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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저러다가 죽지.... (요 2: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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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2:13-17)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요 2:13-17) 『[13] <예수께서 성전을 정결하게 하시다; 마21:12-13, 막11:15-17, 눅19:45-46> 유대 사람의 유월절이 가까워지자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는데, [14] 성전 뜰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과 환전상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상을 둘러 엎으셨다. [16] 비둘기 파는 사람에게는 "이것을 거둬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아라"하고 말씀하셨다. [17] 제자들은 c"주의 집을 생각하는 열정이 나를 삼킬 것이다"하고 기록된 성경 말씀을 기억하였다. (c. 시69:9)』

할렐루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자신을 드리는 우리 모두에게 오늘도 말씀 속에서 깨달음을 갖게 하시는 성령님의 임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 한 사람의 열정이 준 감동
지난달 29일, 큰 사건은 아니었지만 모든 일간신문에, 또 인터넷 뉴스에 일제히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소식이 실렸습니다.

이름은 김영갑.
“한 장의 사진에는 사진가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말해온 그는 1980년대 초반부터 제주도에 머물면서 섬의 외로움과 평화를 찍어 온 사진작가입니다. 2003년 12월 이명동사진상 특별상을 수상했으며 2005년 1월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회에는 이 갤러리 개관 이래 가장 많은 관람객이 다녀간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는 1982년, 스무살 나이에 김씨는 처음으로 제주도를 만났습니다. 제주도의 풍광에 반한 그는 3년후 제주도로 짐을 싸들고 내려와서 꼬박 20년간을 삽니다. 사랑하는 여인도 뿌리치고, 부모의 만류도 뿌리쳤습니다. 태풍이 부는 날은 토박이들은 집안에 꼭꼭 숨었지만 그는 바위에 몸을 칭칭 감고 벼랑 끝에 서서 태풍을 찍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미친 놈’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던 그에게 2001년부터 근위축성측삭경화증(일명 루게릭 병)이라는 병이 찾아 옵니다. 그는 거의 전신이 마비된 채 투병합니다.
그는 자신의 사진을 팔거나 전시회에 출품하는 것을 꺼렸답니다. “모두에게 인정받기보다 나 자신에게 인정받자. 다른 사람을 속일 수는 있어도 나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고 말하면서 말이죠.
그는 수십 개의 라면상자에 가득 채워진 필름을 유일한 유산으로 남겼는데 생전에 이를 모두 불살라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자신이 죽으면 그것들을 자신만큼 사랑하고 아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손가락을 움직일 힘만 있어도 사진을 찍겠다.”고 갈망해 오던 사진작가 김영갑(金永甲·47·사진)씨는 그렇게 살다가 지난 달 29일 오전에 숨을 거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삶에 애도의 마음을 보냈습니다. 그를 추모하는 사이트 www.dumoak.co.kr가 개설되기도 했습니다. 저도 지난 3월 2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그분의 사진전에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무엇이 그분의 힘들었던 삶에 박수를 보내게 하는 걸까요?
그것은 바로 <열정>입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좀 편하게 질문해 보고 싶습니다. 꼭 종교적인 대답을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뭔가 나를 와락~ 사로잡는 그 무엇인가 때문에 전율했던 적은 없었던가요?
그 일에 너무 미쳐 버려서 “이러다가 내가 죽지~....”하는 두려움마저 소름이 오싹 돋도록 느꼈던 적은 없었습니까?

■ 예수님의 낯선 표정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색다른 예수님의 모습을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평화로운 예수님, 인자한 웃음이 얼굴에 가득 찬 그분의 모습이 아닙니다.
성전을 정화하신 예수님의 사건은 저에게 그리 영감을 주지 못하는 익숙한 이야기였습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쫓아내신 그 이야기... 어렸을 때부터 교회학교 선생님들에게 숱하게 들었던 탓에 이젠 신선할 것도 없는 그 이야기... 바로 성전정화 사건의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제 마음을 쾅~ 하고 치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읽었던 말씀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이 구절을 공동번역 성경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17] 이 광경을 본 제자들의 머리에는 "하나님이시여, 하나님의 집을 아끼는 내 열정이 나를 불사르이다."하신 성서의 말씀이 떠올랐다.

