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소금 (마 5:13)

  • 잡초 잡초
  • 300
  • 0

첨부 1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You are the salt of the world; but if salt has lost its taste, how shall its saltness be restored? It is no longer good for anything except to be thrown out and trodden under foot by men. (마태복음 Matthew 5:13)

어제는 6.25 55주년 기념일이었습니다. 5천년 한민족 역사상 가장 비참했던 전쟁이었습니다. 한국인 사망자는 백만 명이 넘으며 그중 85%는 민간인이었습니다. 소련의 통계에 의하면 북한의 11.1%의 인구가 전쟁을 통하여 사망하였는데 이것은 113만 명에 이릅니다. 남북한 모두 합하여 250만 명이 사망하였습니다. 80%의 산업시설과 공공시설과 교통시설이 파괴되었고, 정부 건물의 사분의 삼이 파괴되었습니다. 가옥의 절반이 파괴되었다. 미군은 약 54,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으며, 이는 베트남전 때보다는 약간 적은 수이지만 훨씬 짧은 시기를 고려한다면 많은 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쟁은 다시 일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평화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늘 전쟁 상태입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발생한 사상자의 수는 엄청납니다. 조금만 시간을 들이면, 그들의 수는 얼마며, 지난 2,000년의 역사와 비교할 때 몇 %나 되는지 간단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엄청난 의미가 있는 사실입니다.

"당신은 나의 태양!"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합시다. 이게 무슨 뜻일까? 그것을 알기 위해 '태양'의 성분을 분석할 필요가 있을까요?

적어도 몇 가지 점에서 그 말은 과장입니다.
태양과 당신은 나이가 비슷하지 않습니다.
태양과 당신은 온도가 비슷하지 않습니다. 크기도 엄청 다릅니다. 
태양은 동물이 아닙니다.

"당신과 태양"을 "같다"고 말했다면, 그것은 은유(metaphor)입니다. 은유는 수많은 속성을 다 비교한 끝에 나온 어떤 과학적 결론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한 가지 느낌으로 얻은 사실을 상상력을 통해 연결한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은유입니다. 소금의 성분을 분석해서는 그 말씀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대개 본문을 읽을 때, 소금의 속성을 두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소금은 크게 두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1. 맛을 냅니다.
2. 부패를 방지합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한 가지입니다. 맛을 잃지 않는 한도 내에서 부패를 방지하는 것입니다. 맛을 잃은 소금은 부패를 방지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맛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들=세상의 소금." 이 등식 자체로는 어떤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얻기 어렵습니다. 소금의 성분을 분석하여 성도의 정체성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대신 앞뒤 문맥을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산상수훈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을 사모하도록 도우시는 뜻입니다.

어디 산상수훈 뿐이겠습니까? 예수님의 모든 1. 비유, 2. 기적, 3. 가르치심이 "하나님 나라"를 초점 삼고 있습니다.

더우기 "8복"에 바로 이어지는 말씀이 본문입니다. 8복은 그동안 "하나님 나라의 복"에 대해 말씀하신 내용이었습니다. 그 복을 설명하신 직후에 "너희는 소금이다"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소금된 그리스도인의 속성을 이해하려면 소금 자체의 분석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복된 그리스도인"이 누구냐? 여기 초점이 모아져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죽어서 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주기도문에 가르쳐주셨듯,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기도하는 성도가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소망은 확실히 이 세상이 끝나는 데서 실현됩니다. 주님의 재림과 함께 임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not yet'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소망은 '종말론적으로'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소망의 실현은 'already'입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세상의 소금"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의 시민권자로서 살아감을 말합니다. 세상이 모두 소금이 아닙니다. 성도가 소금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성도의 맛을 알게 된다면, 그것은 '소금의 맛'이라는 겁니다. 단순히 "짜다"는 맛에 국한할 일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소금은 맛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교회 과학자가 여러 분 계시니까, 과연 "소금이 그 맛을 상실할 수 있느냐?" 여부를 아실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전제하신 것은 "그럴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아니, 과학적으로 그건 불가능하다, 그런 말씀이 아니라, "그래선 안된다" "그렇게 맛을 상실해선 더이상 소금이 소금이 아니다" 그런 뜻입니다.

1. 여기서 ‘맛’이란,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맛’입니다. “바로 그 맛”입니다. 독특합니다. 이런 점에서 ‘unique'한 것입니다. 

2. 또, 세상에 없어서는 안될 그 맛입니다. 그런 점에서 ‘필수불가결’한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점에서 그리스도인을 묵상하겠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이런 질문을 듣습니다. “도대체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인가?” 또 이런 질문은 스스로에게 수도없이 반복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누구인가?”

이런 정체성(identity)에 관한 질문은 반드시 1. 유일성 내지 독특성과, 2. 필수불가결성과 관련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창조주 하나님"을 중심으로 삼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문제입니다. 1. 하나님께서 우리를 독특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를 필요로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필수불가결합니다.

