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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육신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 (요 1: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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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의 핵심적인 주제를 찾는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다’ 또는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은 요한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복음 1장에서는 증거 하기를 그리스도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이신 하나님이신데, 그 말씀이신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친히 만드셨던 창조주이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창조주이시라는 사실은 그분은 만물을 시작하신 생명의 근원으로서 곧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 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 오셨다는 사실에 대하여 5절에서는 이미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라고 하였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을 사람들의 빛으로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의 빛이 되심은 그분 안에만 생명이 있어서(4), 죄와 어두움으로 사망에 처한 인간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생명이 바로 그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빛이 어두움에 비취었다’라는 표현은 우리에게 다소 추상적인 개념처럼 들여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일부는‘빛이 어두움에 비취었다’는 그 말씀만을 가지고서는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에 대하여 실감하기가 어렵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1. 오늘 본문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어떤 방식으로 이 땅에 오셨으며, 그리스도의 오심이 사람들에게 왜 빛이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요한복음은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하여 이미 4절에서 ‘빛이 어두움에 비취었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빛으로 오신 그분에 대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한 것입니다(14). 즉 그리스도께서‘육신을 입고, 사람으로 오셨다’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은 사람으로 오실 것임은 이미 구약의 선지자들이 증거 하는 주제였습니다. 예를 들면, 삼하 7:12절 이하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12)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13)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14)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하심으로 메시아가 다윗 왕가에서 나오실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미가서 5:2절에서는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하였습니다. 베들레헴이 바로 다윗의 고향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하나님께서 줄곧 그리스도가 다윗 왕가에서 나오실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실 것임에 대해서는 다른 선지자 특히 이사야 선지자가 오실 그리스도를 자기 백성들의 죄를 대신하여 고난 받을 종으로 묘사하는데서 드러납니다(이사야 53장). 주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최근 까지만 해도 세례요한을 먼저 보내셔서 주님의 오심을 예고하셨습니다. 세례요한은 주님에 대하여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그분이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분은 바로 이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줄곧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것과 또한 그분이 인간으로 오실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성경이 분명히 그리스도가 육신으로 오실 것임을 말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을 때에는 빛이신 그리스도를 알지도 못하였고 영접하지도 안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영접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영접하지 못한 궁극적인 이유는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구약성경에서 이미 그리스도가 육신으로 다윗 왕가에서 오실 것임을 말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오신 그 사실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성경을 믿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는 단순히 한 인간으로만 보였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행하신 사역이나 가르침은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능력이었으며, 예수님의 사역을 통하여 그분이 하나님 자신이심을 분명히 증거 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사역은 오히려 예수님을 배척하기 위한 수단이요 구실로밖에 작용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결국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그 사건이 어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그들 자신을 돌이킬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에 이르게 하는 걸림돌이 된 것입니다.

2. 그러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심’은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오랫동안 기다려 왔으며, 많은 선지자들이 증거 한 메시아의 시대가 이 땅에 도래했음을 의미합니다. 이 메시아의 시대는 다른 복음서에서 증거 한 하나님 나라를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일부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심이 자신들의 걸림돌이 된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거하셨다 즉 장막을 치셨다’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 가운데 임재하심 곧 장막을 치신 것이 하나님 나라의 도래라고 말 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을 건지시고, 그들과 언약을 맺음으로 의도하신 것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심에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 가운데 함께 하시고자 하신 의도가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건지셨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심으로 그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된 이스라엘을 향하여 “내가 내 장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12)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니라”하셨습니다(레위기 26:11-12).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려는 의도는 성막-성전을 통하여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광야에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기 위하여 성막을 지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구약 시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심은 외형적 건물 곧 성막과 성전을 통하여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광야시대에 이스라엘에게 성막을 짓도록 하신 것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천막생활을 하였으므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신 하나님께서도 자기 백성 가운데서 천막으로 함께 하셨던 것입니다. 그 후에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입성하여 한 곳에 정착을 하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성막 대신에 성전을 짓도록 하십니다. 그렇게 하여 성전이 지어진 도시가 바로 예루살렘이었습니다. 결국, 구약 시대에 성막과 성전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구약 시대에 성막과 성전을 통하여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임재 방식은 일시적이었고 완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 외형적 건물인 성전을 통하여 일시적으로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 때가 차매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입은 예수 그리스도는 근본 하나님이셨으나, 낮고 천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복음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성경은 “우리 가운데서 거하시려고”그렇게 하셨다고 증거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심은 자기 백성들 가운데서 장막을 치고 그들 가운데 거하시려고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그 사건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 가운데 장막을 치고 그들 가운데 친히 거하시기 위하여 오신 사건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성막과 성전을 통하여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려고 하셨던 하나님께서 그 때는 일시적으로 불완전하게 외형적 장막으로 거하셨지만, 이제는 하나님 자신께서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심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백성들 가운데 완전하게 장막을 치고 함께 하시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과거처럼 외형적 건물이 하나님의 성전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외형적 건물인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리시고,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심으로 자기 백성들 가운데 장막을 치셨습니다. 그러한 사실 때문에 고전 3:16-17절에는 “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당을 성전이라고 부르는 것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지적하기도 합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심의 방식이 교회당과 같은 외형적 건물로 하지 않으신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교회당을 성전이라고 부르는 태도는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셔서 자기 백성들 가운데 거하신 주님의 함께 하심을 거부하고 오히려 구약 곧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불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어 자기 백성들 가운데 장막을 치시고 자기 백성들 가운데 거하신 이 사건이야 말로 하나님 나라가 도래한 사건인 것입니다.