이 구절은 시편 69:9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다시 공동번역 성서로 보면,

(시 69:9) 당신 집을 향한 내 열정이 나를 불사릅니다.

흔히 ‘산화(散花, 散華)한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말 그대로의 뜻은 꽃처럼 떨어진다라는 표현으로서 영어로는 heroic death 라고도 합니다. 곧 영웅적 죽음을 미화하여 의미하는 말로 쓰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는 부하들을 위하여 수류탄 위에 자기 몸을 던져 죽었던 강재규 소령을 말할 때에 꼭 사용되었던 표현이 ‘산화하셨다.’라는 표현이었습니다. 또, 기녀의 신분으로 우리나라를 짓밟은 왜적, 일본 장수를 유인해 진주 촉석루 의암바위에서 그를 껴안고 절벽 밑으로 떨어진 논개를 말할 때에도 빠짐없이 등장한 형용사가 바로 ‘산화’라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한 단어로 표현하려 할 때에 이 <산화>라는 표현도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그분은 33살의 나이에, 3년이라는 공적 생애를 정말 불꽃처럼 살다 가신 분입니다.
오늘 저는 이 성경 본문에서 예수님의 불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3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통해서 인류 구원이라는 위대한 역사를 이룰 수 있었는가?에 대한 의구심도 일부 풀리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보는 예수님의 얼굴은 우리가 자주 보던 모습과는 많이 다릅니다.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광기에 사로잡힌 예수님의 얼굴, 너무 한 곳에 집중한 나머지 다른 어떤 상황도, 분위기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한 점에만 온통 집중해 버린 열정의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그 표정... 저는 오늘 그 예수님의 얼굴을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얼마나 제자들은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슬며시 두려운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평소와는 너무나도 다른 그분의 모습 속에서 제자들은 낯선 감정마저 느꼈습니다. 제자들은 그 예수님의 열정을 보면서 속으로 구약의 시편의 말씀을 중얼 거렸습니다. 아까 인용했던 그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시 69:9) 당신 집을 향한 내 열정이 나를 불사릅니다.

우리 식으로 얘기 한다면.... “저러다 죽지...”라는 말로 번역해도 좋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맨날 그래왔던 건데...
하나님의 전, 교회를 향한 열정이 성전을 수라장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성경의 표현대로 하자면, 내어 쫓고, 돈을 쏟고, 상을 엎으시고, ‘여기서 가져 가라’라고 험상궂게 외쳤습니다. 더욱 더 경악스러운 것은 노끈으로 채찍까지 만들어서 물리적인 위협까지 가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한가지 의구심을 가집니다. 왜 백성들이나,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이 물리적인 힘으로 예수님을 막지 못했는가? 라는 것입니다. 지금 소란을 피는 것은 단 한명의 사람인데 왜 다수의 사람들이 당하고만 있었을까? 라는 의문인 것이죠.

중앙지방회에서 한번은 홍도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홍도를 오가는 배 안은 좀 어수선합니다. 아예춤추고 노는 분들을 배려한 공간도 있습니다. 일반 객실은 좌석에 대부분 앉아서 조용히 가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어느 동네 농협에서 조합원분들이 놀러 오신 것 같은데 몇몇 술취하신 분들이 술병을 들고 다니시면서 거의 반 강제로 술을 권하러 돌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어찌나 시끄럽던지 귀에 거슬려 오기 시작했는데 꾸욱 참고 있었습니다만 이제 제 주위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여자분들에게도 안 마시겠다는 것을 꾸역꾸역 비틀거리시면서 잔에 술을 따라 먹이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참다 못해서 제가 일어나서 좀 조용히 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가장 선두에 섰던 분은 다수의 동료를 믿고 으르렁 대셨지만 주위 친구분들이 한결같이 만류했습니다. 왜일까요?. 본인들도 같은 동료지만 너무 한다~ 싶었던 마음들이 다 있었던 거였겠죠.

