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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정직한 그리스도인(2) (잠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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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예배의 자리로 나아오신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신앙인이 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직, 쉽지 않은 길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먼 길을 걸어야 합니다.

국제 투명성협회에서 작년에 조사를 한 결과입니다. 조사대상국 145개국 가운데 대한민국의 부패지수는 47위입니다.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 중에서는 부패지수가 높은 나라는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 중에서는 우리보다 깨끗한 나라들이 15개국이나 있습니다. 부패와 경제성장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부패정도에 있어서 우리가 일본만큼만 되어도 경제성장률이 1% 가량 증가합니다. 성장률이 1% 증가하면 일자리가 10만개가 증가하는 셈입니다. 부패한 사회에서는 서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비효율성이 증가하고 투자도 상대적으로 줄게 되고 정치 불안정도 더 높아집니다.

사람들이 생산적 활동보다는 부패를 통한 돈벌이, 즉 비생산적인 활동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게 됨으로써 경제성장이 저해됩니다. 이것이 부패의 경제적인 비용입니다. 우리는 지금 깊이 빠져있는 부패의 덫에서 우리는 빠져나와야 합니다.

어떤 신문 만화에 일진회의 청소년들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노래하는 것을 그린 것을 보았습니다. “노 프라브럼” “문제 없어요”라고 외치는 청소년의 모습을 그린 만화입니다.  “대학요, 성적 조작해서 갈 꺼예요, 취업요, 빽으로 할꺼예요, 회사 짤리면요, 땅투기 할꺼예요, e-편한 세상”이라고 노래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직이 힘이고 복이 되는 사회, 부패하지 않은 자가 잘 살 수 있는 공동체를 물려주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이 앞장 서야 합니다. 지난주일 우리는 왜 정직해야 하는지를 살폈습니다. 왜 정직해야 합니까? 정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정직은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을 줍니다. 정직은 자신에게 유익을 줍니다.

정직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삶을 나타내는 깃발과 같습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속해 있으며 누구를 위해서 살고 있는지 소속을 나타내는 깃발과 같습니다. 정직한 그리스도인이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 오늘 우리는 어떻게 정직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살피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이웃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는 삶, 그리고 자신의 삶에 축복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언제나 진리를 말하십시오.

오늘 본문을 다시 한 번 살펴봅시다.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히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잠12:2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는 거짓말을 하는 입술은 미워하십니다. 그러나 진실하게 사는 사람은 기뻐하십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한 말에 책임을 집니까? 여러분의 약속을 지킵니까? 혹은 언제나 변명을 일삼습니까? 하나님은 자기 말에 책임을 지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자기 말에 책임을 지지 아니하면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만들어 갈 수 없습니다. 정직은 모든 인간관계의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정직이 기초가 되지 않으면 관계는 무너져 내립니다. 정직과 신뢰는 함께 가기 때문입니다. 정직이 없으면 신뢰가 되질 않습니다. 만약 진리를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나를 믿지를 못할 것입니다. 만약 나를 믿지 못한다면 우리 사이에는 관계가 형성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이혼이 판을 치는 이유 중 하나는 잘못된 동기로 결혼을 하기 때문입니다. 성적인 매력 때문에, 편리함 때문에, 돈이나 안전 때문에, 단순히 한 사람이 좋아졌기 때문에 아니면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을 한다고들 합니다.

미혼인 형제자매 여러분, 좋아졌다고 사랑한다고 결혼하겠다고 덤비지 마시고 상대방이 어떤 인격을 가진 사람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믿을 만한 사람인지를 확인하십시오. 만약 그렇지 않고 덜컥 결혼을 한다면 덜컹거리는 차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언제 문제가 생길지 모릅니다. 모든 진실한 관계는 정직 위에 세워집니다.

정직한 남자는 일구이언을 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일구이언입니까? 이 사람 만나서는 이 말하고 저 사람만나서는 저 말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만나서는 이 말하고 저녁에 만나서는 딴 말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별것 아닌 것을 가지고 과장해서 말하는 것도 부정직한 것입니다. 때로는 아첨하는 칭찬도 부정직한 것입니다. 때로는 침묵하는 것도 거짓을 조장하는 것입니다. 약속을 어기는 것도 거짓을 행하는 것이지만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 것도 거짓을 행하는 것입니다.

90%는 말했지만 나머지 10%에 대해서 말하지 아니함으로 거짓을 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말해 주어야 할 10%를 밝히지 아니하면 말한 90%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사실의 전부를 말하지 아니하는 것은 바로 진실성이 결여된 것입니다.

