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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을 이루고 덕을 세웁시다 (롬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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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5:1)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롬 15: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롬 15:3)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롬 15: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롬 15:5)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롬 15:6)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롬 15:7)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심리학 이론 중에 에니어그램이라고 하는 이론이 있습니다. 에니어그램이란 사람들을 대체로 봐서 아홉 가지로 아홉 가지 유형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첫째가 개혁자형입니다. 도덕적으로 완벽주의를 기하는 사람입니다. 아주 성실하고 정직합니다. 이렇게 정직하고 성실한 것까지는 좋은데 대게 편협합니다. 그게 약점이에요. 자기 하나는 정직한데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원만하지를 못해요. 또 둘째는 협조자형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 사람은 감정이입이 잘 되고 애끓는 마음과 감정이 풍부합니다. 이것은 좋은데 이 사람은 너무 감정적이라서 의지가 약합니다. 또 때로는 지성적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동기부여자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감이 있고 야심가이고 최고가 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항상 최고가 되겠다는 그런 사람인데 고집이 셉니다. 그래서 또 힘듭니다. 그리고는 예술가형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직관적이고 동정심이 많고 그리고 개성이 강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우울하기도 하구요.

정서적으로 강한 대신에 이 사람은 쉽게 말해서 광기가 있습니다. 가끔 미친 짓을 하는데 이걸 수용하지 못한다면 예술가와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 어떤 때는 천사 같고 어떤 때는 악마 같고. 그렇다고 해서 불평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건 예술가와 사는 팔자니까 그건 각오해야 됩니다. 또한 사상가형이 있습니다. 이것은 탁월한 지각을 가졌고 탐색지능이 있습니다. 어느 분야에 있어서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나 역시 좀 괴팍하고 편집병적일 때가 있습니다. 그 다음엔 충성가형이 있습니다. 감정에 호소하고 사랑 받는 사람이고 장난기도 있고 유머도 있고 환심도 사고 아주 충성가형, 아주 좋아요. 그런데 이런 사람은 너무 의존형입니다. 충성을 잘하는 사람, 큰 일은 못합니다. 자, 그 다음에는 만능선수형이 있습니다. 순발력이 강합니다. 신바람 나게 삽니다. 그러나 이런 만능선수형이라는 사람들은 확실히 즉흥적이고 광적일 때가 많고 지구력이 약합니다. 그 다음에 도전자형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일단 옳다고만 생각하면 누구도 말리지 못합니다. 아주 의지형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 대개 보면 오만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자기만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곤 아홉번째가 중재자형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수용능력이 많습니다. 신뢰할 수 있고 느긋하고 낙천적입니다. 이런 중재자형은 참 덕망이 있다고 우리가 말합니다만은 이런 사람들은 유약하고 수동적입니다. 너무나 수동적이라서 무슨 큰 일을 맡길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자 이렇게 아홉 가지중에 어느 거 하나 마음에 듭니까? 여러분이 생각하는 완전한 사람이 있습니까? 완전한 사람은 없어요. 이런 장점이 있는가 하면 저런 단점이 있어요. 그런고로 우리는 장점을 극대화하면서 단점을 서로 이해하고 덮어가면서 수용해야만 가정도 사회도 직장도 편할 수가 있고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오래 믿은 사람의 단점이 발견되었다고 실망할 것도 아니고 본받고 싶은 대상의 약점을 보았다고 배신감을 느낄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장점만 보고 인정하고 칭찬하고 존경하고 본받으려고 해야 합니다. 단점이나 허물은 서로 덮어주려고 해야 합니다. 서로 기도하며 사랑으로 보완해서 최소화해주려고 힘써야 합니다. 자기자신을 볼 때도 자기장점을 극대화할 것이고 단점을 줄이도록 노력할 것이지 결코 어느 단점이 있다고 해서 나는 쓸모가 없다던가 나는 구제불능 하다던가 자기자신을 그렇게 비하할 필요도 없다 그말이예요.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남편이건 자녀건 나 자신이건 간에 항상 이런 장점 그 장점을 더 크게크게 인정을 하고 키워가고 단점은 아주 심각한 문제가 아닌한 이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생각하고 받아들이면서 슬기롭게 잘 교정하고 극소화하도록 힘써나가는 것이 지혜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바울사도는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쓴 편지에서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하라고 권고합니다. 참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면 참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게 악으로 대할 때가 많습니다. 덕스럽지 못하고 은혜롭지 못하게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말을 듣는 사람이나 그런 행동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에 은혜와 감동이 넘치기는 커녕 씁쓸하고 짜증이 나며 열심과 사랑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결과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도적으로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려고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면 우리로 인하여 가정과 직장과 사회와 교회의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집니다. 부드러워지고 사랑이 솟아납니다.
그러면 우리가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서로 약점을 담당해야 합니다.(1)

