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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 (엡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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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인생을 바꾸는 종교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신분이 바뀝니다. 죄악과 마귀의 종이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됩니다. 또 성령을 받으면 각자의 생활에도 놀라운 변화가 나타납니다. 언어가 달라지고 생활태도가 달라집니다.
삶이 변화되고 하늘과 땅의 복을 받고 하나님께 인정받고, 사람들에게도 인정받고 칭찬과 존경을 받게 됩니다. 영적인 축복과 물질적인 축복을 받고 많은 사람을 전도하는 전도의 결실도 맺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더럽고 추한 죄악의 삶에서 거룩한 삶, 의로운 삶을 살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변화된 성도의 삶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입니다. 성령께 사로잡혀 사는 삶입니다.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전에는 본능이 지배하는 삶이었고 죄가 지배하는 삶이었다면 예수 믿고 변화 받고 난 다음에 삶은 성령에 의해서 지배 받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1. 율법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성령께 지배 받기 이전에 우리의 삶은 정욕과 탐욕의 존재였습니다. 롬7:5“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줬는데 율법 때문에 죄의 정욕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율법이 우리를 구원시키는 도구가 못되었던 것입니다. 롬3:20“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고 그러므로 죄를 회개하고 구원얻게 하시려고 주신 것입니다.

롬7:8절에는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다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율법이 우리의 탐심을 자극하고 탐심을 만족시키는 쪽으로 사용되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율법을 가지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 순종하며 헌신할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죽이는 도구로 사용하더라는 것입니다. 롬7: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바리새인 율법을 정통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 율법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도구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교만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는 도구로 사용한 것입니다. 지금도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다.
법을 잘 아는 사람들이 법을 잘 지킵니까? 아닙니다. 법을 이용합니다.

땅에 대해서 제일 많이 아는 사람이 어떻게 하면 공정한 분배가 이뤄질까? 하고 고민합니까? 그 정보를 가지고 투기하고 탐닉에 빠집니다.
바울은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는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딜레마에 빠진 적이 없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싶습니다. 말씀대로 살고 싶습니다. 순종하고 싶습니다. 섬기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던가요?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도 여전히 미움이 있고, 예수 믿고 난 다음 에도 여전히 시기가 있고,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도 여전히 남의 고통을 즐기고 있지 않습니까?

밤낮 ‘이 사회가 이 꼴이 뭐냐’ 하면서도 자기도 그렇게 즐기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바울도 .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 . ”인간은 예외가 없습니다. 모두 . . 인간의 능력으로는 구원이 불가능합니다. 인간은 너무 이중적입니다. 속과 겉이 다릅니다. 그러나 방법이 있는데 그리스도 안에서는 가능합니다.
바울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과 동시에 같이 붙들어야 될 것들이 뭐냐하면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지배해 주셔야만이 진정으로 순종하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순종하며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의 삶입니다.

2. 술취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 이전의 삶의 특징은 술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문화에 술에 빠지지 않는 문화 봤습니까? 술문화는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이것은 방탕문화입니다.
오늘 사회의 문제는 음란의 문화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원조교제라는 말이 나온지도 오래 되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그런데 유혹을 받는 이유가 뭡니까? 명품이라는 것 때문입니다. 사치품. . .그래서 몸을 팝니다. 탐욕때문입니다. 탐욕의 뿌리가 뭡니까? 방탕입니다. 방탕의 뿌리가 뭡니까? 술문화입니다. 술문화가 이렇게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엡5:18에는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 .
오늘날 술에 취해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통계청의 발표에 의하면 1년 동안에 술로 인해서 사망하는 사람이 2만 명이라고 합니다. 술 마시고 자살하는 사람, 술에 취해 난간에 떨어져 죽는 사람, 술 마시고 운전하다가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 술 마시고 물에 빠져 죽는 사람, 불에 타 죽는 사람, 그 외에도 온갖 범죄 뒤에 감추어져 있는 통계는 셀 수도 없습니다. 살인, 폭행, 강도, 절도, 강간 등 모든 범죄가 전부 술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세계 보건 기구는 일인당 순수 알콜 소비량이 한국이 슬로베니아에 이어 세계에서 2위라고 했습니다. 교통사고도 세계적이고 술 마시는 것도 세계적입니다. 폭탄주도 한국에만 있습니다. 술은 잘 마시면 약이지만 잘못 마시면 독입니다. 오늘날 술 때문에 가정과 인생을 파괴당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 죄악된 세상으로 인해 인생과 삶이 파괴되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성령 받아서 성령의 능력으로 죄악과 방탕, 타락을 물리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술과 성령은 유사성이 있습니다. 둘다 사로잡혀 산다는 것입니다. 취해 산다는 것입니다. 오순절 날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난 다음에 사람들은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행2:12)

