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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을 믿음으로 오는 복 (눅 16: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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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오늘 영신교회의 두 번째 주일 초청 잔치 3부 예배에 나오신 여러분 위에 하나님의 평강과 은혜가 넘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옆에 계신 분들과 웃으면서 인사합시다.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우리는 종종 착각 속에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에겐 불행이 찾아와도 나에게는 결코 그런 일이 없을 것 같은 생각 말입니다.

다른 사람은 다 늙어도 나는 평생 안 늙을 것 같고, 내 피부는 늘 젊은이처럼 팽팽하리라는 착각 속에 빠졌다가, 어느 날 우연히 거울 앞에 서서 주름져 가는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되는 존재, 그것이 우리 인간이고, 또한 그것이 인생인 듯 합니다. 

30대 초반 쯤, 열심히 목회할 때, 저는 배 나온 사람이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뭐든지 열심히 하면 배가 왜 나오겠어. 먹고 놀기만 하니깐 그렇지......’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아,  그런데 제가 40대 후반을 넘으니 배가 나오는 겁니다. 더 문제는 한 번 나오니 절대 안들어가는 겁니다. 걷잡을 수가 없었어요. ‘아~ 이게 남 얘기할 게 아니구나.’ 나에게도 그런 때가 찾아 올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지금은 이렇게 머리숱이 없지만,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머리숱이 너무 많아서, 이발소에 가면 숱을 솎아 내었습니다. 저는 그 때에 대머리 되시는 분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염치가 없이 살면 저렇게 머리부터 빠지나.’하고 말입니다. 저 장로님 보고 하는 얘기 아닙니다. 하필 또 오늘 대머리 되신 장로님께서 옆에서 기도하셨는데^^
아 그런데, 30대 후반부터는 머리가 빠지기 시작하더군요. 저도 이제 곧 장로님을 형님으로 모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곧 따라 가겠습니다. 남의 말 할 게 아니더군요. 다른 사람에게 불행이 와도 나에게는 그런 일이 없으리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이 어려움 당할 때에 절대 비판하거나 비평하면 안 됩니다. 남의 자식이 집 나갔다고 할 때, “어이구 어떻게 자식을 그 꼴로 키워?”할게 아닙니다. 우리 자식이 집 안 나가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손주가 가출 안한다는 보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럴 때 일수록 기도해주고 위로해줘야지, 남의 흉을 보면 안 되는 것입니다.

탈렌트 중에 홍성민씨(66세)라고 아실 것입니다. 얼굴을 보면 낯이 익으실텐데 ‘수사반장’ 같은 드라마에서 악역에 가까운 역할을 자주 하셨던 분입니다. 그 분이 당뇨를 오래 앓으시다가 시력을 잃게 되셨습니다. 그는 이제 시각장애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내야만 하게 되었습니다. 인기를 구가하고 이름이 오르내릴 때에는 자기가 시각장애인이 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그런 현실이 자기에게 닥쳐온 것입니다.
그는 지금 장애학교에 가서 점자를 배우고 있습니다. 눈으로 읽지 못하게 되니, 새롭게 손으로 읽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단 오르내리기를 연습하고, 혼자 지하철타고 집에 찾아가기, 버스타기, 택시타기 등을 연습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는 누워서 식은 죽 먹기인 일, 또 돈만 주면 얼마든 탈 수 있는 버스를 장애인이 되니, 모진 훈련을 통해 다시 배우고 연습해야만 하게 되었습니다. 넘어지고 자빠지면서, 지팡이를 두드려 가면서 길을 찾아 가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는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이 어느 순간에 찾아올 수 있습니다. 내게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란 없습니다. 그것이 착각이요, 그렇기에 우리는  자만할 수 없고, 교만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착각이 있습니다. 부자가 되면 인생이 행복하리라는 착각입니다.