1절에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자의 약점을 담당하라'고 말씀합니다. 종종 믿음이 강하다는 사람들중에 믿음이 연약하여 실수하는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 비판적인 말을 쉽게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주님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믿음이 강하고 성숙한 사람일수록 연약한 자의 약점을 드러내어 부끄럽게 할 것이 아니고 덮어주고 오히려 담당해주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십니까? 우리 죄를, 우리의 약점을 담당하신 분이십니다.(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담당하셨다" 그랬어요. 약점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셨다는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말씀이에요. 예수님이 오셔서 야 너는 왜 항상 그 모양이냐? 하시지 않고 내가 네 죄악의 형벌까지도 대신 다 담당해 줄께 하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것입니다. 은혜가 되지 않습니까? 감동이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약점을 약한 것을 담당하라고 했어요. 그 담당한다는 말 한마디가 아주 중요한 것이올시다. 강한 자가 누구입니까? 강자란 힘이 세고 큰 권력을 잡고 돈이 많아 세상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그런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로 인격적으로, 성품적으로 강한 자. 믿음 생활을 오래하여 마땅히 여러 사람에게서 존경을 받을 사람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여 세 가지로 요약해 봅니다. 먼저는 이해에 있어서 강한 자예요. 이런 사람도, 이런 환경도 저런 것도 다 넉넉하게 이해할 수 있어요. 이게 강한 사람이에요. 이걸 이해를 못하고 조그마한 일에서 걸려서 넘어지고 오해가 되고 뭐 원수 맺고 울고 짜고 절망하고, 하는 사람은 아무리 강한체하여도 약한 사람입니다. 약해서 민감한 거거든요. 그런데 강한 사람은 언제나 넉넉합니다. 뭐 놀랄 것도 없고, 그렇게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거든요. 그래서 뭐 좋은 사람도 사랑하고 못된 사람하고도 같이 지내고 이럴 수 있어요. 이해, 이해를 잘 하는 거예요. 언제나 상대방을 깊이 이해하고 잘 참아주는 것입니다. 이해심이 깊은 사람은 자신을 강한 자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그 다음에는 깨달은 바 진리를 자기 생활 속에 구체화할 줄 알아요. 이게 능력이 있는 사람이에요. 오늘 여기서 하나님 말씀을 듣습니다. 들으면서 바로 '아, 그렇다. 그런고로 나는 이렇게 살아야겠다' 하고 적응할 수 있고 구체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그런 소화능력이 있는데, 어떤 분은 이걸 못해요. 그래서는 그 말씀은 좋은데 나와는 관계없다 이거에요. 그 말씀은 나와 관계없는 거다. 하고 생각합니다. 이게 바로 약한 것이에요. 그래서는 진리는 진리대로 신앙은 신앙대로 행위는 행위대로 성품은 성품대로 따로따로 사는 거예요. 영영 이렇게 살아요. 이게 바로 약한 사람이에요. 그러나 강한 사람은 진리를 하나를 배우면 열을 생활에 적용하여 실천하고 삶의 변화를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그 다음에 또 강한 사람은 실천 지구력이 있어요. 어떤 사람은 알기는 하는데 행하지를 못해요. 사랑해야 될 줄 알면서 사랑하지 못해요. 용서해야 될 줄 알면서 용서하지 못해요. 용서했다가도 또 비슷한 일이 생기면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요. 이게 바로 휘청휘청이요. 약한 것이죠. 그런데 강한 사람은 한번 시작했다 하면 끝이에요. 새벽기도 결심하면 어려움이 생기고 피곤해도 극복하고 나와 열심히 기도합니다. 전도하려고 결단하면 내가 생각한대로 풀리지 않아도 열매를 맺기까지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실천의지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오래 못가고 주저앉아 버립니다.

