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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정직한 그리스도인 (잠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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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예배의 자리로 나아오신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이번 잔치를 통해서 지난주일 낮에 새로 오신 분들이 모두 육십 한분이나 되었습니다. 오늘도 다시 오신 분들, 그리고 또 새로 나오신 분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무슨 설교를 해야 하는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처음오신 분들에게 신앙의 안내를 하는 말씀을 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오늘밤에 선출할 직원투표에 관해서 말씀드려야 하는지 상당히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처음교회에 발을 디딘 분들을 먼저 생각하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다행히 저녁설교에서 임 목사님께서 오늘 선출할 직분자에 대한 말씀을 집중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저는 오늘 아침 그리스도인이란 누구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일반론을 다루려고 합니다. 그러나 정직한 그리스도인이란 제목의 말씀은 오늘밤 직원선출과도 무관하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좋은 교회 울산교회의 책임 있는 직분 자가 되려면 정직한 그리스도인이어야 합니다. 신앙이 얼마나 좋으냐. 교회에 얼마나 헌신을 하느냐 묻기 이전에 그 사람이 얼마나 정직한 삶을 사느냐 하는 것을 먼저 물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비밀은 깨끗한 양심에만 간직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이 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을 갖지 않고는,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두가 정직한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만 문제는 이익이 눈앞에 있을 때, 위기가 닥쳤을 때 그것을 끝까지 고수할 것인지 그러지 않을 것인지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엄마 뱃속에서 태어날 때부터 난 세상에 태어나서 ‘악을 저질러야지 속이며 살아야지’ 그렇게 말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다 그래도 정직하게 살자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문제가 부딪쳤을 때 끝까지 정직을 지킬 것인지 그러지 않을 것인지는 내세가 보장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혹 정직해서 손해를 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보상을 해 주실 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 믿는바 데로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삶을 깨끗하게 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라야 그 깨끗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정직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독도가 아닙니다. 북한이 위협하고 있는 핵무기가 아닙니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정직의 문제입니다. 정직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나라를 일본에 빼앗겼을 때에 독립투사들 가운데서 안창호씨 같은 분은 죽더라도 거짓이 없으라고 외쳤습니다. 우리가 정직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수난을 당한다고 하면서 자기 자신이 한 소녀와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공원에 나가면 체포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민하다가 결국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나갑니다. 그리고 체포를 당합니다.

우리가 지금보다 훨씬 못 살았을 때가 있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정권을 장악하고 난 다음에 잘 사는 나라에 가서 돈을 빌려와서 좀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고 그렇게 노력했던 때가 있습니다.

미국에 가서 푸대접을 받고 독일에 가서 광부들, 그리고 간호사들의 노동력을 담보로 해서 차관을 빌려 왔습니다. 돈만 빌려온 것이 아니고 그들의 기술지원도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독일 기술자들 가운데서 한국 사람들하고 몇 년 동안 이렇게 기술 지원을 하고 가면서 하는 말이 한국 사람들은 머리가 좋다는 겁니다. 한국 사람들은 손재주가 있습니다.

황우석교수가 그 일을 하는 것도 젓가락 때문이라고 요즘에 이야기 하고 있지요? 그래서 우리의 젓가락이 미국으로 수출되고 있습니다. 나무젓가락이 아니고 쇠 젓가락, 머리도 좋고 손재주도 있는데 문제는 정직하지 못하다는 겁니다.