술에는 힘이 있습니다. 밥은 안먹어도 술은 먹어야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술은 자기 의지대로 사는게 아니라 술기운으로 살아가지 않습니까? 성령충만도 그런 힘이 작용합니다. 성령충만한 사람들은 성령의 힘에 이끌려서 사는 것입니다. 내 의지가 아니라 성령의 의지로 살아갑니다. 취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영에 인도함을 받아 살아야 합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 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 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8:14-15)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은 당연히 능력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성도는 본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수 있게 정해 놓으셨습니다.

아기낙타가 엄마낙타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우린 왜 이렇게 눈썹이 길어?” 그러자 엄마낙타는 의젓하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응, 그건 사막에서 부는 모래바람에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란다.” “응. 그렇구나.”
조금 후 아기낙타는 엄마낙타에게 또 물었습니다. “엄마, 우린 왜 발가락이 두 개야?” “응, 그건 사막에서 모래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런 거란다.” “응. 그렇구나..” 아기낙타는 사막에 잘 적응되어 있는 자기 자신이 무척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또 묻습니다. “엄마, 우리 등은 왜 이렇게 불뚝 튀어나온 거야?” “응, 그건 물이 없는 사막에서 물을 저장하기 위한 것이란다. 이건 우리 낙타들만의 자부심이지.” “응. 그렇구나.” 그렇게 한참 얘기를 다 들은 아기낙타가 엄마낙타한테 말했습니다. “엄마, 근데, 우린 지금 동물원에서 뭐 하는 거야?”
그렇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사람들인데 왜, 능력 있는 삶을 살지 못하고, 왜 사랑과 희망이 넘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서로 아름다운 삶을 나누며 사랑과 기쁨과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누며 섬기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세상에서 일터에서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전하며 악한 세력과 선한 싸움을 감당하는 그리스도의 군사요 선교사 역할을 감당해야 할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집 안에 모여 식구들끼리만 친교하고 안일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또 식구들 끼리 전투만 하고 살아가는 것입니까?
그 능력은 주와 함께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듯이 성도는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 존재인 고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고서는 도무지 살아남을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3. 성령의 지배를 받고 살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미국 사람이 프랑스에 관광을 갔다가 파리에 있는 어느 골동품 가게에 잠시 들러서 구경하다가 진주 목걸이 하나를 샀습니다. 오래되고 낡은 것이라서 이미 색깔은 다 바래었지만, 진주 목걸이에 장식되어 있는 장식이 그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래서 얼마냐고 물어보았더니 500달러를 내라고 했습니다. 그는 좀 비싼 듯 했지만 장식품이 마음에 들어서 그것을 샀습니다. 그는 그것을 가지고 미국으로 왔습니다. 그리고는 한동안 자기의 보석상자에 넣어서 그대로 방치해 두었습니다.
그러다 한 번은 현찰이 좀 필요해서 그것을 보석상에 가서 팔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래된 것이라서 과연 얼마나 값을 쳐줄지 호기심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집 근처에 있는 보석상에 가지고 갔더니, 보석상 주인은 그 진주 목걸이를 손위에 올려놓고 두꺼운 돋보기를 가지고 한참동안 들여다 보고 감정을 하더니 아주 상기된 표정으로 뜻밖에 말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20,000달러를 주겠습니다. 제게 파십시오.”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500달러를 주고 샀는데 20,000달러를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신을 좀 가다듬기 위해서 일단 그것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다음날 그는 그것을 가지고 꽤 알려진 다른 골동품 가게를 찾아갔습니다. 골동품 가게의 주인도 역시 그것을 두꺼운 돋보기로 한참동안 감정을 했습니다. 오랫동안 들고서 다른 사람들과도 수군 수군하다가 드디어 결정이 끝났는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50,000달러를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이 진주 목걸이를 제게 파십시오.” 그는 더 놀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솔직하게 골동품 가게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색깔이 다 바랜 진주 목걸이인데 왜 그렇게 값이 많이 나갑니까?” 그러자 골동품 가게 주인은 “아니, 아직도 모르고 계셨습니까?” 하면서 돋보기를 진주 목걸이에 들이대면서 보라는 것입니다. 자세히 보니 거기에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조세핀에게. 황제 나폴레옹으로부터.” 그리고 오른편에는 나폴레옹 황제의 친필사인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가게 주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진주 목걸이의 자체만으로는 불과 몇 십 불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적혀 있는 글씨와 친필사인 때문에 그렇게 값이 많이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후3: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필로 쓰신 편지입니다. 그리고 엡1:13에서 바울은 우리를 가리켜서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자”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인이 들어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입니다. 값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자들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값비싼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싸인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렇게나 살 수가 없습니다. 싸구려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값진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자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사람들이 하는 것을 그대로 본받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싸인이 없다면 우리는 500불 짜리도 안될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의 향기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 성령께서 우리 속에 내주하시면 죄악이 우리 속에 엄습하지 못하고, 죄악을 물리치고 질병과 저주, 가난도 쫓아내고 의로운 축복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을 수가 있습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활력 있는 삶을 삽니다. 깊은 영적인 신앙의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성령이 없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없거니와 그의 계명을 지킬 수도 없다.”라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했는데도 변화가 없는 사람은 성령을 받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령받기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또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생산적인 인생을 삽니다. 전도인의 일을 감당합니다. 영혼을 살려내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에서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침묵하고 있으면 그들이 어떻게 복음을 듣겠습니까?
성령의 지배를 받고 싶습니까? 정말 생산적인 그리스도인되고 싶습니까?
전도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하기 이전에는 목적없이 살아갑니다. 남 좋다는 나라 다 가봐야 되고, 남들 다 따라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 지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될지 명확한 목표가 생깁니다.
성령을 받으면 개인적인 삶이나 가정이나 직장이나 나라, 국가도 새로운 변화를 받게 됩니다. 독일의 마르틴 루터는 성령세례를 받고 종교 개혁을 일으켜서 중세 역사를 바꿔놓았습니다.