제 주변에 박사과정을 공부 하는 분들이 여러분 있습니다. 박사 과정을 다 마치려면 상당히 시간이 많이 걸리거든요. 4-5년 수고해 가지고 마지막에 논문을 쓰는데 이게 잘 안되는 거예요. 그래서 학위를 받지 못하고 수료로 끝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박사과정까지는 시작도 못하고 10여년 전에 석사과정을 공부하는데 과정을 다 마치고 논문만 제출하면 되는데 논문을 쓰는 것이 어려운거예요. 미루고 미루다가 마지막 해에 가서 할 수 없이 시간을 뚝 떼어 논문에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어렵게 써서 가지고 가면 잘 못 썼다고 다시 쓰라고 여러번 퇴짜를 맞는 것입니다. 은근히 부아가 나는 겁니다. '그 까짓거 박사학위도 아니고 흔한 석사 학위 안 받고 말지..' 하고 포기하려고 했더니 아내가 "교인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대학원 다닌 것을 다 아는데.. 박사과정은 하라고 안 할테니 제발 논문은 마치세요." 하는 겁니다. 그대로 포기하자니 아내보기도 창피하고 교인들에게도 부끄러울 것 같아 이를 악물고 다시 써서 석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같이 공부한 사람들중에 절반이상이 공부는 잘 해놓고 논문을 ㅡ다 포기하여 수료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게 바로 약한 거죠. 이게 바로 사람의 마음이에요.

이런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그래서 이해도 못하고 구체화도 못하고 실천도 못하고 꾸준하게 끌고 나가지도 못하는 이 약한 자를 어떡하면 좋겠어요? 그걸 이해하는 것이죠. 담당하는 것이죠. 나아가서는 내가 대신하는 것이죠. 약한 자의 약점을 내가 담당한다. 여기에 담당한다는 말은 짐을 진다는 뜻이에요. 그의 짐을 내가 대신, 자발적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지는 것이요. 여러분 이사야 53장에 보면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다."고 증거합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내가 맞을 것을 그분이 대신 맞았어요. 내가 받을 비방을 그분이 받았어요. 만약 우리가 누군가를 대신하여 비난을 받고 고생을 자처하여 감수한다면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대신 담당하는 것이에요. 책임을 대신 지는 거예요.

어떤 분이 여자 의사였습니다. 그런데 이 분의 남편이 밖으로 돌다가 에이즈 병에 걸려 가지고 왔어요. 기가 막힌 거예요. 그는 남편을 앞에 놓고 이야기합니다 "내가 의사로서 바삐 돌아가느라고 아내 구실을 못해서 당신이 밖으로 돌다가 이렇게 됐으니 이 책임은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러면 당신이 이대로 죽으면 당신을 죽인 내가 어떻게 평안하게 살수 있겠느냐고 여기서 둘 다 같이 에이즈 걸려 가지고 죽는 것이 나를 위해서도 좋겠다고. 10년 동안 별거하던 사람이 다시 만났어요. 다시 부부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에이즈 환자하고 죽기를 결심하고. 이 뜨거운 사랑으로 인해서 두 사람이 다 건강해 졌어요.

여러분, 누구 책임입니까? 모든 문제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보면 나 책임 다했다. 밥을 안 줬냐? 옷을 안 줬냐? 학비를 안 줬냐? 너 할 일이나 해라.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에요. 너희들이 잘못된 거 가출한 거 내 책임이다. 남편이 밖으로 도는 거 내 책임이요. 아내가 잘못하는 거 내 책임이요. 내가 담당을 하는 거예요. 저주를 받아도 내가 받는 거예요. 그 마음이 그리스도의 마음이요. 우리는 어쩌면 내 책임까지 남에게 돌리려고 하는 세상이에요.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어요.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를 그가 담당하셨어요. 우리의 약점을 다 담당하셨어요. 자기 책임으로 돌리고 십자가에 돌아가셨어요. 성품 자체가 약한 자의 약점을 비판하지 않고 내가 대신 자발적으로 담당하는 그것이 바로 사랑이었어요.

