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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늘에서 들어야 (대하 7: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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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과 왕궁 건축을 마치고 솔로몬의 심중에 여호와의 전과 자기의 궁궐에 그가 이루고자 한 것을 다 형통하게 이루니라.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듣고 이 곳을 택하여 내게 제사하는 성전을 삼았으니,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 지라. 이제 이 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네가 만일 내 앞에서 행하기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한 것과 같이 하여 내가 네게 명령한 모든 것을 행하여 내 율례와 법규를 지키면 내가 네 나라 왕위를 견고하게 하되 전에 내가 네 아버지 다윗과 언약하기를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하리라.”

솔로몬 왕이 7년의 대 역사 끝에 마침내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을 형통하게 완공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성전 봉헌식의 기도를 드렸는데 그 기도가 끝나자마자 불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살랐고 영광을 받으셨습니다(대하 5:06).

이어서 기쁨으로 성전 낙성식을 거행하였는데 당시 낙성식에 사용 된 제물은 소가 이만 이천이요, 양이 십 이만 마리였습니다(대하 7:05). 이는 대단한 제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왕상 8:63절에 의하면 이 제물은 화목제의 제물로서 백성들이 2주간 동한 함께 먹을 수 있는(대상 16:1~3; 29:21, 22) 양으로서 당시 성전 봉헌식에 참여한 인원이 얼마나 많았는가를 능히 짐작케 하는 대목입니다.

솔로몬 왕이 하나님의 성전을 형통하게 건축하였습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준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고 난 다음 마음이 흡족하였고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넘쳤습니다. 그럴 즈음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제 네 기도를 들었다. 이곳을 택하여 내게 제사하는 전을 삼았으니 기쁘다. 너희가 이곳에서 기도할 때 내가 응답하겠다” 그리고 기도의 조건을 제시하시고 응답을 약속하십니다. 이로 보건데 하나님의 전은 예배의 처소이기 이전에 기도의 처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하십니다.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라고 책망했습니다.

예배는 기도로써 시작합니다. 기도 없이 예배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예배가 참되기 위하여 제일 먼저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이제 왕과 백성으로 더불어 낙성식의 모든 행사를 마치고 백성들은 다 돌아가고 난 그 밤에 하님께서 솔로몬 왕에게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들었고, 이 성전을 통하여 드리는 제사도 받으시겠다”고(12) 한 후 갑자기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13절 말씀을 같이 읽읍시다.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로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염병으로 내 백성 가운데 유행하게 할 때에”

이 말씀을 넓게 해석하면 지구촌이나 국가적으로 가뭄과 기근, 지진과 대기오염, 생태계 파괴와 지구의 온난화 현상, 이상 기후와 첮재지변 등으로 인한 몸살을 앓을 때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사업의 실패와 부도, 경제적 손실 등으로 인한 파산의 위기와 각종 질병이나 유행성 독감, 변종 유행병, 이름 모를 질병 등이 발생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본문은 이러한 상황을 만나게 될 때 우리 모두가 다 어떻게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느냐 하는 점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지만 하나님게서 들으시고 은총을 베풀어 주셔야만 합니다. 하늘에서 들으시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는 음성을 오늘 이 시간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이시고 기도생활에 도움이 되시기를 복빌어 드립니다.

1. 무엇보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여야 합니다.

본문 14절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 지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믿고 구하는 것이 아주 많습니다. 상당히 다양합니다. 그런데 13절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기만 하면 특별한 축복이 있을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본래 ?얼굴’이란 목 윗부분, 머리 앞부분, 이마, 턱, 두 귀의 둘레 안쪽으로서 몸은 옷으로 감싸서 잘 안보이겠지만 대체로 모슬렘인 아닌 이상 얼굴은 그대로 드러나 잘 보입니다.