1. 나는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가? 나이 때문에 퇴직하면서 느끼는 공허감은 “나는 언제든지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는 인생을 살았구나!” 하는 자괴감입니다. 휴가 후에 복귀하면서 "이 직장도 내가 아니더라도 잘 돌아가는구나!" 그런 아쉬운 생각이 큽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똑같지 않게’ 만들어 주신 unique한 존재입니다. 바로 이 uniqueness를 지켜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생답습니다.

2. 나는 이 세상을 꼭 살아가야 합니다. 필수불가결입니다. 내가 없는 인생은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여기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소금으로 살아가는 인생은 복됩니다.

사람들 누구나 그를 ‘그리워’합니다. 그를 ‘기다립’니다.

그리스도인에게서 '소금'은 "참된 사랑"입니다. "완전한 사랑"입니다. 염화나트륨 결정체에서 어떤 성분이 빠지면 소금이 될 수 없습니다. 소금은 그 자체로서 "완전"해야 합니다. 사랑의 완전성에 대한 요구도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완전해야 합니다.

666에 대한 이해 가운데 하나는, 777에서 각각 1씩 결여된 숫자라는 게 있습니다. 다 같은데 조금 다르다. 그건 "excuse"의 내용이 될 수 없습니다. "이단"이라는 말도, 처음에는 같아 보이지만, 끝이 다르다, 그런 뜻 아닙니까?

사랑으로 출발했으면, 사랑으로 끝까지 가야 합니다. 이것이 '완전한 사랑'입니다. 

어제 히스패닉교회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42세 된 어떤 형제가 전한 말이었습니다. 그는 25세에 미국 왔고, 내내 일만 했습니다. 미국 와서는 제대로 공부를 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참 영어를 잘했습니다. TV를 많이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아내의 심장병 때문에 50만불이나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매주일 emergency room으로 실려가기를 수도없는 세월을 그렇게 했습니다. 참다 못한 어떤 의사가 그랬답니니다. “Let her die! And marry again!"

그 말을 들은 그 사람은 분노했습니다. “내가 사랑해서 결혼한 내 아내다. 둘도 없고, 다른 누구로 대체할 수도 없다. 그런데 내가 이 여자가 죽게 내버려두라고?” 그는 끝까지 아내를 지켰습니다. 그래서 아내의 병이 다 낫고, 두 딸과 두 아들을 낳고 잘 살고 있습니다. 어제 결혼식에서 딸 하나와 아들 하나가 정장을 차려입고 순서를 맡았습니다.

참된 사랑은 1. uniqueness와 2. 필수불가결성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1. 이 사람은 이 세상에 유일한 사람이다. 
2. 이 사람은 이 세상에 꼭 있어야 할 사람이다. 다른 누구로 대체할 수 없다. 

1. 유일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방법은 ‘사람을 모방’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삶을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 각자를 만드시고 사랑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을 닮은 것은 우리의 uniqueness를 지키는 일입니다.

사람을 모방하면, 유행을 따르게 됩니다. 그건 참 피곤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 외에, 세상에 사람을 사랑하는 일처럼 신나는 일이 또 있을까요? 사람은 사랑할 때 좋은 것입니다. 그 사람을 일일이 모방하기로 한다면, 인생은 참 고달픈 것입니다.

“나는 세상에 유일한 사람이다”라는 자각이 필요합니다. 이런 자각은 ‘자존심’으로 통합니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것, 그래서 내가 없어지면 세상은 하나의 ‘멸종’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 이것은 참 놀라운 사실입니다.

어떤 나라, 어떤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고, 어떤 학교를 나와,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고, 어떤 음식을 먹으며, 어떤 종류의 문화생활을 하는 것. 그것은 ‘한 종류의 그룹’을 형성하게 해 주는 ‘끈’이 됩니다.

그러나, 그런 ‘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닙니다.

사람은 아무리 ‘동창회’에 나가서도 전혀 섞일 수 없는 자기만의 고유한 색깔이 있습니다. 그것을 지켜내지 않는 한 불행을 피할 수 없습니다.

2. 나는 없어져도 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반드시 이 세상에 살아남아야 합니다. 우리가 인생의 선배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가장 귀한 교훈은 "역경 중에도 살아남는 끈기"입니다. 지레 포기한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습니다. 역경을 디디고 일어서서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에게서 배우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시민으로서 '소금된 그리스도인'은 어떤 모습일까요? 앞서 말씀하신 여덟가지 복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1. 심령이 가난하여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사람입니다.
2. 애통하여 위로를 받는 사람입니다.
3. 온유하여 땅을 기업으로 받은 사람입니다.
4. 의에 주리고 목이 말라 배부른 사람입니다.
5. 긍휼이 여겨, 긍휼히 여김을 받은 사람입니다.
6. 마음이 청결하여 하나님을 본 사람입니다.
7. 화평케 하여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림을 받은 사람입니다.
8.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아 천국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을 때, 우리가 물질인 '소금'을 분석함으로써 우리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없습니다. 기왕에 말씀하시던 맥락에서 '소금'이라는 은유(metaphor)를 이해해야 합니다.