지켜볼 때는 아주 재빠르게 일을 잘 해냅니다. 그런데 감독하는 사람이 없으면 에러가 납니다. 몇 십 년이 지나서 그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지금 잘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정직의 문제는 우리로 하여금 제대로 된 선진국에 들어가는 발목을 붙잡고 있습니다. G12국가에 간신이 들어가게 되었지만 정직도에는 세계의 열두 번째 나라가 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도덕성에 관해서 우리의 실태가 어떤지 지난 주간에는 신문이 나를 도와주더라고요.  국민일보 뉴스포커스에 난 기사를 좀 인용해 보겠습니다.  현 정권 실세들 의혹마다 ‘오리발’이란 부제에 처음에는 “모른다.  나중에는 “사실은”하는 거짓말... 거짓말...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특히 열린 우리당 국회의원으로서 이 광재 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은 썬앤문 그룹으로부터 불법 대선자금을 받았다고 의혹이 일자 “단 돈 10원도 받은 바 없다”고 딱 잡아떼었습니다. 그리고 2달이 안되어 실체가 폭로가 나니까 기자들에게 메일을 보내서  “썬앤문으로 부터 1억 원을 받았다. 진솔한 고백을 하려 했으나 용기가 부족했다”고 그렇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의혹이 일기 시작할 때는 단돈 10원도 받은 일이 없다고 하면서 유혹을 제기하는 야당 국회의원들을 향해서 비겁하게 면책 특권 뒤에 숨어서 총질하지 말라고 눈물 흘리며 비난을 했습니다.

이 의원의 형태는 노무현 정부의 실세들이 펼친 거짓말 릴레이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과거정권 때는 역시 거짓말 했지요? 그러나 그때 사람들은 “모른다. “기억이 안 난다” 이렇게 거짓말 했어요. 그러나 이 정권 실세들은 적반하장으로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뒤에서 총질을 하지 말라고 아주 다그치는 적극적 거짓말투성이입니다. “국민이 분노하는 것은 아마추어적 국정운영보다도 거짓말에 더 분노하고 있다”고 전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올해부터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 새로 시작하는 새로 강조하는 일이 정직입니다. 대한민국이 부정직함은 세계에 이름을 떨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우리와 인접해 있는 일본은 정직하고 1/4이 기독교인 이라는 우리나라는 부정직하기로 악명이 높습니다.

좋은 교회 울산교회에 속한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주로 가책을 느끼는 분야는 이런 분야라고 조사가 되어있습니다. 거짓말뿐 아니라 커닝이나 무단횡단, 악보복사, 로또 복권 구입 이런 일들로 인해서 켕기는 데가 많다는 겁니다.

이제 우리는 살면서 정직을 회복해야 됩니다. 특별히 오늘 목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들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정직해야 된다면 그들은 더 정직에 목숨을 걸어야 됩니다.

교통순경과 시비가 붙었는데 문제는 장로님이 그러더라고요. 내가 장로요 이러니까. 장로요? 목사도 거짓말을 하는데 이러면서 신뢰를 하지 않더라고요.  오늘 선출할 사람들의 첫 번째 기준이 정직한 사람이냐? 꼭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왜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정직이 중요할까요?

1. 정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다음부터는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정직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정직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정직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거룩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거짓말 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절대적인 진리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정직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삶의 양식이 정직하고 성실하기를 바랍니다. “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거니와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잠언3:32)

마음이 바르지 못한 자를 우리 하나님은 미워하십니다. 그러나 마음에 감춘 것이 없는 자를 우리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속이는 자는 미워하시고 정직한 자를 사랑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속이는 자를 미워하실까요? 당신의 본질과 배치되기 때문입니다. 거짓은 우리 마음을 구부러지게 하고 더럽히고 파괴시킵니다. 거짓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삶에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합니다. 다 상관없어요 누가 보나 그러면서 사람들은 부정직한 일들을 자행합니다. 잠깐 눈을 감으면 아무도 모를 일을 가지고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알고 있잖아요. 하나님이 지켜보고 있잖아요.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신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움직임을 다 살피시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이 뭐냐고 물으면 아무도 보지 않는데도 누군가가 본다는 것을 알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른 점입니다. 매순간 우리의 숨 쉬는 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아니 어머니의 태중에서 지음을 받을 때부터 알고 계십니다. 초음파 사진이 우리를 촬영해 내기 전부터 하나님의 눈에는 여러분의 움직임 드러나고 있습니다. 어떤 기계가 감지하기 전부터 여러분의 작은 심장의 박동소리를 하나님은 이미 듣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도 보셨으며 기뻐하셨습니다. 우리가 자라는 모습을 보시고 즐거워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새날을 주시면서 오늘 하루 한번 바르게 살아 보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의향도 아시고 생각의 동기도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존재가 정직하기를 원하십니다. 정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뿐만 아니라 또한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 을 줍니다.

