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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을 받으면 달라진다 (행 2:4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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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의 삶은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과 함께 있던 3년간의 공생애 시기,
둘째는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기까지의 약 40일간의 시기,
셋째는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이후 순교하기까지의 사역의 시기입니다.
짧게는 40일, 3년에서, 길게는 몇 십 년이 되는 시기까지 차이가 많습니다.

첫 번째 시기,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사역했던 3년 동안은 사실 제일 소중한 시기입니다. 하나님이신 그 분과 함께 숨쉬고 활동하던 시기였으니까요.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경험해보지 못할 우주적인 사건에 제자들은 함께 참여한 것입니다.

두 번째 시기인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과 함께 지낸 시기에는 제자들이 부활의 주님을 만났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으로 인해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은 마음이 뜨거워졌고, 의심했던 도마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는 예수님이 낙심한 제자들에게 나타나 확신을 주고 음식 까지 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래서 나머지 제자들도 예수님이 참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에 다같이 동참할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 시기, 즉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 제자들은 행동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이 불의 혀 같이 갈라지면서 각 사람에게 임했고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서 변화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겁많아 배반하고 의기소침하던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속사람 까지 변했고, 그들은 행동을 했습니다.
힘있게 기도하고, 뜨겁게 찬양하고, 정렬적으로 함께 모여 친교를 했습니다.
그리고 기쁨에 충만해서 재산과 물건을 나누고, 함께 공동체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예외없이 복음을 들고 예루살렘 거리로 뛰쳐 나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참으로 대담한 행동을 한 것입니다.

이 변화와 행동의 분수령에 무엇이 있습니까? 바로 성령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렇듯 성령은 깨닫기는 해도, 알기는 해도, 믿기는 해도, 아직도 행동하지 못하던 것을, 행동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성령은 알고 느끼던 것을 구체적으로 실천케 하는 변화와 행동의 파워를 줍니다. 이게 성령의 역사입니다.
제자들의 일생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새롭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연약한 자가 강해집니다.
성령을 받으면 무능한 자가 유능해집니다. 성령을 받으면 어두움이 밝아집니다.
성령을 받으면 묶인 것이 풀려집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으면 그것이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알 수 없는 질병으로 고통 받는 자매가 있었습니다. 모든 병원을 다니며 검사를 했지만 정확한 진단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자매는 한 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내가 죽더라도 한 번 교회에 다녀보았으면 좋겠다는 소원이었습니다. 그냥 나오면 되지 그게 무슨 소원이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그 자매에게는 처절한 소원이었습니다. 완고한 불교집안에서 절을 모시고 절을 지은 가정에 시집와서 교회를 간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는 교회에 다니는 옆집 집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나 좀 교회 데려가 주세요. 그렇게 해서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자매를 인도한 집사님은 같이 성경공부도 하고 기도회에도 참석하면서 은혜를 받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 자매의 얼굴 빛이 달라졌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죽을 날만 기다려야 했던 무서운 질병이 완전히 나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는 교회에서 가장 밝은 성도가 되었고 기쁨으로 순종하며 헌신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자매를 통해 자녀들과 남편이 교회에 나와 온 가족이 믿음의 복된 가문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 믿고 성령 받는 것이 축복입니다.
성령으로 기쁨을 얻습니다. 성령으로 위로를 얻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성령으로 능력을 얻습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기쁨과 성려의 위로와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없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권능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성령을 받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에게 선포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러자 앉은뱅이는 일어나 걷고 뛰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도 일어나 걷고 뛰는 기적과 치유의 역사가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정숙영집사님이 뇌출혈로 고통 중에 있습니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건져주셔서 생명을 붙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어제 병실에 갔다가 그가 저의 손을 꼭 쥐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는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고 돌아왔습니다.
정숙영집사가 성령의 능력으로 치료받고 일어나 걷고 뛰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질병에 묶여 신음하는 성도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고침받기를 축원합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게 한 능력은 베드로와 요한의 능력이 아닙니다. 성령의 능력입니다.
누구든지 성령을 받으면 성령의 능력을 행하는 권능 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성령의 권능으로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므로 초대교회 공동체가 달라졌습니다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를 힘쓰게 되었습니다..
서로 물건을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말씀의 공동체, 기도의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로 변화되었습니다.

공동체뿐 아니라 사람들이 달라졌습니다.
의심하고 두려워하던 제자들이 달라졌습니다. 담대해지졌습니다.
사도들로 인한 기사와 표적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소경이 눈을 뜨고 고침받았습니다.
또한 성령으로 말씀을 증거하는 제자들의 설교를 듣고 사람들이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처럼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고 뛰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달라지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오감이 달라집니다.
보고, 듣고, 말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성전 미문에 오래전부터 앉은뱅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성령 받고 미문에 앉아있던 그가 보였습니다. 그가 본 것은 앉은뱅이가 가진 문제만이 아니라 불쌍한 영혼을 보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보았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과 사랑의 눈으로 앉은뱅이를 보게 되었을 때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입니다. 오늘이라는 고통의 현실이 아니라 내일이라는 미래의 소망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희망을 볼 수 있습니다.

