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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명자에게 필요한 5대 덕목 (행 2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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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 응답을 받는 길 >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 중의 하나는 우리의 기도가 응답 받는 기도가 되는 축복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 받는 기도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너무 잘 맡깁니다. 그래서 마음이 편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마음이 편해서인지 간절히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잘 맡기는 것은 좋은 신앙이지만 그래도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죄 문제가 처리되어야 합니다. 이사야 59장 2절 말씀을 보면 “너희 죄가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그 죄가 하나님의 얼굴을 가려서 너희 기도를 듣지 않게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 받는 기도가 되려면 생각나는 모든 죄를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셋째,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 말씀을 보면 “의심하는 자는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굳건한 믿음의 기도를 원하십니다. 일 관계에서는 머리가 중요하고, 사람 관계에서는 마음이 중요하고, 하나님 관계에서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넷째, 하나님의 뜻을 앞세워야 합니다. 어떤 분은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뜻을 앞세웁니다. 하나님은 이 길을 원하는데 자신은 저 길을 원합니다. 그처럼 주파수가 맞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채널을 돌려 내 뜻에 맞추기를 기대하지 말고 내가 채널을 돌려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야 합니다. 그처럼 하나님과 주파수를 맞추는 순간, 영적 불꽃이 점화되고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기도는 내 뜻에 대한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육신적인 문제로 간절히 기도했지만 나중에 순복했습니다.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옮기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막 14:36).” 성도는 항상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감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본문입니다.

< 일꾼에게 있어야 하는 5대 덕목 >

오늘 본문은 바울이 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그때 먼저 두로에 잠시 들르자 그곳 제자들은 바울에게 “예루살렘은 위험하니까 들어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 만류를 뿌리치고 예루살렘으로 향하면서 다시 가이사랴에 들렸습니다. 그곳에서 며칠 있는데 유대로부터 아가보라는 유명한 선지자가 와서 바울의 띠로 자기의 수족을 잡아매며 “이 띠 주인이 결박되어 이방인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라고 예언을 합니다.

그 예언을 듣고 모든 제자들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때 바울은 말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서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님의 이름을 위해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죽을 것도 각오했다!(행 21:13)” 그리고 묵묵히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이 장면을 통해서 주의 일꾼에게 있어야 하는 몇 가지 덕목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1. 사명의식

본문을 보면 유명한 예언자가 사도 바울에게 “가지 말라! 어려워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아무리 큰 어려움이 예상되어도 맡은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언의 추종자가 되지 않고 그 자신이 예언의 주체가 되었습니다.

왜 사람들이 용한 예언자를 찾아 예언을 들으려고 합니까? 거의 대부분이 화를 피하고 복을 얻어 보겠다는 심리로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편하고 잘 되는 길로 가는 것만이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100% 맞는 예언을 듣고 나서 편하고 좋은 길로 가는 것이 겉으로는 좋아보여도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는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예언의 희생자나 예언의 추종자가 되지 말고, 나 자신이 예언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죽음과 희생과 손해가 없는 길로 가겠다는 마음이 예언을 추종하게 만들고, 운명에 매여 수동적인 살게 됩니다. 그러나 “죽으면 죽으리라!”고 하면서 사명을 따라 살면 운명을 극복하며 주체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는 길로만 가지 말고 필요하다면 죽는 길로도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살면 시간이 지나면서 인생의 아이러니를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아이러니입니까? 사는 길이 나중에 보면 죽는 길이고, 죽는 길이 나중에 보면 사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운명을 따라 살지 말고 사명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복음을 전하고 약자를 돕고 교회를 세워가고 선교 많이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 사명을 위해서라면 음지도 찾아야 하고, 죽음이 기다리는 곳과 자존심이 상하는 곳으로도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편한 길만 찾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더 불편하게 되고 불안하게 되지만 사명을 따라 불편한 길을 찾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편안도 주어지고 평안도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2. 자기 포기의 자세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죽기를 각오하고 예루살렘에 가겠다고 하자 말리던 제자들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왜 저렇게 어리석을까? 왜 뻔한 것을 가지고 고집부리실까? 가만히 놔둬. 저 죽든지 말든지 자기 손해니까 마음대로 하라고 해!” 하고 반응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하고 더 이상 말리지 않았습니다(행 21:14).

