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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느 때까지니이까?" (시 13: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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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목회자가 암에 걸린 것을 뒤늦게 발견했습니다. 상당히 심각한 단계까지 암이 진행되었지만 그래도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 후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그는 이런 시를 썼습니다. 그가 겪고 있는 심한 고통이 가슴에 와 닿지 않습니까?
“주님, 내 아픔이 너무 커서
그 아픔이 가족들의 아픔이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내 아픔이 너무 길어서
그 아픔이 교회의 어두운 그늘이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그냥 혼자 아프고 혼자 울기도 지금은 너무 벅차기 때문에...”

  오늘 시인도 말로 다할 수 없는 심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의 한복판에서 저절로 탄식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 어려움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하는 것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지금 너무나 아프기 때문에 혼자서 울기도 벅찬 상태에 놓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아픔도 있다는 말입니다. 살다 보면 아무에게도 털어 놓을 수 없는 문제들이 발생할 때도 있지 않습니까? 그냥 하나님 앞에 나아와 엎드려 “아버지!” 불러 놓고서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고 있지 않습니까?

  시인은 참으로 기가 막히기 때문에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그는 너무 아프기 때문에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언제까지입니까?” 이어서 그는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하는 물음을 통해서 그의 답답한 마음을 더 잘 나타내 보여 주고 있습니다. 과연 이대로 아주 끝나게 하실 것인가에 대해서 그는 묻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은 너무 아파서 이 답답하고 안타까운 상황에 대해서 언제까지 얼굴을 숨기시고 모른 척하실 것인가를 따지듯이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묻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도우심을 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입니다.

  사실 시인이 두려워하는 것은 지금 겪고 있는 시련이나 역경이 아닙니다. 그가 진짜로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감추시는 것입니다. 태양이 그 모습을 감추면 지구는 그 즉시 깊은 어둠 속에 빠지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감추시면 인간은 깊은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그와 같은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습니다.

  시인은 지금 눈물 골짜기를 통과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웬만하면 낙심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모든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의 탄식이 간구로 바뀌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두려워 떨고 있던 그가 이제 하나님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시련과 역경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갑니다. 아픔과 고통 때문에 오히려 더 간절히 기도하지 않습니까?

  가난함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한다면 그것은 결코 저주가 아닐 것입니다. 부함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한다면 그것이 결코 복이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만사 형통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코 우리에게 유익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가는 길이지만, 바로 그 길에서 시인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아무리 사는 것이 힘들어도 마음 속에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날마다 최선을 다하고 있으면 그것은 괜찮습니다. 아무리 큰 파도가 밀려와도 믿음의 닻을 깊이 내리고 있으면 그것은 괜찮습니다. 아무리 갈 길이 멀고 험해도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그 길을 달려갈 수 있으면, 그리고 언젠가 밝고 좋은 길을 만날 것이라는 사실을 믿고 있으면 그것은 괜찮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면 눈물 골짜기를 걸어가도 괜찮다는 말입니다.

  시인이 지금 간구하는 것은 눈을 밝혀 달라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감긴 눈으로는 아무 것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두워진 눈으로는 어떤 것이 바른 길이며 또 무엇이 반듯한 삶인지 분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께 간구한 것은 그의 눈을 밝혀 주셔서 그로 하여금 사망의 잠을 자지 않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기를 원합니다.

  남달리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하는 시인 송명희도 바로 그것을 구했습니다.
“열어 주소서 열어 주소서
내 눈을 열어 주소서 주님 바라볼 수 있도록
열어 주소서 열어 주소서 열어 주소서
내 귀를 열어 주소서 주님 말씀 들을 수 있도록...”

  이제 시인은 그 마음 속에 한 가지 소원을 갖게 됩니다.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시 13:5) 그가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였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 같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믿고 있다는 말입니다. 과연 그는 더 이상 세상 풍파에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 어떤 문제 앞에서도 그는 약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굳게 서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세상은 참으로 어지럽습니다. 또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두운 것이 사실입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채 방황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견디기 어려운 눈물 골짜기를 걷는 것과 같은 비참한 현실 앞에서 우리도 그 옛날 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탄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 나아가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사망의 잠을 자지 않도록 내 눈을 밝히소서!” 오직 믿음으로 나아가 간절히 기도하면 주님은 우리의 그 기도를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마침내 그 주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은총을 소리 높여 찬송하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강석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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