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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는 왜 그렇게 못합니까? (마 17: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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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모든 말씀이 다 좋은 말씀입니다만 그러나 특별히 제가 좋아하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는 빌립보서 4장 13절의 말씀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내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안에는 불가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안에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믿으십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상황이 어렵습니까?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습니까?  건강으로 염려하십니까?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시 산을 옮길 믿음을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실날 같은 믿음이라 할지라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다시 하나님 앞에 붙잡히면 무엇인가 새로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  이 믿음을 붙잡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내 의지가 아닙니다.  내 신념도 아닙니다.  믿음은 내 윤리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얼마나 의지하느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 얼마나 충성하느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강하게 의지하십시오.  강한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확실하게 의지하십시오.  확실한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분명하게 의지하십시오.  분명한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말씀을 듣는 가운데 내 속에서 '나는 못해도 내가 믿는 하나님이 저 산을 옮겨 놓는다'고 하는 이 믿음!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그런 믿음이 화산처럼 터져 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간의 본성 깊은 곳에는 "고맙다"라는 말 한마디를 듣고 싶어하는 열망이 있습니다.  부모님들이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가 "어머니, 고맙습니다!"하는 그 말 한 마디에 살맛 나지 않습니까?  우리 부부가 그렇게 힘들어도 "여보! 고마워요."  그 말 한 마디에 살맛 나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의 생활에서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자꾸 잃어버리면 사탄의 공격을 받습니다.  사탄의 세력의 올가미가 됩니다.  그러니까 고맙다는 표현이 없어질 때에 내게 흑암의 권세가 밀려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법칙입니다.  내 입에서 끊임없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이 말이 나오는 한 절대로 흑암의 권세는 나를 정복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고맙습니다."
"예수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우리는 내 입에서 이런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내가 무너지고 나면 이 땅에서 나처럼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이 얼마나 존경스러운 존재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이 자신의 존경의 도를 잃어버리고 나면 그 무엇으로도 대체 할 수가 없습니다.  남이 나를 존경하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전에 먼저 내가 나를 사랑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나라고 하는 존재는 세상에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한 존재입니다.  자신에 대한 존경스러움, 자신에 대한 자부심, 자신에 대한 진지한 사랑이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즘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변화에 민감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세상이 너무 느리게 변하는 조직이나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빨리 변해라.  그래야 성공할 수가 있다"  그러나 여러분, 감사한 것은 사랑의 하나님만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민감하지 못하고 우둔해 보여도 참고 기다려 줍니다.  그들에게 기회를 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간 믿음의 음성이 들어갈 때 마음에 오는 느낌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 이것이야!" 라고 하는 마음의 이끌림이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그 느낌을 꽉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급변하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밤을 새워서 울어 보아도, 어루만지며 엉겨서 사랑해 보아도, 쓰다듬고 어루만져 보아도, 해결 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성 앞에 낙심하고 좌절한 한 가정의 슬프고 슬픈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버지가 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어머니가 아들을 사랑하는 것과는 또 다른 어떤 차원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그러나 이들은 이미 시대의 흐름과는 한참 뒤쳐진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이 아들 속에는 원치 않는 사탄의 악한 권세의 역사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세상과 싸울 겨를이 없었습니다.  세상의 흐름과 싸울 겨를도 없이 그만 아들의 질병과 싸우다가 한참 뒤쳐지고 말았습니다.  모든 힘은 쇠잔되고 말았습니다.  모든 재산은 다 날아갔고 집안은 엉망이 되고….  지칠 대로 지쳐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실 이 이야기는 오늘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집안에 무슨 일이 있다 보면, 문제와 싸우다 보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포기하고 맙니다.  부부가 싸우다보면 다 포기해야 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눈뜨고 깨닫고 보면 나 혼자 한참 뒤쳐지고 맙니다.  남들은 다 가버리고 말았는데 나 혼자 멀찍이 뒤쳐져 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이 집의 문제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얻은 자식입니까?  살을 준겁니다.  피를 준겁니다.  여러분, 결혼한다고 다 자식을 얻습니까?  하나님이 주지 않으면 못 얻는 것입니다.  그런 신비한 자식을 얻었는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습니다.  밤새도록 안고 있어도 팔도 아프지 않게 길렀던 자식, 하나밖에 없는 이 아들이 웬일인지, 왠 말인지, 어쩌다가 사탄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온 몸을 비꼬면서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전혀 딴 사람이 되고 맙니다.  불에도 뛰어 들어갑니다.  물에도 쳐들어갑니다.  거품을 내 뿜으며 전혀 다른 인격으로 변합니다.  이런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아야 하는 아버지의 고통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이 아버지의 절망에 찬 슬픔을 여러분은 이해하시겠습니까?