사람은 각각 타고난 얼굴이 있으나 요즈음은 성형술의 발달로 얼마든지 다른 얼굴이나 예쁜 얼굴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중매쟁이가 헷갈릴 때가 많다고 합니다. 어릴 때 사진가지 요구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본래 타고난 얼굴이 진짜인데 다 뜯어고쳤기 때문에 제 2세의 얼굴이 잘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얼굴은 나이를 따라 변하고, 기후 따라 변하고, 감정 따라 변하고, 분위기 따라 변하나 그러나 하나님의 얼굴은 영원히 변치 않는 그 얼굴이십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는 의미를 깊이 생각해 봅시다.

여기서 하나님의 얼굴이 무엇인지 한 번 살펴봅시다. 하나님은 영이시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일단 하나님은 외모적인 모습은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하나님의 팔, 하나님의 손, 하나님의 눈, 하나님의 등 하나님의 얼굴 등을 이야기하면서 외모적인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의 외적인 모습이 있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만 이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좀 더 친밀한 관계로 이해하고 만나기 위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그리고 그 분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 이것 당연한 일 아닙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영적인 것입니까? 아니면 육적인 것입니까?

신령한 세계를 추구하고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는 무엇보다 하나님과 진지하게 대면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4절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기 위한 방책으로 우리에게 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1) 첫번째가 악한 길에서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악한 길인 악한 습관, 죄악의 습성을 벗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우리의 내면적인 인격 문제로 바꾸면 내 마음을 내 자신이 주장하지 말고 주님이 주장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육신적인 신자들은 자신을 자기가 조정합니다. 자신을 자기가 조정하는 한 우리는 악한 길에서 행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에서 제일 먼저 우리 자신의 중심에 성령님을 모시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주 성령께서 내 중심에 계시면 우리는 악한 길에서 벗어납니다. 이것이 기도의 제일 조건입니다. 회개의 기도란 나의 악행을 고백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더 근본적으로 내 중심에 성령님을 모시지 아니한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님께 전적으로 주인되시기에 주님의 뜻이라면 복종하겠다는 의지을 가지고 기도를 드리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지나간 잘못을 회개할 뿐 아니라 앞날에도 악한 길에서 행하지 않기 위하여 내 심령의 보좌에서 예수님이 주인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원래의 주인이신 성령께서 보좌에 오르시옵소서”라고 비켜서는 것입니다. 그러니 침상에서 기도할 뿐 아니라 기도하러 기도의 처소에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악한 길은 하나님을 거역한 죄의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지 않고 자신의 이기심의 노예로 살아가는 삶 말을 의미합니다.  악한 자의 길에 선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감사를 잃어버린 채 인간의 욕망의 노예로 살면서 하나님의 순리를 거스리는 생활을 합니다. 로마서는 이같은 악한 길에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을 말합니다(롬 01:18).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  혹시라도 악한 자의 길에서 서성이고 있습니까? 떠나야합니다. 떠난다는 것은 회개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진정한 회개는 입술의 고백보다는 구체적인 삶의 변화가 있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회개를 함에 있어서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권합니다(마 3 :8).

사실 선한 길로 가야 하는데도 사람들이 악한 길로 잘 가는 것은 선한 길보다는 악한 길이 때로는 눈에 더 잘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악한 길이 더 마음을 사로잡을 때가 많고, 또한 망하는 길은 처음에는 망하는 줄을 전혀 눈치를 차리지 못하는 가운데서 결국은 망하는 곳으로 떨어지게 합니다. 그래서 선한 길과 악한 길을 먼저 구분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하며, 혹 악한 길에 들어섰다면 그때는 그 길에서 속히 돌아 나와야만 합니다. 그러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할 수 있게 됩니다.

2) 스스로 겸비(謙卑)겸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겸비는 단순한 겸손이 아닙니다. 겸비하다는 것은 나의 무력감을 고백하고 “주님을 의지합니다. 주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는 태도를 말합니다. 감상적인 겸손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겸비는 기도하는 자세에서만 나타납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적나라하게 들어내며 겸손한 자리에 섭니다. “주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안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피할 바위시오 나의 도움이십니다. 나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하고 의탁합니다” 이러한 자세를 가지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하지 않는 한 기도하기가 무척 힘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도에게 어려운 시련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십시오. 겸비한 그 사람은 반드시 기도합니다.