사실 제자들이 사도 바울을 말린 것을 그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인간적인 사랑이 사도 바울의 사명을 막을 수 없음을 알고 결국 자신들의 뜻과 주장을 포기했습니다. 성도는 자기를 포기하고, 자기 뜻을 포기하고, 자기 유익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얼마 전에 저희 사역에 많은 도움을 주는 한 집사님과 상담을 했습니다. 그분은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의 명문 시카고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딴 후에 지금 아주대 교수로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그분의 남편이 사업과 자녀 교육 문제를 내세워 미국으로 가자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왔습니다. 마음속으로는 미국에 가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미국 이민생활은 고생문이 활짝 열리는 삶입니다. 예전에는 한국에서 일할 때보다 3배 이상의 수입이 고생을 잊게 만들었지만 요새는 수입도 별 차이가 없습니다. 힘들게 일하고, 각박하게 살아야 하고, 마음의 상처도 각오해야 하고, 그리움과 외로움이 마음 한구석을 지배하고, 생활수준도 한두 단계 낮춰야 합니다.

요새는 자녀의 영어교육을 위해서 간다고 하지만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미국 사람들보다는 못하고, 미국 주류 사회를 뚫어도 능력에 비해서는 보조적인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상황이 싫어서 그 자녀가 다시 한국에 돌아와도 기득권과 인맥이 영어 구사능력보다 훨씬 중요한 성공 요인이란 것을 깨닫고, 결국 보면 영어 학원 강사나 통역과 같은 보조적인 역할을 정도 하는 것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미국생활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녀라면 가지 말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집사님 본인도 저에게 그런 말이 있기를 기대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이미 확고한 결심을 내린 상황에서 막아보아야 부부간의 마음고생만 심해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라는 마음으로 집사님에게 남편을 따라가시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곧 집사님의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남편과 자녀를 위해 좋은 교수 자리를 버리고 자기 인생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이 순간적으로 속이 상했던 것 같습니다. 저도 든든한 기도 후원자 한 분이 내 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속상했습니다. 그처럼 인간적인 감정은 언제나 힘든 길을 피하게 하지만 하나님의 뜻과 사명을 위해서라면 언제나 내 뜻과 내 감정을 십자가에 못 박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어떤 처녀가 있었습니다. 너무 봉사를 잘했기 때문에 담임목사님은 그 처녀가 시집도 가지 않고 자기 교회에 영원토록 붙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가짜 사랑입니다. 진짜 사랑은 내게 손해가 되어도 나의 사랑의 대상이 하나님의 뜻대로 그 길을 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희생을 넉넉하게 어떤 모양으로든지 보상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보상해주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작은 도구가 되었다는 사실로 만족하면 됩니다.