2. 서로 기쁘게 하려고 힘써야 합니다.(2)

1절과 3절은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반복하여 말씀합니다. 여러분, 자기를 기쁘게 하려는 마음, 자기 중심적인 마음, 이거 한 번 탁 떼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뭐 이제까지 나 중심으로 살았으니까, 뭐 이젠 누릴 것 왠만큼 다 누려봤으니까, 이제부터는 나를 기쁘게 하고자 하는 것 없이 살아보겠다고 한번 확 뒤집어 보세요. 새로운 세상이 보일 것입니다. 모든 일에서 나를 잊어버리세요. 내 명예, 내 지위, 내 뜻, 내 고집, 뭐 다 잊어버리세요. 나를 기쁘게 하는 마음으로부터 완전히 벗어서,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면은요 여러분 신비로운 기쁨을 신비로운 행복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2절에는 '이웃을 기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성숙한 자의 강한 의무입니다. 모든 일에서 남을 기쁘게 하고 남을 편하게 하고 남의 이름을 높이고 바로 그것이 행복의 근본이란 말입니다.

수학분야에 있어서 세계적인 명성을 가졌던 사람 기꾸찌 라고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 기꾸찌 교수가 옥스퍼드 대학에 다닐 때 역시 수학의 천재가 돼서 항상 1등만 하는 거예요. 영국 백인들이 기분이 나빠요. 자존심이 상해요. 아니 이 동양사람한테 우리 이 영국사람이 지다니. 근데 이 브라운이라는 사람이 항상 2등을 하는 거예요. 그걸 넘어서지를 못해요. 이런 경쟁관계에 있었는데 마침 기꾸찌가 독감에 걸려 가지고 몇주간 동안 학교에 못나왔어요. 이것을 알고 '옳지, 이번 학기는 브라운이, 백인이 1등할 것이다' 생각을 했는데 웬걸요. 또 기꾸찌가 1등을 했어요. 알고 보니까 브라운이 매일같이 강의를 듣고 노트한 것을 가지고 가서 이 기꾸찌 친구에게 전달강의를 했어요, 매일같이. 왜요? 당신이 감기로 인해서 1등에서 내려앉는 것을 나는 바라지 않는다 이거예요. 얼마나 깨끗한 마음이에요? 남을 기쁘게 하고 그래서 밀어주고, 이해해주고, 참아주고, 기다려주고, 그것이 남을 기쁘게 하는 비결이에요.
1등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남의 입장에서 이해해주고 서로 행복하게 주고자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주자는 것입니다.

에리카 카니는 '가정 재단 서약'이라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제가 자라날 때 어머니는 제가 참여했던 여러가지 활동에 깊이 관여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자주 저에게 '헤더에게 친구로 느끼게 해 주어라' '줄리에게 네 파트너가 되어 달라고 요구해 보렴' '크리슨에게도 너와 네 친구들과 자리를 같이 하자고 권해 보아라!'라고 말씀하시곤 하셨습니다. 어떤 때는 그런 말들을 듣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만일 내가 친한 친구들하고만 같이 있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왜 나는 다른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지를 늘 확인해야 하는 걸까?"

에리카의 어머니는 딸에게 로마서 15장 7절에서 가르치고 있는 원칙에 순종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신자들을 받아들이고 환영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수줍거나, 화내거나, 방어적이어서 또는 이상하게 보이거나 지나친 요구 때문에 따돌림을 당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문제가 되지 못합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우리를 받아들인 것 같이" 우리도 신도들을 서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러분, 정말로 그리스도를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서로 약점을 담당하십시오. 그리고 서로 기쁘게 하려고 힘쓰십시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참된 삶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아서 그분의 길을 따라 우리도 피차 약점을 담당하고 피차 기쁨을 주는 삶을 살아갈 때 행복하게 되고 영적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는 삶을 살아 그리스도를 본받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앞장서시기를 바랍니다.  (문기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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