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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듣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눅8: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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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서울 대방동에 있는 은곡교회에서 설교한 적이 있었다. 듣는 청중들의 자세가 너무 굳어 있어서 설교하기가 매우 힘들었던 경험이 있었다. 예배가 끝난 후에도 예배당을 나서는 성도들의 표정이 밝지 않았고 나 자신도 마음이 무거워짐을 느꼈다. 혹시 내가 설교를 너무 못했나? 실언을 했나? 그러나 함께 동행했던 우리 교우들의 응원에 큰 위로를 받았다.

어느 목사님이 열심히 설교를 하는데 교인 한 사람이 심하게 졸고 있었다. 민망해진 목사님이 옆에 있는 집사님에게 깨우라고 지시했다. 그때 이 집사님이 속으로 이렇게 투덜거렸다. “재우기는 목사님이 재워 놓고 왜 날더러 깨우라는 거야...” 왜냐하면 본인도 안 졸으려고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교시간에 교인들이 조는 이유에는 설교자의 책임도 있다. 그래서 주일날 설교에서 은혜를 끼치지 못하면 하루 종일 심기가 불편해진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설교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설교자가 예수님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능가할 설교자는 없다. 당시에 예수님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7:28-29,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마다 정신이 버쩍버쩍 났다. 감동을 받고 두려움마져 느끼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 가운데는 듣지 않고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늘 본문은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태도에 대하여 비유로 말씀하셨다. 4종류의 심령상태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다.

1)길가와 같은 심령상태
여기서 농부는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이고 씨앗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이다. 심령이 길가와 같은 사람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그 심령 속에 전혀 반응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것이다.
5절,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 버렸고...

이 사람은 지금 말씀을 듣기 위해 예배당에 나와 앉아 있는 사람이다. 실제로 듣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에게서 아무런 반응이 나타나고 있지 않다. 때때로 사람이 피곤하면 졸 수가 있다. 그러나 설교가 시작되기만 하면 상습적으로 조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아직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몸은 예배당에 나와서 말씀은 듣고 있지만 전혀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2)돌밭과 같은 심령상태
여기서 말하는 돌밭은 흙이 얇게 깔려 있고 밑에는 돌들이 많은 밭을 말한다. 이스라엘의 토양이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말씀을 듣는 자의 심령 상태가 돌밭과 같다는 말은 13절 말씀의 해석에 의하면 말씀을 들을 때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서 잠간 믿다가 시험에 드는 사람을 가리킨다.

영국의 유명한 교육가인 C.S 루이스가 쓴 [스쿠루테이프의 이야기]라는 책이 있는데 삼촌 악마가 조카 악마가 쓴 편지 형식의 재미 있는 글이다.
어느날 사회적으로 유명한 영국의 한 신사가 도서관에서 기독교서적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
“맞아, 내 인생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하나님 앞에 나아갈 준비를 해야지.”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면서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점심시간이 되었다. “배가 고프니 점심이나 우선 먹고 신앙에 대한 것은 나중에 생각해 보기로 하지..”
식당으로 갔다. 점심을 먹고 난 후에 배가 부르니 생각이 달라졌다.
“인생이 다 그런거지 뭐, 이 나이에 인생길을 바꾼다는 것도 쉽지 않고... 집에나 가자.”
그 노신사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오전에 도서관에서 기독교 서적을 읽고 받은 감명은 사라지고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그때 악마가 뒤에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이 설교를 듣고 또는 부흥회에 참석해서 감동과 도전을 받지만 그것이 며칠 가지 못한다. 다시 옛날의 습관으로 돌아가버리고 사소한 일로 인해 시험에 들고 믿음에서 떠나는 일들이 종종 있다. 이유는 그 심령이 돌밭과 같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렇다.

3)가시떨기 밭과 같은 심령상태
이 사람은 말씀을 듣고 어느 정도 신앙이 자란 상태에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신앙생활에서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세상 줄을 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심령상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다.
14절,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

이 사람에게는 3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근심 걱정이 많은 사람이요. 둘째는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요.셋째는 주의 일에 힘쓰기 보다는 노는 것을 더 좋아 하는 사람이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세속적인 그리스도인을 가리키는 것이다.