갑자기 파리해지며 경련을 일으키는 이 아들, 거꾸러지며 땅에 쳐 박고 짐승처럼 뛰쳐나가는 저 모습, 사랑하는 이 아들의 모습을 주기적으로 보아야만 했던 가족들과 아버지….  처음에는 버릇이 나빠서 그런지 알고 때려도 보았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왜 안 하던 짓을 하느냐고 붙들고 싸움도 해 보았을 겁니다.  그러나 속수무책입니다.

여러분, 삶의 한계점이라고 하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닙니까?  아들의 이 절망적인 모습을 바라보면서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아버지의 이 심정….
"아들아, 이 아버지의 무능함을 용서해다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나의 무능함을 용서해다오"
한탄 밖에 무슨 할 일이 더 있겠습니까?  어쩌면 처음에는 반항도 했을 것입니다.  왜 우리 집에 이런 일이 있어야 될까?  왜 하필이면 내 아들에게 이런 일이 있어야 될까?  "이 놈아!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처음에는 대단한 혼란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영적인 세계는 대단히 복잡하고 심오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했을 겁니다.  아이를 잘못 길러서 그렇다고….

그러나 여러분, 세상에 아이를 잘못 길렀다고 다 그렇게 됩니까?  그냥 들 강아지처럼 내놓고 길러도 잘되는 집안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느 아버지가, 어느 부모가, 어느 가정이 자식을 그렇게 기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속지 마십시오.  그런 말에 넘어지지 마십시오.  자식 길러본 사람은 다 알 겁니다.  이 땅에는 우리가 모르게 일어나는 일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 세상사에는 인간의 뜻대로, 인간의 변론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간혹 어떤 사람이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우리 중의 어떤 사람은 그것이 하나님을 바로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아니면 왜 어려운 일을 당했는지 회개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영적으로 교만한 행동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영적 교만함이 얼마나 상대를 힘들게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일에 겸손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영적인 일일수록 겸손해야 됩니다.  정말 진실해야 됩니다.  영적인 일에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내가 꿈을 꾸니까 어떻고"
"내가 무엇을 하니까…"
이런 소리하지 마십시오.  사도 바울은 3층천을 보았습니다.  하늘 나라를 보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넓은 세계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얼마나 겸손했습니까?

욥이 고난을 받던 때에 너무 기가 막혀 있는데, 친구들이 찾아와서 이렇다 저렇다 말들을 합니다.  욥은 하나님 앞에 나가서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 많던 재산은 다 날아갔습니다.  그렇게 자랑하던 자손들을 하루 아침에 다 잃었습니다.  사랑하던 부인마저도 "당신이 이래도 하나님을 믿느냐?"면서 저주하며 떠나갔습니다.  이 기막힌 현실 앞에서 욥이 하나님께 눈물 흘리며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욥아, 너 미련하다. 네가 천지를 창조할 그 때 나하고 있었느냐?  네가 하나님의 천지 창조의 뜻을 알고 있느냐?"
100년을 못사는 네가 이 천지의 역사를 창조하는 내게 너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  우리가 오늘 이 사실을 듣고 깨달아야 할 한가지 깊은 뜻은 속이거나 상대방의 생각을 멋대로 추측하기 위해서 정력과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진단이나 자신의 예견을 너무 믿어서는 안됩니다.
"나는 이렇게 끝날 사람 같아!"
"나는 이런 사람이야"
"저 사람은 원래 저런 사람이야"
여러분, 자신의 예견이나 진단을 너무 믿으면 안됩니다.  세상은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축복의 변수가 있습니다.  "내 아들은 이런 놈이야.  내 딸은 이런 애야.  우리 부모는 이런 분들이야.  내 아내는 이런 여자야.  내 남편은 이런 남자야."  그렇게 강력한 예측이나 예견이나 진단을 따라가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축복의 변수를 얼마든지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유한한 우리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방탕아였던 어거스틴은 32년 동안 어머니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지만 성자가 되었습니다.  너무 쉽게 속단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변수는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지금 이 시간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데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변수는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언제나 가능한 겁니다.  미래가 꼭 과거요 현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과거는 그랬고 지금은 그래도 미래는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날 것이다는 꿈이 있어야 합니다.