3.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에 대하여 일부에서는 그분의 하나님 되심과 또한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이심을 인정하지 않고 도리어 배척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영광된 그 모습은 감추어질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빛이 어두움에서 더욱 빛나는 것처럼,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참 모습은 죄악된 사람들의 삐뚤어진 마음에도 불구하고 본래의 그 모습대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요한복음은 이렇게 증거 합니다. “ 우리가 그 영광을 보았는데,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 하더라.”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신 하나님이셨으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리스도안에서 언제나 함께 하심으로 이루셨습니다. 따라서 이 땅에 사람들은 죄로 인하여 아무도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지만,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되었으므로 그리스도는 바로 죄와 어두움 가운데 있는 우리들에게 생명을 주신 유일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유일하신 중보자이시며, 그리스도는 우리의 믿음의 근본이시며, 참된 진리이시며, 참된 은혜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씀은 곧 그리스도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유일하신 외아들 아들이시며, 또한 그분은 은혜와 진리의 원천이라고 증거 한 것입니다.
이제 성경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심으로 자기 백성들 가운데서 거하심으로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말씀입니다.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것은 바로 그 시대가 은혜의 시대인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그분은 감추어질 수 없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합니다. 요한복음은 은혜와 진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받게 될 은혜가 어떤 것인지 모세의 율법과 대조하여 증거 합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은 중보자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과 언약을 맺어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심을 맛보았을 지라도 그 때 이스라엘은 단지 율법만을 받았을 뿐이었습니다. 이 율법에 대하여 갈라디아서 3:19절에는 “율법은 ...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하였고, 또한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율법으로는 그들이 단지 죄를 더할 뿐이며, 율법은 오직 믿음이 오기를 사모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이제는 우리에게 죄를 더하게 하는 율법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으로 말미암은 저주가 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율법이 우리를 얽매이게 하는 시대가 아니라, 은혜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 때문에 성경은 우리가 참 진리와 참 은혜로우신 그리스도에게서 받는 것은 오직 은혜밖에 다른 것은 없다고 선언합니다(16).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받는 것은 오직 은혜인 것입니다. 이 은혜가 바로 율법아래서 기다렸던 믿음이며, 믿음이 바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건지시고, 또한 우리를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4.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얻은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얻는 유일한 축복이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나온다는 분명한 사실을 증거 합니다. 즉 사람이 얻게 될 모든 축복의 관문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직 그리스도만을 통해서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모든 것은 오직 그리스도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요한복음 1:18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즉 인간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에서 멀어져 있는 것은 하나님은 빛에 거하시며 우리는 죄와 어두움 가운데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어두움 가운데 있는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도 없고, 또한 하나님의 축복에서 제외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충분히 계시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아들 안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아들 안에서 죄에서 자유함을 얻어 하나님의 은혜의 부요함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자유함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신 하나님과 자유롭게 교제하며 하나님의 생명의 부요함을 충분히 누리며 영원히 하나님 안에서 사는 축복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주님은 나는 길이라 하셨고,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가지 못한다고 하셨으며, 나를 믿는 자는 아버지를 믿은 것이며,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이제 빛 가운데 거하신 하나님께서 유일하신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셨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즉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심은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신 것이므로 이제는 그 어떤 누구도 감히 하나님 앞에서 “나는 하나님을 몰랐습니다”라고 말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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