겸비는 단순한 겸손이 아니라 나의 무력감을 고백하면서 주님만을 나의 주인으로 섬기는 자세를 말합니다.??감상적인 겸손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진정한 겸비는 신령한 은혜를 사모하고 기도하는 자세에서만 나타납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하나님! 저는 아무 것도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겠습니다는 자세를 가질 때 비로소 겸비의 자리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때로는 어려운 시련을 주어서라도 겸비의 자리에 들게 하십니다.

2.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심을 믿어야 합니다.

14절에??“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 지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사모하는 자의 눈빛은 선하고 아름답습니다만 그러나 싸우고 증오하는 사람들의 눈빛은 독기가 서리고 무섭습니다. 사랑과 사모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자의 기도를 결코 외면치 않습니다.

“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라고 하셨습니다.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은 12절에도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 왕에게 나타나셨다고 했고,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여기 나타나셨다는 말과 듣고 라는 말은 품사상 동사(動詞)입니다.

성경은 도처에서 하나님은 듣고, 보고, 말씀하시고, 오시고, 가시고, 일어나시고, 기뻐하시고, 슬퍼하시고, 동행하시고 일하신다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살아서 역사하시는 행동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

기도하는 가운데 있어서 제일 처음 그러니까 기적의 출발점이 어디라고 보십니까? 바로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때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부소부재하신 분으로서 어느 곳이나 아니 계시는 곳이 없습니다만 적어도 성도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관점에서 볼 때 하늘에서 듣는다는 말은 하나님은 기도에 대한 문제를 풀어주신다는 의미로 받을 수 있는 말입니다.

여러분! 신앙의 중심이 하나님께 있습니까? 그리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하면서 살아갑니까???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의 기도에 우선 관심을 가지십니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바로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들으시는 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왜 풀지 못합니까? 하나님을 향한 기도가 없이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 문제를 풀려 하기 때문에 점점 미궁에 빠져듭니다.??기도를 하는데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까?.??그렇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듣지 않고 계시기 때문이 아닌지 살펴보고 점겁해 보아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들으심(결재)이 있어야만 합니다.

대하 33:13 기도한 고로 하나님이 그 기도를 받으시며 그 간구를 들으시사 저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거하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

시 4:01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단 10:12 “그가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케 하기로 결심하던 첫 날부터 네 말이 들으신바 되었으므로 내가 네 말로 인하여 왔느니라.”

3. 하나님께서 들으시면(응답) 죄 사함과 그 땅을 고쳐주십니다.

14절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 지라.”

죄를 사한다는 말과 땅을 고친다는 것은 서로 연관이 있습니다. 사람이 먼저 죄 사함의 은혜를 입어야 그 땅에 평화가 임하고 고침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기 땅을 고친다는 말의 의미는 토지를 바꾼다는 뜻이 아닙니다. 농경사회에 있어서 토질은 토양의 환경을 개선하여야만 합니다.

그래서 박한 땅을 객토를 하거나 시비(施肥)를 해서 기름진 땅으로 바꾸지만 그러나 땅을 고친다는 말은 그러한 의미를 넘어서서 당면한 현실과 연관하여 이해해야 합니다.

당시는 인간의 의식주를 비롯한 전반적인 생활이 토지의 소산물에 절대적 의존을 하였던 시대 아닙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은 종종 인간의 죄악을 징계하거나 또는 축복을 할 때에 땅을 통하여서 그 축복과 저주를 내리셨습니다.