재물이 인생을 행복하게 할까요? 그렇다면 적어도 현대에 어느 재벌 총수는 자살하면 안 됩니다. 그 사람 가진 재산이 얼마나 많은데, 자자손손 먹고 살 수 있는데 왜 그만한 부를 두고 자살하겠습니까? 미쳤습니까? 재물이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돈만 많이 벌면 행복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우리가 없는 것을 성취하면 행복하리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행복을 주지는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돈이 많으면 편리하고 유익한 점이 많습니다. 좋겠죠? 그러나 그것이 행복을 보장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란 책을 통해 세계 경영을 얘기하고, 많은 젊은이에게 큰 꿈을 품으라고 설파했던 그 책의 저자, 말 안 해도 다 아시지요? 그 분이 5년여 동안에 해외도피생활, 기나긴 방랑생활을 마치고 그리고 병색이 짙은 얼굴로, 피곤한 몸으로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김포 공항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 분에 대한 기사를 다룬 한 뉴스 헤드라인을 보니 “세계는 넓었지만 그가 기댈 곳은 없었다.” 라고 썼습니다. 세계는 넓습니다. 그러나 그의 몸 하나 편하게 누울 곳 하나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벌을 받기 위해서 다시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를 맞아주는 것은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뿐입니다.
그를 기다리는 것은 1.3평의 독방입니다. 1.3평의 독방이 어느 정도 되냐 했더니 가로가 1.9M이고 세로가 2.5M. 곧, 한 사람 누우면 딱 맞는, 화장실 변기하나 있는 그런 공간에서 그는 조사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한 때는 세계를 주름잡던 재벌 총수였지만은, 오늘 그런 모습이 되었습니다. 참 안쓰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결코 재물이 인간의 행복을 보장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착각이 있습니다. 권력의 정상에 서면 행복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권력이 인간을 행복하게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 3D업종이란 말을 많이 합니다. 힘들고 어렵고, 좀 먼지가 많이 나는 일을 하면 3D업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 신3D업종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고 봤더니 ‘종합병원 원장’이 3D업종 중에 하나로 들어간답니다. 아니 종합병원 의사만 해도 출세라고 말하는데 병원장에게 왠 불명예스런 말이냐구요? 내막을 들여다 봤더니,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는 것입니다. 병원에 한 번 가보십시오. 뭔 노조가 그렇게 데모를 많이 하는지, 골치가 아프답니다. 의료사고 나면 오라 가라 하고, 이게 보통일이 아니랍니다. 그러니 3D업종 중에 하나, 맞답니다.
또 다른 하나가 대학교 총장이랍니다. 대학교 총장하면 우러러 보이고 얼마나 높은 자리입니까? 그런데 예전 같지 않답니다. 툭하면 학생들이 총장을 감금 하질 않나, 교수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나, 정부에서는 내리 누르지 않나, 이게 견딜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너무 힘든 직업이라는 겁니다.
또 한 가지 3D업종이 대형교회 목사랍니다. 저는 대형 교회 목사가 안 되봐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툭하면 여론의 몰매를 맞습니다. 대형 교회가 어쩌고 저쩌고, 목사들이 어떻고, 물론 목사들이 잘못하는 것들이 많으니 얘기를 듣는 것이겠지만, 어느 자리이고 쉬운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늘 오해받을 수 있고, 늘 고통과 고난이 따르는 길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하물며 대통령의 자리는 행복할 것 같습니까? 노무현 대통령에게 누가 가서 당신 지금 행복하십니까? 라고 물어보면 뭐라 그러겠습니까? 아이고 대통령 자리 못해먹겠다고 그럴 것 같습니다. 권력에 매력은 있을지 모릅니다. 말 한마디에 천하가 움직이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러나 행복하지는 않을 것 입니다. 거기에는 그 나름대로의 고통이 따릅니다. 오죽했으면 뭘 하다가 안되면 누굴 탓합니까? 조상 탓 안하고 이제는 대통령 탓 합니다. 대통령이 정치를 잘 못해서 이렇게 뭐가 안 된다고, 우리애가 공부를 못 하고, 사업이 안 되고, 직장이 그렇고, 이제는 집값이 떨어져도 대통령 탓입니다. 집값을 내리려는 게 오히려 또 올려놓고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요즘, 대통령이 아줌마 힘을 못 당한다고 그러지 않습니까? 이러니 대통령 해먹겠습니까? 그것도 힘들다는 것입니다. 권력이 행복을 보장하지는 못합니다.