정직한 남자가 일구이언하지 않지만 정직한 여자도 참소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헐뜯는 말은 시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가지고 비아냥거리는 것은 질투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이런 부정직한 일들로 인해서 관계가 망가져 가는 것을 지금 보고 있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진실이 결여됨으로 신뢰가 깨어지고 관계가 파괴되며 모든 희망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계신 분은 없습니까? 서로를 향한 신뢰지수가 매우 낮아서 관계가 파괴되는 아픔을 겪는 분은 없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면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해야 합니다. 모든 면에서 진실을 말하며 사랑 가운데 서로를 대해야 합니다. 진실한 느낌을 말하고 아무 것도 감추어서는 안 됩니다. 진리를 직면하고 진리를 말해야 합니다. 그 때 서로를 향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리를 말하기는 하지마는 진리를 몽둥이처럼 휘둘러서는 안 됩니다. 상대방을 파괴하려고 진리를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상대방이 잘못되고 여러분이 옳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려고 진리를 사용하지 마십시오.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왜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해야 할까요? 진리를 말하는 목적은 상대방을 파괴하는 데 있지 않고 상대방을 세워주는데 있습니다. 진리 안에서 자유케 하도록 돕는데 있습니다. 결혼 생활에 자유를 원하십니까? 직장 생활에 자유를 원하십니까? 삶의 모든 측면에 자유를 원하신다면 진리를 말하십시오. 언제나 진리를 말하십시오.

“입을 열 때 참되지 않은 말은 꺼내지도 말아라. 거짓은 아예 입에 담지도 말아라. 남을 잘못된 길로 끌고 갈 말은 하지도 말아라.”(잠4:24,현대어성경) 정직을 사랑하는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바입니다. 사적인 삶이나 공적인 삶이 다를 바 없이 사는 사람이 정직한 사람입니다.

정직한 삶을 살기 원하면 언제나 진리를 말해야 합니다. 때로는 불편해도, 때로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도, 때로는 곤란한 처지에 봉착해도 진리를 말해야 합니다. 더 정직한 삶을 추구하면 더 솔직한 말을 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이웃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는 삶, 자신의 삶에 축복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위해서 일어서십시오.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위해서 선다는 것은 바른 말을 한다는 것 이상입니다. 때로는 행동을 동반합니다. 정직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해서만 무언가 할 수 있습니다.”(고후13:8, 표준새번역) 언제나 진리를 위해서 행동하십시오. 오늘날 사람들은 더 이상 진리를 위해 행동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단지 자신의 권리를 위해서 행동할 뿐입니다.

더 이상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하지 않으려 합니다. 네한테는 그것이 옳고 나에게는 이것이 옳다고 말합니다.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옹졸한 사람의 짓거리라고 말합니다. 편협한 사람이라는 비난이 두려워서 그리스도인조차 침묵합니다. 꽉 막힌 사람이란 평가가 겁나서 혀를 움직이지 못합니다.

비열한 파당을 짓기 위해서 말해서는 안 됩니다. 미움 때문에 비평해서는 안 됩니다. 화가 나서 말해도 잘못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사랑 가운데 진리를 말하라고 명합니다.

정직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진리를 위해서 일어서야 할 때도 있습니다.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할 순간도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들어오는 음란메일에 대해서도 거부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세상이 무어라고 말해도 우리는 분명한 입장을 가져야 합니다. 결혼 밖에서 갖는 성관계는 언제나 잘못입니다. 몰래카메라로 당신이 여관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는 협박 전화에 확인도 하지 않고 돈을 넣는 고급 공무원들, 어떤 삶을 살아 왔습니까? 그리고 남자와 남자가 성적인 관계를 하는 호모섹스는 잘못된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낙태는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출산권장보다 낙태를 불법화하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진리를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 진리를 위해서 행동하지 않는다면 부정직한 처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말합니다. “무엇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를 알면서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약4:17, 현대어성경)

선한 사람이 아무 일도 하지 않으므로 악한 자가 기승을 부립니다. 무언가 진리를 위해서 일어서야 할 때에 그리스도인은 참여해야 합니다. 현 정부와 대통령에게 기대를 걸 수 없을 때는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잠언 20장 28절은 말합니다. “임금이란 모름지기 따뜻하고 진실하게 백성을 대해야 걱정이 없으며 정의를 실천해야 왕위가 든든히 선다.” 어떻게 왕위만이겠습니까? 어떤 리더십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이란 모름지기 따뜻하고 진실하게 가족을 대해야 걱정이 없으며 정의를 실천해야 가장으로서의 권위가 선다 그렇게 말해도 잘못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장의 권위나 직장에서 상사로서의 권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해야 합니다. 리더십과 인기는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기를 얻으려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주면  됩니다. 그러나 지도자가 되려면 사람들에게 그들이 꼭 필요로 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고 주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바른 일을 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위해서 일어서는 용기가 필요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이웃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는 삶, 자신의 삶에 축복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3. 깨끗한 삶을 사십시오.

