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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자가 이야기 (고전 1: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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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7-18)

  악령이나 귀신이 등장하는 서양 영화를 보면 악령을 제압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수단으로 십자가가 사용되는 것을 봅니다. 드라큐라 영화에서도 십자가는 흡혈귀에게 치명적인 위력을 발휘합니다.
  심지어 무속신앙에서 무당들도 귀신을 쫓아내는 의식가운데 칼로 십자가를 긋고 귀신을 몰아내는 의식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마 여러분은 대단히 기분이 좋을 것입니다.
  십자가가 그렇게 위력이 있다니 통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 어떤 특별한 영적 힘이 있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장식품을 몸에 지닌다거나 또는 집에 십자가 표시를 해두면 여러 가지 저주와 악령의 영향으로부터 자신이 보호를 받을 것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잠시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십자가 자체가 그렇게 귀신을 쫓고 악령을 제압하는 위력이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합니다.
  더 이상 우리는 귀신을 쫓는 주술적 차원에서의 십자가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죄인을 처형하는 처형 도구입니다. 그 십자가에 인생의 모든 죄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가 처형되셨기에 우리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전하는 것이지 십자가를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처럼 인식되었으나 십자가는 죄와 형벌의 상징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 우리는 십자가를 볼 때 그 위에 달린 예수를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말씀을 통해서 예수께서 지시고 달리신 십자가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며 함께 주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7-18)

  본문에서 바울은 십자가를 헛되지 않게하려 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헛되지 않게 하려한다는 것은 십자가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헛되지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십자가 자체가 중요한 것이라면 예수께서 죽으셨던 그 십자가를 지금까지 신성하게 보존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처럼 모시고 섬겨야 했겠지요?
  그러나 초대교회 사도들을 비롯한 성도들은 예수의 십자가를 신성시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이 십자가를 헛되지 않게 한다는 의미는 예수께서 달리셨던 그 십자가의 의미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1) 내가 받을 형벌과 저주의 상징입니다. 
  십자가는 로마법에 따라서 반역자나 극악한 자를 처형하던 형벌도구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십자가라는 말은 없지만 신21:23절에 의하면 사람이 하나님께 죽을 죄를 지었을 경우 율법에 따라 나무에 매달아 처형하는 규례가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이 나무에 매달려 처형된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 로 인식되었습니다.
  신 21:2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그러므로 예수님이 나무로 만든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으신 것은 저주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왜 저주의 형벌을 받았습니까?
  갈라디아서 갈 3:13절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저주는 죄의 결과입니다. 인간에게 찾아온 저주는 무엇입니까?
  ① 죽음의 저주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할 때 정녕 죽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죽음의 저주는 천하의 모든 인간의 목덜미를 잡고 인간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이 인간에게 정하신 이치라고 하는 것이 모든 인간의 숙명적으로 죽음의 저주아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② 늙음과 질병의 저주입니다.
  병들고 늙는 것 또한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죄값으로 찾아온 저주입니다.
  ③ 환경의 악화
  인간의 저주는 인간 자신에게뿐 아니라 사람이 사는 모든 환경에도 미칩니다. 사람이 없으면 낙원이 되지만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수많은 문제들이 생겨났습니다.

  십자가는 인간들이 범한 죄로 인한 모든 저주와 형벌을 한 번에 지신 것이기에 그 부끄러움과 수치 그리고 고통이 큰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형벌을 집행할 때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죄수의 옷을 벗기는 일입니다. 그것은 최대한의 수치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발과 손목에 쇠못을 박아 죄수를 산채로 모든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볼 수 있는 높은 언덕위에 매어답니다.
  사람들은 지나가며 욕하며 저주합니다. 십자가는 저주의 상징이기에 최대의 수치감과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수치와 고통을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셨습니다.
  바로 나의 죄값을 대신 당하신 저주요 형벌인것입니다. 

  3) 십자가는 예수가 죽고 그 대신 살게 된 나의 이야기입니다.
  예수가 내 대신 죽은 곳이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 때문에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죽음 때문에 내가 살고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미국 장로교 선교사인 보우먼 박사가 인도의 켈커타에 있는 나환자 수용시설에 교회를 건축했습니다. 준공식이 있던 날 노인 한사람이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고 앞으로 나왔습니다. 보우만 선교사가 그에게 “왜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셨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그동안 수많은 신들을 섬겨 왔습니다. 그러나 그 신들 가운데 나를 위해 죽은 신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많은 신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섬겨야할 대상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정말로 인생을 위해 죽어줄 수 있는 신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내대신 죽기는커녕 돈을 강요하고 희생을 강요할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려 내대신 죽으셨습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곧 나를 위한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는 나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나의 죄가 얼마나 흉악한지, 그 죄의 형벌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그 죄악으로부터 자유 함을 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엡 2:16-19절의 말씀에서는 이 같은 사실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라고 말입니다.
  이제는 십자가의 은혜로 하나님과 원수 관계가 해소되고 하나님의 권속이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는 내가 구원받았다는 이야기 즉 나의 이야기가 기록된 기념비입니다.