적절한 대비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여러분도 이 성전에서 일어난 소란에 왜 다수의 사람들과 대제사장마저 물리적으로 막지 못하고 있었는지 아실 수 있으시겠죠?
소, 양, 비둘기 팔고 돈 바꾸는 사람들도 속으로는 이게 잘못 되었단 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원칙적으로 이것이 틀린 일이라는 것을 대제사장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는 현실주의에 밀려서, 돈 바꾸러 멀리 가느니 편리하게 여기서 하는게 더 효율적이라는 이유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제물을 가까운데서 팔면 파는 사람도 좋고, 사는 사람도 좋고, 제물을 받는 제사장들도 좋고... 이렇게 상호이익의 연결고리 속에서 모두들 잘못된 것에 대해서 쉬쉬~ 하면서 지냈던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맨날 그래왔던건데... 모.. 어때?... 라는 마음이죠.

그런데 난데없이 나타난 이 젊은 예수라는 사람이 이 일에 대해서 분노를 터뜨렸던 것입니다. 결국 이 사건은 유대교의 기득권을 가진 지도자 그룹에게는 눈살이 찌프려지는 일이 되고, 예수님을 죽일 궁리를 하게 되는 계기도 됩니다. 또 예수님에게는 나중에 고소 목록에 성전을 모독한 자라는 죄목도 더해지게 됩니다.

우리에게도 성전을 향한 열정이 필요합니다.

솔직히 여러분 앞에 제 마음을 고백합니다. 목회를 하는 저에게도 영적 갈등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 우리가 개혁해야 할 일들이 눈에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오랫동안 교회 안에 있어왔기 때문에 너무나 익숙한 것들일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삶을 볼 때에 돈을 쏟고, 상을 엎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쑥 들 때도 있습니다. 더더구나 제 자신에게 참회하는 마음으로 제 자신을 볼 때에 진정한 목자로서의 삶과, 열정, 희생정신을 갖고 살고 있는가? 라는 생각으로 인해 고통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제 자신에게, 또 하나님 앞에 간구해 봅니다.
“주님, 저에게 서른살, 예수님의 뜨거운 마음을 주시옵소서.”

“열정이 나를 사로 잡아, 환경을 보지 말게 하시고, 상황을 보지 말게 하셔서... 하나님의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또 선포하는 종이 되길 원합니다.”

저는 소망합니다.
하나님, 예수님을 사로 잡았던 그 열정에 나 또한 사로 잡히길 원합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영혼에 외쳐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에게 내 삶을 다 태워 버릴 수 있는 그 열정, 내 삶을 다 한 순간에 불사른다해도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그 불을 주옵소서.”

■ 서른살 예수님, 서른살 교회.
혹 이 자리에 30살에서 33살까지의 연령대 분이 계십니까? 한번 손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저 분들보다 나이가 젊은 분들을 빼 놓고는 다들, “좋을 때다...”라고 생각하시죠? 다 같이 해 볼까요?... “좋을 때다...”
30대 초반의 나이가 좋을 때인 것은 아직은 젊고 모험해 볼 수 있는 나이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늦은 것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철부지 같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불안감을 갖도록 만드는 나이도 이젠 아닙니다.

