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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승리와 성공의 비결(행 27: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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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뻔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리라 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사도행전 27:20-25)

세계적인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서재에는 전자기학의 시조라고 부르는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고 합니다. 마이클 패러데이는 가난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학교를 다닐 수 없었습니다. 열두 살 때 그는 런던의 한 서점 점원으로 일하면서 책읽기를 시작했고, 특히 과학서적들을 좋아해 그 분야의 책들을 읽으며, 독학으로 공부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당시 유명한 화학자였던 험프리 데이비의 강연을 듣고 크게 감명을 받은 후 데이비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내용은 "선생님 밑에서 과학을 공부하며 일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소년의 편지를 받은 데이비는 친구와 의논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우선 먼저 그에게 빈 병 닦는 일을 시켜보게. 그런 일을 시시하게 여기고 못하겠다고 거절하는 사람이면 쓸모가 없는 걸세."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데이비는 편지를 보낸 소년에게 "그런 일을 해 보겠느냐"고 연락을 했고, 그날부터 그 소년은 빈 병 닦는 일을 최선을 다해 계속 했습니다. 이를 지켜본 데이비는 그를 조수로 채용했고, 그 소년은 마침내 전자기학의 세계적인 대부가 되었습니다.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므로 성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작은 일을 소홀히 취급해 밀려나고, 쫓겨나고, 실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16:10절에서 주님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은 절망과 실패를 극복하고 희망과 성공에로 나가는 승리의 길이 무엇인가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위기를 극복하는 비결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본문의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1. 실패한 사람들의 경우 철저한 자기들의 경험을 의지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들의 인생 선배들은 세상을 가리켜 바다와 같다고 했고 우리 인생은 마치 바다에 항해하는 선박에다 비유를 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마치 망망대해에 떠 있는 일엽편주와 같다라고 합니다. 인간의 계획과 노력이 유라굴라 폭풍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로마행 알렉산드리아 호에는 276명이 승선해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배에 종사한 전문적인 뱃사람도 있었고, 군인도 있었으며, 무역상도 있었고, 여행객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배가 풍랑을 만나 배가 좌초하게 된 것입니다.??

11절에 보니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바울의 조언을 백부장 율리오가 듣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바다와 기후에 대해서 선장과 선주만큼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 말로 말하면 그들은 전문가입니다. 따라서 바울의 말보다는 바다의 경험이 많은 선장과 선주, 즉 전문가의 말을 듣는 것이 백부장으로서는 올바른 선택이었습니다. 죄수요, 외모도 별 볼 일 없는 바울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은 “당신이 뭘 알겠느냐”라며 무시했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선장과 선주의 충고에 따라 뵈닉스, 즉 그레데 항구에 가서 겨울을 보내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듣고 일단 배는 출발했습니다.

읽지는 않았지만 13절을 보십시오. 떠나는 날 아침 남풍이 순하게 불었습니다. “남풍이 순하게 불매....” 역시 노련한 전문가의 말이 맞구나, 우리는 그 사람의 충고를 받아들인 것이 얼마나 잘했는가’라며, 그들은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레데를 향하여 돛을 달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경험이나 이성적 판단에 우선하여 산 그들에게 예상치 아니한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15절을 보면 "바람에 쫓겨갔다"고 했는데 13~15절을 보면 순풍은 영원한 순풍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축복 받을 때 그것이 영원한 축복인 줄 압니만 그렇지 않습니다. 반대로 영원한 고난도 없습니다. 고난이나 축복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을 때 고난도 축복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순풍에 돛을 달고 그들은 항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왠 일입니까? 얼마 가지 못해서 섬 가운데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배가 풍랑에 밀려가고, 자기 마음대로 바람에 의하여 목적지를 향하여 올바로 갈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17절을 보면 "그냥 쫓겨가더니" 라고 했습니다. 바람에 밀려 손쓸 겨를도 없이, 대책도 없이, 밀리고 쫓겨갔다는 것입니다. 우린 여기서 일에 쫓기고, 시간에 쫓기고, 실패에 쫓기고, 고통과 질병에 쫓기는 인생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18절을 보면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라고 했습니다. ?애썼다′라고 하는 것은 ?풍랑을 이기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죽지 않고 살기 위해, 망하지 않고 일어서기 위해 애썼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18절 하반절을 보면 그토록 애지중지하게 여기던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라고 그 당시 상황과 위기를 소개했고,

19절을 보면 심지어 배를 목적지로 이끄는 "배의 기구를 저희 손으로 내어 버리니라"고 했습니다. 가라앉는 배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값비싼 무역상품들, 여행객들의 보따리들, 그리고 항해에 필요한 배의 기구들을 바다에 모조리 던져버렸습니다.