17세기 말에 영국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산업혁명을 겪은 후 극도로 사회가 혼란해져서 정신적인 퇴폐, 향락주의가 팽배해서 감옥마다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인생의 가치관을 상실했을 때, 존 웨슬리는 성령충만을 받고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변화받고, 정치와 제도가 달라지고, 다시 영국이 신사의 나라, 올바른 나라, 선진국가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혁명을 할 때에도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무혈혁명을 일으켰습니다.

1865년 미국도 남북 전쟁의 여파로 사회가 극도로 혼란에 휩싸였습니다. 경기침체와 불경기, 불신, 합리주의, 갈등과 싸움으로 많은 사람들이 신앙에서 떠났을 때 무디가 기도함으로 성령 충만을 받아서 성령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지금도 성령 충만을 받으면 여러분의 가정이 새로워지고, 여러분의 직장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고, 나라가 변화되고 새로워지는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세월을 아낍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5:15-21).

예수님은 짧은 33년의 생애를 사셨습니다. 세상적으로 출세하시지도, 돈을 많이 버시지도, 거기다가 장수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순간에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고 가신 것입니다. 이것이 성공적 인생입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채로인생을 표류하고 방황하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인생에는 연습이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일생을 통해서 화장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2년, 전화하면서 떠드는 데 보내는 시간이 최소한 1년, 요즘은 더 많을 것입니다. 전화를 달고 다니는 삶들도 많으니까요. 신호대기등 앞에서 신호 바뀌는 것을 기다리면서 보내는 시간이 6개월이랍니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자랑은 고통고하 슬픔뿐이니라"(시편 90:10).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되면 감사와 찬송하게 됩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단순합니다. 마음속에 새 노래, 신령한 노래, 찬송으로 충만한 마음이 바로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새 노래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신령한 노래를 부릅니다. 성령 충만한 마음속에는 언제나 하나님을 찬미하는 노래 소리로 가득 차는 것입니다.
성령충만 하지 않으면 어떨까요? 찬양대신 한숨, 감사대신 불평, 불만, 짜증, 피차에 복종하는 삶 대신 헐뜯고 싶고 침을 뱉어주고 싶은 등등의 마음이 드는 결과로 나타납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고 싶습니까? 이제 하나님께로 나오십시오. 가도하십시오. 새벽, 수, 금요심야 . .한마음으로 부르짖어 기도합시다.
통성기도 . . . .
(임경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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