고난과 역경의 때에 인간이 무엇을 해야 될까?  하나님 안에 사는 사람들은 고난과 역경과 힘들 때일수록 더 선해집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고난과 역경이 오면 더 악해진다."  아닙니다.  거짓말입니다.  고통과 역경 가운데 훨씬 더 선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때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될까?  은혜의 맛을 붙들어야 됩니다.  은혜의 줄을 붙들어야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은혜의 줄을 붙들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줄을 힘차게 붙잡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은혜도 받아 볼수록 은혜 맛을 압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제일 심각한 문제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은혜의 맛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은혜가 없으면 사탄입니다.  사탄이 어디에 있느냐?  사탄이 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가 떠난 믿음 속에 기생합니다.  은혜가 없는 그 마음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은혜를 받으려고 발버둥쳐야 합니다.  은혜 안에 잡혀 살려고 발버둥을 쳐야 합니다.

여러분, 믿음의 길이라고 하는 것은 선택의 길이 아닙니다.  이 길도 있고 저 길도 있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길이라고 하는 것, 그것은 이 길밖에 없어서 가는 길입니다.  마지막 길입니다.
"주여! 저와 제 아들에게는 이 길밖에 없어서 왔나이다.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여! 이 생명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여! 내 가정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여! 내 기업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상대하는 자에게는 절대적으로 상대하십니다.  장난 삼아 상대하는 사람은 장난 삼아 상대해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놀이의 대상이 아닙니다.  절대적인 신앙!  절대적인 믿음!  하나님은 언제나 이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아니란 말입니다.  내 전체를 의지하라는 말입니다.  내 전체를 맡기라는 말입니다.
인간의 가장 위대한 용기가 무엇일까?  돈을 버는 용기도 위대하고, 명예를 차지하는 용기도 위대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가장 위대한 용기는 모든 인생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올 수 있는 용기입니다.  사람에 대한 낙심과 하나님의 능력을 혼돈하면 안됩니다.
목회를 하면서 제일 안타까운 것은 어떤 사람에게
"예수 믿으세요" 라고 하면, 안 믿는다고 합니다.  왜 안 믿느냐고 하면 이렇게 말합니다.
"어느 목사를 보니까 안 믿겠습니다"
"아무개 장로를 보니까, 안 믿겠습니다"
"어느 집사를 보니까 싫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람에 대한 실망은 할 수 있습니다.  저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실망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저에게서 완벽한 목사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저는 완벽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완벽한 목사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지극히 부족하고 사랑받아야 할 존재가 오주철 목사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렇기 때문에 함께 신앙 생활하는 가운데 얼마든지 저에게서 실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에 대한 실망일 뿐이지 하나님에 대한 실망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물러나면 안됩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제자들 앞에 나갔을 때, 제자들이 하는 일을 보고 실망했다고 한다면 그 집에는 그런 기적이 일어날 수가 있었겠습니까?  없었습니다.  고난과 고통 속에 있는 이 아들과 아버지가 제자들 앞에 정말로 간절한 마음으로 잘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어리석은 제자들은 무슨 일을 했는지 아십니까?  종교적인 놀이를 했습니다.  남은 죽고 사는 생명의 문제가 걸려 있는데,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종이라는 사람들은 종교적인 놀이를 하고 있었단 말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아이를 고생만 시켰습니다.  더 큰 수모와 좌절만 경험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눈을 떠야할 것은 인간적인 수모와 인간적인 고뇌에서 물러나지 말아야 합니다.  절대로 물러서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것을 이기고 나면 하나님 안에서는 틀림없이 더 큰 일이 있다고 하는 믿음이 생기기를 축원합니다.  그런 작은 시험에 물러가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주님께서는 인간을 알지니 인간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또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의 삶에서 증거가 없으면 비난과 조롱거리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모든 실패와 좌절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증거의 연약입니다.  성도의 위험이 무엇입니까?  증거의 연약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변론이나 토론이 아닙니다.  결코 감상의 대상이 아닙니다.