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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땅에도 하나님 나라를 (마 6: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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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주기도문 새번역 연구 특별위원회에서 주기도문을 새로 번역했습니다. 여기서는 두 번째 문장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이 새로운 번역안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통해 각 교단에서 이를 채택하도록 통보되었습니다.

그러자 개신교 여성 단체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원문에도 없는 ‘아버지’ 호칭을 넣어 하나님의 남성상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양성평등 시대를 지향하는 현대사회에서 ‘아버지’란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여성신학이 활발한 나라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지 못합니다. 언제나 ‘아버지와 어머니 되신 하나님’으로 부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기도문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여!’ 하고 시작합니다.

본래 아버지가 들어간 자리에는 헬라어 ‘수’(σου)가 들어갑니다. 이 ‘수’는 당신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말로 하나님을 향해 당신이라고 직접 부르면 곤란해집니다. 2 인칭 당신 호칭은 높임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문 새번역 위원회에서는 당신이 들어갈 자리에 아버지 호칭을 대신 넣었습니다. 본래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개역 성경의 주기도문은 이 부분이 아예 생략되었습니다. 생략해도 뜻이 통하기 때문에 생략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다시 한 번 제가 직역한 주기도문 사역을 읽어봅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빠~!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당신의) 나라가 임하옵시며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의 양식을 주옵소서.
그리고 우리 죄들을 용서해 주소서.
우리에게 죄 지은 자들을 용서하겠나이다.
그리고 우리를 유혹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습니다. 아멘)

주기도문은 당신청원과 우리청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두 번째 문장입니다. 이 부분을 세 개의 당신 청원이라고 합니다.

이 당신 청원이 세 가지 기도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의 기도는 사실 한 가지 내용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이곳에 실현되기를 청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은 사실 한 개의 당신청원과 세 개의 우리 청원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33 말씀은 이러한 주기도문의 내용을 요약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먼저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은 구하지 않아도 알아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문도 이 기도의 정신에 따라서 먼저 하나님 나라를 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먼저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은 유대교의 전통적인 기도와는 다른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우선 필요한 것을 구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많이 하는 기도인 18 번 축복기도문을 보면 4번부터 9번까지가 일상에서 필요한 것을 구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일상의 것을 먼저 구하고 있습니다. 18 번 축복 기도문은 잡다한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거꾸로 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청원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만 구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오심, 우리의 양식, 하나님과 이웃의 올바른 관계를 위하여 죄 용서, 사탄의 유혹으로부터의 보호를 청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기도는 유대인들의 기도와 매우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러분은 기도할 때 어떤 것부터 기도하십니까? 일상의 필요한 것들이 먼저 떠오지 않습니까? 내 일상의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할 수 있겠습니까? 취직문제, 건강문제, 물질문제, 결혼문제, 진로문제 다 내려놓고 오직 교회와 선교를 위해 먼저 기도하시겠습니까? 그것이 좋은 기도입니다.

그러면 차근차근 주기도문의 당신 청원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당신 청원의 처음은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입니다.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빠!’ 하고 부르고 나서 바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찬양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일 설교에서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초월성을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이름이 거룩하다는 것도 하나님의 초월성을 나타냅니다. 이렇게 연거푸 하나님의 초월성을 표현한 것은 강조를 하는 것입니다.

아빠하고 하나님을 부른 것은 친밀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을 친근하게 대할 수 있다고 해도, 하나님을 함부로 대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망스럽게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경외심이 없는 친밀은 경망스럽게 대하기 때문에 옳지 않습니다. 반대로 친밀성이 없는 경외심은 너무 삭막합니다. 하나님을 아빠로 부르는 것은 파격적입니다. 그런데 이 호칭이 자칫 하나님을 함부로 대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떨어지면 인간은 어떻게 됩니까? 인간은 하나님께 영광돌리기를 거부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우상숭배의 어리석음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도 역시 거룩합니다.