드디어 본문 20절에 보면 이 배에 타고 있는 승객들은 절망적인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광풍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 이것은 인생의 항해를 하고 있는 인생들이 자신의 경험과 오직 성공을 향해 달려가다가 위기를 만나게 되면 대처능력에 한계가 있음을 얼마나 적절하게 잘 조망하며 보여주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저마다 삶의 목적지를 정하고 그 목적지를 향한 항해를 시작합니다. 우리가 타고 있는 인생이라는 배의 항해는 때로는 순항을 하지만 때로는 난항을 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속도를 내어 달리기도 하고 때로는 더디게 나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노도처럼 불어오는 광풍에 휩쓸려 인생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절망적인 상태에 이르기도 합니다.

당시 세계 최대의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가 빙산에 부딪쳐 가라앉을 때 그 배 안에 있던 온갖 보화들, 사치품들, 그리고 저명인사들 모두 바다에 빠졌고, 그리고 죽었습니다. 타이타닉호의 경우는 배가 통채로 가라앉았기 때문에 버리고, 안버리고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일어버렸습니다. 우리에게는 버릴 것이 있고, 버려선 안될 것들이 있습니다.

죄, 나쁜 습관, 옳지 못한 것, 신앙생활에 걸림돌이 되는 것들, 교회생활을 가로막는 것들, 맡겨주신 직분과 사명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것, 좌절, 불안감, 불신하는 것들 이런 것들은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버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버리면 안됩니다. 돈을 버리고, 직장을 버리고, 나의 방법과 수단을 버리고, 이성적 경험을을 버리고, 지식을 버릴 수는 있어도 오직 구세주되시는 예수님을 버리거나 맡겨주신 사명과 직분을 버려서는 결단코 안됩니다.

14절 끝을 보면 "광풍이 대작하니"라고 했고, 18절을 보면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라고 했고, 20절을 보면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라고 했습니다. 큰 풍랑이 계속됐다는 것입니다.

일단 바다의 풍랑이 계속되면 일주일에서 열흘 이상 그치지 않습니다. 파도 10∼20미터의 높이로 밀어닥치면 그 위세란 짐작하기 조차 어렵습니다. 그 당시 알렉산드리아호는 그다지 큰 배가 아니었습니다. 커다란 풍랑을 견디기에는 역부족인 배였습니다. 그래서 20절 끝을 보면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고 했습니다. 실패의 결정적 조건은 풍랑이었습니다. 풍랑 때문에 쫓겨가야 했고, 살아남기 위해 애써야 했고, 짐도 기구도 바다에 버려야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쫓기며 사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내가 돈을 관리해야지 돈이 나를 지배하면 오래 못 삽니다. 내가 시간을 관리해야지 시간에 쫓기다 보면 쓰러집니다.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아야지 사람들에게 시달리다 보면 삶이 피곤해 집니다. 인간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 사는지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있습니까? 바울이 말한 것처럼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기에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복빌어 드립니다.

2. 실패를 극복하고 성공하고 승리한 비결을 찾아봅시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환란과 시험과 위기와 문제와 인간의 한계를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본문에서 여기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1) 기도의 응답이 있었습니다.

23절을 보면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라고 했고, 2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고 했고, 25절을 보면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6절에 "한섬에 걸리리라"는 말씀을 전하며, 31절을 보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고 바울은 선언했습니다.

실패와 위기를 극복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바울은 알고 있었기에 철저하게 하나님을 신뢰하며, 위기 속에서 기도했습니다. 이 풍랑 속에서도 바울이 끝까지 붙들고 있었던 것은 하나님과의 개인적이고도 변함없는 기도의 교통이었습니다. 이 기도의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행선하는 자들을 버리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받았을 때, 바울에게는 더 이상 절망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바울의 대담함과 확고함과 태연함은 그가 유라굴라 풍랑으로 인한 위기와 모든 사람이 느끼는 절망감 속에서 그들의 처절한 탄식의 와중에서도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하늘과 땅을 지으신 그리고 이 바다와 파도를 다스리시는 분에게 자기의 시선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이 풍랑의 와중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었습니다.