요엘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말세에 만민에게 성령을 부어 주리니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청년들은 환상을 보고 아비들은 꿈을 꾸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환상을 봅니다. 꿈을 보며 비젼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 받고 보는 눈이 달라지시기를 바랍니다. 환상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꿈을 꾸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세계를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을 받지 못하면 사람의 단점만 보게 됩니다. 그래서 판단하고 정죄하며 부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으면 단점만 보지 않고 장점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격려하고 지지하고 세워주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으면 부정적인 사람이 긍정적인 사람으로 달라지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듣는 것이 달라집니다.
똑같은 말씀을 들어도 어떤 사람은 은혜 받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시험에 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말씀을 들을 때 은혜를 받습니다. 또 은혜의 말씀으로 들을 때 성령을 충만히 받습니다. 그러므로 은혜의 선순환의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목사님의 말씀이 나를 치는 말씀이 아니고 은혜로 들려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씀이 아닌 내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성령을 받으면 세상의 소리가 아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잘 들어야 하는데 잘 듣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성령을 받고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받으면 말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폭언과 비난의 말들이 사라집니다. 유순한 말, 사랑의 말이 나옵니다. 칭찬하는 말, 위로의 말로 달라집니다. 성령의 지혜로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전2:4“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막13:11“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그뿐만이 아닙니다. 성령을 받으면 느끼는 것이 달라집니다.
또한 생각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성령을 받으면 먼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합니다. 베드로가 성령받기 전에는 사람의 일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책망하시면서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오히려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을 충만히 받고 여러분의 보는 것과 듣는 것, 말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들이 달라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을 받으면 신앙생활이 달라집니다.

예배가 달라집니다. 예배를 드리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24)했습니다.
성령에 이끌리는 예배라야 진정한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기도가 달라집니다.
기도는 성령의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나니”(롬8:26)라고 했습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능력 있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기도의 내용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나 중심의 기도가 교회 중심이 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도 성령이 필요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딤후3:16)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감동으로 성경은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에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성령을 받으면 말씀의 감동을 얻을 수 있습니다.

봉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빌3:3)했습니다. 봉사도 성령의 능력으로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오는 방언, 예언, 병고침, 지식말씀, 교사, 위로주는 일, 이 모든 성령의 은사들은 봉사하기 위한 은사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성령의 기쁨으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주일 날 기쁨으로 봉사하는 성도들의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요즘 날이 뜨거워져서 주차관리 식당봉사 모두 힘들지요? 그러나 설영의 기쁨으로 봉사하니 더욱 감사를 드립니다.

전도가 달라집니다. 전도도 성령활동의 결과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성령을 받으면 권능을 얻고 복음 전도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령 없이 선교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전도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전도가 쉬워지는 것입니다.

자기를 쳐 복종시키는 것도 성령의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육체의 사람이 자기의 습관을 고치고 말씀과 인격의 사람이 됩니까?
성령의 역사입니다. 자기를 쳐 복종시키는 거룩한 투쟁도, 인격의 변화도 모두 성령의 활동으로서 가능한 일입니다.

이렇듯 믿음의 사람은 일거수 일투족이 성령의 결과입니다. 성령으로 시작하고 성령으로 진행하며 성령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영적활동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에게 성령없이 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성령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때문에 매일 매일의 삶에서 성령의 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무엇 보다 먼저 성령에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에 민감해야 합니다. 성령에 충만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은 성령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받고 풍성한 신앙생활의 은혜를 맛보시기 축원합니다.


성령을 받으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삶의 가치관이 달라지고 삶의 목적이 달라집니다.
성령을 받은 후 제자들의 가치관이 변했습니다. 성령을 받기 전에는 누가 높은 자리에 앉게 될 것인가를 놓고 다투고 시기했습니다. 서로 영광의 자리를 탐했습니다.
제 살 궁리를 위해 뿔뿔히 흩어졌던 제자들이 다시 모였습니다.
그들의 삶의 목적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증인의 삶을 사는 것은 순교를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고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기꺼이 순교를 영광으로 여기며 복음의 증인으로 살았습니다.

예수를 알지 못했던 사울은 오직 신념과 긍지로 처단하고 파괴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삶의 목적은 예수 믿는 이들을 처단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 성령을 받은 후 그는 자기 신념으로 살지 않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살았습니다.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고난과 박해의 길을 걸었습니다. 나를 위한 삶이 아닌 너를 위한 삶을 목적하며 살았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유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고전12: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주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을 베풀고 나누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돈을 버는 목적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면 성공하는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그는 분명 성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성령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인생이 달라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을 받고 여호와의 기쁨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의 만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에게 생기가 불어 들어갈 때 죽었던 자들이 다시 일어났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마른 뼈들이 살아있는 사람들이 되어 큰 군대를 이루었습니다.
성령은 죽은 자를 살렸습니다. 움직이지 않던 것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무익했던 것들이 유익해졌습니다. 성령는 파괴되었던 것들을 다시 회복시켰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달라집니다.
가정이 달라집니다. 교회가 달라집니다. 사람들이 달라집니다. 이 땅과 나라와 백성들이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전혀 새로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 변화는 아름답고 창조적인 변화입니다.
이 변화들이 저와 여러분, 그리고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 교회 그리고 이 땅 이 민족 가운데 일어나 이 백성을 살리고 이 땅을 고치며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거룩한 역사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005년 5월29일 주일낮예배

함께 기도합니다.
1. 성령을 받고 변화된 삶을 살게 하옵소서.
2.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모든 질병과 묵임이 풀어지게 하옵소서.
3. 성령으로 기도하고 성령으로 봉사하며 성령의 기쁨으로 복음을 전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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