2. 정직은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정직은 영향을 줍니다. 정직한 삶을 살아도 부정직한 삶을 살아도 그 영향은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가게 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여러분 가정에 있는 식구들에게 영향을 줍니다. 잠언은 말합니다. “정직하고 흠 없이 사는 의로운 아버지를 모신 자녀는 복 있는 자이다 ”(잠언20:7, 현대인의성경) 현대인의 성경은 그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정직하고 흠 없이 사는 의로운 아버지를 모신자녀는 복 있는 자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고 싶습니까? 자식이 여러분 때문에 복을 받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재물을 물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재물은 내 것 가지고 내가 주는데 무슨 시비냐고 이야기 하실지 모르지만 재물은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작정할 때부터 모든 것의 주권을 주님께 이양했습니다. 어떻게 여러분 것입니까?

저는 아침 1부예배때 세례를 줄때에도 두 가지를 확인했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지 예수를 우리의 과거의 죄에 대해서 용서해 주는 분으로 고백을 하는지’를 물었고 ‘앞으로의 삶을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 것인지’를 묻고 거기에 근거해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삶은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가진 것이 여러분의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여러분, 복 받기를 원하면 재물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정직한 삶의 모습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을 오늘까지 지탱하게 했던, 여러분을 복 받게 했던 신앙의 원리가 무엇인지를 여러분 자녀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같은 구절을 리빙 바이블은 “정직한 아버지를 모신 것은 놀라운 유산을 갖는 것이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런 인생목표를 세워볼만 하지 않습니까?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삶을 살겠다. 그렇게 결심해 보는 겁니다. 사실 대중들의 우상이 되는 것은 정직을 요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멀리서도 우리는 스타에게 환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것은 정직이 필수적입니다.

나아가서 정직은 식구들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한 일터나 사회에도 마을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어 있습니다.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원을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을 인하여 무너지느니라.” 잠언 11장 11절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사는 마을이나 도시는 정직한 사람의 축복을 통해서 발전하고 악한 자의 입 때문에 망한다고 말합니다. 내가 입을 열면 많은 사람이 다친다고 협박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광역시 울산의 미래는 좋은교회 울산교회 성도들 여러분의 정직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되는 것은 얼마나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사람, 한사람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내일은 오늘 이 진리를 듣는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합니다. “정의는 나라를 높이지만, 죄는 민족을 욕되게 한다.”(잠언14:34, 표준새번역)

그렇습니다. 공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합니다. 무릇 정의로운 사회가 이루어지면 나라의 자랑거리이지만, 불의가 판치면 나라의 수치거리입니다. 무슨 말을 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습니다. 독도를 가지고 대통령이 열 받아서 이야기를 해도 바다 건너서는 그건 다 내수용이라는 겁니다. 그 말을 들을 만도 하지요. 미리 옛날에 알았을 때는 아무 말도 않다가 신문에서 떠드니까 그때서야 이야기를 하니까 누가 믿습니까? 모든 측근에 있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2등하면 안될 것처럼 날 뛰고 거짓말을 하니까 요즘에 또 통발 어선 하나가 일본 순시선과 대치하기도 했는데 사연은 냉동실이 고장 나고 해서 빨리 통과할 수밖에 없어서 그랬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 말을 믿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거짓말을 너무 잘하니까 내가 대한민국 사람이지만 그 말을 믿는 것이 정말 옳은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말 문제가 있어서 통과했는지 통과하다가 여차하면 한건 하려고 했는지 누가 알아요? 대한민국 사람이 못 믿는데 일본 사람이 믿어 주기를 바라겠습니까? 위의 사람부터 믿을 수가 없는데, 대한민국 호의 선장도 못 믿을 바에는 어떻게 고기잡이 선장의 말을 믿어야 되는 겁니까.