캄캄한 현실이 어둠 속에서 전혀 내일의 삶을 예측하지 못한 채 절망 중에 있는 모습과도 같을 때가 있습니다. 지하의 갱도에 갇혀 버린 광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나 무너져 버린 갱도에 갇힌 광부에게도 바깥과 교신할 수 있는 채널이 살아 있는 경우가 있을 때 절망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위해서 구조 작업을 하고 있소, 당신은 구조될 것이오.” 파이프는 통해서 혹은 마지막 남은 이 교통의 줄을 통해서 자기를 향한 구조의 손길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에게는 초인적인 생존 능력이 생기게 되고, 그 위기의 상황을 급복하며, 절망을 이겨낼 수 있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기도는 우리들의 생명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도가 상실될 때 남아 있는 것은 인간적인 절망의 몸짓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나 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아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삶의 과제와 씨름을 할 때 자주 넘어지면서도 내일을 향해서 걸어가고자 하는 이 왜소한 믿음이 적은 나를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내가 기도할 때마다 힘이 되십니다. 응답하시고, 도와주십니다. 승리가 되도록 나의 어려움을 바꾸어 주시고, 역격을 돌파하고 이길 힘을 주시며, 나의 전적인 도움과 능력이 되십니다. 할렐루야!

그분 앞에 나의 절망과 실망과 낙담을 아뢸 수 있는 기도의 줄이 끊어지지 않는 한, 나에게는 더 이상 절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과 나 사이의 기도의 교통이야말로 나에게 있어서 문자 그대로 희망이요, 생명이요, 구원이요, 능력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고 있는 한, 내 삶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가 계속되고 있음을 아는 한, 나의 삶을 향한 뚜렷한 하나님의 응답과 지시가 말씀을 통해서 내게 들려오고 있는 한, 기도의 줄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한 우리에게 덤벼드는 위기와 시험과 어려움의 풍랑은 더 이상 두려워할 대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풍랑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신나는 모험일 수 있습니다. 나를 향해 덮쳐오는 거센 풍랑 속에서도 주님을 찬양하며 걸어갈 수 있는 평안함과 담대함의 비밀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까? 풍랑 중에 평안하려면 평상 시에 기도생활을 쉬지아니하고 하나님의 관계가 바로되어야 합니다. 기도 할 때 마다 하나님게서 역사하시며, 응답을 주시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항상 들어야 합니다.

위에서 말씀 드린 대로 바람과 풍랑에 쫓겨가도 해결이 안됐고, 애쓰고 힘써도 어쩔수 없었고, 심지어 짐과 기구를 다 버려도 위기와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하였더니 "내가 살려주겠다"는 그 응답과 약속의 말씀을 믿었을 때 살길이 열렸고, 위기가 물러갔습니다.

요한복음 6:16-21절을 보면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다 풍랑 만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자들끼리 배를 노저어 바다를 건너가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힘을 믿고, 10여리 정도를 풍랑과 싸우며 노저어 나갔습니다. 그러나 풍랑은 더 거세어지고 힘은 지쳐 더 이상 버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 물위로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내니 두려워 말라" 이 한마디에 바다의 풍랑은 잔잔해 졌고 제자들의 절망이 희망으로, 실패가 승리와 성공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전 미국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죄수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재소자들 중 96.3%는 어렸을 때 가정에서 신앙교육을 받은 일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범죄율이 가장 낮은 민족은 유대인들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우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실패를 극복하는 비결, 위기를 이기는 방법,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길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달려있습니다.

서로 교제하던 남녀가 결혼을 앞둔 어느 날 사주궁합을 보았습니다. 결과는 하늘이 맺어준 천상배필이고, 찰떡 궁합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날부터 틈만 나면 찰떡을 사먹었습니다. 약혼식 때도 축하 케이크 대신 찰떡으로 케이크를 만들고 먹었습니다. 결혼식 때도 일부러 찰떡을 만들어 대접하고, 자기들도 먹었습니다. 신혼여행을 가서도, 신혼살림을 차리고 난 후에도 찰떡을 일부러 먹었습니다. 찰떡처럼 달라붙어 찰떡 궁합으로 살자는 뜻에서였습니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나면서부터 부부싸움이 시작되었는데 초저녁에 시작한 싸움이 새벽까지 계속됩니다.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도 않은 채 싸웁니다. 쉬는 날이 되면 마주 바라보고 앉아 하루 종일 싸웁니다. 이유는 찰떡을 너무 많이 먹었기 때문이었답니다. 찰떡을 먹음으로 찰떡궁합이 됩니까? 점쟁이나 관상쟁이가 찰떡궁합이라고 한다고 해서 부부가 행복해집니까? 성공, 행복, 평안함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믿고 고백하며,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처절한 구제의 희망이 없는 상황속에서 바울에게 응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도행전 27:44절을 보면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원을 얻으니라"고 했습니다.

성공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행복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그 길과 방법과 해결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바울처럼 기도생활을 철저히 합시다. 할렐루야!