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라" 이 비애와 낙심의 탄식에서 물러나지 않아야 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소리냐?"  여기서 물러나지 않아야 합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리니 기어이 내가 증인이 되리라"  하나님은 교인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증인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깊이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어느 교회 교인이다.  내가 어느 교회 무슨 직분에 있다.  그것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는 더 큰 증인이 필요합니다.  더 많은 증인이 필요합니다.  더 아름다운 증인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축복 받았다고 하는 증인된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귀한 그릇이 되었다고 증인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성경은 인류의 영원한 경영 교과서입니다.  '스마트 경영'이라는 책을 보면, 사람이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스마트하게 하는 기업가가 일어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마트 경영이 무엇입니까?  영적 경영입니다.  '스마트'라는 말이 일을 세상적으로 부지런하고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영적으로 영감을 가지고 일을 하는 사람이 21세기에 일어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21세기는 하나님 앞에 서서 영적인 영감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미래를 여는 것은 영감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것도 좋습니다.  새벽부터 열심히 일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방향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방향이 잘못 되었는데 열심히 일하면 빨리 망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서 방향을 잡는 일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방향이 무엇일까?  하나님이 복 주시는 방향이 무엇일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이 무엇일까?  믿음의 사람들은 그 방향을 바로 잡아야 됩니다.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처음부터 완벽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무슨 일확천금을 꿈꾸면서 일순간에 완벽에 이르기를 원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외에는 완벽이란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누구나 일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것입니다.  적절한 시간과 연습이 필요합니다.  인간은 실수나 실패를 통해서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된 존재가 아니라 되어 가는 존재입니다.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고 처음부터 완벽한 것을 기대하지 말고, 자라나는 모습을 자꾸 들으면서 봐 주라고 했습니다.  기대만큼 반응이 없다고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또 자기 반성이나 직원의 반성이나 회사의 반성은 중요하지만, 매일 모여 앉아 가지고 반성만 하면 그것이 지나쳐서 자기 파괴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품이나 기술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회사에서 보람을 느껴야 됩니다.  의미를 느껴야 합니다.  살맛이 나야 됩니다.  사장이 아버지처럼 존경이 가고 의지가 되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일단 마음을 아름답게 해야 됩니다.  심보를 바로 쓰십시오.  심보를 아름답게 쓰십시오.  이 땅에 자신을 대신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자신을 속이지 마십시오.  자신을 스스로 불에도 집어넣고 물에도 집어넣고, 자신을 묶고 자신을 들들 볶는 그런데서 빠져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주의 은혜를 힘입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고 헤엄쳐 나올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이란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는 장소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생명 속엔 무조건 더 좋은 응답이 있는 것을 기억하시고, 오늘 그 현실에서 빠져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과거의 그 아픔에서 빠져 나오시기를 축원합니다.  자기를 교정하려고만 애쓰다보면 전혀 새로운 자기가 됩니다.  그러니까 자신을 교정하려고만 애쓰기보다는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이나 환경이나 자양분이나 돌봄이나 기회를 달라고 기도하면서 영적인 눈을 뜨고 하나님께 나와야 됩니다.  만일 거기서 아버지가 그 아이를 붙들고 교정하려고 했으면 아이를 붙들어 맸을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도 죽이고 자기도 죽었습니다.  다 망하고 맙니다.

저는 분재는 좋아하지만 키우는데는 소질이 없습니다.  얼마 전에 교인에게서 서재실에 그윽한 향기가 나라고 허브 화분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전통과 타고난 소질에 따라서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분재를 잘 하는 분은 화분에 심기운 나무를 교정하고 끊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잘살아 날 수 있는 환경과 자양분과 돌봄과 또 다른 기회와 이런 것들로 자꾸하다 보면 살아납니다.  이것이 깨달아 지기를 바랍니다.