그러므로 조국 대한민국은 정직한 사람을 처절하게 찾고 있습니다. 이 나라가 잘 살게 되려면 예수 믿는 사람부터 정직해야 합니다. 우리가 정직해야 우리를 보고 사람들이 관심을 갖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들으려고 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성경은 그렇게 말합니다.

정직한 삶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는 일을 도와줍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두 가지 슬프지만 참된 이유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그리스도인을 만나지 못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인들이 정직하게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인생의 칸막이로 막아두고 한 부분은 신앙생활을 할 때는 교회에 가서는 열심히 찬송하고 기도하는데 직장에 가서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돌변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지요.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기로 하고 여러분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세례를  받았습니까? 오늘 저녁에 투표권을 갖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여러분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주로서 섬기기로 작정한 아무 아무에게 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저는 그렇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을 뿐 아니라 예수를 우리 죄에서부터 건지시는 분으로 믿을 뿐 아니라 새로운 삶이 주어졌으면 이제부터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기로 작정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여러분이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정직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동시에 이웃에게 영향을 주고 자기 자신에게 축복을 가져다줍니다.

3. 정직은 나에게 축복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정직한 삶의 유익을 성경은 수없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정직하게 살면 사는 것이 쉽다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살면 길이 평탄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은 쉽게 믿지 않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 고비를 넘어가는 데는 더 편하다고 생각합니다.

잠언 11장 5, 6절을 현대어 성경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바르고 곧게만 살아가는 사람은 그 앞길이 평탄할 것이나, 못된 짓만 일삼아 남 짓누르고 착취하며 살아가는 것들은 스스로 뿌려 놓은 그 악의 씨를 스스로 거둬들일 수밖에 없으리라. 올곧은 사람은 바르게 살아온 것 때문에 구원을 받겠지만, 남을 속이고 등쳐먹는 것들은 자신의 잘못에 사로잡히고 말리라.”

요즈음 많이 읽히는 메시지 성경은 의역을 합니다. “도덕적 성품은 인생여정을 평탄하게 하지만 악한 삶은 삶을 고달프게 한다. 좋은 성품은 최상의 보험이다.” 만약 우리가 정직한 길을 걷는다면 삶은 한결 수월할 것입니다.

마크 투웨인 이라는 소설가는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정직하면 좋은 점 하나는 오래 기억할 필요가 없다”는 점입니다. 정직하기만 하면 누구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일일이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언제나 거짓말을 하면, 이 사람 만나서 이 말을 하고 저 사람 만나서 저 말하고 앞에서는 이 말하고 뒤에서는 저 말을 하고 나면 그걸 나중에 다 끼워 맞추려면 머리가 좋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정직하게 처신한다면 다 기억하지 않아도 걱정이 없습니다. 그 상황에서는 내가 어떻게 처신할 수 있는지 자기 행동의 방향이 정해져 있어요. 나는 기억은 못하지만 이렇게 했을 것이다.

여러 말들을 해 놓으면 나중에 들통이 나지 않으려면 그것을 다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머리도 나쁜 사람이 그것을 기억해 두려니까 골치가 아픈 거지요. 정직하게 처신하면 기억력이 특별히 좋지 않아도 됩니다. 있는 그대로 진리를 말 했다면 두려워 할 일이 없습니다.

우선 피하고 보자는 심리에서, 우선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 보고 사람들은 거짓말을 쉽게 합니다. 그러나 악한 자의 길은 고달프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쉽게 살자고 거짓말을 합니다만 거짓이 들통 나서 형무소에 가서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한번 물어 보십시오. 거짓말 하는 삶이 쉬운 삶인지 대해서 한번 물어 보십시오.