창 26: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합 03: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 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 도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그러므로 여기서 말씀하는 땅은 거기 사는 사람들과 경작지에서 생산되는 토산물, 채소, 곡식, 과일 등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의 징계로 인하여 토지의 소산물이 비록 다 황폐화 되었을지라도 먼저 사람에게는 죄 사함과 함께 땅의 소산물을 능히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말이지요.

성도 여러분! 땅을 고친다는 말을 좀더 넓게 우리의 신앙생활 환경에 적용하여 살펴보면 어떨까요? 예컨대 경제활동, 정치활동, 사회활동 등에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육신이 살려면 문화와 환경도 고침을 받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이 세상에서 잘 되기를 원하시지 신음소리 내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러나 현실의 상황이 여의치 못하여 우리가 아픔과 신음 소리를 낼 때는 다 듣고 계십니다. 국가의 당면한 어려운 상황도 다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비록 어떤 환난과 고통의 현장에 있을지라도 이 전(殿에) 나와서 기도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 것이라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 내 심령이 아무리 황폐되었어도 하나님은 고쳐주십니다. 내 가정이 아무리 위기에 처해 있어도 하나님은 고쳐주십니다. 내 사업이 아무리 어려운 지경에 있어도 하나님은 고쳐주십니다. 탕자와 같은 자리에 있어도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은 새롭게 아들의 자리로 고쳐주십니다.

돌아와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치료를 기다리는 자에게는 꾸짖지 않고 고쳐주실 하나님을 오늘 이 시간 만나시기를 축원합니다. 얽히고설켜서 잘 안 풀릴 것 같은 문제들을 가득 안고 있습니까? 다 고침받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 이 시간 고침을 받고 기쁨으로 돌아가야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삶의 영역에서의 땅을 고칠 수 있도록 내어드려야 합니다.
내 심령도 오픈하고, 내 가정도 오픈하고, 생업의 터전도 오픈하고, 우리 교회도 오픈하여 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에서 치료함을 받아야 합니다. 내 안에 찌들어 있는 묵은 죄악의 때를 벗기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맙시다.

맥스 루카도는 “기도는 값진 보석”이란 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기도는 값진 보석처럼 소중히 취급된다. 기도의 말은 정화되고 능력을 입어 우리 주님께 향기로운 냄새로 올라간다. 당신의 말은 하나님의 보좌에 이르기 전에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당신의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여 세상을 변화시킨다. 당신은 기도의 신비를 이해하지 못할지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하다. 하늘의 행동은 누군가 이 땅에서 기도할 때 시작된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런데 땅위에 성도의 기도가 없으므로, 아직도 모모 성도의 기도가 연합되어 있지 않으므로, 영적인 부흥의 소리가 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땅이 황무합니다. 우리의 삶의 구조가 전반적으로 흔들리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주님을 향한 가슴이 식어가고 있습니다. 사랑의 공동체 안에서의 재미를 점점 잃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죄악으로 인함이 아닙니까? 하나님과 친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여 기도하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여야 합니다.??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은혜 잘 받고 난 이후에 돌아서기만 하면 남을 폄하하고 함부로 험담을 하던 입술을 오늘 고칩시다. 이 입술을 고쳐야만 축복이 임합니다. 14절 말씀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삭막한 가슴과 황폐한 이 땅을 내가 고칠 지라고.

우리가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고치십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께 이 땅을 고쳐달라고 기도할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땅을 고치시는데 도구로 내어드리면 되고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난 이 후엔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입술에 기도의 불을 붙이십시오. 말씀의 불을 붙이십시오. 찬양의 불을 붙이십시오. 영혼 일일구 운동의 불을 붙이십시오.

그리하여 내 심령과, 내 가정과, 내 생업의 터전과, 미스바교회 위에 죄악의 문제가 제거되고 부흥의 불길이 타 오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5절 “ 이 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16 절에 “이는 내가 이미 이 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으로 여기 영영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 고 하신 하나님 전에 달려나와 기도하는 기도의 요사가 되시기를 복빌어 드립니다. (황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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