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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이신 그리스도 (요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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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은 ‘예수님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라고 증거 합니다(요1:1-3).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이유는 그분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며, 또한 만물이 말씀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증거는 계속됩니다.

1. 본문에서는 예수님을 생명이신 그리스도로 소개합니다. 그리스도가 생명이신 이유에 대하여 성경은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라고 증거 합니다. 생명이란 산 자와 죽은 자를 구별하는 기준입니다. 다시 말하면 산자에게는 생명이 있으나 죽은 자에게는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이 있음과 생명이 없는 것 그리고 산 자와 죽은 자를 구별함에는 곧 생명이 하나님과 하나님 아닌 것을 구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온 땅에 산자로서 진정으로 생명을 가진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그분에게는 처음부터 생명이 있었으며, 사실상 생명은 그분에게서 나왔습니다. 이것은 결국 생명은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사실을 본문에서도 ‘그 안에 생명이 있었다’고 증거 합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다’라는 의미는 ‘생명은 처음부터 그리스도 안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리스도에게 생명이 있을 수 있는가? 도대체 그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생명을 가질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곧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생명을 소유하고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성경이 “그 안에 생명이 있었다”고 증거한 것입니다. 이는 곧 그리스도께서는 처음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이신 하나님이셨으며, 그분께서 친히 세상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던 것처럼, 그리스도는 생명의 원천이시며, 원 줄기이신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생명이시기에 본장 3절에서는 세상 만물 곧 생명을 가지고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서 지으실 수 있었으며, 또한 그리스도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고 선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생명이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 우리와 어떤 상관이 있는가?”라고 질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하나님이시라는 그 사실은 바로 사람들에게 소망이 됩니다. 그것은 생명의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친히 사람들의 빛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성경은 “이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라”하였습니다(1:4).

그러면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의 빛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사람들이 어두움에 처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어두움에 처해 있다는 그 사실은 사람들에게는 생명이 없음 곧 그들이 죽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죽은 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생명인 것입니다. 그러나 죄와 어두움에 처해 있는 사람은 그 자신 스스로가 빛과 생명으로 나아올 수 얻을 수 없습니다. 만약 죄와 어두움에 처해 있는 인간 그 자신 스스로가 빛과 생명으로 나아올 수 있었다면 모든 사람은 어두움에 처해 있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죄와 어두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 스스로가 빛과 생명으로 나아올 수 있었다면, 그리스도가 빛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죄와 어두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 스스로는 결코 빛에 이르지 못하고, 생명으로 나아올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은 인간 스스로에게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죄와 어두움에 처해 있는 인간이 생명에 이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은 생명이신 하나님에게서 직접 생명을 받아야만 합니다. 이것은 처음 아담이 하나님께서 불어넣어 주신 생기로 산 자가 된 것처럼(창2:7), 죄와 어두움에서 처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직접 그 생명을 다시 받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결코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으며, 생명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이 죄와 어두움에 처해 있다는 그 사실은 사실상 절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절망의 상태에 처한 인간에게 소망을 주신 분이 바로 생명의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이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사람들의 유일한 빛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사람들의 유일한 빛이시라는 말은 죄로 죽은 인간이 다시 생명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 바로 그리스도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는 죄로 죽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빛으로 오신 분으로서, 사람들에게 유일한 희망이며 빛이신 분이셨습니다.

2. 그러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의 빛으로 오신 이후 그분을 처음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예상보다는 너무도 달랐습니다. 성경의 증거대로 그리스도는 죄로 죽은 인간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오신 은혜로우신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사람들의 빛이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생명이신 그분을 반갑게 맞이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성경은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합니다(1:5).

그러면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 정도는 어느 정도였을까요? 주님께서는 이 땅에 오시기 전에 먼저 빛에 대하여 증거 할 사자를 한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을 통상적으로 세례자 요한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분명히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증거자로서 이 땅에 온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을 가리켜 ‘당신이 그리스도냐’하고 묻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직 빛에 대하여 증거 하고 자기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게 하려는 사명 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러기에 그가 증거 한 것은 오직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 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구원과 심판의 주님으로서 죄로 죽은 자에게 생명을 주실 그리스도를 소개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세례요한은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예비하고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여야 한다고 권면 했습니다(눅3:4).

그 뿐입니까? 세례요한의 사역 이후 직접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주님을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빛을 비추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 가까이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은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동안에는 언제든지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능력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는 이 세상 곧 어두움에 처한 세상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어두움에 처한 사람들 속에 들어가셔서 그들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빛이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이 얼마나 능력이 있든지 그 빛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계속 비춰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예수님을 그리스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아무도 그분을 말씀이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생명이신 하나님으로 알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불행한 일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증거 합니다.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다”(1:10).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으로부터도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거부당했습니다. 그리스도를 거부한 자기 백성은 소위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이스라엘이라고 자랑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일찍부터 성경을 읽고 알았으며, 그리스도를 소망하며 기다려 왔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정작 그리스도께서 자기 땅에 오셨을 때에는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영접지 아니했던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그리스도를 철저하게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한 사실에 대하여 본문 11절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다”고 증거 합니다.

