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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적지도자의 네 가지 모습 (딤후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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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말씀은 디모데후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1장 말씀을 통해 디모데를 향한 사랑의 마음을 나누고, 하나님께서 디모데에게 주신 은사가 불일 듯 일어나길 원하며, 복음을 위해 함께 고난 받을 것을 권면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것, 복음을 온전히 지킬 것을 부탁하면서 자신의 곁을 떠나버린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자주 감옥으로 찾아와 유쾌하게 한 사람도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제 디모데후서 2장을 통해 영적 지도자들의 모습과 그들은 어떤 훈련을 받아야 하는지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3장에서 말세에 일어날 위협적인 이단들에 대해 경고하고, 4장에선 다시 한 번 권면과 유언을 남기고 있습니다.

내 아들아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성도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루시고 열매를 맺으십니다. 먼저 1, 2절 말씀입니다.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내 아들아’라고 부릅니다. 바울은 결혼하지 않았지만, 디모데를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바울은 육신으로 디모데를 낳지 않았지만, 영적으로 그 이상의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서 바울은 자신의 곁을 떠났던 사람들과 떠나지 않고 함께 어려움을 나눴던 사람들을 언급했습니다. 그들 중에서 오네시보로를 가리켜 ‘내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내 아들아’라는 호칭 속에 들어있는 바울의 사랑은 정감 있고 귀한 것입니다. 특히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쓴 편지에서 읽은 ‘내 아들’이라는 표현은 디모데의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감동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바울의 사랑이 담긴 ‘내 아들아’라는 표현을 들려주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내 아들아’라고 부르시며 ‘너는 그리스도 안에서 강하라’고 권면 하십니다.
바울은 마음이 약했던 디모데에게 ‘내 아들아, 강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디모데가 강건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능력, 조건, 환경 등이 훌륭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강건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면한 것처럼, 우리도 강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가 넘어지더라도 절망하지 않고 곧 일어설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강할 수 있습니다. 만약 지금 절망 가운데 쓰러져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용기를 얻고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주님의 모든 자녀들이 은혜 속에서 힘과 용기를 얻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제자를 양육하는 지도자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고 말씀합니다.
본문에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하고 있는 ‘충성된 사람들’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 즉 복음을 믿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다음 세대에 전할 수 있도록 제자들을 양육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많은 증인 앞에서 자신에게 들은 말을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에게 양육 받은 충성된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2절 말씀에서 우리는 ‘배가의 목회’를 알게 됩니다. 한 마디로 제자 양육이 어떤 것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충성된 사람들을 가르치라고 말합니다. 충성된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깁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후 바울에게 나타나 구주되심을 말씀하시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 양육 받은 사도 바울은 어린 디모데를 가르치고 훈련시켜 제자로 삼았습니다. 이제 디모데는 충성된 사람들을 가르칠 것입니다. 충성된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울을 가르친 1세대라면 바울은 디모데를 가르친 2세대이며, 디모데는 충성된 사람들을 가르친 3세대이고 충성된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친 4세대입니다. 이렇듯 복음은 우리에게 들려지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지며 그래서 다음 세대로 이어집니다. 즉 우리는 복음을 다음 세대에 증거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특권도 있지만, 동시에 받아들인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야 할 의무도 있습니다. 심프슨이라는 분은 이에 대해 “바울은 천국의 횃불이 꺼지지 않은 채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것을 디모데에게 이야기하고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천국의 횃불이 꺼지지 않은 채 나에게 왔다면 나는 그 횃불을 다음 사람에게 나눠줘야 합니다. 올림픽 성화의 봉송을 위해 한 사람에 의해서 다른 사람에게 성화가 전해지는 것처럼,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 받은 천국 복음의 횃불을 디모데에게 전달했고 디모데는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지난 해 우리 교회에 등록한 교인들의 수는 총 4,317명입니다. 성인이 2,181명이고 대학생·청년이 2,136명입니다. 성인들 중에서 복음을 전혀 들어보지 못한 채 처음으로 우리 교회에 오신 분이 735명으로 35%였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맞춤전도를 통해서 오신 분도 있고, 일상의 전도를 통해 오신 분도 있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땅 끝까지 끊임없이 전달돼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복음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이 제자를 양육하는 일이며 충성된 일입니다. 한 성도가 일 년에 한 명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자신의 나이만큼 제자를 삼을 수 있다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자신만 복음을 믿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반드시 전해야 합니다.

충성스런 군사인 영적 지도자

사도 바울은 두 번째 영적 지도자의 모습을 3, 4절 말씀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충성된 사람을 군사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좋은 군사는 고난을 당해도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싸워서 이긴다고 했습니다. 또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신의 생활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징집을 당하면, 모든 일을 내려놓고 입대합니다. 군사는 사사로운 삶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군사는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한다고 했습니다. 국가의 부름에 헌신하고 충성을 다합니다.
아마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를 쓸 때 로마의 군인들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당시 로마 군인들이 모든 어려움을 잘 헤쳐 나갔고 스스로 절제하는 힘이 있었으며,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기 위해 열성적으로 충성했던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8절에서 사도 바울은 선한 믿음을 위해 싸울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믿음의 군사들입니다. 군사는 상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고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법입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잘 알고 있겠지만, 군대에선 ‘안 되면 되게 하라’고 합니다. 좋은 의미를 지닌 말은 아니지만, 군인은 모든 일을 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군대에서 배운 것은 무슨 일이든지 물러서거나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로마 군인들은 면류관을 얻는 것을 매우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승리의 면류관은 개선장군에게 수여했습니다. 해방의 면류관은 적의 포위를 뚫고 살아난 장군에게 주어졌습니다. 벽의 면류관은 적의 성벽에 가장 먼저 오른 병사에게 수여했습니다. 침입의 면류관은 적의 진영에 가장 먼저 쳐들어간 군인에게 주어졌습니다. 군사들은 여러 종류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 두려움에 떨지 않고 전진하기를 힘썼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우리는 주님의 군사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군사에겐 많은 고난과 어려움들이 닥쳐올 것입니다. 그런 중에도 물러서지 않고 충성을 다하는 군사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합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2)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충성을 다해 선한 믿음의 싸움을 마친 후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면류관을 얻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규칙대로 경기하는 영적 지도자

