것이고, 반드시 다 찾겠다.”라는 것이 주님의 입장입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의 심정을 그대로 토로해 놓은 내용의 비유입니다.

양은 우리들 즉 주님의 택한 자들을 말하고, 목자는 주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양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 중에 주님을 떠난 자들을 말합니다.

이 비유에서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첫째 주님은 잃어버린 자에 대해서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째 끝까지 찾아 나서서 반드시 찾는 다는 것이고, 셋째는 찾았을 때 그 기쁨이 굉장히 크다는 것입니다.

그 기쁨이 얼마나 큰지, 잃어버린 자 하나를 찾으면 회개할 것이 없는 천국에 의인 99사람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 보다 더 기쁘다.고 하십니다.

천국에서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99사람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기쁨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만약 말썽피우지 않고, 항상 부모님을 기쁘게만 하는 자녀가 둘만 있다고 해도 부모가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런데 천국에 온전한 사람99명이라면, 그들이 주님을 얼마나 기쁘시게 하겠습니까! 그들은 전혀 말썽을 피우지를 않고, 애를 먹이는 일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잃었던 한 영혼을 찾았을 때의 기쁨은 그들 99명으로 기뻐하는 것 보다 더 기쁘다 하시니 얼마나 큰 기쁨입니까! “예수님 기뻐 춤추시리 열방이 주께 돌아올 때!”

이것은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새신자 한 사람 등록하면 목회의 큰 보람을 느낍니다. 새신자 오지 않는 주일은 주님 앞에 큰 죄를 지은 것 같습니다. 감사하게도 저희 교회가 한주도 빠지지 않고 등록하는 새신자가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이 지역에 흑암의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기도하는 것도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는 자들에게 빛을 비추어 흑암의 세력에서 벗어나 주님께로 나아오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까! 이 일에 모두가 동참하여 주기를 원하지만, 그렇지 못하여 안타까울 때도 있지만,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일이기에 계속 할 것입니다. 마침내 성령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이 곳에 흑암의 세력을 물리치고, 흑암의 세력에 사로잡힌 하나님의 택한 자들이 이 성전으로 몰려오게 될 때 주님의 기쁨이 얼마나 크며, 우리의 기쁨도 클 줄 믿습니다.




임마누엘 칸트라는 신학자는 이 세상에 두 가지 가치를 말하였는데 하나는 목적 가치요. 다른 하나는 수단 가치입니다.

수단가치가 생활용품과 같이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라면, 목적가치는 그 자체가 목적으로서 대체 불가능한 절대적 가치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분명히 목적가치입니다. 인간의 생명의 가치를 대신 할만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재물이나 명예와 권세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 바로 인간의 생명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은 모두 인간의 행복과 편의를 위한 하나의 도구요, 수단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을 위해 인간이 희생되는 것은 모순이요, 가치의 전도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살자고 하는 일인데 죽을동, 살동 모르고 하다가, 실컷 해놓고 써보지도 못하고 죽어버리면 뭐합니까! 현실의 벽이 두껍기는 하지만 생명 없는 일을 한다면 그것이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영생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을 회복하는 일은 곧 절대적 가치인 생명을 얻는 일이기에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생명이 천하보다 더 소중하다고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온 세상을 주고도

맞바꿀 수 없을 만큼 귀한 존재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물건은 가격을 매길 수 있지만, 사람은 가격을 매길 수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거룩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가치를 묻는다면 대답은 "인간은 존엄하다." 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천하보다 귀한 존재입니다. 전도는 이렇게 소중한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이 지구상에 있는 재산은 시가로 얼마나 될까요... 인간의 생명, 한 영혼의 가치는 이보다도 더 큽니다. 그래서 천하를 주고도 한 영혼과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의과대학에서 교수가 학생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한 부부가 있는데, 남편은 매독에 걸려있고, 아내는 심한 폐결핵에 걸려있다. 이 가정에는 아이들이 넷 있는데, 하나는 며칠 전에 병으로 죽었고, 남은 아이들도 결핵으로 누워 살아날 것 같지 않았다. 이 부인은 현재 임신 중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러자 한 학생이 대뜸 소리쳤습니다. "낙태수술을 해야 합니다." 교수가 말했습니다. "자네는 방금 베토벤을 죽였네."

이 불행한 상황에서 다섯 번째 아이로 태어난 사람이 바로 베토벤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매독에 걸려있고, 4남매 가운데 하나는 이미 죽었고, 셋은 결핵에 걸려 살 희망이 없는데, 폐결핵의 중증인 어머니는 임신을 했습니다. 오늘의 의료적 판단으로는 낙태해야 한다고 결정 내릴지도 모를 그 아이가 음악의 성자 베토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 한 영혼을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우리 인간은 눈에 보이는 대로 함부로 판단하고, 인간 지식을 너무 과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쉽게 포기하기도 하고, 너무 쉽게 사람들을 정죄하기도 합니다.

모든 영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영혼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크리스챤은 이 일에 부름 받았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한 영혼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본문에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기뻐하는 비유를 하셨고 이어서 열 드라크마 중에 한 드라크마를 잃었다가 찾으므로 기뻐하는 내용을 말씀하셨고 이어서 잃어버린 둘째아들 즉 탕자가 돌아왔을 때, 살진 송아지를 잡고 이웃을 초청하여 기뻐하며 잔치하는 아버지의 내용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두가 한 영혼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심정을 그대로 토로해 놓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한 영혼 한 영혼을 주님께서 너무 사랑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아직도 방항하고 있는 영혼들도 주님은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사랑하고 계십니다.

내 영혼이 늘 주님 곁을 떠나지 아니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고,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일에 열심을 내어 그토록 찾으시는 주님을 기쁘시기 하는 자가 됩시다. (강재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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