오늘날도 믿음이 자라지 못하고 양다리 걸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와 같은 사람은 자신의 영적인 삶 속에서 결코 열매맺는 풍성한 삶을 경험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4)옥토와 같은 심령상태
15절,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이와 같은 사람들의 특징은 3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1)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는다.
2)말씀을 듣고 순종한다.
3)인내한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1.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마귀의 공작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12절, 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구원을 얻지 못하도록 말씀을 빼앗아 가는 악한 영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복음의 말씀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귀로 듣고 마음으로 믿어 구원에 이르는 것이다. 마귀가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만들어 주어야 한다. 믿음이 없어도 나올 수만 있으면 데리고 나와야 한다. 아직 때가 안됐을 뿐이지 성령께서 그 마음에 역사하시면 눈도 열리고 귀도 열려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고 깨닫게 되는 날이 오게 될 줄로 믿는다.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 나오기 바란다.


2. 말씀을 듣고도 행치 않는 자는 시험에 잘 들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돌밭 상태에 있는 신자의 문제점은 말씀을 들을 때는 기쁨으로 듣지만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믿음으로 살려는 의지가 약하기 때문이다. 시험에 들지 않는 비결은 그 말씀을 잘 듣고, 마음에 새기고, 순종하는 의지가 필요하다.

깨닫는다는 말의 의미는 의지적 순종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말씀을 들을 때 나의 죄가 드러나게 된다. “내가 죄가 많구나!” 느끼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고, 죄를 발견했으면 그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돌을 파내는 작업이다. 나의 마음 밭에서 돌을 파내는 것이다. 큰 것도 있을 것이고 작은 것들도 있을 것이다. 돌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파내는 것이다. 죄는 나의 믿음의 뿌리를 내리는데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것이다.

말씀을 듣고 은혜는 받지만 자주 자주 시험에 들고 넘어진다면 자신의 심령 속에 돌들이 많이 있다는 증거이다. 내 안에 숨겨진 죄들이 무엇인가 찾아 내야 한다. 굳어진 나쁜 습관들 - 거짓말, 도벽, 음난한 행위, 방탕함, 술취함등과 영적인 나태함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발견 되는대로 파내는 수고를 해야 한다.

처음부터 옥토인 사람은 거의 없다. 지금의 성숙한 신앙인들도 계속해서 자신의 심령 속에 있는 크고 작은 자갈들을 파 내고 있으며 지난날에도 계속해서 그 작업을 쉬지 않고 해온 사람들이다. 그렇게 하면 시험에 들지 않고 믿음의 뿌리를 깊게 내릴 수 있게 된다.
롬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3. 말씀에 집중하지 않을 때 세상 것에 매이기가 쉽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요일2:15-16,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신자들 중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들이 누구인가?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 근심에 싸여 있는 사람들이다. 그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초등학교 어린 아들이 근심이 많다 - 학원비 걱정, 전기료 걱정, 병원비 걱정. 엄마 아빠 건강 걱정, 직장 걱정.
마6:30-32,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무 욕심부리지 말라.
약1:14-15,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근심을 주님께 맡기라. 그리고 욕심을 버리라. 내게 주신 은혜를 따라 자족할 줄 아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하면 귀가 열려서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리스도인들의 비극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하고 듣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4.말씀을 잘 받아 순종하는 자에게 풍성한 결실이 보장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험에 빠진 자나, 세상에 매여 있는 사람은 결코 다른 사람에게 복음의 말씀을 전할 수가 없다. 그러나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자신의 삶도 풍성해 질뿐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복을 받게 한다.
요15:7-8,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이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971년 7월30일 미국 우주인 어윈 대령이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했다.
“인간 역사의 최대의 날은 인간이 달에 도착한 날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신 날입니다.”

“내 인생에 있어서 최대의 날은 말씀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내 심령 가운데 오신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말씀이 핵심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무력한 신앙생활의 원인, 열매 없는 신앙생활의 원인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무관심과 교만 때문이다.

부동산, 땅값, 증권, 건강, 식도락에 대해서는 졸다가도 벌떡 일어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들으라면 맨 정신으로 있다가도 졸기 시작한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기 보다는 자기 지식과 경험으로 신앙생활하려고 한다. 신앙생활 그렇게 하면 망한다. 자세를 바꾸라.

하나로교회(백선기목사)를 방문했다가 큰 도전을 받았다. 같은 설교자의 입장에서 백목사보다 못할 것은 없다. 그러나 그 교회는 우리 교회와 달랐다. 별 것 아닌 말씀 가지고도 성도들은 아멘 아멘하면서 잘 받아 먹었다.

말씀을 듣는 자세가 인생을 좌우한다. 설교의 비판자나 감상자가 되지말고 열심히 듣는 옥토와 같은 심령이 되어 풍성한 열매가 맺혀지는 인생이 되길 축원한다.
(원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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