부시맨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그는 나이도 모르고, 시간도 모르고, 돈도 모르는 무공해 인간이었습니다. 출연료로 받은 돈을 버리거나 땔감으로 쓸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부시맨의 주인공 「니카우」는 점점 생선회를 먹고, 담배를 피우고, 통장을 만드는 그래서 돈을 알고, 세상을 아는 사람이 돼버렸습니다. 눈에 보이는 경제적 성공이 오히려 그의 정신을 망쳐버리고 만다라는 교훈이 들어있습니다.

성공할수록 자기관리를 바로 해야 합니다. 돈을 많이 벌수록 그 돈을 바로 써야 합니다. 권세를 잡고 출세할수록 그 권력을 바로 행사해야 합니다. 실패했다가 성공하는 것보다, 성공했다가 실패하는 것이 더 비참하고 힘든 것입니다.

중국 전체 인구를 12억 7천으로 봅니다. 그 중 중산층을 2억 5천만으로 봅니다. 미국 인구와 맞먹습니다. 연간소득 6천불 이상을 9천만 명으로 봅니다. 중국은 지금 올림픽을 앞두고 경제적 급성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도덕적 타락과 정신적 몰락입니다. 돈버는 일이라면 안 하는 짓이 없습니다. 오죽하면 조기에 납덩어리를 넣었겠습니까? 성공을 잘못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경악할 만한 사건들이 보도되곤 하는데 오늘 새벽에 전방 모 사단에서 총기난사로 여섯명이 죽고, 두 명이 중경상이어서 국방부 장관이 오전에 국민들에게 사과하는 뉴스를 내 보내었습니다.( 2005년 6월 19일) 우리 한국의 경우는 더욱 심각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믿음을 가지시고 거룩하게 구별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나의 생사여부의 결정권을 쥐고 계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기도생활로 승리하는 삶을 만들어 가는 신령하고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복빌어 드립니다.

2) 자신의 존재목적, 사명감이 분명해야 합니다.

본문 24절을 봅시다. "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바울사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 고난 속에서의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인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풍랑 속에서 승리하는 삶, 평안하려면 사명을 발견해야 합니다.

자신이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지 또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는지 알고 있는 자라야 고난과의 싸움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고생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괴롭지만, 무엇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그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될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포자기하게 됩니다. 사탄의 전략에 금방 넘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이야말로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의 근원이 됩니다.

바울은 바다의 풍랑으로 인한 절망적인 위기와 고난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결국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선택받았고, 로마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가이사 앞에 서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가이사 앞에서야 한다. 설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가이사 앞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증거하며, 생명의 복음을 전할 것이다. 그리하여 전 세계를 복음화 해야 하는 사명을 주셨다.” 이 귀한 사명감을 가지고=고 있는 한, 바울에게 있어서 고난은 오히려 도전이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자는기도할 때에 바울이 가이사 앞에서야 한다는 사실과 함께 배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 그에게 맡겨졌다고 말씀합니다.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난파선에서 구원의 여망이 없이 죽음 앞에 서 있는 이 사람들을 돌볼 책임이 자신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바울에게 있어서 자기의 목숨을 걱정하는 것은 차라리 사치였습니다. 할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함께 배에 타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돌보아야 했습니다. 그들의 생명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들에게 방향을 제시해야만 했습니다.

풍랑 속에서 바울은 한 순간에 지도자로 부상합니다. 죄수인 바울이 풍랑의 한복판에 서서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는 사람들에게 방향을 제시하면서, 지도자로 부상하고 있는 순간을 주목해 보십시오. 성경에 나타난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기들의 삶의 존재 이유와 자기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각성하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요셉의 경우를 살펴봅시다. 그는 현제들의 미움을 받아서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려가야 했고,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알고 하루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인하여 그는 마침내 보디발장군의 신임을 받습니다. 그리하여 보디발 가정을 지키고 다스리는 가정의 총무가 됩니다. 그러나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급복하자 이제는 그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감옥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삽니다. 성실한 요셉에게 감옥을 다스리고 관장할 수 있는 책임이 주어집니다. 감옥에서 요셉의 인생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2년이 지난 어느날 요셉의 기도생활을 통해 신령한 지혜와 술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준것이 계기가 되어 마침내 요셉은 자신이 노예로 팔려왔던 애굽 땅의 총리가 되어 그 나라의 왕인 바로 밑에서 행정을 집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디에 있든지 지도자였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디서든지 지도자로 설 수 있었습니다. 환경이 그를 지도자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의 지도자적 자질이 그가 어디로 가든지 그를 지도자로 만들고야 만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정글에 도전하면서 리빙스톤은 종종 자기의 동료들과 자기의 안부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존재 이유가 다할 때까지, 나의 사명이 다할 때까지 나는 결코 죽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이라야 풍랑을 향해서 도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렁이는 풍랑의 한 복판에서 찬양할 수 있고,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돕는 지도자의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안심하십시오. 우리는 마침내 이 풍랑을 극복할 것입니다.” 여기 풍랑 속에서 승리의 삶과 소망의 방향을 제시하는 바울의 놀라운 모습을 주목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자기 인생의 사명을 발견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 우리 모두는 오늘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존재 이유를 확인하고 있습니까? 왜 사는지 그 이유를 아십니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땀흘리며 일하는 이유를 아십니까? 미스바교회 성도여러분들이여 나의 사명을 발견하셨습니까?