삶의 모든 문제와 혼동은 거짓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그 길을 떠나가면 길은 험하고 고달플 수밖에 없습니다. 악한 길에는 평강이 자리하지 않습니다. 악한 삶은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삶은 하나님의 진리를 따라서 갈 때에 비로소 누릴 수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한 자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시느니라.” 어떤 사람이 악한 사람입니까? 하나님이 정하신 그 길을  떠나서 사는 사람이 악한 사람입니다. 악한 사람하면 여기에 나와 있지 않는 사람을 떠올리지만 여기에 있던지 밖에 있던지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길을 떠나 살면 악한 사람입니다. 그런 자에게는 평강이 없다고 말합니다. 

좋은 성품은 최선의 보험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정직은 최선의 정책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정직하게 사는 사람이 건강하다는 수없는 의학적증거가 나오고 있습니다. 정직 성실한 삶을 사는 사람이 더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의학적인 증거들이 나오고 있어요.

가장 올바른 일을 한다면 여러분은 최선의 보험에 가입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정직하고 성실한 삶에는 스트레스가 적기 때문입니다. 정직해도 또 다른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직하면 수많은 스트레스를 면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에 가장 큰 스트레스의 하나는 일관성이 없는 데에서부터 생겨납니다. 여러분이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다를 때 여러분이 평소에 중요하다고 주장한 것 하고 실제로 하는 것 하고 다르면 여러분 스스로가 그 이중성 때문에 마음에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롬7:15, 표준새번역)

여러분은 그런 고민을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내가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그건 하지 않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그 것은 하는 자신 때문에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런 고민 없이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은 다시 처음부터 출발을 해야 됩니다. 이런 고민을 하지 않고 지금 그리스도의 삶을 살고 있다면 여러분은 심각하게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세례의 물이 여러분에게 뿌려 지는 순간에 여러분이 착해진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문제에 부딪칠 때 마다 다시 한 번 어떻게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지를 계속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번 결단 한다고 끝까지 가는 것은 아닙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정직하게 행할 것인지 아니면 거짓과 타협할 것인지 우리는 고민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바르다고 믿는 것을 말하는 정직한 삶을 살면 그 길이 순탄합니다. 그런 정직한 삶을 살면 또 다른 유익도 있습니다. 그것은 소신 것 사는 자유입니다. 양심에 꺼리 김이 없고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으면 소신 있게 살아가는 겁니다. 남의 눈치를 살피지 않습니다.

일본이 기독교 신앙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정직한 것은 그 사람들은 남의 눈치를 많이 살피기 때문입니다. 남의 눈치라도 살피니까 그래도 세계에서 제일 정직하다는 평가를 받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국민이 25%가 되는데 이 사람들이 이상하게 하나님 눈치를 살피지 않아요. 그러니까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겁니다.

“흠 없이 살면 앞길이 평안하지만, 그릇되게 살면 마침내 드러나게 된다.”(잠언10:9) 언제 들통 날지 모르니까 불안하고 그것이 스트레스가 됩니다. 바르게 살면 한 걸음 한 걸음이 안전하지만 굽은 길로 가면 미끄러지기 쉽고 넘어집니다. 숨길 것이 하나도 없으면 누구를 만나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과 멀리 서서 말 할 때뿐만 아니고 여러분과 가까이 마주해도 부끄러울 것이 없는 겁니다. 내 이상을 과대 선전 한 적도 없고 가까이 다가와서 삶을 나누어도 부끄러울 것이 없으면 우리의 삶은 안전한 것입니다.

서랍 속에 더러운 것이 없으면 있는 그대로 언제나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집이 언제나 깨끗하면 불시에 손님이 온다고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정직한 삶에는 엄청난 담대함이 주어집니다. 감출 것이 없으면 통관 순서 때문에 긴장할 것이 없습니다.