또 하나의 착각이 있다면 명예와 명성이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기는 한 시대를 갑니다. TV에 나오고 CF에 광고 나오면 잠깐 인기가 올라가지만, 메뚜기도 한 철이라고, 때가 지나면 사그라집니다. 인기 탤런트들이 시간이 지나고 제일 섭섭한 것이 시장에 장 보러 갔는데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이랍니다. 한 때는 애들까지 알아보고 자기를 쫓아왔는데,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것, 그 때가 제일 섭섭하다는 것입니다. 인기와 명예와 명성? 그런 것들이 행복을 보장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인기가 행복을 보장한다면 왜 유명한 탤런트가 자살하겠습니까? 그 좋은 인기를 두고 말입니다. 인기는 행복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돈 많고 인기 있고 예쁘면 행복할까요? 그렇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추억의 은막의 스타 가운데 ‘마릴리 먼로’라는 배우가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돈이 너무너무 많았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예뻤는지 모릅니다. 혹시 “나는 얼굴이 미워서 살기 싫다”는 분 계십니까? 여기는 그런 분이 한 분도 없어 보입니다만^^ 얼굴이 너무 못생겨서 살기가 싫고, 밖에 나가기 싫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여자는 너무 너무 예뻤습니다. 뭇 세계 남성들의 우상처럼 존재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싸인을 보내왔습니다. 이 여자가 뭐가 부러웠겠습니까? 돈 많고, 인기 있고, 예쁘고! 그런데 이 여자가 자살을 했습니다. 못살겠다고 자살했습니다. 괴로워서 못살겠다고 자살했습니다. 여러분 인기가 행복을 보장한다면 왜 자살하겠습니까? 권력의 정상이 행복을 보장한다면 왜 자살했겠습니까? 얼마 전에 부산시장이 자살하지 않았습니까? 또 포천 쪽의 어느 시장이 자살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그들이 행복하다면 왜 자살을 했을까요? 권력의 정상에 섰지만 그것은 행복을 보장 할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착각이 있습니다. 죽음 후에는 모든 것이 끝이라는 착각입니다.

죽으면 끝일까요? 아닙니다.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오늘 성경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입니다. 한 부자가 살았습니다. 그는 늘 자색 옷을 입고, 고운 베옷을 입고, 호화로운 안락한 삶을 살았습니다. 부러운 것이 없었습니다.
고운 베 옷, 자색옷은 명품 중의 명품입니다. 이 고운 베옷 한 벌 입으려면 몇 백 명이 1년 동안 일하는 임금을 보태야만이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몇 억이 넘는 옷이라고 합니다. 왕이나 입는 옷입니다. 이런 옷을 입고 그는 잔치를 벌였습니다. 쾌락을 즐겼습니다. 그것도 보통 음식이었을까요? 교회에서 점심을 먹을 때면, 육교식당에서 시켜 먹는데 음식 맛이 아주 좋습니다. 전에는 3,000원 받는 것을 요즘은 물가가 올라서 4,000원 받습니다. 그런데 어디 갔다가 갈비탕 먹으면 6,000원입니다. 그러면 왠지 바가지를 쓴 듯한 느낌입니다. ‘아니, 2,000원이나 더 주고 먹었네....’합니다. 그런데 잘 먹는 사람들은 한 끼에 10만원짜리, 20만원짜리도 먹는답니다.

그런데 이 부자는 그 정도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상을 호가 하는 값진 음식들을 먹으면서 호화로운 연락을 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죽했으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하루를 살아도 좋으니 그렇게 떵떵거리고 살아보다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뭐 그러길 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자는 그렇게 호화롭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와 대조되는 인물이 한 사람 있습니다. 바로 거지 나사로입니다. 그는 건강이 나빴습니다. 그래서 그의 몸에 헌 데가 생겨 종기가 생기니 진물이 나고 동네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아 주면은 가려운 게 좀 나았습니다. 그리고 먹을 것이 없어서 부자 집 대문간에 앉아서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 연명했습니다.