저는 기독교의 나이가 30대 초반을 유지해야 한다고 나름대로 <내가복음>을 주장합니다. 예수님이 외쳤던 복음, 예수님이 그 시대를 향하여 온 몸을 던져 살았던 그 열정의 나이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은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실제 나이가 아닙니다. 얼마든지 우리는 신앙적으로 30대, 아니 20대, 10대의 나이로 되돌아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제 나이가 30대 초반이면 이런 설교하면 얼굴을 찌푸리시겠지만 이젠 저도 그 나이로 도저히 뒤돌아 갈 수 없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다음 주가 제 생일입니다. 23일인데... 그 날 맛있는 것 많이 사 주실 분들이 많을텐데... 안타깝게도 제가 이곳에 없네요. 지난번 생일 잔치 해 주실 때에 꽂힌 초의 개수를 보니 7개가 꽂혀 있었습니다. 큰 초와 작은 초의 비율은 여러분이 알아서 상상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 스스로 한번 30살부터 33살까지의 삶을 되짚어 보았습니다. 성남에서 목회하던 시절, 230만원짜리 판자집에서 목회를 했어도, 판자촌 아이들과 함께 공부방을 하면서 매일 그 아이들과 온 시간을 함께 하면서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있다는 떳떳한 자부심과 긍지가 있었던 그 때를 되돌아 봅니다. 교회 예산 2천만원도 안되었어도 동네 모든 이들을 책임진다는 무모하다시피 한 열심으로 뛰어 다녔던 때, 작은 교회였지만 성남시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예수찬양 성남]이라는 정기적 찬양집회를 이끌어 가면서 새벽까지 시내 골목마다 다니면서 포스터를 붙이고 다녔던 시절로 되돌아 가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정말 열정이 있었던 때였습니다. 적극적으로 사회적 구조악에 대해서 항변했던 때였습니다. 기성 교회의 잘못된 행태에 대해서도 타협하지 않으려고 몸부림 치던 때였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의 제 자신에게 질문해 봅니다.
“정연수 목사야... 넌 너무 이젠 삶에 안주하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진 않니?” 라고 말입니다.
“정목사야, 이젠 너무 목회가 익숙해 지지 않았니?”
“교회라는 환경이 이미 너무 편해진 건 아닐까?”

왜 예수님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고서는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다고 하셨을까요?

(눅 18: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마 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 신앙인인가? 종교인인가?
우리 어린이집 아이들을 보면 올해 갓 들어온 아이들은 제가 지나갈 때에 인사를 하는데 선생님이 가르쳐 준대로 배꼽인사를 합니다. 어찌나 두 손을 배에다가 딱 붙이고 고개를 90도 이상 숙이는지 보면서도 웃음이 배어 나옵니다. 그런데 2년차, 3년차 된 아이들은 배꼽인사를 하지 않습니다. 고개만 끄덕~.. 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면 저도 생각하죠. 제가 아이들의 반을 잘 알진 못하지만 저 애는 이젠 왕고참이구나...하고 말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신앙인이 되기보다는 종교 전문가가 되진 않았는지요?
뜨거운 열정의 신앙인이었던 시기를 거쳐서 이젠 그 열정의 뜨거움을 관록과 잘 숙달된 습관으로 대체하며 살고 있진 않은지요?
바리새인의 모습이 왜 그리도 나와 닮아 가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본 적은 없었습니까? 바리새인의 모습은 옷술을 크게 해서 티를 내고, 사거리에 서서 기도하되 골방에서 은밀한 중에 기도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고, 큰 소리로 자신의 신앙의 업적을 외쳐대면서 십일조와 금식과 기도시간 빠지지 않는 것을 자랑하지만 정작 있어야 할 사랑, 용서, 기쁨 따위는 이미 골동품이 되어 버린 신앙인... 그래서 이젠 자기도 천국에 갈 수 없는 사람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천국에 가지 못하도록 길을 막아 선 자가 되어 버린건 아닌지요?