뉴턴의 법칙에 보면, 모든 행동에는 언제나 작용과 동등한 반작용의 힘이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강하게 밀면 강한 반응이 옵니다.  제가 강단을 이렇게 힘차게 치면 큰 소리가 납니다.  그러나 작게 치면 작은 소리밖에 안 납니다.  내가 미는 작용만큼 반작용의 힘이 오는 것입니다.  내가 쓴 힘의 작용만큼 저 쪽에서 반작용이 옵니다.  내가 선하게 하면 선한 것이 옵니다.  내가 악하게 하면 악한 것이 오는 것입니다.  내가 부드럽게 하면 부드러운 것이 오는 것입니다.  내가 귀하게 하면 귀하게 오는 것입니다.  내가 아름답게 생각하면 아름다운 반응이 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의 영원히 변치 않는 법칙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사탄의 권세를 이길 수 있습니다.  어려울수록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힘들수록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사탄의 공격이 강할수록 하나님을 더욱 강하게 사랑하십시오.  이기는 길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영적 전쟁이라는 말입니다.  예수 사랑에 대한 믿음은 모든 현재의 상황을 확실히 초월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새로운 환경을 창조해 내고 맙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힘으로 묶으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으로 맞서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에 눈을 뜨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에 헌신하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에 충성하십시오.
하나님의 일을 나에게 맡기는 세상의 어떤 일거리와 같은 것으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일은 그런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은 세상 일거리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세상 일거리는 하다가 그만 둬도 되지만, 하나님의 일은 그만 둘 수 없는 것입니다.
제일 크고, 고맙고, 진실한 작업!  헌신의 폭을 넓히시기를 바랍니다.  봉사의 폭을 넓히시기를 바랍니다.  네 믿음이 작은 연고라.  이 세상은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는 장소일 뿐입니다.  내 가정, 내 직장, 내 사업은 하나님이 축복의 역사가 나타나는 장소일 뿐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수많은 하나님의 기적의 현장을 봅니다.  어디 성경뿐이겠습니까?  우리 주위에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하나님의 기적의 현장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이렇게 믿었더니 하나님께서 나와 내 가정에 이렇게 축복하셨단다.  우리는 그런 축복의 간증을 들을 때마다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렇게 못할까?"
"저 사람은 저렇게 많은 축복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고 간증하는데, 그렇다면 나는 왜 그렇게 축복을 받지 못했을까?"
저는 그 이유는 간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내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축복의 기적이 역사할 믿음의 자리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은 신념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충성도 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의지도 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잘 믿으셔야 합니다.  잘 믿으십시오.  이 시간 옆에 있는 사람에게 껴안으면서 축복의 말을 하십시다.
"예수 잘 믿으셔야 합니다."
우리가 왜 잘 믿어야 합니까?  내가 찾는 모든 길을 주님께서 열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왜 잘 믿어야 합니까?  내가 모르고, 알 수 없는 인간의 모든 비밀과 진리를 주님께서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짊어진 모든 무거운 짐을 주님께서 대신 져주시고 벗겨 주시고, 내가 지은 모든 죄를 오직 주님께서만이 사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의 모든 염려와 걱정을 그 분이 아시고 덜어주십니다.  내 필요한 모든 것을 주님이 채워주십니다.  내 필요한 건강을 주님이 돌보시며, 내 생명을 주님이 살려주십니다.  내 영혼을 주님이 건져주시고 내 모든 길에 주께서 함께 동행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잘 믿어야 합니까?  주님이 우리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교회에서는 예배를 잘 드리고 나가서는 제멋대로 살아도 되는 그런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아직까지 그 마음 한 구석에도 자리잡지 않았다면 그것은 신앙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믿는다"고 하는 것은 내 인격, 내 생활, 내 윤리, 내 사고, 내 도덕, 내 가정, 내 범사의 사고방식이나 습관에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아버지는 아들의 문제,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주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내 앞에 놓인 이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하여 주님 앞에 매달리고 있습니까?

간혹 우리는 어느 교회 아무개 성도는 1년에 몇 백명을 전도했다더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나는 왜 그렇게 못합니까?  내가 그 사람보다 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못한 것은 단지 하나, 열심과 믿음의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도 좀더 진지하게 믿어 보십시다.  뜨겁게 주님의 사랑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을 증거하는 귀한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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