고대 근동이나 유대의 부자들은 손을 씻을 때 물에 씻지 않습니다. 그들의 주식이 빵이니 빵 한 조각을 뜯어다가 손을 쓰윽 쓰윽 닦습니다. 그리고는 그 빵을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그러면 나사로가 그걸 주워다가 먹는 것입니다. 구정물 같은 그 빵을 주워 먹고 사는 것입니다.
인생의 차원이 전혀 달랐습니다. 이런 인생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죽었습니다. 거지 나사로가 죽었는데, 천사들이 그들을 받들어 가지고 아브라함의 품으로 그를 데리고 갔습니다. 아브라함의 품이라는 것은 지금으로 치면 천국을 뜻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천국이 좋은지...... 요한계시록에 보면 천국이 얼마나 좋습니까? 사실 그 천국의 1/100만을 우리에게 잠깐 보여주는 것입니다. 진짜가면 아마 여러분은 기절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놀랄까봐 다 얘기를 못해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꿈을 꿨는데, 평상시에 욕심이 많아서 금을 많이 모았는데 천국갈 때 금 가방 들고 가면 왠지 좀 통할 것 같고, 좋은 자리 줄 것 같아서 금을 가득 준비해서 천국을 갔답니다. 도착했더니 문지기, 베드로 선생이 나오는데 그것이 뭐냐고 묻길래 ‘이것 좀 보십시오. 이게 세상에서 아주 귀한 금덩이입니다.’, ‘아니 그런걸 여기 왜 가지고 오셨습니까? 여기 천국에 들어와 보면 이 도로 포장이 다 금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스팔트 포장재 같은 걸 뭐하러 가져오셨습니까?’라고 반문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천국이 얼마나 좋겠습니까? 비만증도 없이 모두 배부르지도 않고, 그저 사랑하고, 행복하게 주님과 교재하며 살아갈 뿐인 것입니다. 그러니 천국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브라함의 품. 나사로는 바로 거기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부자도 때가 되니까 죽었습니다. 부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부자가 가보니 거기는 불 못이 있는 음부였습니다. 음부라는 것은 지옥을 의미합니다. 거기서 그는 너무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통스럽게 소리칩니다. “아브라함이여, 아브라함이여. 저 나사로에게 부탁해서 저 사람의 손에 물 한 방울 찍어서 내 입에 좀 떨어뜨려 달라고, 내 입을 서늘하게 하고 싶다고 너무 괴로워서 견딜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것도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나사로와 부자는 왜 이렇게 엉뚱한 관계가 되어 버렸을까요? 나사로라는 이름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은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면서, 믿음으로 살아갔던 인물이 바로 나사로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부자는 자기 배를 믿고, 재물을 믿고 교만에 빠져서 하나님을 무시하고, 고통 받는 이웃을 외면하면서 살아갔던 인물이 바로 부자인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그 사람은 이름도 성경에 안나오겠습니까? 거지보다도 못하죠? 이름도 안나오는 걸 보니까...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는데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의 교훈이 무엇입니까?

첫째,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죽음 후에 또 다른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보면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음 후에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되는대로 악하게 막 살다 죽으면 뭐 끝인데 뭐”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끝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는 천국으로 갈 수도 있고, 지옥의 불 못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가 주는 두 번째 교훈은, 현실은 내세를 위한 준비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이 땅의 생애는 짧습니다. 평균이 70살이요, 길어야 90에서 100세를 못 넘습니다. 그런데 이 땅의 생애는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내세는 영원합니다.
여러분, 어느 쪽에 비중을 두시겠습니까? 이 짧은 현실에 소망을 두고 여기에 비중을 두시겠습니까? 아니면 영생에 소망을 두시겠습니까? 지금은 준비 과정입니다.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죽음 후에는 내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이 이야기의 세 번째 교훈은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 온다는 것입니다.

이 부자의 부탁을 아브라함은 거절합니다. “너희와 우리 사이에는 큰 구렁이 있어서 갈 수도 없고 올 수도 없고, 왕래가 불가능 하다”는 것입니다. 후회해 봤자 돌이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한 번 결정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자가 이제 “아브라함이여 저는 이미 지옥에 왔지만, 제 형제 다섯이 이 땅에서 살고 있는데,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고 배만 두드리며 편안하게 살고 있으니 그들에게 죽은 나사로를 보내 복음을 전하게 하옵소서.”라며 마지막 부탁을 했지만, 아브라함은 그것도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는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어서 만약 당신의 형제들이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죽었다 살아난 나사로를 보내도 그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제 핑계 댈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죽어서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나는 너무 억울합니다. 나는 천국과 지옥이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아무도 그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지금 여러분에게 증언하고 있고, 천국과 지옥에 대해 설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선택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천국을 선택할 수도 있고, 지옥을 선택 할 수도 있습니다.

