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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을 하든지 (고전 10: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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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예수원의 대천덕 신부는 온 몸으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한 성령의 사람입니다. 평생 청빈과 나눔의 삶을 실천한 대천덕 신부는 건축기사노조활동, 흑인해방운동 등 활발한 사회운동을 펼치다 1957년 한국에 왔습니다. 성공회대학의 전신인 성 미카엘 신학원을 재건한 후에 다시 65년에 강원 태백시의 산골짜기 황지를 선택해서 기독교 공동체인 예수원을 세웠습니다. 예수원은 노동과 기도의 삶이 충만한 곳이었고,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무엇인가를 늘 영적으로 채워주는 장소였습니다. 대신부의 부인 현재인씨는 “93년 남편이 심장 질환으로 고생할 때 당시 의사는 16개월 밖에 살 수 없다고 했죠. 남편의 대답은 ‘전 벌써 준비가 됐습니다’ 는 것이었습니다” 예수원에 있는 대천덕 신부의 묘비에는 그가 생전에 가장 좋아하던 성경 구절을 새겼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7장 17절 말씀으로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언제나 하나님을 향한 중심이 바로 잡혀야 한다는 뜻입니다.

팽이가 제대로 돌기 위해서는 중심이 바로 되어야 합니다. 인생도 중심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살아갈 때 제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 때 하나님 중심이 되어 살아가야 모든 것이 온전하게 기능하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 가운데 죄가 들어와 중심을 파괴했습니다. 하나님중심에서 사람중심으로 옮겨가게 만들었습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 중심이 되어 살아가면 삶이 온전해지고 하나님 중심이 되어 사업을 하면 사업이 온전해지고 하나님 중심이 되어 가정생활을 하면 가정이 온전해지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심이 흔들려 자기중심이 되니 모든 것들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우선은 중심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외형만 바라보지 말고 중심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농구를 잘하는 인터셉트의 귀재인 아이볼슨에게 어떻게 공을 잘 뺏느냐고 물었더니 “나는 공을 바라보거나 속이는 모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중심이동을 바라봅니다.” 중심이 어디로 가는지 보면 대개 어디로 움직일지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흐트러진 신앙의 중심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이 은혜도 많고 문제도 많았던 고린도 교회에 보낸 서신입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분파의 문제와 함께 교회내의 은사와 질서의 문제 그리고 교우간의 건덕의 문제와 우상숭배, 우상의 제물 문제 등으로 중심이 흐트러져 있었습니다. 바울은 본문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중심에 대한 말씀을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의 중심은,

첫째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야 합니다

어떤 주부가 결혼생활에 회의를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여자로 태어나서 날마다 밥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는 일이 반복되니까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라는 허무에 빠진 것입니다. 위기를 느낀 그녀는 매일 성경구절을 적어 싱크대 앞에 붙여놓고 암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설거지보다 성경구절을 암송하는 것이 영적인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의 성경구절이 고전 10:31의 말씀이었습니다. 설거지를 하면서 그 말씀을 읽는 순간 그녀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록 설거지라 할지라도 내가 이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면 회의를 느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아이들을 키우는 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목적이 생겼으며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까 매일 반복되던 일들이 소중하고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영적이라는 것에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도하고, 말씀보고, 귀신을 내어쫓고, 예언을 하고, 신비한 것을 보는 것만이 영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모든 일들은 다 영적인 것입니다.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일하는 것도 그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분명히 영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목적이 중요합니다.