  교회를 처음 나온 초등하고 2학년 꼬마가 강단 위에 걸려있는 십자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선생님 저기 걸린 저 커다란 더하기 표는 무슨 뜻이예요?”
  그렇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생명이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예수가 죽고 대신 살게된 나의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3) 십자가는 사랑과 공의가 만난 곳입니다. 
  죄인에 대하여 사랑은 무조건 용서하는 것이고 공의는 법에 따라 엄중한 심판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과 공의는 함께 공존하거나 동시에 충족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는 이 사랑과 공의가 만나서 하나가 되어 죄인을 구원하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공의와 사랑과 공의가 동시에 충족될 수 있을까요?

  어느 왕이 나라를 바로 잡기 위해 죄를 짓는 사람은 벌거벗겨 매로 쳐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이 그 죄를 범했습니다.
  "왕은 사랑이 많은 분이시니 아들을 죽이지 못할 것이다."
  "아니야 왕은 공의로운 분이시니 사형을 집행할 것이다." 하며 s사람들이 수근 댔습니다.
  왕은 아들을 벗겨 나무에 매달고 죽기까지 치라고 엄하게 명령하였습니다.
  그리고는 형리가 매를 치기 전에 달려 나가서 형틀에 묶인 아들의 몸을 감싸않고 아들을 대신해서 온몸에 매를 맞고 죽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인류를 대신해서 처형되었기에 율법의 공의가 실현되고 충족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공로를 믿는 모든 사람들의 죄를 무조건 용서하시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완성된 것입니다.

  중세시대 십자군 전쟁이 한창일 때 영국의 ‘그림볼드 경’이 십자군에 참전했다가 사라센 족에 의해 포로로 잡혔습니다. 적들은 그를 풀어주는 댓가로 ‘그림볼드’ 경의 아내의 오른손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자 그의 아내는 기꺼이 남편을 구하기 위해 자기의 오른 손을 잘라 적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랜볼드 경은 풀려났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오른손 정도가 아니라 몸 전체를 주셨습니다.
  공의는 희생을 요구합니다. 죄인 자신이 죽든지 누군가가 죄인을 위해 죽어야만 하는 것이 공의입니다. 이 공의가 충족되지 않고서는 죄 사함이나 용서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을 다 죽이실 수 없어 독생자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인류의 죄 값을 대신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심으로 공의가 충족되고 대신하여 영원한 형벌에 놓였던 인류에게 용서의 길이 열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것입니다.

  4) 십자가는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단순한 장식품이 아닙니다.
  요즘 사람들은 십자가로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고 다닙니다. 그럴 때는 단지 예쁘게 보이기 위한 하나의 악세 사리입니다. 어떤 이는 십자가에 영험한 힘이 있어서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에서 목에 걸고 다닙니다. 그럴 때에 십자가는 미신적이고 주술적인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장식품이 아닙니다. 그리고 재난에서 보호해주는 부적도 아닙니다. 원래 십자가를 목에 걸고 다니게 된 동기는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고난을 내가 짊어지겠다는 영적 각성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장식품이 아니라 사명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의 뒤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마10:38절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마 16:24절에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는 사명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지고 가게 하시는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십자가를 지지 않고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어떤 이는 가난과 질병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이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핍박과 환난의 십자가를 지고 따릅니다.
  내게 주신 십자가를 감당합시다.
  십자가는 목에 걸고 다니는 치장품이 아니라 등에 지고 가는 사명입니다.
  주님이 주신 사명은 내가 벗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주님께서 벗겨주실 때 까지는 힘들고 어려워도 짊어져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주님이 이제 됐다 할 때가 옵니다. 그때는 영광스럽게 십자가를 벗고 큰 축복을 받게 됩니다. 

  토마스 아켐퍼스는 그의 명저 그리스도를 본받아 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짊어진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와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어 했지만 극히 작은 소수만 그의 쓴잔을 마셨다』라고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십자가를 사랑하고 믿어야합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전해야 합니다.

  십자가는 예수가 나를 위해 죽은 이야기가 기록된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의 피가 없으면 그것은 우상입니다. 
  예수가 내대신 못 박히고 죽은 대신 내가 살아난 곳이 십자가입니다.

  자 이제 우리같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그리스도를 묵상합시다. 우리의 죄와 허물을 다 지시고 고통 받으신 십자가, 바로 지금 내 앞에 우뚝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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