네 번째 교훈은 인생에는 역전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제 밤에는 한국 청소년 축구팀과 브라질의 경기가 있었습니다. 2:0으로 져서 너무 아쉬웠지만, 지난 목요일 새벽은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참 좋습니다. 나이지리아하고 싸웠는데 1:0으로 후반전까지 계속 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길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끝나기 10분전에 그냥 잤답니다. 그는 가장 중요한 10분을 놓친 참 안된 사람입니다. 저는 새벽 기도 때문에 예약 녹화를 해 두고 왔는데, 새벽기도 끝나고 가서 보니 후반 44분에 박주영이 프리킥을 차서 1:1로 동점을 만들고, 그 후에 백지훈 선수가 또 한골을 넣어서 2:1 역전승을 했지 뭡니까! 얼마나 멋있는 역전승인지 정말로 명승부 중의 명승부였습니다. 저는 이 축구를 보면서 이 축구의 역전이 바로 우리 인생의 역전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축구에서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워서 승리하듯이 우리 인생에도 그런 역전이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의 이야기들이 바로 그런 일들이 아니겠습니까?

나사로는 거지였고 비참한 삶을 살았지만, 그는 죽는 순간 그의 삶이 바뀌었습니다. 이 땅에서는 비참했지만, 죽는 순간 천국에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고 가장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역전의 삶을 산 것이고, 인생이 바뀐 것입니다.
  반대로 교만하게 살고 하나님을 외면하며 살던 부자는, 죽는 순간 그의 인생이 곤두박질쳐서 가장 비참하고 고통 받는 곳으로 떨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외아들 이야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나인성에 살고 있는 매우 가난한 과부가 아들 하나를 의지하고 살았는데, 그 아들이 어느 날 병들어 죽어버렸습니다. 그 아들의 장례식에서 상여가 나가는데, 그 어머니의 마음이 고통스러워 곡을 하고 있었고, 예수님이 보시니 너무 안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상여를 멈추게 하시고 관에 누운 젊은이를 향해서 “젊은이야 일어나라”말하십니다. 그 젊은이가 벌떡 일어나, 장례식은 취소되었습니다. 이렇듯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다 역전의 이야기들입니다.
  여러분 그들의 비극은 희극이 되고, 그들의 슬픔은 기쁨이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인생의 역전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으면 여러분의 인생이 바뀔 수 있습니다. 인생이 역전하는 것입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형들에게 미움 받고 노예로 팔려가서, 모진 종살이하고 매 맞고 고통당하는 인생이었지만, 주인의 눈에 들어 그 가정의 총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억울한 모함을 받고 지하 감옥에 갇혀 완전히 끝난 인생 같았지만,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이 그를 들어 일으키셔서, 하루 아침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요셉의 삶은 역전의 승리인 것입니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지만 왕의 은총을 받게 되고 그 나라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무리가 너무 많았습니다.
결국 그는 모함을 받아 사자굴 속에 던져졌습니다. 사자굴 속에서 천사들이 사자의 입을 다 막아버렸기 때문에 그는 안전하게 하룻밤을 보내게 되고 왕이 그를 구출해 주게 됩니다. 그리고, 다니엘을 모함하던 사람들은 사자굴 속에 던져져 굶주린 사자들에게 뼈조차 안 남기고 다 먹혀버렸습니다. 이 또한 인생의 역전입니다.

우리 예수님의 생애도 그렇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33년의 생애를 사시다가 마지막에 자신의 몸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붉은 피를 흘려 우리를 위해 희생하셨습니다. 그분은 죽어서 고난당하시고 조롱당하시고 무덤에 묻히셨지만, 사흘 만에 생명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놀라운 역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역전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서 예수 믿으면 이 땅에서 여러분의 인생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축복의 내세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5장 17절에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의 인생이 새로워진다는 것이며, 과거의 사람이 아니라 새사람, 새로운 인생, 새로운 출발이 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이 모두 예수님을 다 믿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더위에 여기와서 왜 고생하겠습니까? 예수님을 믿으시려고 오신 것 아닙니까? 여러분이 다 예수 믿고 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왜 예수를 믿어야 하겠습니까?

첫 번째, 예수를 믿으면 죄를 용서받습니다.