이렇게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빛으로 오셨을 때, 세상과 그 때 이스라엘이라고 자랑하던 사람들까지 철저하게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거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은 그들 자신 스스로가 지금도 어두움 속에 있으며, 또한 앞으로도 계속 어두움 속에 있을 것이라는 선언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그러한 행동은 그들이 철저하게 죄로 인하여 부패하여졌음을 증거 함으로서, 그들은 철저하게 그리스도의 생명으로부터 단절되어 있음을 선언하는 것이었습니다.

3.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처음 오실 때 비록 세상과 혈통적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거부하였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하나님이심에는 변함없는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은 비록 세상과 혈통적 이스라엘이 거부했다고 할지라도, 생명이신 주님께서 세상에 빛으로 오신 궁극적인 목적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성경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1:12-13)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은 더욱더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 세상에 오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새롭게 창조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처음 창조 당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아담을 창조하셨듯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을 창조하시는 것이며, 또한 처음 창조 당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 산자가 되게 하신 것처럼, 죄로 죽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생명을 불어 넣으심으로 그들을 다시 산자로 삼으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명의 창조로서 새 사람을 만드는 일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것입니다.

이렇게 처음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에 당시 세상과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철저하게 거부하였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통한 새 생명의 창조 사역은 중단하실 수 없었으며,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 자신으로서 곧 그리스도의 사역은 인간의 편에서의 어떤 반대와 거부에도 불구하고 결코 중단될 수 없는 하나님 자신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4.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의 창조는 어떤 사람들에게 어떠한 결과를 줍니까?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되어질 사람에 대하여“영접하는 자 곧 그의 이름을 믿는 자”로 규정합니다. 여기서 영접하고 그의 이름을 믿는 자라는 의미는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또한 우리를 죄악에서 건지실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로 믿고 그분을 마음에 영접하고 섬기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가리켜 고후 5:17절에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하였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새롭게 지으신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육체로 우리에게 원수 된 것을 폐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게 하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사람들입니다’(엡 2:15-16).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그들이 새 사람으로 만드신 것은 궁극적으로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사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된 우리의 근본이 하늘에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처음 아담과 그의 아내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창조됨에는 그들의 근본을 하늘에 두고 창조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하나님을 떠남으로 그들은 그들의 근본을 땅에 두고 살게 되었습니다(창세기 3:19). 이것은 아담의 범죄이후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오늘 우리들까지도 죄로 인하여 우리의 근본을 땅에 두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당연히 우리는 결국 죄로 인하여 우리의 근본인 흙으로 돌아가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창세기 3:19절에서 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변함없이 성취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창조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사실은 흙으로 돌아갈 우리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로서 난 자로 새롭게 창조하심으로 결국 흙으로 돌아갈 자로 여기지 않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주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하신 것입니다(요11:25-26). 그래서 바울 사도는 빌 3:20절에서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처음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빛으로 오셨을 때 비록 세상과 자기 백성 된 자들마저도 그 빛을 거부하고 부인하였을지라도, 그리스도는 바로 세상에 빛으로 오신 생명의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분 안에서 택한 자들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로서 새롭게 창조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가 바로 생명의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며, 그리스도 안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와 영광이 오늘 우리가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생명이심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도 생명 안에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빛이시므로 우리도 세상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하나님이심은 주께서 거룩한 백성들에게 최대의 사명으로 주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주신 것에도 드러납니다. 주님은 생명의 창조 사역을 위하여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주의 복음을 증거 함으로 가서 제자를 삼으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5. 그러면 우리가 본문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생명의 하나님으로 아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줍니까? 참 신앙이란 바로 그리스도로부터 시작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로부터 얻은 이러한 은혜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깊이 앎으로서 더욱더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깊이 알게 되면, 그 분 안에서 우리 자신을 알게 되고, 그분께서 주신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깊이 앎으로서만 바른 섬김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의 성장은 근본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이 믿는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이 증거한 대로 그리스도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이신 하나님이셨습니까? 또한 여러분은 그리스도가 창조주 되심을 믿습니까? 또한 그리스도가 창조주이심을 믿는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께로서 난 자로 새롭게 태어남도 믿습니까? 만약 이 모든 사실을 여러분이 믿는 다면, 여러분은 바로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 안에 있는 여러분은 이미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오직 우리를 죄악에서 건지신 그리스도를 올바로 알고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위재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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