사도 바울은 영적 지도자를 규칙대로 경기하는 자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5절 말씀입니다.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선수들은 경기에서 승리한 후 상을 받기 위해, 면류관을 얻기 위해 훈련을 거듭합니다. 자신을 절제하고 스스로 인내하면서 강인함을 기르고 경기력을 향상 시킵니다. 아마추어와 프로에 차이가 있다면 아마추어는 자신의 일에 전부를 바치지 않고, 프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받쳐 전력 질주한다는 것입니다.
올림픽 경기가 진행될 때 선수는 개인뿐 아니라 국가를 대표하게 됩니다. 선수들은 올림픽 경기 10개월 전에 국가나 도시를 대표해 합숙 훈련에 들어갑니다. 오로지 상을 받기 위해 오랫동안 훈련하고 자신을 갈고 다듬습니다. 강도 높은 훈련, 절제, 인내를 통해 강인함을 연마한 후 경기에서 승리하면 큰 상을 받게 됩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 친구들 중 한 명이 배드민턴 선수 출신이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15점 경기에서 10점을 잡아주겠다며 경기를 제의해 왔습니다. 제가 조금 기분 나빠 했더니, 그 친구는 왼손으로 경기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시합을 했는데, 제가 14대 0으로 이기고 있었을 때 친구가 오른손으로 경기해도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라고 대답했습니다. 까짓것 한 점만 나면 경기가 끝나는데, 자신하고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16대 14로 제가 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때 선수 생활을 했다는데,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운동선수들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경기를 잘 할 수 있도록 수많은 훈련을 쌓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경기하는 자들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고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훈련을 받고 양육을 받아야 합니다. 많은 인간적 욕정, 부족함 등을 주님의 말씀으로 극복하고 오랫동안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처럼, 아무리 경기를 잘한다 하더라도, 실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에 규칙을 정해주셨습니다. 신앙생활이란 개인이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말씀, 법, 명령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제하고 인내하며 성숙할 때 면류관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부지런한 농부같은 지도자

6, 7절 말씀입니다.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내 말하는 것을 생각하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은 영적 지도자를 농부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게으르고 나태한 농부가 아니라, 부지런히 수고하는 농부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부지런한 군인은 지휘관의 명령을 따르고 총애를 받습니다. 부지런한 운동선수는 규칙대로 경기해 승리합니다. 부지런한 농부는 곡식을 먼저 받게 됩니다.
농부에게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우선으로 농부는 인내합니다. 오늘 씨를 뿌리고 내일 당장 추수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오랜 인내는 힘이 들지만 농부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파종한 식물이 자랄 때까지 기다립니다. 모두 자란 후에 열매를 거둬들입니다.
수고하는 농부는 하나님 앞에서 충성된 자로서 제자를 양육하고 사명을 감당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키울 때 젖병을 물린 채로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는 없습니다. 아이가 하루아침에 자라 부모를 봉양하길 바라지 않습니다. 흔히 우리는 자식 키우는 것을 농사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스승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음으로 농부는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일을 합니다. 농부는 새벽녘에 논밭으로 나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옵니다. 한밤중에 비가 온다고 해서 집에 머물지 않습니다. 아무리 눈이 많이 오고, 비가 많이 와도 농부는 지체 없이 논밭으로 나가 작물들을 보살핍니다.
우리가 부지런한 농부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성실함입니다. 농부는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최선을 다해 일을 합니다. 때에 다라 물꼬를 틀 때와 막을 때를 알며 거름을 줄 때와 추수할 때를 압니다. 주어진 기회마다 열심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는 농부는 기쁨으로 단을 거둘 수 있습니다.

7절에서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총명이란 사물이나 이치에 대해 잘 이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총명한 은사를 주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는 수고하여 먼저 곡식을 얻는 농부가 되어야 합니다. 인내하고 성실하며 주어진 때를 놓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농부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가르치는 자, 군사, 경기하는 자, 농부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엄격한 훈련을 거쳐야 하고 성실해야 하며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주님께 충성을 다하며 일편단심이어야 합니다. 마음이 자주 변하는 군사, 경기하는 자, 농부는 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군사는 최후의 승리, 경기하는 자는 면류관, 농부는 추수를 먼저 얻기 위해 애쓰는 것 같이 우리는 하늘의 영광을 얻기 위해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믿음의 삶이란 하나님 앞에서 충성된 자로서 제자를 양육하고 다음 세대에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천국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 훈련하고 일편단심으로 충성하는 마음을 가진 성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천국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훈련을 통과하고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통해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성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우리에게 더하여 주옵소서.
충성된 자로서 주님 앞에
서게 하여 주옵소서.
군사로, 경기하는 자로, 농부로
부으심을 받은 이 은혜가
온전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종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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