몸에 때가 묻으면 비누로 닦으면 씻겨집니다. 그러나 죄는 양잿물로 씻어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죄가 너무 많아서 내장을 청소하려고 양잿물을 삼켰는데, 죄를 씻지도 못하고 죽었답니다. 그럼 무엇으로 씻을 수 있겠습니까? 성경 구절에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다.”고 말씀 하셨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린 보혈만이 우리 죄를 씻어줄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죄를 용서 받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죄는 우리를 불행과 저주와 지옥으로 인도합니다. 시편 32편 1절에 보면,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예수 믿으면 죄 사함을 받습니다.

두 번째, 예수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립니다.

여러분, 자녀가 얼마나 좋은지 다들 아시지 않습니까? 부모 잘 만나면 자녀가 호강합니다. 유명한 이건희 씨나 정주영 씨의 자녀가 되면 그 많은 재산의 상속자가 될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은 1장 12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대통령의 자녀만 되어도 특권이 많은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은 어떻겠습니까.
시편 27편 10절에 보면, “네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육신의 부모는 그 자녀를 버릴 수 있으나, 하나님은 그 자녀를 결코 버리시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책임져 주시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흔히 남을 흉볼 때 하는 말 중에 “주책이야 주책~”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주책이참 좋은 말이었답니다. 주님이 책임지는 사람! 주책^^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주님이 책임져 주시니 얼마나 좋습니까? 또한 천국까지도 책임지십니다. 보십시오. 예수 믿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세 번째, 예수를 믿으면 영생의 복을 받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 26절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 하셨고, 요한복음 5장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미 영생을 얻은 것이고, 영생이 보장된 것이란 뜻입니다. 이 말씀처럼 예수 믿으면, 여러분의 미래가 보장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는 것입니다.

네 번째, 예수 믿으면 마음의 평강이옵니다. 마음의 평안이 얼굴에 나타납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주노니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얼굴이 선하게 보이지 않습니까?
가끔 시간 날 때 테니스를 칠 때가 있는데, 아웃인데도 세이프라고 우기는 사람은 대개 예수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아웃이건 세이프건 신경 안 씁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얼굴이 다릅니다.
누가 제 얼굴을 보고 도둑놈이라고 그럴 사람 있겠습니까? 제가 어디 가서 물건사고 하면 파는 사람이 “목사님이시죠?”라고 묻곤 합니다. 이처럼 예수 믿으면 얼굴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한양 대학교 교수님 한분이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아무리 봐도 얼굴이 좀 다른 것 같았답니다. 하루는 교통사고가 나서 영안실에 열명의 시신이 들어왔는데, 그중 여섯 명은 살짝 웃으면서 죽었고, 네 명은 얼굴이 일그러진 상을 하고 죽어 있더랍니다. 그래서 왜 그런지 조사를 해보니 웃으면서 죽은 여섯 명은 예수 믿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원리는 간단합니다. 예수 안 믿다가 죽으면 지옥 가기 때문에 죽는 순간 귀신이 와서 끌고 가려하니 안 가려고 발버둥치니까 인상을 찡그리며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죽으면 천당에 가기 때문에 죽는 순간 천사들이 와서 영접합니다. 그래서 너무 좋아서 환하게 웃으며 죽는 것입니다.