이름은 존재의 됨됨이를 표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나타냅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이름 가운데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당신을 계시하셨습니다. 이 스스로 있는 자란 뜻의 이름이 ‘여호와’입니다. 여호와 보다 더 정확한 발음은 ‘야훼’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것은 곧 하나님을 아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대하는 모든 존재는 경외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거룩이란 말은 떼어 구분한다는 뜻입니다. 거룩은 공간적으로 구분된다는 물리적 개념입니다. 피조물과는 다른 초월적인 존재라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거룩은 오직 초월자에게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돌리지 않아도, 상관없이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하십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는다고 표현합니다. 누가 하나님은 거룩하지 않다고 어떤 비방과 욕을 해도 이런 것에 영향을 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본래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성전이란 하나님께 속한 것이란 뜻입니다. 거룩한 성도는 오직 창조주 하나님께 바쳐진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바쳐진 존재로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성도는 거룩한 하나님으로부터 그 거룩함을 입어 거룩하게 됩니다. 이제 그 거룩한 성도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것은 청원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찬양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거룩한 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의 삶을 살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주기도문의 주제인 하나님 나라 청원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다음 청원은 “나라이 임하옵시며”입니다. 이 번역은 어색합니다. 그래서 ‘나라가 임하옵시며’로 번역하는 것이 맞습니다.

여기서 나라는 하나님 나라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한문으로 요약한 단어가 천국입니다. 특히 마태복음을 쓴 마태는 유대인입니다. 또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이 읽도록 쓰여졌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이란 단어를 함부로 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그토록 거룩하게 다룬 까닭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노골적으로 쓰지 않고 이를 완곡하게 ‘하늘 나라’로 바꿔서 사용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하늘나라는 곧 하나님 나라를 의미하는 같은 뜻입니다. 하늘나라는 한문으로 천국입니다.

사람들은 천국이란 죽어서 가는 나라로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죽으면 천국에 갑니다. 그래서 천국을 간다고 말하지, 천국이 온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입니다. 그런데 천국이 살아있을 때 이곳에 온다면 어쩌겠습니까?

천국을 가는 나라로만 안다면 반쪽만 아는 것입니다. 천국은 가는 나라일뿐더러 오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이는 오는 나라를 표현한 것이 주기도문에서 ‘나라가 임하옵시며’입니다. 임한다는 것은 저쪽에서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나라를 임하는 나라로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하나님 나라를 지금 우리처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로마 제국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기를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사방에 흩어져 사는 유대 민족이 다시 회복되기를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바벨론 포로 생활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으로 보았습니다. 로마라는 외세의 압제 가운데 있다는 현실은 진정한 의미에서 해방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라는 말은 바벨론 포로 상태가 끝나고, 다윗 왕조가 다시 재건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 당시에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유대 민족주의가 굉장히 강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모으고 대중의 인기를 얻는 과정을 보면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정치적으로 민족의 해방을 이끌어 낼 분으로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직접 이 문제를 질문했습니다.

누가복음 17:20-21입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이것은 바리새인들의 오해에서 생긴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민족주의나 정치적인 개념으로 다루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는 복음을 통한 구원운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 임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마음 안에 임했다는 말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 임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이 실현되는 나라입니다. 즉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공동체 안에서 실천되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이어지는 청원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입니다. 이 청원은 나라가 임하옵소서 하는 청원과 같은 청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에 대한 반복 청원인 것입니다.

하늘은 당연히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늘은 온전히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땅에서는 하나님의 통치가 먹혀들지 않습니다. 땅에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죄인들이 하나님을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인간들은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그 죄를 엄하게 가리실 것입니다.

그러나 땅에서 사는 거룩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삽니다. 땅 전체가 타락한 것은 아닙니다. 거룩한 성도들은 이 땅에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땅에 교회를 세우시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베드로에게 교회의 열쇠를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임하시면서 곧 교회가 탄생할 것을 아셨습니다.

교회는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다가 죽으면 천국에 갑니다. 그 천국은 우리가 가는 나라입니다. 교회는 우리가 이 땅에 세워 나가는 천국입니다.

교회가 천국이 되려면 우리는 교회를 하나님의 말씀이 권세 있게 실현되는 곳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 땅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영혼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그 구령의 사업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면서 나라가 임하시라고 외칠 때마다, 이 청원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철저한 순종을 서약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워나가기 위해 다음에 이어지는 3 개의 우리 청원을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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