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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삼상 12:19-25, 히 12:1-3, 마 14: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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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옛날 어떤 임금이 남다른 취미가 발동을 해서 왕궁을 온통 거울로 장식을 했습니다. 담도 거울이요 벽도 거울이요 천정도 거울로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이발관에 가면 거울이 앞뒤에 있어서 거울 앞에 서면 수없이 많은 자기 모습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듯이 이 왕궁에는 들어가면 온 사방에 자기 모습으로 꽉 차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개 한 마리가 이 왕궁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왕궁에 들어간 개는 엄청난 일에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그 왕궁에 들어가자 말자 수없이 많은 개들이 사방에서 자기를 향하여 걸어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개는 개니까 그것이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인줄 알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겁에 질린 개는 우선 자기 방어본능에 의하여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수없이 많은 개들을 향하여 “멍멍!”하고 짖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수많은 개들이 한꺼번에 일제히 자기를 향하여 “멍멍!”하고 짖는 것이 아닙니까? 너무 겁에 질린 이 개는 이제 이판사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자기 앞에 가장 가까이 있는 개를 향하여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가서 물어뜯으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그 수많은 개들이 또 일제히 자기를 향해 달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이 개는 살아남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그 수많은 개들을 대항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 불쌍한 개는 온 몸이 온통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 있었습니다. 

오늘 사무엘서 본문은 사무엘이 이제 그 사역을 끝내기에 앞서 백성들에게 들려준 고별설교입니다. 옛날에 모세나 여호수아도 역시 그 생애 마지막에 백성들을 불러 모으고 고별설교를 하였습니다. 사무엘도 지금 그 사역을 마감하기에 앞서서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별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1) 그런데 맨 먼저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려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20절에 “사무엘이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모두 어떤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같이 불확실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건강에 대한 두려움, 삶에 대한 두려움들이 있습니다. 두려움은 현대인들에게 하나의 운명처럼 달라붙어 우리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시도 때도 없이 우리를 엄습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런 두려움이란 것은 저 왕궁에 들어간 개가 알지 못해서 그랬던 것처럼 사실은 전혀 유익이 없는 우리 불신앙의 소산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이런 우리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이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저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물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셔서 말씀하시기를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요14:1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들여다본다든지 우리 여건에만 집착하게 되면 두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독사에 물린 상처를 내려다보고 있는 동안 그 독으로 인해 죽어갔던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장대 끝에 매단 구리 뱀을 쳐다 본 사람들은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 사실을 두고 예수님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는 헛된 염려나 근심,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2) 20절 하 반절에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지 말고 오직 너희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떠난 일이었습니다. 19절 마지막에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 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면 왕을 구한 것이 죄가 아니라 하나님 대신 왕을 구한 것이 죄였습니다. 하나님을 버린 것이 죄였습니다. 우리가 물질을 추구하는 것이 죄가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는 것, 그래서 하나님을 버리고 물질을 마치 하나님처럼 사랑하는 것이 죄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여기 예수님의 말씀은 이미 물질이 그 사람에게 하나님과 같이 된 것을 말합니다.

옛날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한 것은 비록 100세에 얻은 아들이라도 하나님과 같은 반열, 아니면 하나님보다 더 사랑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우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신앙과 삶에서 이 우선순위를 확실하게 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부탁합니다.

(3) 21절에 “돌아서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따르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친 말씀이 있습니다.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도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고 오직 여호와를 찾으라”고 했습니다. 여기 벧엘이나 길갈이나 브엘세바는 당시 사람들이 우상 숭배하던 장소들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 “헛된 것”이라는 것은 바로 우상을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도 얼마나 헛된 것을 추구합니까? 물질에, 지식에, 명예에, 권세에, 향락에 행복이 있는 줄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하나님이 아니라 세속적인 것을 선호하고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 요리문답 제 1번에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든 문제의 해결 아니 우리 궁극적인 문제의 해결은 오직 주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찬송가에 “주 떠나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라고 했는데 이 가사는 바꿔야 합니다. “나 주를 떠나면 내 생명 헛되네”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했습니다.