어떤 노부부가 살았습니다. 할아버지가 70세부터 몸이 아팠기에 할머니가 몸에 좋다는 인삼, 녹용등 좋은 것들을 다 해드려서 10여년을 더 사시고, 노부부는 80세 쯤에 비슷하게 돌아가셨답니다. 천국에 갔는데 할아버지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향해 대뜸 “이놈의 할망구야, 내가 10년 전 죽을 때 그냥 내버려두지 왜 살려서 이렇게 좋은 곳에  빨리 못 오게 만들었어?”라며 짜증을 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듯 천국은 참 좋은 곳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으면 마음의 평안이 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달리 세상이 주는 기쁨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좀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양평에서 목회할 때, 집사람이 수원의 대학원에 다녔습니다. 통학시간이 4시간에다 밤늦게 오니 버스를 탈 재간이 없었습니다. ‘티코 하나만 있으면 부러울 것이 없겠다’는 티코 타령^^이 시작되었습니다. 큰 맘을 먹고 180만원을 주고 중고 티코를 장만했습니다. 신나게 타고 다녔습니다. 중고차인데다 먼 거리를 오고 가고, 몇 년이 지나니 더욱 낡고, 고장도 잦아졌습니다. 이제 새로 나온 마티즈나 누비라를 보면 부러운 듯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이 능력 없이 저런 것도 못 사주냐는 듯 싶어 좀 더 나은 것을 사주면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몇 년 만에 다시 큰 맘을 먹고 200만원을 주고 중고 누비라2를 사 줬습니다. 처음엔 상당히 만족해했습니다. 그런데 그 좋은 표정이 일주일을 못 갔습니다. 밥상의 꽁치는 어느새 사라지고, 맨 풀만 올라오는 초원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는 차도 어떻고, 다른 것은 어떻고 하며 또 다른 얘깃거리가 등장 했습니다. 저는 다시한번 깨달았습니다. ‘사람에게 물질로 주는 기쁨은 오래 못가는 것이구나!’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천국의 기쁨, 성령의 기쁨만이 영원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섯 번째, 예수 믿으면 성공적인 인생이 되고 모든 일이 잘됩니다.

예수님만 바로 믿으면 다 성공하고 잘 됩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라고 약속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못 구했거나 구하지 않아서 못 받은 것이지 바로 구하면, 하나님이 다 잘 되게 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여러분, 성공이란 무엇입니까? TV 광고에서 딸이 “아빠, 성공이 뭐야?” 하고 물으니, 아빠가 “우리처럼 이렇게 좋은 집에 살고, 우리 딸에게 매일 맛있는 것을 사주는 것이 성공이지.”라 대답하니, 딸이 “성공은 참 좋은 거구나!”라 합니다.
물론 그것도 성공입니다. 좋은 집에 살고 맛있는 것, 먹고싶은 것을 매일 먹는 것, 하지만 그것은 성공의 일부분입니다.
이 땅에서도 잘 살아야 되지만, 영원한 내세에서도 잘 사는 것이 성공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 믿으면 이 땅에서도 잘 되고 천국에서의 영원한 미래가 우리에게 보장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영혼이 잘 됨처럼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바라노라”라고 말씀하셨고, 로마서 8장 28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다 잘 되게 하시고, 축복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예수 믿으면 사랑받으며, 사랑하며 살게 됩니다.

재물과 권력과 인기가 있으면 행복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그분의 몸과 피까지도 다 내어 주셨고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큰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그 사랑 안에서 기뻐하고, 사랑을 나눠 주게 되며, 이웃에게 우리가 받은 사랑을 증거 하게 됩니다. 내가 받은 예수님의 사랑을 내 형제에게 내 이웃에게 내 가족에게 증거 하게 됩니다. 사랑하며 사랑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여러분들도 이 사랑 받고 싶지 않으십니까?

사랑에는 능력과 치유하는 힘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느 병원에서 한 산모가 쌍둥이를 조산으로 낳아서 인큐베이터에 따로 따로 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쌍둥이 동생의 심장이 안 좋아서 숨이 고르지 못하고 점점 죽어가자, 의사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 때, 간호사가 “선생님 이왕에 며칠 있으면 죽을텐데 제 형하고 같이 인큐베이터에 있게 하지요.”라고 말했답니다. 병원법으론 안 되는 것이지만, 죽을 아이니까 한 인큐베이터에 형과 동생을 나란히 눕혀 놓았답니다. 그런데, 그 쌍둥이 형이 오른손으로 동생의 목을 감아주었고, 하루가 지나자 동생이 정상으로 회복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조산아지만, 형이 동생을 사랑으로 포옹해 줄 때, 놀라운 치유력이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며칠 후에 건강해져 잘 살고 있다고 합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치유력입니다. 사랑하고 사랑받으면 건강해집니다.

여러분! 주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신 주님이 여러분을 사랑의 자리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내가 너를 사랑 하겠노라 내 사랑의 품으로 너희는 와서 내게서 쉼을 얻으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행복하고 싶지 않습니까? 예수 믿으면 이런 복들이 생깁니다. 오늘 결단 하시고, 예수님 앞에 다 나오셔서 주님을 영접하시고, 영원한 천국의 행복을 누리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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