팔복은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품은 사람이 누리는 복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이 아닙니다. "내 나라는 이 땅에 속하지 아니하였다" 하심으로써 이 세상과 하나님 나라를 분명히 구분하신 주님이십니다.

타이거 우즈는 정기적으로 스승을 찾아간다고 했습니다. 스승은 그에게 '초창기 때 배웠던 기본기'를 계속 반복하게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서 경기에 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신 기본 법칙을 살펴봅시다.
아브라함에게 복 주실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분리'해 내셨습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하신 땅 가나안에 살면서 "축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창조의 법칙입니다.

1. 빛                4. 해-달-별
2. 궁창-물          5. 물고기-새
3. 육지와 바다      6. 동물, 사람

1-3의 창조는 '분리'입니다. 단순한 분리가 아닙니다. 완전한 분리, 다시 되돌아가서는 안되는 분리입니다. 영적으로는 '거룩함'입니다. 거룩함이란 "하나님께로의 분리"입니다. 

4-6의 창조는 '채우심입니다. 축복을 주심입니다.

말하자면, 분리하심은 채우심을 위한 '조건'이었습니다.

7의 날에는 '안식'하셨습니다. 이 날은 앞선 1-6의 날로부터의 '분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안식일은 그 차체로 '축복'이 되었습니다.

창조의 원리는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그대로 적용됩니다. 이러므로, "새 창조"는 이스라엘 역사의 매 순간마다 예언자들의 선포 주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분리'하심으로써 축복하셨습니다.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거기서 축복 받게 하셨습니다.

궁극적인 '새 창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루어졌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새로운 창조를 이루어내셨습니다. 그것은 "교회를 세우심"으로써 구체화하였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씀은,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뜻과 일치합니다.

"세상의 소금"이라 함은, 천국 시민권자 됨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 이것은 바로 '소금의 속성'입니다.

  4%의 바닷물은 바다를 썩지 않게 합니다.
  4%의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기독교를 공인하게 만들었습니다.
  1%가 겨우 넘는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3.1운동을 주도했습니다.
  금문교회 성도는 샌프란시스코 인구의 0.2%입니다. 우리는 샌프란시스코의 희망입니다.

소금이 소금 되는 것은 '맛을 전하는 데' 있습니다. 단순히 맛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소금에 '코팅'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맛을 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맛을 내면서 오히려 존재하는 법칙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녹아서 사라지는 길'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한 마디로 '전도'입니다.

전도는 나를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자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1. 우리 스스로를 이 세상으로부터 '분리'시켜야 합니다. 물론, 의지로 되지 않습니다. 말씀으로 분리가 됩니다. 말씀은 곧 '영'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써 분리됩니다.

2. 주님께서 채워주시는 축복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축복 제일주의를 내세워야 합니다. 우선순위를 "축복"에 두어야 합니다. 축복 받는 것을 가장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아이들에게도 주님의 축복이 얼마나 왜 필요한지를 가르쳐야 합니다.

8복을 "간절함"으로 풀었습니다. "소금"이라는 메타포(metaphor)의 간절함이란 무엇일까요? "녹음"입니다. 녹아져서 사라짐으로써 존재하는 간절합니다. 주님 앞에 철저히 낮아지고자 하는 겸손함입니다. 주님의 손으로 사용되기를 원하는 '종 의식'입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쓰임받고자 하는' 순종입니다.

금문인 여러분. 여러분을 샌프란시스코에 불러 주신 이유를 날마다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입니다. "세상의 참된 사랑"입니다. 세상 사람을 모두 사랑함으로써 '완전한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사람들, 매일 보고 듣는 사람들, 그들을 위한 사랑의 '기도'가 우리 사랑을 완전하게 합니다.

우리를 샌프란시스코로 불러주신 하나님.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 피부 색깔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참된 사랑을 날마다 실천하게 하신 뜻이 있습니다.

재팬타운으로 이사하신 우리교회 오승택 집사님은, 전망이 좋아 멀리 베이와 그 너머 오클랜드까지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아랫쪽은 흑인촌입니다. 매일 흑인촌을 내려다 보면서 한 집 한 집 그들을 위한 기도를 합니다. 기도를 시작한 이후 흑인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소금의 맛을 내는 것은 "사랑의 기도"를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 시간과 정성을 주님께 드리는 동안, 우리의 맛은 점점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날마다 새롭게 '창조'되는 삶입니다. 거룩한 영적 구별이 되고, 하나님의 무한하신 축복이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 파고드는 것입니다.

소금 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여러분 되도록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기도
은혜의 주님. 썩어져 없어져 버릴 죄인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셔서 세상의 소금의 사명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부터 저희들은 이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봉헌기도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모든 것에서 십일조를 드립니다. 감사한 모든 일에 감사헌금을 드립니다. 세계선교를 위하여 선교헌금을 바칩니다. 날마다 주님의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가정에 놀라운 축복을 빕니다.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서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축도
May the grace of the Lord Jesus Christ, and the love of God our Father, and the fellowship of the Holy Spirit be with you all. Amen.
(조은석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