31절에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인생의 목적을 바로 알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목적이 새로워진 사람을 말합니다. 목적에 따라 생의 의미와 가치관이 변하기 때문에 목적의 변화는 근본적인 변화요 전적인 변화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살아야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목적을 상실하면 그때부터 인간은 동물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먹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고, 돈벌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고, 일하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닙니다. 먹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먹고, 돈버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벌고, 일하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방식이 다를 수 있지만 삶의 목적은 동일해야 합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허드슨 테일러의 아버지 제임스 테일러는 남다른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약제사로 일하면서 성경을 부지런히 읽었고,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소외된 자들을 사랑했고, 생계 때문에 교회에 나갈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전도했습니다. 그는 손님들로부터 약값을 정당한 가격 이상 받는 일이 없었습니다. 정직을 사업의 신조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주변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약 값을 절반만 받거나 아예 받지 않았습니다. “지난번에도 거저 약을 지어 주셨는데요.” “우선 병이 나아야 하니까 그냥 가져가시고 빨리 건강을 회복하세요.” “그래도 죄송해서” “조금도 염려하지 마세요. 계산서는 제가 벌써 천국에 보내 놓았으니 거기 가서 갚으시면 됩니다. 약이 다 떨어지면 또 오십시오. 그런데 한 가지 꼭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절대로 잊지 않는 것이 당신이 갚아야 할 약 값이라는 사실을 늘 기억해 주십시오.” 이처럼 제임스 테일러는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삶을 살았습니다.

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탈무드는 말합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거미 같은 사람과 남에게 해도 유익도 주지 않는 개미 같은 사람, 그리고 남에게 유익을 주는 꿀벌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유익하다고 해서 다 선한 것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0장 23절은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며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말합니다. 또 32절에는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말고 다른 이에게 유익을 끼치는 삶을 살아야하며 남에게 거치는 자가 되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거치는 자란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자, 남의 마음에 고통과 괴로움을 주는 자란 뜻입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쓴 뿌리가 되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인격적으로 남에게 해를 끼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남을 기쁘게 해 주어야 합니다. 33절에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라는 말씀처럼 내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자가 아니라 내 삶을 통해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언제나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행동하지말고 다른 이의 마음을 기쁘게 하며 유익을 주는 방향으로 신앙 중심이 잡혀야 합니다. 나를 위해 사는 것은 죄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것은 선이요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은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몸된 교회 안에서 항상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살아가도록 힘쓰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영혼구원을 목표로 살아야 합니다

브라질의 후안 까를로스 오르티즈 목사님이 자신의 사역에 대해서 말한 부분입니다. “내가 부에노스 아이레스 교회에 부임했을 때 교인은 184명이었습니다. 2년 동안 극성스러운 조직과 전도덕분에 교인 수는 600명을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 나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침내 나는 모든 것에서 손을 떼고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와 묵상에 전념했습니다. 그 순간 성령께서 나를 깨뜨리기 시작했습니다. “너는 코카콜라 회사가 코카콜라를 파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리더스 다이제스트사가 잡지를 파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 도대체 네가 하는 일들 가운데 나의 손길을 찾아보겠느냐?” 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자라나고 있질 않다. 네 생각에 네가 교인수를 200명에서 600명으로 늘렸다고 해서 자라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것은 자라는 것이 아니라 살쪄 가는 것이다.” 즉 우리가 영혼을 구원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성숙한 것이 아닙니다. 살 만 찌는 것입니다. 나이만 먹는 것입니다. 시간만 지나가는 것입니다. 세월만 허비하는 것입니다.

본문 33절에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삶의 결과는 반드시 영혼을 구원하는 것으로 연결되어져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많은 사람에게 전도하여 영생 얻고 구원받는 사람이 되도록 해야합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뜻은 예수 믿고 구원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6:39 이하에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는 자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한사람에게라도 복음을 전해 그들의 영혼을 건져야합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서 시간을 바치고 물질을 바치고 재능을 바치는 것은 참으로 가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실 때 복음을 위해 생명까지 바친다면 최고의 영광일 것입니다. 예수님도 무슨 일을 하든지 궁극적인 목표를 영혼구원에 두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무엇을 하든지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중심을 두어야 합니다.

부디 남은 바 삶을 통하여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하든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하든지 영혼을 구원하는 일로 신앙의 중심이 바로 세워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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