3. 인종의 고백

오늘날 사람들이 가진 마음의 고통은 대개 어디에서 옵니까? 대개 보면 자기가 원하는 것을 밀어붙이다가 자기 뜻과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고난에 빠지고 마음의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마음의 고통을 순식간에 잠재우는 위대한 고백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 14절에 나오는 고백대로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인종의 고백을 잘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잘하는 사람은 싸울 일도 없고, 마음의 평안을 빼앗길 일도 없고, 상처받을 일도 없고, 교만한 고집쟁이라고 욕먹을 일도 없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란 이 인종의 고백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가끔 보면 내 사랑하는 자녀가 고집스럽게 고난이 예상되는 길로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때 부모로서 한두 번은 그 길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어도 좋다!”고 하면서 그 길을 고집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때에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보면서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하면서 그 길로 가도록 해야 합니다. 사실 내가 좋다고 생각한 길이 안 좋을 수도 있고, 내가 나쁘다고 생각한 길이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저도 우리 두 딸이 행복하게 잘 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매일 두 딸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기도하는 것이 좋은 신랑 만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 저희 부부가 가장 염려하는 것이 있습니다. 어느 날, 딸이 속된 말로 날라리처럼 보이는 남자를 데리고 와서 결혼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에는 억장이 무너질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부모님들이 자녀들의 결혼상대자를 정했습니다. 자녀를 키우다 보니까 그런 관습도 점차 이해가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몇 십 년 결혼생활을 했던 부모의 안목이 자녀의 안목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저도 가끔 농담 삼아 아내와 이런 대화를 합니다. “아무개 집사님의 헌신적 신앙을 생각하면 그분 아들 정도면 좋겠는데... 아무개 목사님 아들 정도면 좋겠는데...” 그러나 어떻게 합니까? 딸의 결혼은 전적으로 딸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날라리처럼 생긴 남자를 데리고 와서 결혼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나중에 그런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지금 저희들이 가장 많이 신경 쓰는 것은 자녀들의 안목을 넓혀주는 것입니다.

어떻게 안목이 넓어질 수 있습니까? 저는 다양한 삶을 보면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여행이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인생의 기어를 3단에서 4단으로 올려야 할 때도 있고, 4단에서 3단으로 내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 변속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이 저는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새벽기도를 참 좋아합니다. 새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찍 나옵니다. 그러면 점차 가속이 되면서 밤잠이 5시간에서 4시간으로, 다시 4시간에서 3시간으로 줄어듭니다. 물론 부족한 잠은 아침에 보충하지만 생활 리듬은 깨진 상태입니다. 어떤 때에는 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불완전한 리듬이 여행을 하고 나면 일거에 해소되어 원래 상태로 돌아옵니다.

그처럼 여행은 인생의 속도를 저속으로 만드는데도 좋지만 고속으로 만드는데도 좋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여행 중에 인생의 새로운 다짐과 설계를 하고 성공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을 봅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 자주 말합니다. “얘들아! 아빠가 돈이 없어서 과외공부는 시키지 못해도 여행은 많이 시켜주려고 노력한 테니까 대신에 공부는 스스로 열심히 해라!” 이번에도 아이들 영어학원 다니는 것을 끊으니까 할머니와 여행비용이 나왔습니다. 여러 면으로 생각해도 “잘 끊었다! 선택을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별히 둘째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 두 딸을 선교사님들 밑으로 단기 선교여행을 많이 보내려고 합니다. 그러면 믿음도 커지고, 헌신도 배우고, 안목도 넓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행복하게 살려면 폭넓은 사고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 사고를 훈련받으면 배우자도 그런 배우자를 택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처럼 좋은 신랑감 만나게 하려고 많은 애를 쓰고, 무엇보다 기도가 중요한 줄 알고 거의 매일 그 문제에 대해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런 노력과 기도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갑자기 날라리 같은 남자를 데려와서 결혼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낌새를 보아 마음을 돌릴 수 없을 것 같으면 그때에는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하면서 결혼을 허락할 것입니다. 지금은 날라리 같아도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면 날라리에게도 진짜 좋은 날개가 생겨서 높은 하늘을 비상하게 될지 어떻게 압니까?

우리는 내 뜻, 내 생각, 내 안목만 고집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면 마음의 평안도 없고, 행복하게 살 수도 없고, 남의 행복도 막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문제는 환경으로부터 오는 문제가 아니라 자기로부터 오는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생각과 내 고집을 버리고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라는 인종의 고백을 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4. 십자가의 희생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버리기 힘든 것도 버려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할 때 가장 생각나는 존재가 가족입니다. 일제 시대 때, 어떤 목사님은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순교를 향해 나가다가 아이가 우는 소리 때문에 순교의 길에서 돌아선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따라 살려면 십자가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가족을 돌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때에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대신 돌봐주실 것입니다.