마음과 몸과 동기를 순결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여러분은, 흠이 없고 순결해져서 구부러지고 뒤틀린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은 이 어두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것입니다.”(빌2:15, 표준새번역)

한 마디로 깨끗한 삶을 살라는 권면입니다.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했을 때 하나님은 왜 노아를 택하셨을까요? 그것은 노아가 흠 없는 정직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노아는 그 당대에 의롭고 흠이 없는 사람이었다.” 고 창세기는 말합니다.

어떻게 의롭고 흠이 없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구부러지고 뒤틀린 세대 가운데서 깨끗한 삶을 사는 길은 무엇입니까? 모두들 쉬운 길을 따라 살며 인격에 대해서는 신경을 끊은 시대에 어떻게 정직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습니까?

그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3.1 좋은 친구를 선택하십시오. 왜 그래야만 합니까?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닮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가? 그 사람을 닮아가게 되어있습니다. 친구의 흉내를 내는 것은 어린 시절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 났다 하면 누구하고 어울리는지 그 사람을 보면 여러분의 모습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을 선택해서 친구로 사귀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과 시간을 함께 하시고 그의 말씀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읽어도 좋고 들어도 좋습니다. 주님의 말씀과 함께 하는 시간이 주님을 닮아가게 만들 것입니다.

“속지 마십시오. 나쁜 동무가 좋은 습성을 망칩니다.”(고전15:33, 표준새번역) 그러므로 지혜롭게 친구를 선택해야 합니다. 친구들은 여러분을 향상시키든지 끌어내리든지 할 것입니다. 끌어올리는 것보다는 끌어내리는 것이 항상 더 쉽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좋은 영향을 주기보다 나쁜 영향을 받기가 쉽습니다.

3.2 꾸며진 환상보다 있는 그대로의 실상의 가치를 부여하십시오. 이미지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성공보다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부자보다도 부자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중요한 세상입니다. 그래서 짝퉁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대단한 삶을 사는 것보다 대단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중시되는 세상입니다. 악을 가리는 것보다 허한 것을 가리기에 혈안입니다. 그래서 가식을 하고 가장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합니다. “부유하나 구부러진 길을 가는 사람보다는 가난해도 흠 없이 사는 사람이 낫다.”(잠28:6, 표준새번역). 욕심보다 사람의 정직함을 쉽게 무너뜨리는 것은 없습니다.

돈이 우리 삶의 첫 자리를 차지하면 못하는 일이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꿀꿀이 죽인들 못 먹일 것이 없습니다. 돈이 된다면 순결인들 팔아넘기지 않을 리 없습니다. 돈이 된다면 남의 생명 죽이는 일도 주저 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우리에게 중요합니까? 진리보다 물질이 중요해지면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 무슨 거짓말인들 못할리 없습니다. 탈세도 불사하며 직위유용도 못할 바 아닙니다. 진리보다 물질이 중요해지면 여러분의 배는 침몰하기 시작합니다. 타이타닉호처럼 침몰하고 말 것입니다.

3.3 무엇을 보는지를 조심하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에 들어오는 것을 조절하십시오. 정직한 삶을 살고 싶습니까? 텔레비전을 통해 무엇이든지 시청하는 것을 조정해야 합니다. 어떤 프로그램을, 어떤 영화를, 어떤 잡지를, 책자를 읽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시인은 노래합니다. “흠 없는 길 걸어가려 이 몸 늘 조심합니다. 그러나 나의 하나님, 언제나 내게 오시렵니까? 집안에서 지낼 때에도 깨끗한 마음 지니고 살려고 합니다. 나쁜 짓 하려는 마음 품지 않고 죄 쌓는 짓을 미워하여 아예 그런 자들 가까이 가지 않으렵니다.”(시101:2-3, 현대어성경)

지혜자는 바른 관찰을 하고 있습니다. “명철한 사람의 마음은 지식을 찾지만, 미련한 사람의 입은 어리석음을 즐긴다.”(잠15:14, 표준새번역) 예, 지혜로운 사람은 지식을 굶주려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쓰레기를 뒤집니다. 온갖 쓰레기 같은 정보를 뒤지면서 무흠한 삶을 살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여러분이 순결 무흠한 삶을 살려고 한다면 여러분을 그렇게 도와 줄 수 있는 정보를 접해야만 합니다. 무엇을 듣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읽느냐 하는 것은 여러분의 삶에 반드시 영향을 줍니다. 그러므로 변명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읽는 소설에도 보는 텔레비전에도 듣는 프로그램에도 좋은 것이 있답니다. 어쨌거나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해요. 큰 문제가 아니예요.”