2. 여기서 사무엘은 몇 가지 중요한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해 주시는 일입니다.

a. 22절 상 반절에 “여호와께서는 너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아니 하나님의 친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것도 독생자의 보혈로 속죄하셔서 우리를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 복음 성가에 “나 주의 기쁨 되기 원하네”라고 했는데 내가 원하기 전에 이미 기뻐하십니다. 이 노래의 뜻은 그러므로 나는 오직 주님께 기쁨을 드리는 삶을 살기 원한다는 뜻입니다.

스바냐서에 있는 말씀을 다시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우리를 향하시는 주님의 이 사랑이 우리에게 확실한 보장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b. 22절 하 반절에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그들이 왕을 구한 것으로 인하여 자신들의 한 일이 여호와를 버리게 된 것이라는 이 사실 때문에 매우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새롭게 보장해 주십니다. “비록 그렇다고 해도 내 거룩한 이름을 위해서라도 너희를 버리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라”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저나 여러분이나 다 주님의 이름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의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 “예수 믿는 사람 아무개”입니다. “교인”이라든지, “성도”라든지, “그리스도인”이라든지 막말로 “예수쟁이”든지 할 것 없이 우리는 다 하나님의 이름과 묶여 있습니다. 바로 그 거룩하신 이름 때문에 우리를 버리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복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제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이 말씀에서 “자기 백성” 대신 여러분 각자의 이름을 넣어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000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 사무엘은 자신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할 일을 말해 줍니다.

23절에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은 그 어머니의 기도를 통하여 세상에 태어났다. 그 이름도 “하나님께 기도하여 얻은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는 사역을 감당하면서 늘 결정적인 일이 있을 때 기도하였습니다. 사무엘은 기도의 능력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중보기도의 능력을 실감했습니다. 만일 자신이 기도하는 일을 쉰다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라고 했으나 자신은 기도하기만 쉬어도 그것이 죄라고 했습니다. 적극적으로 백성들을 지도하는 일을 잘 감당하겠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많이 맡긴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한다”고 했습니다. 직분을 받은 사람들, 은사를 받은 사람들, 책임을 맡은 사람들에게는 그만큼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직분자 여러분은 그 자리에 걸맞는 충성을 하셔야 합니다. 5달란트 받은 사람은 5달란트로, 2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만큼, 그리고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한 달란트만큼 충성해야 합니다.

(3) 이제 백성들이 힘써 해야 할 일을 말합니다.

a. 24절에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일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시 1편에는 “의인은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하신 큰일이 무엇입니까? 천지를 창조하신 일, 섭리하시는 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일, 성령을 보내신 일, 그리고 앞으로 세상을 심판 하실 일입니다. 그리고 일마다 때마다 나와 함께 하시면서 도와주시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묵상하라 그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하신 일들이 어디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성령님은 성경과 함께 우리에게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큰일을 생각하기 위해 늘 성경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사탄은 성경에게서 떠나도록 역사합니다. 못 듣도록 우리 귀를 막습니다. 못 믿도록 우리 마음을 완악하게 만듭니다. 이런 사탄의 역사에 움직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사랑하여 듣고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살 때 하나님의 복이 임합니다.

b. “그를 경외하며 마음을 다하여 그를 섬기라”고 했습니다.

“섬기라”고 하는 말씀에는 예배하라는 뜻이 있습니다. 현재 우리들 교회에서는 종소리가 살아졌고 저녁 예배가 살아졌다. 주 5일 근무제는 이제 주일 예배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살려내야 합니다. 예배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을 섬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 그대로 섬겨야 합니다. 주를 위하여 주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일해야 합니다. “주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까”이런 믿음으로 섬길 때 더 큰 은혜와 복을 받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김오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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