저는 먼데서 찾지 않고 가까운 데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열정에 사로잡혀 한 시대의 거대한 물길을 돌려 놓은 한 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는 16살에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 21살에 인문학 석사가 됩니다. 22살에 deacon 안수를 받고, 24살에 옥스퍼드 대학 조교수가 되었고, 26살에 Holy Club을 결성하였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존 웨슬리입니다.
31살, 1735년 그는 가장 화려한 문명도시였던 런던을 떠나 인디언들과 야만스런 범죄자들이 들끓는 미국 조지아 주로 선교사가 되어 떠납니다. 미 대륙까지 가는 8주간, 배 안에서 그는 큰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풍랑이 일어서 배가 파선할 지경이 되었을 때에 국교회 신부의 아들로 태어나 엄격한 신앙의 어머니 수산나에게서 어렸을 때부터 배웠던 종교적 경험들, 또 그동안 그가 배운 신학과 Holy Club에서 축적되었던 신앙의 경험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앞에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조지아주 선교에서 웨슬리는 금욕적이고, 율법적인 아주 엄격한 태도로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그의 선교는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습니다. 그는 조지아주 선교에 큰 수확을 거두지 못하고 돌아와 일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인디언을 회개시키려 아메리카로 건너갔었다. 그러나 나를 회개시킬 자는 누구인가? 나는 외관상으로는 훌륭한 신자다. 위험이 없는 한 설교도 잘하고 믿음도 좋다. 그러나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네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 라고 외칠 수 있는 신앙을 원한다.”

그의 정신은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충만했지만 그를 온통 사로잡아 끌어가는 <그 무엇>이 그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그의 고민은 1738년 5월 24일, 놀라운 중생의 체험으로 그를 이끌었습니다. 율법주의, 금욕주의, 형식주의, 규칙쟁이로만 믿어왔던 믿음이 깨지고 그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그 변화는 웨슬리에게 큰 전도 방법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엄격한 의식주의자였던 웨슬리가 구원과 생명을 전도하는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영국국교는 웨슬리를 의식을 깨뜨리는 자로 간주, 그를 배척하기 시작했습니다. 1939년에는 네 교회만 그에게 설교를 허락했습니다. 종전에 해오던 방법으로는 복음을 전할 수 없게 된 그는 영국국교회 지도자들의 반대에 개의치 않고 1739년 4월 2일부터 야외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예의범절만 찾던 영국국교회의 목사들은 제복차림으로 노천에서 전도하는 그를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때 그의 새로운 선교방법에 대해 성도들이 걱정을 하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성경말씀에 하나님은 나에게 내 능력에 따라 무지한 자를 가르치고 악한 자를 바로잡고 덕이 있는 자를 견고하게 해 주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런데 내가 다른 교구에서 일하는 것을 막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합니까? 나는 이 세계를 나의 교구로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세상 어느 곳에 있더라도 기쁜 구원의 소식을 듣기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것을 선포하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 선언에서 “세계는 나의 교구다.”라는 웨슬리 목사님의 가장 유명한 말이 나온 것입니다.

제가 왜 장황하게 웨슬리 회심주일도 아닌데 웨슬리 목사님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저는 감리교회의 교단 색을 드러내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파 따질려는 마음은 더더욱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교회가 최소한 감리교회를 시작했던 그 초심의 열정으로 되돌아 가고, 또 그 열정에 사로 잡혔던 웨슬리 목사님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다시 예수님이 상을 둘러 엎었던 고대 예루살렘 성전으로 돌아가고 있진 않는가?
바리새인의 신앙처럼 구원의 감격을 상실한 종교인이 되진 않았는가?
규율과 형식만 앞세우던 영국국교회의 모습처럼 굳어져 버린 교권주의자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이 시대에 웨슬리 목사님이 다시 오신다면 그분의 열정은 우리 교회를 어떻게 개혁해 나가실 것인가?



■ 저러다가 죽지...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저에게도 꿈이 생겼습니다.
“저러다가 죽지...” 라는 말을 들어 보고 싶다는 거룩한 욕심이 생겼습니다.
이 생각, 저 생각... 이런 변수, 저런 변수 다 재보면서 머뭇거리는 목회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저를 강하게 사로잡았습니다.
예수님은 결국 그러다가 죽으셨습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더더욱 신앙에 좀 더 익숙해 있던 사람들에게 더 외면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바로 그런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십니다.

나도 한번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세요?
예수님 한번 믿고, 위대한 하나님 나라 건설에 이왕에 한번 투신한건데 “이러다가 내 죽지...”라는 생각 한번 들게 되는 삶을 살고 싶은 욕심 없습니까?
(정연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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