저는 요새 어머님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지금 미국에서 혼자 사시면서 대화상대가 없으시니까 기억력이 많이 떨어지셨습니다. 하신 말씀을 잊어버리고 묻고 또 물으시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번에 여행을 같이 가는데 옆에서 물끄러미 어머님 모습을 보면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릅니다.

기억력 떨어지는 것을 막으려고 어머님을 즐겁게 해 드리려고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한국에 오시면 다른 형제들의 집에 비해 저의 집은 오두막과 같지만 그래도 제가 모시겠다고 적극 나서는 가장 큰 이유는 두 딸이 재롱을 부리면 어머님이 아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방 하나를 어머님께 비워드리고, 나머지 방 하나에서 나머지 가족들이 자고, 저는 주로 교회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러면 몸은 불편하지만 마음은 행복합니다.

그렇게 어머님을 즐겁게 해 드리려고 노력해도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미국으로 떠나시기 며칠 전에 중앙 공원을 둘이 같이 걸으면서 잘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 지금 몸은 건강하셔도 기억력이 많이 떨어지고 있는데, 앞으로 기억력이 더 떨어지지 않도록 더 노력하세요. 특별한 일이나 전화 통화한 일이 있으면 메모해 놓으셨다가 가끔 한번씩 살펴보세요.”

그래도 마음이 아파서 제가 형님들에게 “미국 이민 생각을 좀 해보라!”고 하지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실 어머님 곁으로 가장 잘 갈 수 있는 사람은 저입니다. 왜냐하면 미국에는 우리 교단 교회가 많이 있기 때문에 제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어머님 곁으로 갈 수 있습니다. 어머님 생각만 하면 미국에 가야 하지만 저도 나름대로의 중요한 선교 사명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갈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제가 여기에서 포기하면 저희들이 돕고 있는 선교 사역과 선교사님들에게도 막대한 타격이 됩니다. 또한 선교센터를 세워 훌륭한 선교사를 배출하겠다는 꿈도 사그라지고, 그 외에 여러 가지 관련 선교사역을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에게는 어머님도 소중하지만 선교 사명도 소중합니다.

그 사명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어머님에게 자주 “이제 한국으로 돌아오세요!”라고 하지만 인생의 후반기 20년을 그곳에서 사셨고, 미국 정부에서 연금을 받기 때문에 오시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마음 아픈 모습으로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처럼 때로 하나님의 사명 때문에 인간적인 책임을 못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주의 사명을 생각하고 무엇인가를 희생하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인간적으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철저히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5. 인내하는 삶

우리가 사명을 따라 사는 삶은 가장 복된 삶입니다. 그러나 가장 복된 삶이지만 축복이 금방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인내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내할 때 그냥 꾹 참는 식으로 인내하지 말고 감사하면서 인내해야 합니다.

살다 보면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습니다. 아파트 평수가 넓어질 수도 있고, 좁아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실패하고 아파트 평수가 줄어들었을 때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때 실망하지 말고, 오히려 그때 진짜 믿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진짜 간증은 아파트 평수가 넓어진 것에 대한 간증이 아니라 아파트 평수가 좁아질 때에도 감사를 잃지 않는 것!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그것이 진짜 간증입니다.

내가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살았다면 내가 진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지게 하신 것입니다. 거기에도 나를 위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숨은 계획이 있습니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며 넉넉한 마음으로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내는 축복의 필수요소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막 코너로 몰아가면서 자기 뜻대로, 자기 계획대로, 자기 스케줄대로 기도한 것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모습으로는 지금 있는 은혜조차 말라버리게 됩니다.