하지만 배가 침몰하는 데는 큰 구멍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1미터나 되는 구멍이 나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조그만 구멍이라도 물이 스며들기 시작하면 침몰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배가 가라앉느냐 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언제 가라앉느냐가 문제입니다. 작은 죄도 영혼을 수렁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직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한다면 사소한 문제에 조심을 해야 합니다. 사실 큰 잘못을 범할 기회란 많지 않습니다. 자주 다가오는 유혹은 대개 자질구레한 것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사적인 생활에서 조심해야 합니다.

정직한 그리스도인은 아무도 보지 않을 때도 하나님의 눈을 의식합니다. 캄캄한 자리에서도 정직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사실 정직을 설교하고 한 주간 살아보니 불편한 점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지난 월요일 용산 전쟁기념관에 가서 아, 어머니! 전을 관람하는데 곳곳에 사진촬영금지 표시가 있었습니다.

전 같으면 촬영을 꼭 금해야 될 것인지 내가 스스로 판단했습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표시를 전혀 상관하지 않고 사진을 찍는데 나만 찍지 않아야 하나 고민되었습니다.  나야말로 누구보다 재빠르게, 아무도 눈치 채지 않도록 찍을 수 있는 실력이 있습니다. 제 전공이 속사촬영입니다. 우리 기쁜소식 같은 표지에 실려 있던 보통 경치들은 달려가는 차에서 찍은 것입니다. 삼각대 세워놓고 폼잡아가면서 시간 봐가면서 찍으려고 하면 누가 명작 못 만들겠습니까? 그러나 달리는 차에서 찍어 낸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정직은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행동하는 것이기에 양심을 위해서 표시대로 사진촬영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한 편 아쉬움이 있었지만 다른 한편 새로운 삶을 시도하는 것은 새로운 보람을 안겨주는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정직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것은 구부러지고 뒤틀린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답게 어두운 세상에서 빛을 비취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살기 위해서는 시대의 흐름을 거슬려야 합니다.

이 땅에는 정직한 사람들을 무척 필요로 합니다. 정직이 힘이 되고 복이 되는 사회, 부패하지 않은 자가 잘 살 수 있는 공동체를 물려주기 위해서 우리 그리스도인이 앞장 서야 합니다. 좋은 교회 울산교회 성도들이 앞장을 서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 싶습니까? 이웃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는 삶을 살고 싶습니까? 자신의 삶에 축복이 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세상을 거슬리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정직한 삶을 살기로 결심하십시오.

대한민국이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아는 여러분의 삶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어느 나라든 모든 사람이 다 정직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정직하게 살기로 하는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면 그 사회는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직한 삶을 사는 것? 단순합니다. 단순하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아니 매우 힘들 수도 있습니다. 정직한 삶을 사는 것도 배워야만 합니다. 실습을 해야만 합니다. 하루 밤에 익힐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 알만 먹으면 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시간을 두고 훈련을 해야만 합니다.

하다보면 시들해질 수도 있고 지칠 수도 있습니다. 주저앉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온 사방이 잘못을 하고 있는데 나만 바른 일 한다고 무슨 유익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무슨 차이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어떤 차이를 진정으로 만들 것인지 믿음이 가지 않아도 나는 정직해야 합니다. 왜?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렇게 살 때에 나의 삶을 관찰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내가 정직하게 살면 지금은 손해 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그런 사람의 삶을 복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시면 우리는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손해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어떻게 오염된 강물을 거슬러 올라갈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께서는 신적 권능으로 우리에게 생명과 경건에 이르게 하는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불러 주신 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벧후1:3, 표준새번역 )

동일한 구절을 현대어성경은 풀어서 번역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깊이 알면 알수록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지니신 위대한 능력으로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생활을 하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영광과 선한 품성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올바른 생활을 하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당신의 영광과 선한 품성도 나누어 주신다고 성경은 약속합니다.

아무도 예수님처럼 정직한 삶, 무흠 순결한 삶을 사신 분은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정직한 삶을 살기를 목말라한다면 예수님을 마음에 모십시오. 여러분의 삶에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마음을 열고 고백해 보십시오.

“예수님, 주님께서 내 마음에 들어오시길 원합니다. 모든 더러운 것들을 다 치워주십시오. 마음의 집을 깨끗하게 해 주십시오. 우리의 성품과 인격을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 해 주십시오. 거듭나게 하시고 새 삶을 출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부터 시작해서 정직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새로운 습성을 익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주님을 더 잘 알게 되면 더욱 더 주님을 닮아갈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말씀을 더 배우면 더욱 더 거룩하고 정직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정직한 삶을 살기로 결단함으로서 그리스도를 아는 향기가 여러분들의 삶의 자리에서부터 울산광역시 전역에 퍼져가는 한 주간되길 바랍니다. 아멘
(정근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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