왜 이 땅에 살고 있습니까? 오늘 여러분의 존재목적인 사명을 알고 있습니까? 오늘 땀흘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따라합시다. “나는 살아도 죽어도 주를 위해, 하나님의 여광을 위해 존재합니다.” 인생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아는 한, 절망은 없습니다. 풍랑 속에서도 노래할 수가 있습니다. 미스바교회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사명을 올바로 알고 계십니까?

왜?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나 같은 사람을 구원하셨는지?,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얼마든지 많은데 하필이면 나를 지목 하셨는지?, 많은 교회 중에 왜 미스바교회를 선택하게 하셨는지?, 그리고 왜 나 같은 사람에게 귀한 지굽을 맡기셨는지? 장로, 집사, 권사, 성가대, 교사와 같은 직분을 맡기셨는지 그 이유를 아십니까? 이 사명을 깨달을 때 비로소 여러분이 만난 풍랑 속에서도, 부담스럽게 느껴질 지도 모르는 그 직분에서도 여러분들은 자유할 수 있고 오히려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힌 철저한 실패자였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승리로 개선가를 불렀습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온전한 사명의 헌신자로 살았기 때문에 “내가 다이루었다” 는 철저한 존재목적에 최선을 다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 죽은자 가운데서 살려 내시어 죽은 자와 산 자의 주로 높임을 받게 하셧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성공도 십자가로 이뤄집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목적이 분명하고, 예수 바로 믿고, 어떠한 경우에도 철저하게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기도생활로 최후의 승리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 똑바로 잘하면 성공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이 귀한 믿음으로 바울처럼 철저하게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명을 살아가는 미스바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복빌어 드립니다. 두려워 말라, 안심하라고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새 힘을 얻고, 때마다 일마다 도와주시는 주님을 의지해서 이 무서운 풍랑의 인생을 잘 헤쳐 나가시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풍랑 이는 바다 한 가운데서 절망하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는 이 세대 사람들에게 우리 그리스도인은 믿음을 보여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소망을 보여 주어야할 사람들입니다. 두려워 말라, 안심하라고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새 힘을 얻고, 때마다 일마다 사건마다 도와주시는 하나님을 전전으로 의지해서 이 무서운 풍랑이 이는 인생을 잘 헤쳐 나가시는 사명자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의 사도 바울처럼 저와 여러분이 이 세대를 향해서 "나는 하나님을 믿노라. 여러분이여! 풍랑과 폭풍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믿고 안심하라!" 풍랑을 만난 이 민족과 개인이 찾고 있는 사람이 바로 이러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라고 담대하게 외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할 때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고 신앙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정작 내 생활, 인생 항해에 폭풍우를 만났을 때, 그리고 내 삶이 절망의 벼랑에 서게 될 때, ‘천지를 만드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고백’을 하면서 전적인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하고 의지하고 있는지 믿음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바울이 타고 가는 이 배에 거센 풍랑이 밀려올 때, 그때 하나님도 그 고난과 역경의 자리에 다가와 계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고난의 상황에서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 곁에 다가오십니다. 이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풍랑만 볼 것이냐. 내 곁에 계시며 유로굴라와 같은 거대한 위기를 넉넉히 이기시는 주님과 그 분이 주신 사명만 볼 것이냐는 전적으로 저와 여러분의 몫입니다. 우리가 승리와 성공을 향하여 달라가고 있지만 어디를 바라보고 살고 있는지 이시간 점검해 보시다. 지금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볼찌어라. 내가 세상 끝날 때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나님을 전전으로 신뢰하며, 기도생활을 회복합시다. 바울 처럼 귀한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분명한 목적과 귀한 믿음을 회복하여 최후의 성공자 승리자가 되시기를 복빌어 드립니다. <아멘>
(/황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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