어떤 분이 감자를 심었습니다. 그런데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감자 열매가 맺혔나?”하고 호미로 수시로 파 보니까 나중에는 감자는커녕 잎사귀도 말라죽어 버렸습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너무 조급하면 의심이 생기고 결국 축복의 열매는 말라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묵묵히 인내하고, 기도한 후에도 “왜 이렇게 응답이 더디 올까?”하고 초조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줄까? 말까?” 하는 아버지가 아닙니다. 꼭 주십니다. 그러나 아무 때나 주시지 않고 반드시 하나님의 시간에 주십니다. 그러므로 인내해야 합니다. 자세히 보면 큰 축복은 오히려 더디게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여자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인도 선교사로 가기를 원해서 신학을 공부하고, 언어 훈련도 마쳤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언니네 가정에 큰 어려움이 닥쳤습니다. 아들 셋, 딸 하나를 둔 언니가 그만 병들어 세상을 떠나더니, 곧 그 남편마저 죽었습니다. 졸지에 아이 넷을 떠맡게 된 그녀는 도저히 아이들을 남기고 선교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선교본부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목사님! 저는 인도 선교사가 되기를 원했지만 하나님의 뜻이 다른데 있는 것 같습니다. 가지 못하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선교사의 꿈을 포기하고 아이들을 믿음으로 정성껏 키웠습니다. 25년 후, 4명의 아이들 중 세 명이 인도 선교사를 자원했습니다. 그녀는 다시 선교본부에 편지를 띄웠습니다. “목사님! 하나님께서는 저의 기도를 25년 만에 세배로 이루어주셨습니다. 이제 저희 세 자녀를 인도로 파송해주세요.”

하나님의 뜻은 내 뜻과 다를 수 있고, 하나님의 시간은 내 시간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우리의 뜻을 초월해서 열매를 만들어냅니다.

<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

요새 살기가 너무 힘듭니다. 특히 하나님의 사명을 따라 산다는 것은 더욱 힘듭니다. 사명이라는 말은 좋지만 사명을 따라 살면 “나는 어떻게 사나?”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까지 우리를 인도하신 주님께서는 내일 이후도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맡기고, 우리의 모든 계획과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의 자녀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갈등하고 있는 문제도 하나님께 맡겨야 하고, 가장 맡기기 힘든 우리의 경제 문제도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중국 선교의 문을 열었던 허드슨 테일러는 처음에는 아무 것도 없이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중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평생 동안 그의 모든 필요를 공급해주셨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하나님을 일을 할 때 하나님의 지원이 내게 결핍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이 고백은 위대한 신앙인들이 했던 한결같은 고백이었습니다.

저도 한국에 들어올 때 아무 것도 없이 선교사명만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살 집도 없었고, 교회 자리도 없었습니다. 후원자도 없었고, 배경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여전히 열매는 적습니다. 때로는 벌써 내 나이가 40대 중반인데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 요삼일육선교회(John316 Mission)의 비전을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 머릿속을 파고듭니다. 그래도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하나님의 일을 하면 하나님의 지원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 어떤 문제 때문에 안타까워하고 불안해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 문제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때로 길이 막혀도 하나님께서는 더욱 좋은 길로 그를 반드시 인도하실 것입니다.

어떤 분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집을 사게 해주세요.” 그렇게 기도하고, 은행에 가서 대부 신청을 했는데 거절당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엄청난 폭우로 그 집이 물에 반이나 잠겨 버렸습니다. 그때 고백했습니다. “그때 거절당한 것이 축복이었구나!” 그 일 후에 더 좋은 집을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신실한 성도의 기도는 응답되는 것도 축복이고, 안 되는 것도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좋은 일도 좋고, 안 좋은 일도 시간이 지나면 좋게 됩니다. 그런 믿음의 체험이 있으면 이제는 어떤 일을 만나도 불안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명을 따라 살면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사는 길을 열어주시고, 어려움 중에서도 기쁨 주시고, 힘든 일을 만날 때에도 이길 힘을 주실 것입니다. 때로 태산과 같은 문제가 생겨도 “하나님은 반드시 나를 도와주신다! 이 문제를 이길 수 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믿음의 고백을 가지고 범사에 감사하며, 더욱 하나님의 사명에 헌신함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어내는 복된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이  한 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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