1912년 타이타닉호가 처녀항해를 할 때 사람들은 모두 그 배가 침몰할 수 없는 배라고 믿었습니다. 그때 당시는 신기술이라고 배를 만들 때 큰 배를 칸을 다 질러서 전에는 배 안쪽이 통째로 하나가 되어 있으니까 물이 새기 시작하면 전체가 가라앉지만 새로운 기술을 통해 이제 칸막이를 했기 때문에 한 두 개가 문제가 생겨도 배는 뜬다는 것이 그때 사람들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잘 아는 대로 처녀항해에서 빙산을 만나서 엄청난 큰 빙산과 충돌을 하고 나니까 그 칸막이를 했던 중심이 다 흔들려 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1522명을 수장시키고 그 배도 가라앉았던 것입니다. 선체 전체를 지탱할 칸막이의 중심부분이 부서짐으로 배는 침수되고 말았습니다. 타이타닉호는 우리의 삶을 보여주는 비유와 같습니다. 우리의 삶 전부를 지탱하는 핵심적인 부분은 정직입니다.

인생항해에 있어서 정직이 무너지면 삶은 무너져 내립니다. 우리의 삶을 여러 칸으로 나누어 놓고 한 칸이 무너져도 다른 칸이 지탱할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삶을 조그마한 칸으로 구분해서 직업생활, 가정생활, 사회생활, 교회생활, 성생활, 취미생활 이렇게 나누어서 한 칸이 문제생기면 다른 칸이 유지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은 서로 서로 결속되어 있습니다. 배는 칸막이로 만들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삶은 그렇게 나눠지지 않습니다. 한 부분은 문제가 생겨도 삶 전부가 침수되진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타이타닉호의 결정적인 실수였습니다.

정직은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성실함이 관여하지 않는 삶의 영역이란 없습니다. 주일날 오전 내내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한 사람이 주일 저녁에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하나님을 모욕하는 영화를 즐길 수는 없습니다. 오전 시간에는 아이들에게 정직해야 된다. 깨끗한 삶을 살아야 된다고 가르치고서는 밤에는 컴퓨터에서 음란한 화상을 보면서 즐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자녀를 성경적으로 키우는 일에는 매우 관심을 가지면서 부모를 공경하는 일에는 무관심하다면 모순입니다. 자녀의 생일에는 큰 케이크를 사다놓고 나이에 따라서 촛불을 켜고 축하하면서 부모의 생일이 언제 지나가는지 기억지도 않는다면 그건 죄악입니다. 사회정의를 위해서는 앞장서서 주장하면서 집에서 남편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 여자는 모순입니다.

빌 클린턴은 그런 면에서 나쁜 영향을 우리에게 끼쳤습니다. 사생활은 문란해도 대통령으로서 공생활은 별개라는 그런 인상을 심어 주었습니다. 개인생활이야 어떻더라도 공직수행에 지장이 없다면 우리 국민을 잘살게만 해 준다면 용서해 줄 수 있다 이런 입장입니다. 그러나 개인생활과 공적인 생활은 서로 나눌 수 없는 한 사람의 삶입니다.

인간은 서로 나눠진 조각이 아닙니다. 우리의 사적인 삶은 공적인 삶에 영향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사적인 삶에서 한 말과 행동이 공적인 삶에서 한 말과 행동과 별개일 수 없습니다. 현대 중공업에 가 보셨어요? 배는 조각, 조각을 만들어서 맞추었어요. 그러나 태속에서 여러분이 지어질 때는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우리의 삶에는 정직이 자리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시다. 왜 우리는 정직해야 합니까? 정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새 주인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때문에 내가 현안에 있어서는 손해를 볼 수 있고 손가락질을 당해도 내 인생의 새로운 주인이신 내가 속한 그분을 위해서 나는 정직하겠다고 결심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지금껏 누리지 못했던 하늘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정직은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을 끼칩니다. 자녀들을 복되게 하고 복되게 키울 수 있는 길입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이 광역시를 우리가 속해 있는 이 나라를 복되게 하는 길은 우리가 정직해 지는 길입니다.

정직은 자기 자신의 삶을 평탄하게 하는 길입니다. 정직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삶을 나타내는 깃발과 같습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속해 있으며 누구를 위해서 살고 있는지 소속을 나타내는 깃발과 같습니다. 정직한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을 회복하는 일에 좋은 교회 울산교회 성도님 여러분들이 앞장서는 한 주간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정근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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